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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현장&공간
3월호
압록강철교와 국제철도네트워크 _ 김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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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전락시킨 경술국치 바로 전 해인 1909년에 일본내각회의는 한국병합에 관한 건을 의결하였다. 이 안건의 제3조는 한국철도를 일본철도원의 관할로 편입시키고, 일본의 감독 하에 남만주철도와 긴밀히 연계시켜 일본과 대륙철도의 통일 및 발전을 도모한다라고 명시하였다. 즉 일본철도를 한국철도를 매개로 대륙철도와 연계하기 위한 정책을 강제병합 전 해에 이미 의결한 것이다.


압록강철교가 가설되기 전에 한국과 만주지역 간의 물류 유통은 주로 압록강 양안 간의 수운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선박에 의한 물류 유통은 자연지리적, 기후적 조건으로 인해 종종 많은 장애가 발생하였다. 압록강은 통상 7월 초순부터 8월 하순까지 우기에 해당되어 홍수가 빈번하였다. 이때 목재나 가옥 등이 유실되어 떠내려오는데, 유속이 매우 빨라 사실상 선박의 운행이 어려운 실정이었다. 따라서 한중 국경 간 화물 운송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철교의 가설과 직통철도의 부설이 반드시 필요했다.


1905년에 일본은 압록강철교를 가설하기 위한 제반 계획을 수립하고, 하저지질 조사, 수심 측량, 유수량 관측 등을 실시한 결과를 바탕으로 철교의 설계도 및 예산서를 작성하여 일본참모본부에 제출하였다. 압록강철교는 유빙과 홍수의 압력에 견딜 수 있도록 견고하게 가설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교각의 기초를 모두 철근 콘크리트로 통을 만들어 땅속에 묻고 기초를 시공하는 잠함공법(潛函工法)으로 가설하기로 계획을 수립하였다.


압록강철교는 당초 고정식 철교로 설계되었으나, 이후 설계를 변경하여 개폐식 철교로 가설하였다. 당초 고정식 철교로 가설하려는 계획에 대해 북경 주재 미국공사와 영국공사가 일본공사에게 철교의 가설 지점이 안동 시가 및 각국 거류지의 하류에 위치하고 있어 이곳을 출입하는 선박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며 철교를 개폐식으로 변경해 주도록 요청하였다.


이에 일본정부는 미국, 영국 등의 통상상 이익을 존중하는 취지에서 철교의 설계를 개폐식 가교로 변경하기로 하였다. 이에 근거하여 19093월에 설계 변경을 완료하고, 마침내 19098월에 가설공사에 착수하여 191111월에 완공하였다. 111일 조선과 만주의 관계자들이 회합하여 먼저 압록강 남안에서 성대한 개통식을 거행한 이후 다시 안동에서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개최한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회전교는 평일 오전과 오후에 한 차례씩 직각으로 열렸으나, 풍속 25미터 이상일 경우에는 회전을 중지하였다. 회전교를 개폐하기 위해 12마력의 석유 발동기를 설치하였으나 45도로 회전하여 개폐하는 데 불과 2-3분이 소요되었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수동으로 개폐하는 것으로 변경하고 발동기는 예비 동력으로 삼았다.


압록강철교의 완성은 일본철도-관부연락선-경부철도-경의철도-압록강철교-안봉철도-남만주철도-중동철도(동청철도)-시베리아횡단철도의 연계를 통해 러시아, 유럽으로 나아갈 수 있는 철도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미지 중국 9


김지환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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