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주지하듯이, 시진핑 시기에 들어와 중국공산당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인류운명공동체(人類運命共同體)’ 등의 개념을 내세우며 적극적인 대외 행보에 나서고 있다. 공동의 과제에 직면한 인류의 상호협력과 위기 극복, 공동 번영 등의 담론은 사실 특별할 것도 없고, 어떤 면에서는 공허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하면서, 시행 초기보다는 동력이 많이 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다. 중국공산당은 정책과 노선을 아주 그럴듯하게 개념화하는 것에 뛰어나지만, 정작 이러한 개념들이 실질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일대일로’나 ‘인류운명공동체’와 같은 추상적으로 개념화한 세계관과 현실 세계의 복잡다단한 외교는 완전한 통일성을 갖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상화된 세계관이 현실 외교의 포괄적인 토대를 형성하고 그 범위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그 중요성을 찾을 수 있다. 현실에서는 다양한 시행착오와 변주가 발생하지만, 전체적으로 그 방향은 중국공산당이 개념화한 세계관을 구현하는 쪽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과 같은 당국체제(黨國體制) 아래에서는 중국공산당의 세계관에 근거한 장기적 구상과 계획의 힘은 더욱 크다. 물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응 여하에 따라서 계획의 실현 여부는 달라지겠지만, 중국의 대외 행보가 그 세계관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임은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세계관을 장기적인 시각에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마오쩌둥 시기 중국의 세계관은 근대 이후의 反제국주의 투쟁의 역사적 경험이 강하게 투영된 것이었다. 그 세계관의 구체적인 내용은 ‘중간지대론(中間地帶論)’, ‘2개의 중간지대론(兩個中間地帶論)’, ‘3개 세계론(三個世界論)’ 등으로 시기에 따라 변화했지만, 그 근저에 흐르는 주선율은 기본적으로 일치하였다. 세계는 중국이 포함된 ‘인민‧민주‧평화‧反제국주의’의 진영과 이와 대립하는 ‘反인민‧反민주‧전쟁‧제국주의’의 진영으로 양분되었다. 그리고 그 기준선은 중국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서 매우 탄력적으로 적용되었다. ‘사회주의 진영의 지도자’였던 소련이 어느 순간 ‘사회주의 제국주의’로 정의된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냉전 시대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와는 달리, 마오쩌둥에게 있어서 이데올로기와 사회제도의 차이가 갖는 중요성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제국주의 침략의 질곡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부강한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중국의 주권과 존엄을 지키고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이 동아시아 냉전의 특수성을 초래하였다.
아울러, 여기에는 중국을 중심에 놓고 세계를 사유하는 일종의 ‘중국 중심적 세계관’이 확인된다. 즉, 냉전 시대의 양대 진영 중 하나에 속하는 한 구성원으로서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중심으로 세계의 진영을 구획한다는 점에서 마오쩌둥 시기 중국공산당의 세계관은 중국 중심적 성격을 보인다. 그리고 이는 어떤 측면에서는 전통 시대의 중화주의적 천하관의 일면을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전통적 중화사상의 화이관(華夷觀)은 사라졌지만, 중국을 중심에 두고 세계의 공간을 관념적으로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전통적 천하관과 유사한 부분을 찾을 수 있다. 나아가서는 중국의 경험에 바탕을 둔 ‘혁명의 수출’을 통하여 세계 민족혁명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구상은 전통적 천하관에서의 ‘왕화(王化)’ 개념과 흡사한 면도 있다. 요컨대, 마오쩌둥 시기 중국공산당의 세계관은 ‘전통적 중화주의 천하관’과 ‘근대적 민족주의 세계관’의 복합적 작용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공산당의 대외정책에는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덩샤오핑은 세계의 핵심 문제를 ‘패권주의’와 ‘강권정치(强權政治)’에 반대하는 동서 간 ‘평화’의 문제, 그리고 경제 발전을 통해 남북 간 격차를 해소하는 ‘발전’의 문제로 규정했고, ‘동서남북’의 문제 중에서도 ‘남북’ 문제가 핵심이라고 판단하였다. 이는 세계를 ‘패권/강권’-‘발전국가’-‘발전 중 국가’로 구분한다는 점에서 1970년대 제기된 ‘3개 세계론’의 연속이라는 측면도 있다. 물론, 1974년의 UN 총회 연설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발표한 것이 덩샤오핑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세계관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오쩌둥 시기의 세계관은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두 진영 사이의 투쟁을 통해서 민족주의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덩샤오핑 시기의 ‘평화와 발전’ 세계관은 이러한 투쟁적 세계관을 버리는 대신, 논리적으로 보면 궁극적으로는 세계의 정치적 대립과 경제적 격차가 제거된 상태를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마오쩌둥 시기 내내 강조되었던 세계의 진영을 구획하는 기준선이 모호해졌다는 점에서 일종의 ‘대동(大同)’의 이상을 내포한 것이라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 필자가 보기에 덩샤오핑 시기에는 이러한 구상이 직접적으로 구체화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그 가능성이 결국 후진타오 시기의 ‘화해세계(和諧世界)’, 시진핑 시기의 ‘인류운명공동체’ 담론으로 현실화한 것은 아닐까.
