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2019년 홍콩에서 범죄인의 중국 소환을 가능케 하는 법안 개정이 촉발한 사회운동 이래로 많은 홍콩인이 홍콩을 떠났다. 2020년부터 전반적인 감소세에 접어들었던 홍콩의 인구는 2020년 말에는 –1.2%, 2022년 말에는 –0.9%의 높은 감소율을 보였다. 2020년 말에는 9만 6천여 명, 2022년에는 6만여 명이 홍콩을 떠나면서 전체 인구 감소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홍콩을 떠난 이들은 주로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와 같은 영어권 국가를 정착지로 선택했지만, 싱가포르와 대만과 같은 아시아 지역으로 향하기도 했다. 이 중에서 대만은 중국과의 관계가 홍콩만큼이나 첨예한 지역으로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홍콩인이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정착지지만 2019년부터 2022년까지 3만 6천여 명이 이주했고 연간 평균 이민자 수가 9천여 명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이 추세는 2022년에 급감하기 시작했으며, 대만 거주권 취득자의 수도 감소세로 전환되었다.
이미 통계가 말해주듯 최근 대만에 이주한 홍콩인이 거주권 획득에 난항을 겪고 있다. 홍콩인은 대만에서 1년 거주하면 거주권 신청이 가능하지만 신청하더라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증가하는 실정이다. 지난 3년 동안 거주권이나 신분증을 받은 홍콩인은 신청자의 2%에 불과했다. 지난 5월에는 거주기간을 1년이 아니라 4년으로 늘리는 안이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신청요건 자체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만은 2019년 이후 홍콩인의 이민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나선 지역 중 하나였다. 2020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국가보안법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켰을 때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대만은 홍콩에서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이 후퇴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하면서 홍콩인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통한 이민 지원을 시사했다.
그림 1. 대만에서 운영 중인 홍콩 스타일의 식당.
대만에는 홍콩의 먹을거리를 판매하는 식당이 많다.
1996년 12월 대만에서 제정한 홍콩ㆍ마카오 관계조례(港澳關係. 條例) 제18조는 “대만 정부는 정치적 이유로 자유와 안전을 위협받는 홍콩인들을 도울 수 있다”고 명시한다. 대만은 이에 따라 2020년 7월 1일부터 대만-홍콩 서비스 교류 판공실을 정식 개소해 홍콩인의 정착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대만의 홍콩인 지원 역시 정치적인 배경에서 추동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불완전하다. 2016년 첫 당선 이후 2020년 재선까지 성공한 차이잉원 총통은 대만을 주권을 가진 독립적인 국가로 주장하면서 중국과 날을 세워왔다. 2022년 8월에는 당시 미국 하원의장이었던 낸시 펠로시가 대만을 방문하면서 중국과의 군사적인 긴장감이 높아지기도 했다. 2023년 3월에는 대만을 공식국가로 인정하는 13개국 중 과테말라와 벨리즈를 순방하고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을 만났다. 이와 같은 차이잉원 총통의 행보는 대만 내 친중 세력의 반대와 대만의 국제적 지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대중 여론의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홍콩인의 이민도 이와 같은 정치적 상황의 연장선에서 조망할 수밖에 없다. 대만에 거주하는 홍콩인은 거주 허가를 받아서 특정 기간 생활하다가 거주권을 신청하게 된다. 학술대회 차 방문한 대만의 한 도시에서 만난 지인인 홍콩인 A도 그렇게 거주권을 신청했다. A는 대만인인 남편을 따라 대만으로 이주하게 된 사례다. 대만인의 배우자인 데다 이미 거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1년의 거주 여건은 충족했지만 거주권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신청 이후 대만 당국에서 실제로 대만에 거주하고 있는지 집을 직접 방문해 옷장까지 살펴보고 돌아갔지만 여전히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이다. A는 거주권 획득이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결과를 조급하게 기다려도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A는 2024년 1월 총통 선거 이전에는 홍콩인의 거주권 취득에 대한 어떠한 결정이 내려지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림 2. 대만의 한 잡화점에서 2019년 홍콩 사회운동의 구호였던
‘광복홍콩, 시대혁명(光復香港, 時代革命)’을 찾아볼 수 있으며,
길거리 시위의 모습을 그린 엽서와 홍콩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소품을 판매하고 있다.
거주권 승인 지연을 둘러싼 관계자들의 입장에는 차이가 있다. 이민 컨설턴트는 대만의 관료주의와 국가 안보에 대한 염려가 거주권 승인 지연의 원인 중 하나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당국은 많은 업무로 인해 승인이 지연되는 것뿐이며 국가 안보상 문제가 없다면 승인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A는 홍콩에서 정치적인 활동을 한 경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결혼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대만으로 이주하게 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거주권 승인이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당국은 3년 동안 대만에서 실제로 회사를 운영해야 하는 투자이민의 경우 거주권을 획득하고 회사를 폐업하는 사례를 검토하고 있다며 신중을 기하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A는 이와 같은 사례를 언급하며 이러한 소수 사례가 실질적으로 거주권이 필요한 다른 홍콩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비판했다. 이로 인해 대만에서 실제 오래 거주하고 기여할 결심을 하고있는 홍콩인이 거주권을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2023년 1월 대만의 이민서 웹사이트에 중국대륙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본토위원회가 홍콩인과 마카오인을 대상으로 대만에서 삼가야 할 아홉 가지 행동의 목록을 게시한 적이 있다. 선거 캠페인 참여, 정치 활동, 군사 건물이나 연구소 출입 등이 포함된 내용이었다. 이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본토위원회는 잘못된 게시였으며, 대만 거주 홍콩인이 아니라 단기 방문자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대만에 거주하는 홍콩인에 대한 불신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홍콩인의 대만 거주와 이민은 일신상의 사유로 인한 개인적인 거주지 이동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역동적인 정치적 상황과 연동되어 있다. 누군가는 이 과정에서 정치적 상황과 무관한 개인적 차원의 이득을 얻으려고 하고, 누군가는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확보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대만 행정당국, 정치인, 대중도 정치적인 입장의 차이에 따라 홍콩인의 이민을 환영하기도, 저어하기도 한다. 국민국가 체계가 이미 공고해진 현실에서 국경을 넘어 정착해야 하는 낯선 타자를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상호 연결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은 대만뿐만 아니라 이주민이 존재하는 모든 국가의 화두이다. 첨예한 정치적 상황을 간과할 수 없지만 낯선 타자를 받아들일 때 이와 같은 고민도 같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대만에서 문화적으로 그다지 낯설지 않은 타자인 홍콩인이 안정적인 신분을 바탕으로 삶을 잘 일구어 나갈 수 있도록 보다 다양한 문제의식이 공유되었으면 한다.
【지금 여기, 홍콩 10】
김주영 _ 전북대 동남아연구소 전임연구원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직접 촬영하여 제공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