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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8월호
패션의 나라? 중국! _ 박성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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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 패션의 나라?

 

어느 대학에나 한 두 개쯤은 개설되는 중국 문화과목, 이를 테면 중국문화의 이해와 같은 과목에서 복식파트를 공부하기 전, 학생들에게 중국인들의 패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물어보면 한결같이 고개를 저으며 하는 대답들이 있다. 촌스러워요, 이상해요, 패션 테러리스트 같아요.... 필자 역시 중국인들의 잠옷 패션같은 것들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옷은 분명 몸에 걸치는 천 조각 이상의 문화적 함의를 담고 있을 텐데, 이 놀라움과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2. ‘의식주(衣食住)’식의주행(食衣住行)’

 

우선 의식의 근저를 가만히 들여다보자. 한국인들은 겉모습에 꽤 신경을 쓰는데 비해, 중국인들은 내실을 중시하는 듯하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의식주라는 단어만 봐도, 한국인들은 옷차림을 예의를 차리는 수단으로 인식하면서 다른 사람의 판단이 중요한 기준이 되므로 될 수 있으면 튀지 않는 무난한 차림을 선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중국인들은 미국과 더불어 세계경제를 이끌어나가고 있는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지만, 패션 감각은 그에 미치지 못한 채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하는 세련미가 부족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그만큼 외형보다는 내면을 채우는 것에 정성을 더 들인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의 의식주와 비슷한 단어로 중국인들은 식의주(食衣住)’라는 말을 즐겨 쓰는데, 여기에 교통()’을 추가하여 식의주행이라고도 한다. 역시 입을 것보다는 실리적으로 몸을 살찌우는 먹거리가 우선인 것이다. 한 예로, 201511월 중국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에서 지난 35년 동안 유지해오던 한자녀정책을 폐기하고 두자녀정책을 전면적으로 실시하기로 결정했을 때 많은 전문가들은 엔젤산업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정책이 발표된 이후 기저귀, 분유, 아기의류 등의 주식이 일제히 상승했으나, 몇 개월이 흐른 지금 업종별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아기엄마들이 분유는 최고급 프리미엄을 먹이지만, 옷은 물려 입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는 각 기업이 처한 여러 가지 환경적시장적 요인들도 있겠지만, 중국인들의 사고 깊은 곳에 옷보다는 먹거리를 중시 여기는 관념이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3. 패션의 길(歷程)

 

그렇다면 중국인들의 유전자에는 아예 패션에 대한 욕구나 감각이 없는 것일까? 1980~90년대 중어중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라면 한 권 쯤은 책꽂이에 꽂아두었을 리쩌허우(李澤厚: 1930~)의  미의 역정이나 중국미학사를 보면 분명 시공간을 초월하여 감동을 주는 중국적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중국인들의 패션 DNA를 찾아보기 위해서는 리쩌허우처럼 인류에게 옷 짓는 법을 알려준 먼 옛날 황제(黃帝)의 부인 유조(嫘祖)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 역사적인 길(歷程)을 내려오는 방법이 가장 수월하리라 본다. 선진시기부터 한족의 복식은 위-아래가 연결되어 몸을 깊이 감싸는 형태인 심의(深衣)’가 기본적인 스타일이었다. ~한나라를 지나 위진남북조 시기에 이르면 한족과 이민족 복식의 결합이 본격적으로 발생하게 되는데 여전히 심의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도교불교의 영향으로 둘로 나눠도 될 정도의 넉넉한 소매와 품을 특징으로 한다. 이 시기에는 남성들도 패션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여 수염을 깎고, 분칠을 하고, ‘치극이라는 굽 높은 신발을 신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파격적이고 개방적인 패션의 시대는 누가 뭐라 해도 ()나라일 것이다.

 

사진 1  중국 드라마 무미랑전기에서 당나라 복식을 입고 있는 판빙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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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를 통해 문화 교류가 활발해지고, 비단이 양적질적으로 발전한 기초 위에 탄생한 당나라의 복식은 농염한 색채에 현란한 문양을 특징으로 한다. 2014년 제작된 82부작 사극 무미랑전기(武媚娘傳奇)’는 판빙빙(范冰冰)이 주연과 제작을 맡은 점에서도 이슈가 되었지만, 무엇보다 매 회 등장하는 화려한 당나라의 복식과 화장법이 주목을 받았다. 특히 여성의 복식은 하늘거리는 긴치마를 겨드랑이까지 바짝 올려 비단 띠를 올려 매고 짧은 상의를 걸치는 스타일로, 중국 복식사상 가장 대담한 형태라 하겠다.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시 화춘심(和春深)에 묘사된 것처럼 석류처럼 붉은 치마(裙妬石榴花)’를 입고 꽃새 등을 얼굴 곳곳에 그린 독특한 화장(面粧)을 한 여인이 내 옆을 지나간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장윤주나 송경아 같은 지금의 톱모델들도 당나라 여인들의 쎈 언니포스에는 어깨가 움츠러들었을 것 같다.

