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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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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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공자(孔子)는 역사적으로 가장 많이 회자되었던 인물 중에 하나일 것이다. 신앙 및 숭배의 세계에서도 공자는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동중서(董仲舒)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학을 국가운영의 지배이념으로 공인한 이래, 공자는 적어도 지배세력의 차원에서는 ‘홀로 존귀한’ 독존(獨尊)의 지위에서 내려온 적이 없었다. 19세기 중반 동아시아에 ‘근대 서구’라는 대안이 제시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따라서 전통시기 국가차원에서 이루어진 공자에 대한 숭배활동은 극진하였다. 내용과 형식은 약간 달랐으나 사실 이런 경향은 20세기 전반기까지 이어졌다.
전통시기 공자 숭배활동은 ‘사전(祀典)’에 기초하여 진행된 ‘통사(通祀)’를 통해 이루어졌다. ‘통사’란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전국의 각급 지방장관이 일률적으로 지내야 하는 제사를 말한다. 공자 제사는 매년 춘추(春秋) 중월(仲月) 상정일(上丁日)에 지냈다. 말하자면, 봄과 가을의 가운데 달(春秋 仲月), 즉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에 제사를 지냈다. 상정일은 십이 간지로 날짜를 세었을 때 첫 번째로 ‘정(丁)’자가 들어가는 날을 말한다. 이때 가장 크게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이를 ‘춘추대제(春秋大祭)’라고도 한다.
‘춘추 대제’에는 위패, 제물, 제기, 제악, 제문, 제례, 제복 등 엄격한 규정이 적용되었다. 공자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문묘(文廟)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공자 이외에도 사배(四配), 십이철(十二哲), 선현(先賢), 선유(先儒), 숭성사(崇聖祠)가 위계에 따라 배치되었다. 문묘는 점차 유학을 배우는 교육기관으로 진화하였고, 공자에 대해 1년에 50차례 가량 크고 작은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공자는 국가 차원에서 독존의 지위를 누렸지만, 일반 민간에서는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했다. 지난 호에서도 설명했지만 기본적으로 민간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최고의 스타 신령은 관우(關羽)였다. 그렇다면 일하는 서민들로 이루어진 다양한 업종에서는 공자가 어떻게 취급되었을까? 행업신 연구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교(李喬)의 『행업신숭배 : 中国民衆造神史硏究』(북경출판사, 2013년 8월판)에 따르면, 의외로 10개의 업종에서 공자를 조상신이나 수호신으로 섬겼다. 아래에서는 그 내력을 살펴본다.
• 교육 종사자
孔子行敎圖
공자는 원래 입신양명하여 세상에 자신의 뜻을 펼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최초로 사립학교를 열어 성공한 인물이다. 수많은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 유학을 전파하였고, 그 결과 역사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다. 이런 연고로, 사숙(私塾)과 학교의 교직원들이 공자를 조상신으로 숭배하였다. 이는 국가차원에서 지배세력으로서의 사대부들이 공자를 추앙한 것과는 다르다. 교육 종사자들은 지배이념을 대표하는 인물이 아니라 사학(私學)을 최초로 창립한 교육자의 조상신으로서 공자를 숭배한 것이다. 사대부들이 공자의 제자(학생)로서 공자를 존숭했다면, 교직원들은 공자의 후예로서 공자를 숭배했다.
교육 종사자들은 사대부들보다 공자를 더욱 더 끔찍이 존숭했다. 그래서 매월 돈을 내어 공묘(孔廟, 文廟)의 제기나 제물의 문제를 해결했고, 제사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했으며, 전담 인원을 두어 공묘를 관리하도록 했다. 또한, 전국 각지의 서당에는 일반적으로 공자의 위패를 모셔두었고, 공자 탄신일에는 성대한 제사와 축제를 거행하였다.
• 주산(籌算) 제조업
공자는 주산을 만드는 사람들의 조상신으로도 숭배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노(魯)나라 임금이 공자에게 장부를 정산하게 하였는데 공자의 계산이 깔끔하지 못하였다. 이에 공자의 아내가 꿰어놓은 구슬을 이용해 계산을 해보라고 하였다. 결과적으로 장부의 계산이 정확해졌다. 나중에 사람들이 꿰어놓은 구슬 이야기를 근거로 공자가 주산을 발명했다고 여겼고, 공자를 조상신으로 섬기게 되었다. 사실 공자는 주산의 발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래도 공자를 주산을 발명한 존재로 여긴 것은 어림짐작이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공자는 정신노동을 한 성인(聖人)이므로, 주산처럼 뇌를 쓰는 도구는 그가 발명했을 것이라고 짐작했을 것이다.
또는 공자가 가르친 수학 과목과 관련이 있을 수가 있다. 전술했듯이 공자는 처음으로 사립학교를 열어 성공한 사람인데, 공자가 학교를 열어 가르친 과목을 육예(六藝)라고 한다. 육예란 예의(禮), 음악(樂), 활쏘기(射), 말 타기(御), 글씨 쓰기(書), 수학(數)을 말한다. 그 중에 수학은 주산과 관계가 있다. 그래서 주산을 만드는 사람들이 공자를 조상신으로 섬긴 것이다.
• 비문 탁본 및 탁본 표구 종사자
비문을 탁본하고, 이를 표구하는 사람들도 공자를 조상신으로 섬긴다. 이들은 매년 음력 8월 27일 공자 탄신일에 큰 제사를 지낸다. 이들이 공자를 조상신으로 숭배하는 이유는 비문을 탁본하여 소책자로 만드는 일이 문자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무릇 문자와 관계가 있는 사람은 모두 ‘공자의 후예’라는 것이다.
• 악기 연주자
옛날에는 혼인식이나 장례식, 제사나 축제 때에 악사들을 불러 악기를 연주하게 했다. 이들은 지역과 시기, 연주하는 악기에 따라 매우 다양한 조상신을 섬겼는데, 그 중에는 공자도 있었다. 이들이 공자를 섬긴 것은 공자가 악기 연주자 일을 했던 적이 있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孔子家語』에 공자가 악사 일을 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 그림자극 종사자
본래 베이징(北京)의 그림자극(影戱)은 서파(西派)와 동파(東派)로 나눌 수 있는데, 서파는 관음(觀音)을 조상신으로 섬겼고, 동파는 공자를 섬겼다고 한다. 그림자극 종사자들이 공자를 섬기게 된 이유는 분명치 않다. 다만, 동파 그림자극을 창시한 사람이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고, 따라서 당연히 공자의 제자(사대부)로서 평소에 공자를 섬겼고, 그래서 공자를 섬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자와 그림자극이 어떤 관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밖에, 정악(正樂)을 연주하는 사람들, 전통극 종사자, 거지, 점쟁이 등도 일부 공자를 숭배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업종에서는 다른 신령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공자는 특별한 연고 없이 어쩌다 끼어들어간 격이었다. 역시 일하는 서민들 사이에서는 공자가 별로 인기가 없었다.
【중국 행업신 이야기 – 동업자들의 세속화된 신성 6】
박경석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www.nipic.com/show/132327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