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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현장&공간
10월호
타이뻬이서 확인한 한화(韓華)의 정체성 _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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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1일 오후 4시부터 타이완 타이뻬이 화딩호텔(華鼎飯店)서 개최된 ‘2019 화교사랑 은혜나눔’(2019 恩典之路 幸福的激請) 행사에 참가했다. 이 행사는 한국서 타이완, 미국, 중국 등 해외에 재이주한 한국화교를 대상으로 개최하는 기독교의 부흥회 행사의 일종이었다. 해외에 재이주한 한국화교를 보통 한화(韓華)라고 부른다. 타이완 거주 한화를 타이완한화’, 미국 거주 한화를 미국한화라 부른다.

 

행사장 입구에는 어서오세요 熱烈歡迎’, ‘2019 恩典之路 幸福的激請라고 쓴 입 간판이 서 있었다. 이들 간판을 통해 이 행사가 한화 관련 기독교 행사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행사장에 들어서자 33개의 테이블이 놓여있었고, 하나의 테이블 당 10명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이 자리가 모두 꽉 찼기 때문에 참석자는 330여명에 달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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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921일 타이뻬이서 개최된 ‘2019 화교사랑 은혜나눔행사  


이번 행사를 기획한 것은 타이완한화, 미국한화 출신의 목사와 전도사들이었다. 손선지(孫善志) 목사가 그 중심에 서 있었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로랜드 하이츠(Rowland Heights) 소재 은혜의여정화인교회(恩典之路華人敎會)의 목사로 일하고 있다. 교회의 영어 명칭은 ‘Journey of Grace Chinese Church’이다. 교인은 대부분 미국한화이며, 교인수는 50여명이다. 손선지 목사는 20111월부터 이 지역을 개척, 2012년 미국정부로부터 교회 인가를 받았다. 손선지 목사는 행사 개막식에서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는 한화가 되자!”고 역설했다. 한국화교는 한국사회의 각종 차별과 경제적 원인으로 1970년대부터 해외로 본격적으로 재이주하기 시작, 현재는 한국보다 해외에 더 많이 거주하고 있다. 손선지 목사는 한국화교와 한화가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 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 되자는 의미에서 이 행사를 주최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 행사는 지금까지 미국, 중국, 한국, 타이완 등지서 개최되어 왔다.

 

타이완한화 출신인 진육민(陳陸民) 목사는 한국도 중국도 대만도 우리를 자신의 국민이라 여기지 않는다. 우리는 난민과 다름없다. 하지만 우리는 한화의 정체성을 가지고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파워포인트로 대만의 유명 건축물을 보여주며 이러한 건물을 설계한 것은 타이완한화라고 소개하자, 참가자로부터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필자는 25번 테이블의 좌석에 앉았다. 우리 테이블에는 타이완서 활동하는 한국인 선교사 4명과 타이완한화 5명이 동석했다. 바로 옆에 앉은 타이완한화는 1944년생으로 부산에서 태어나 전라도 각지에서 생활하고, 40년 전 타이뻬이로 이주했다. 3명 모두 타이완으로 이주해서 이곳에서 살고 있다. 그녀의 남자 동생은 부산에 살고 있다고 하며, 이날 행사에도 참석했다. 한국말이 굉장히 유창했다. 이날 행사는 타이완한화의 친구 단체톡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했다.

 

타이완한화는 한국의 출신지와 출신 화교학교 동창을 중심으로 서로 친목을 도모하고 있었다. 대구 출신 타이완한화는 모두 하나의 테이블에 모여 같이 식사를 했다. 오래간만에 행사장에서 만난 동창생은 재회를 기뻐했다. 미국한화도 참가했는데 타이완한화와 만나 서로 깊은 정을 나누었다.

 

이날 행사에는 가수 윤형주씨가 초청되었다. 윤형주씨는 교회 장로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1947년생의 할아버지 나이이지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윤형주씨는 간증, 통기타 가수로 이름을 날릴 때의 가요를 열창했다. 그리고 인생이 험난할 때 자신의 큰 힘이 되어준 예수를 생각하면서 찬송가를 불렀다. 참가자는 대체로 50대 이상이어서 윤형주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윤형주씨의 주옥같은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손뼉을 쳤다. 어떤 한화는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된 한화는 윤형주씨의 노래에 앵콜을 연발하고, ‘오빠라고 연호했다. K-pop 공연장을 방불케 했다. 그들은 한국에 살면서 여러 차별과 좋지 않은 추억을 가지고 있었을 터인데, 한국사람과 같은 하늘 아래서 윤형주씨의 노래를 듣고 살았던 것이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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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가수 윤형주씨의 공연 장면

 

윤형주씨는 자신의 부친 이야기를 했다. 부친 윤영춘(尹永春, 1912-1978)은 중국문학을 전공한 학자였다. 한국에 중국의 문호 임어당(林語堂)을 소개하고, 임어당전집을 번역출판했다. 윤영춘과 임어당은 같은 기독교인으로 서로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윤영춘은 1970년대 타이완 타이난(臺南) 소재의 국립성공대학(國立成功大學)에서 교수로 근무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병을 얻어 한국에 귀국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윤형주씨가 자신의 부친이 타이완을 무척 사랑했다고 말하자, 참가자로부터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이번 행사 참가자는 감동적인 행사였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필자에게는 한화의 정체성을 어렴풋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정희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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