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첨밀밀(甛蜜蜜)』과 『먼 훗날 우리[後來的我們]』, 20년 사이 달라진 청춘 이야기
▶ 영화와 함께 성장한다는 것
개인적으로 영화 감상의 취향에 있어서 공자께서 말씀한 “괴력난신(怪力亂神)에 대해 논하지 않겠다.”고 한 종류의 장르, 말하자면 어벤져스와 같은 헐리우드식 블록버스터를 오히려 선호하는 편이지만, 그런 영화조차도 근 몇 년 간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볼 시간적, 심적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 이러한 필자의 심리적 강박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규명하는 것은 뒤로 미루더라도, 그러한 영화들은 내가 적은 돈으로 영화적 기술의 발전과 나의 개인화된 시간을 대접 받으며 소비하게 만들어 주는, 어떤 “고마운” 문화적 욕망의 탈출구였음은 분명하다. 이 때문에 이런 취향에 대한 편식을 보완하기 위해 이야기 중심의 드라마도 종종 정주행을 시도한다.
이제 이야기 하고자는 두 영화, 『첨밀밀(甛蜜蜜)』과 『먼 훗날 우리[後來的我們]』는 내게 있어 문화 소비품 가운데 하나라기 보다, 마치 그 속에서 같이 살고, 같이 아파하며, 같이 성장해 온 사실을 옆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고백할 수 있는 비밀스런 메모장 같은 이야기들이다. 첫 번째 영화를 볼 때, 나도 청년이었고, 두 번째 영화를 볼 때는 이미 장년이 되어버렸다. 어찌 보면 이 두 영화와 함께 나도 성장해 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 구체적인 앞날이 무엇이 됐든 인생의 최종 종착지에 도달하지 못했으니, 아직 그들과 함께 성장 중(?)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 청춘들의 굴레
코로나로 인해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활발해 지면서, 나도 얼마 전부터 그 같은 방식의 소비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먼 훗날 우리』를 보고, 나의 푸릇했던 청춘을 회상하면서(물론 지금도 늙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뭔가 겹쳐지는 영화가 떠올라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그 영화가 바로 『첨밀밀』이다. 장만위[張曼玉]는 내 중고 시절, 아시아권 절대 미녀로서 우상이었고, 리밍[黎明] 또한 “나도 너 못지않다”고 생각하는 뭇 남성들의 질투 대상이 아니었던가? 지금 다시 보아도 그들은 청춘이었다. 나도 같은 청춘일 때는 그들의 사랑 이야기밖에 보이지 않더니만, 지금 다시 보니 당시 청년들을 옭죄고 있던 굴레들이 좀 더 자세히 읽힌다는 점이 그 때와는 달라진 점이다. 그렇다고 『먼 훗날 우리』의 징보란[井柏然]과 저우동위[周冬雨]가 보여준, 요즘 떠도는 청춘들의 삶이 그 20년 전 시절에 비해 무게가 마냥 가벼워진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이 두 커플을 보면, 각자 그 시대가 가지고 있던 경계선을 넘기 위해 부단히 몸을 던지는 청년들의 힘과 거친 숨소리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반면 이들의 상처가 과연 지금의 부조리를 치유하는데 정작 값있게 쓰이고 있는지, 그리고 새로운 세상의 새로운 문제들은 마주한 자들만의 몫인지, 이러 저러한 생각들이 서로 교차한다.
▶그들을 둘러싼 “과거”와 “지금”의 경계는 무엇인가?
좀 더 두 편의 영화 안으로 들어가 보면, 우선 『첨밀밀』 속의 시간은 1986년 3월 1일부터 1995년 5월 8일까지, 약 10년간의 사랑 이야기로 구성되고, 정치적 맥락으로 보면 1997년 7월 1일 홍콩 반환을 앞둔, 그래서 기대와 불안 교차하는 시점이었다. 이 시기 이주 노동자들은 목표가 분명했다. 본토인이라는 정체성을 벗어 던지고, 영어와 광둥어라는 문화적 경계뿐만 아니라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뛰어 넘는 것이 이들에게는 큰 장벽이 되지 못했다. 어리숙한 이소군에게 이요는 “요즘은 할머니들도 주식이랑 외환거래로 돈 벌어요.”, “홍콩에서 부자가 되고 싶으면 주식을 사야해요.”라면서, 당시 홍콩 저간의 실정을 설명해 준다. 그녀는 이른바 영혼을 모두 끌어 모아 “테레사 텅”의 음반으로 큰돈을 벌려하지만 실패하고, 다시 안마사 같이 더 저층화된 노동일지라도 참고 견뎌내면서 돈을 모은다. 비록 한 순간의 주식 폭락으로 빚의 구렁텅이를 벗어나지는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들이 본토인이라는 정체성과 사회주의라는 틀을 박차고 뛰쳐나와 자본의 본향인 미국을 향하고자 하는 이들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그들에게 미국은 당시 꿈의 땅이었던 것이다.