후진타오 시기 세계관의 변화를 덩샤오핑 시기 ‘평화와 발전’ 담론의 ‘승화(昇華)’라고 적극적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葉靑, 2011), 이러한 통합적 세계관의 내면에는 중요한 ‘불균형’이 있다는 것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1990년대 말부터 중국공산당은 국제사회에서 문화경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중국문화의 국제적 영향력 강화와 문화 교류의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공공외교와 인문외교(人文外交)의 강화를 통해 대외문화 교류를 확대하고, 이를 통하여 ‘중화우수문화(中華優秀文化)’를 전파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중국방식(中國方式)’을 제시함으로써 근대의 서구 중심적 가치관이 해결하지 못하는 인류사회의 새로운 도전들에 대응할 수 있는 중국식 의제와 원칙, 이념을 제시하는 것을 추구한다. 즉, ‘화해세계’나 ‘인류운명공동체’에서 설정된 통합적 세계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중국인 것이다. 중국 문명 중심의 통합된 세계를 구상한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전통적 ‘대일통(大一統)’의 세계관을 떠올리게 한다.
마오쩌둥 시기의 세계관에서도 중국을 反제국주의 세계혁명의 중심으로 설정한다는 점에서 중국 중심적 세계관의 모습이 나타나지만, 이러한 ‘중국 중심성’은 개혁개방 시기 중국공산당의 세계관에서 그 강도나 범위에서 더욱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마오쩌둥의 세계관에서는 反제국주의 혁명을 통한 ‘독립자주’의 지향이 강하게 드러날 뿐, 反제국주의 혁명 성공 이후의 세계에 대한 전망은 잘 보이지 않으며, ‘혁명 수출’도 주로 ‘제3세계’를 대상으로 했다. 마오쩌둥이 ‘투쟁’의 방식을 통해서 이분법적 대립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추구했다면, 덩샤오핑 이후는 ‘경제건설’의 방식을 통해서 대립의 구도 자체를 초월하고, 중국 문명이 중심이 되는 ‘대동’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근래 ‘중국적 천하질서’의 담론이 유행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근래에 중국 학계에서는 시진핑 시기의 ‘일대일로’ 전략이나 ‘인류운명공동체’ 담론의 정통성을 마오쩌둥에서 구하는 경향이 확인된다. 주로 ‘일대일로’나 ‘인류운명공동체’ 담론이 마오쩌둥의 ‘외교 사상’을 계승 및 발전시킨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방식이다. 그 논리에 따르면, ‘평화로운 발전과 공동 번영’, ‘개방성과 포용성’, ‘지역경제 건설’ 등을 지향하는 ‘일대일로’ 노선의 근원은 마오쩌둥의 세계관에 있다고 한다(張瀟天, 2018). 이러한 관점이 수많은 논문을 통해서 재생산되고 있다. 근본적으로 이분법적인 대립 구도를 전제하는 세계관이 어떻게 ‘평화 발전’과 ‘공동 번영’, ‘포용성’ 등으로 연결되는지 의문일 따름이다. 1950년대 중반에 제기되었던 ‘평화공존 5항 원칙’ 역시 ‘반미(反美)’를 위한 국제통일전선의 맥락에서 제기된 것이었다(楊奎松, 2010).
한 국가가 과거에 세계 속에서 어떠한 관계를 맺어왔는가에 대한 역사적 내러티브는 현재의 대외정책을 규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조공체제’의 중심으로서의 중국이든, ‘半식민지’로의 전락과 그 극복의 상징으로서의 중국이든, 서로 다른 내러티브에 따라 현재 대외정책의 방향성이 좌우되기 때문이다(Harry Harding, 2009). 마오쩌둥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후자(後者)의 세계관에 기초한 것이며, 전자(前者)보다 대립적이고 투쟁적인 성격을 지닌다. 오늘날 마오쩌둥의 세계관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의 문제는 현대 중국의 대외정책을 조망할 때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중국공산당의 외교 노선을 장기적인 시야에서 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중국문화오디세이 11】
이원준 _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 참고자료
張瀟天, 「試析“一帶一路”與毛澤東外交思想的聯系」, 『學理論』 2018年 第8期.
楊奎松, 「新中國的革命外交思想與實踐」, 『史學月刊』 2010年 第2期.
葉靑, 「從戰爭與革命到和諧世界: 略論中國共産黨的時代觀發展與中國外交」, 『國際展望』 2011年 第4期.
Harry Harding, “How the Past Shapes the Present: Five Ways in Which History Affects China’s Contemporary Foreign Relations”, The Journal of American-East Asian Relations, vol.16, no.1/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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