 

이어지는 송나라 복식은 성리학의 영향으로 다소 소박하고 보수적인 디자인을 추구했으며, 명나라 역시 복고주의의 영향으로 몸을 꼭꼭 감싼 1자 형태로 떨어지는 실루엣의 디자인이 기본이었다. 이렇듯 심의에 기초한 한푸(漢服)’의 넉넉한 품과 소매는 얼핏 간단하고 밋밋하게 보이지만, 착용 후 입은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다채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이어지는 마지막 왕조 청나라의 복식은 중국의 전통복식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그것, 바로 치파오(旗袍)’이다. 치파오는 만주족을 치런(旗人)’이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몸에 꼭 붙는 형태는 1920년대~30년대 올드상하이에서 유행하던 디자인이다. 원래 만주족이 입던 치파오는 청나라 강희제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보보경심(步步驚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활동하기 편하게 옆트임이 있는 넉넉한 품에 속바지를 입는 형태였다. 그동안 중국을 대표하던 차이나드레스 치파오가 사실은 청나라 만주족의 전통복식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공공연히 아는 출생의 비밀(!)이라 하겠다.

 

사진 2  중국 드라마 보보경심에서 청나라 복식을 입고 있는 류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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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패션, ‘중국의 꿈(中國夢)’을 향해 날아가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중국에는 한족의 한푸와 먀오족티베트족위구르족조선족 등 55개 소수민족의 전통복식이 각자의 다양성을 드러내며 공존하고 있다. 중국복식사에서 특히 주목받는 것은 먀오족의 전통복식으로, 다양한 깃의 카프탄(kaftan) 상의, 풍성한 주름으로 이루어진 하의, 화려한 은장신구 등은 오늘날의 패션디자인에서 단골로 활용되는 소재이기도 하다.

 

이상의 흐름을 정리해보면, 한족의 전통복식 한푸에는 관대(寬大)의 미’, ‘화려하고 정교한 미’, ‘은폐의 미’, ‘초탈의 미등이 녹아 있으며, 여기에 다양한 민족들의 전통복식이 더해져 중국 패션의 내용이 더욱 풍부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중국인들은 왜 패션 테러리스트로 오해받고 있을까? 앞부분에서 언급한 실용적인 관념 이외에, 역사적인 요인을 하나 더 꼽자면, 봉건시대에서 현대로 전환되면서 사상과 이념이 개인의 개성을 누른 채 중산장(中山裝)레닌장(列寧裝)군편복(軍便服) 등을 즐겨 착용하던, 편리함만을 강조하던 시기가 상당기간 존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문혁시기 전통문화에 대한 거부는 중국의 복식문화에 있어서도 상당한 후퇴를 가져왔을 것이다



 

사진 3  Christian Dior 디자인상을 수상하고 자신의 브랜드 후이산장을 론칭한 장후이산(張卉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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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통해 과거 한나라와 당나라의 영광을 다시금 재현하려 한다. 중국의 패션문화를 전 세계로 전파하려는 시도는 중국전통의상디자인상(中國華服設計大賽)’ 같은 국가의 대대적인 재정적 지원에 힘입어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더불어 후이산장(張卉山), 양리(李陽) 같이 실력 있는 신세대 패션 디자이너들은 한푸의 기초 위에 전통의 현대화를 녹여내고 있으며, 상하이탄(上海灘) 같은 의류기업은 중국문화의 정수를 담은 명품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홍콩을 비롯하여 뉴욕도쿄파리런던마드리드 등에서 4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주요고객은 이브닝드레스 또는 일상복을 구매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외국인들이다. 이러한 중국 패션계의 움직임을 보며,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에는 어떤 가치와 정신이 담겨 있는지 묻고 싶다. 진부한 표현이겠지만, 패션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것이 아닐까.

 

박성혜 _ 가천대학교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news.52fuqing.com/newsshow-508989.html

http://tieba.baidu.com/p/1755481302

http://photo.efu.com.cn/photoshow-288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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