사진 1. 영화 『첨밀밀』 장면
반면, 『먼 훗날 우리』에서의 연애 또한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0년짜리 러브스토리다. 『첨밀밀』의 시간으로부터 딱 20년 후의 베이징 청춘 이야기는 이별한 지 10년 만에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한 재회로 시작된다. 고향인 야오장(搖江)을 벗어나 베이징에서 살려고 하는 젊은이들인 퍙샤오샤오와 린젠칭은 아무리 쪽방촌 생활을 해도, 그리고 집을 위해 마마보이와 전략적인(?) 연애를 해도, 궁극적으로 “베이징 사람”이 되는 것이 생애 최고 목표다. 의지할 곳 없는 팡샤오샤오가 “베이징 남자랑 결혼”하고자 하는 것, 린젠칭이 게임에 몰두하면서 그 안에서 성공을 위해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도, 모두 “베이징”에서 살기 위해서다. 택시 안에서 창밖으로 “베이징! 잘 들어. 우린 곧 대박 날거라고!”하는 팡샤오샤오의 외침은 마치 베이징 판 “발 없는 새”들의 처절한 몸부림 같다. 앙리 르페브르의 『공간의 생산』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쯤 되면 베이징이라는 도시의 호구는 그것을 가지지 못한 청년들에게는 법률적 장벽, 그 이상의 이데올로기로서 작동한다. 이들은 이 높은 장벽을 과연 뛰어 넘을 수 있을까? 두 영화의 공간 층위를 비교해 보면, 『첨밀밀』의 경계가 대륙, 홍콩, 미국이라는 세계사적 이념의 위계 속에서 다층으로 구성되고 있었다면, 『먼 훗날 우리』에서는 베이징이라는 절대 공간이 중국 사회 공간의 위계를 규정하면서 그 가운데 가장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결국 『첨밀밀』 시대의 자본주의적 위계가 중국 내에서 자본의 성숙기를 거치면서 단순한 자본의 규모뿐만 아니라, 더 넓은 범위의 문화 권력 위계까지도 그와 같은 동형의 구조를 내적으로 재생산해 낸 것이다.
사진 2. 영화 『먼 훗날 우리』 장면
▶ 계단 오르기,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 도착했을까?
누군가에게 이동은 성공을 위한 값비싼 혹은 가성비 좋은 기회비용이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자발적이지 않는 하향천이(下向遷移), 즉 중심으로부터 바깥으로 밀려난 결과일 수도 있다. 중국 사회 전체로 봐서 1980년대 이후 도시를 향한 노동력 이동의 경우, 중국 국가의 차원에서 경제 발전을 위한 유효적절한 경제요소를 제공했고, 그 결과물을 현재의 중국이 같이 나눠 갖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제 이들의 움직임과 방향이 매우 복잡해진다고 볼 때, 베이징 주변의 수많은 “발 없는 새”와 같은 청춘들은 어디로 가서 내려앉아야 할까?
『첨밀밀』의 첫 장면, 즉 이소군이 홍콩에 도착할 때 지하철에서의 장면은 무채색으로 기억된다. 두 주인공이 구룡역에서 내려 서로 엇갈리게 길 위로 오를 때 에스컬레이터는 지상의 빛을 향하는데, 이 장면은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이들의 상승의지를 표상한다. 이들의 과거가 회상될 때 흑백의 기억으로 남았다면, 이들의 현재와 미래는 컬러로 그려진다. 그러나 20년이 지나 『먼 훗날 우리』의 시대에 와서는 오히려 10년 전의 기억이 생생하게 컬러로 기억되고, 옛 사랑과 조우하여 대화를 나누는 현재가 흑백의 세계가 된다. 그만큼 베이징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떠도는 청춘들의 눈앞은 어슴푸레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역설적으로 남자 주인공의 이름은 한자로 見淸이다)이다.
물론 이들도 세상을 향한 희망을 완전히 놓아버린 것은 아니다. 팡샤오샤오는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을 때, 옛 친구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 계단을 빨리 오를 수 있을 거야라고 해줬죠.”라고 말하는데, 결국 젠칭은 “이언과 켈리”의 재미있는 우주적 사랑 이야기를 자신의 게임 스토리에 녹아내 게임 사업에서 성공한다. 게임을 통해 “베이징”으로 향하는 사다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렇게 보면, 베이징의 지하철에서 연애의 시작과 끝을 맺었던 것처럼, 그리고 “너 아니면 내가 베이징에서 버텼겠어?”라는 말에서처럼, 이들에게 베이징이라는 공간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이기도 하지만, 또 이들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조건이며, 간절한 희망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미 중국 사회는 2015년을 기점으로 절대적 이동의 양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면, “이동사회”에서 “정체사회”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다. 심지어는 국내의 이동에 있어서 베이징으로 향하던 인구의 도도한 흐름이 이제는 베이피아오(北漂)들에 의해 더 복잡해졌다. 게다가 코로나 이후 이동과 정체가 힘겨루기를 하는 상황 속에서 중국 내 젊은 청년들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우리는 이후 이런 베이피아오들의 선택과 더불어 지역적으로 다양하게 션피아오(深漂), 샹피아오(上漂), 샹피아오(香漂)들의 이동 목적과 전략들을 같이 살핀다면, 청년들의 삶을 매개로 중국 사회 내 하층을 관통하는 내부의 모순을 현실에 육박해서 체감하고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문화오디세이 10】
이부고_부경대학교 글로벌자율전공학부
* 위 사진은 필자가 영화 『첨밀밀(甛蜜蜜)』, 『먼 훗날 우리[後來的我們]』에서 직접 캡쳐한 사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