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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8월호
시장화된 당국체제의 미래 _ 김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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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10일 홍콩의 『빈과일보』 폐간과 관련하여 21개국 정부가 서명한 미디어자유연합(Media Freedom Coalition)의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이 성명은 빈과일보(蘋果日報)의 강제 폐간과 홍콩당국의 언론인 체포에 대한 강한 유감을 표현하였다. 서명한 국가는 호주, 오스트리아, 캐나다, 체코, 덴마크, 에스토니아, 핀란드, 프랑스, 독일, 아이슬란드, 이탈리아, 일본,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뉴질랜드, 슬로바키아, 스위스, 영국, 미국 등 일본을 제외하면 모두 유럽의 국가들이었다. 이러한 성명에 대해 중국의 인민일보는 이 성명을 반중난항(反中亂港)분자들의 책동으로 규정하고 언론의 자유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문명사회의 자유와 권리는 대중의 의지를 구현하는 법률에 의해 규범화되고

보장되어야 하며 무제한적으로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강조 필자)

 

물론 미디어자유연합의 성명서가 순수한 언론자유를 위한 성명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들 정부가 모든 동일한 현상에 대해 성명을 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홍콩보안법의 성립과 언론인 체포 등 홍콩에서 진행된 언론탄압은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현상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인민일보는 『빈과일보』의 폐간이 거짓말을 팔아 생계를 꾸려가다 최종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언론의 필연적 결말이라고 지적하면서 그것은 정부의 명령이 아닌 시장의 선택으로 대다수 홍콩인의 마음의 소리를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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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홍콩 빈과일보』 2021624일자 마지막 신문


검열과 통제로 인하여 자유롭게 외신을 접할 수 없는 중국의 독자들은 미국의 황색언론을 비판하는 연장선 위에 『빈과일보』를 위치시킨 인민일보의 논리에 적극적으로 동조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홍콩보안법이 어떤 대중의 의지를 구현하고 있는지, 폐간에 즈음해서 홍콩시민들이 보인 반응을 시장의 선택으로 분식할 수 있는지 등의 질문에 대해서 제대로 답할 수 있을까?

중국의 당과 정부는 모든 정보유통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것은 교육체제에서부터 나타난다. 특정의 관점을 주입하고, 특정의 관점에 익숙해지도록 함으로써 기억의 체계를 독점하여 자발적 충성을 이끌어 내려한다. 16세기 몽테뉴와 친구 사이였던 에티엔 드 라 보에티(Etienne de La Boetie)가 분노했던 자발적 복종의 세계를 중국은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채찍보다 당근을 더 사용하고 폭력, 노골적 명령, 가혹한 강제 대신에 유혹과 매혹을 일처리의 주요수단으로 이용하는것인데, 유혹과 매혹의 주요 수단은 당과 시장의 결합 그리고 욕망의 긍정과 격려였다.


이제 중국에서의 정치는 더 이상 우리의 도덕적이고 실존적인 관심을 사회와 인류를 위한 합리적이고 적법한 행위로 변화시켜 나가기보다는 여론을 관리하고 교묘하게 조작하는일이 되어 버렸다. 시장과 당의 결합은 일차적으로는 당의 문호를 개방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기업가의 공산당 가입허용 이후 단기간 안에 사영기업주 가운데 29.9%가 공산당원 신분을 얻고 있었다. “기타 사회계층의 선진분자라는 형식으로 당장 개정이 이루어졌던 2002년의 자료에 따르면 사영기업인들은 현급 인민대표대의원에 5400, 성급 대표에 372, 전인대 대표에 48인이 참여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현급 이상 인대 대표의 자산은 1000만 위안, 전인대 대표는 대부분 1억 위안 이상의 자산을 소유한 자들이었다. 사영기업주들은 심지어 법원, 노동국 등에서도 지위를 가지고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시장과 결합한 당은 도덕적 부담이 있는 행위들을 탈도덕적인 것으로 개조하는 가장 중요한 작업장으로 변모해 버렸다. 그래서 당은 사실상 시장의 가장 핵심적 주체가 되었다. 따라서 그렇게 애국을 부르짖고, 공동체적 가치를 강조하는데도 불구하고 당의 핵심관리들이 저지르는 부패는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지 분석하기조차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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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머리에 애국이라는 기름을 붇자 이성은 짐을 싸서 나간다.

 

당의 시장화와 함께 주입식 교육을 받은 중국의 젊은이들은 국가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기꺼이 사랑하고, 기꺼이 국가의 도구가 되고 싶어 하고, 노예가 되고 싶어 한다. 이는 식칼이 주인의 의도를 따르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주인은 칼로 채소를 자를 수도 있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게 되었다(김인희, 『중국 애국주의 홍위병분노청년에서 재인용). 이성은 사라지고 욕망에 지배당하는 인간형이 주류인간형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기억을 독점하고 권력이 원하는 기억을 선택적으로 주입하는 교육체제와 미디어 관리체계는 중국에서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말하자면 중국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중국의 국가체제가 결국은 진정한 인간중심의 정치적 변화의 길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은 현 시점에서는 유지되기 힘들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한 사회학자의 지적은 참고할 만하다.  


신학자 리처드 루빈스타인은 경청할 자세가 된 모든 사람에게-신체위생,

난해한 철학 사상, 탁월한 예술품, 놀라운 음악 등과 마찬가지고-예속, 전쟁, 착취,

강제수용소 등도 근대 문명의 평범한 속성들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환기시켰다.

그의 결론에 따르면 유대인 대학살은 타락의 증거가 아니라 문명 진보의 증거였다.”1)


역사의 진보는 다른 한편에서는 악의 진보이기도 했다. 역사적 기억 역시 선택적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중국은 국제외교무대에서도 끊임없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중국의 이익을 강조하며, 미얀마의 군부독재체제를 지원하고, 미국이 철수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과 손을 잡고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MI)을 탄압하여 신장 지역에서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려 하고 있다. 오직 이익만이 유일한 관심사가 된, 시장과 동일체가 된 당국체제 하의 중국에 대한 근본적인 관점의 재정립이 필요할 때다.


김태승의 六十五非 24


김태승 _ 아주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1) Zygmund Bauman & Leonidas Donskis, MORAL BLINDNESS : The Loss of Sensitivity in Liquid Modernity, 2013. Cambridge.(국역 : 최호영역, 『도덕적 불감증, 2015)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367067

그림 1. 김인희, 『중국 애국주의 홍위병분노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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