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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현장&공간
6월호
부활하는 강남 지역의 옛 소도시들 _ 유장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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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남은 ‘강남스타일’이라는 노래로 순식간에 전세계에 유명해졌지만, 이와 달리 양자강 중하류의 강 남부 일대를 일컫는 중국의 강남은 오랫동안 중국 역사의 중심축으로 기능해 왔던 곳이다. 유래가 오래된 만큼 역사와 문물도 풍부하다. 수저우, 항저우, 난징, 우시, 창저우 등 잘 알려진 강남의 도시는 사실상 전통시대의 대도시에 비견될 수 있을 정도로 인구나 도시규모, 상공업, 시장, 교통 등에서 19세기에 이미 세계적인 도시의 수준에 올라있었다.

 

하지만 대도시의 주변에는 그것을 떠받치는 중소도시들이 위성처럼 늘어서 있기 때문에 중국의 주요 중심부인 강남지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구 몇 천 명대의 읍 단위 규모의 소도시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특히 명청시대에 이르러 작은 도시들이 무수히 많아져서 마치 우후죽순과 같은 모습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심지어 상하이조차도 그러한 소도시 중의 하나였고, 상하이시 교외에는 아직도 주쟈자오(朱家角)나 치바오전(七寶鎭)과 같은 소도시들이 남아 있어서 옛 모습을 어렴풋이 짐작케 해준다. 우리가 수저우(蘇州)에 가게 되면 한산사(寒山寺)와 더불어 장계의 시 '풍교야박(楓橋夜泊)'으로 알려진 펑차오(楓橋)를 보게 되는데, 이곳 역시 쌀 중심지인 펑차오전 덕택에 발전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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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저우장의 수로와 시가지 풍경. 좌측에는 주로 점포가 연이어 있고, 우측에는 대부분 주택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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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개인주택의 앞마당에까지 만들어진 부두와 정박중인 소형배

 

이 도시들은 강남 지역이 본래부터 안고 있던 농업경제의 이점과 수로 교통의 유리함, 많은 인구, 시장의 증가, 교역의 확대 등과 더불어 발전한 도시들이다. 특히 근세기에 진행된 농산물의 상품화는 이곳을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공장 형태의 수공업도 마찬가지였다. 상하이와 같은 대도시가 성장한 배후에 전통 시대에 발전한 소도시들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19세기 중엽 이후 상하이가 커지고, 또 인구가 대도시로 집중되면서 이들 소도시는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수공업은 대도시의 공장에 밀렸고, 이곳의 인재들도 점차 도시에 상주하면서 인재의 환류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농촌 시장 역시 구매력을 잃어갔으니, 20세기 들어 이들 도시의 쇠퇴는 불을 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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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강남지역 여성들의 노동복장



헌데 최근 들어 이들 옛 소도시들이 살아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은 상하이와 수저우 사이에 위치한 저우장(周莊)을 비롯하여 루즈(甪直), 우전(烏鎭), 시탕(西塘) 등이다. 앞서 말한 치바오전이나 주쟈자오 혹은 진저전(金澤鎭) 역시 마찬가지이다.

 

소생의 주된 요인은 관광화일 것이다. 1980년대의 개혁개방 이후 정부가 적극적으로 관광정책을 진흥하면서 옛 도시들이 그 대상으로 떠올랐고, 이는 전국의 옛도시 관광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2006년에 발간된 <<중국고진유(中國古鎭游)>>라는 옛도시 관광 안내 책에 따르면 현재 클래식한 옛도시로 선정된 곳만 해도 전국에 걸쳐 220여개에 달한다. 우리가 잘 아는 윈난의 리장이나 안후이의 후이저우(徽州) 뿐만 아니라 심지어 푸젠성의 토루나 구이저우의 묘족 마을인 묘채 등도 포함되어 있으며, 당연히 상하이나 항저우 일대에 점점이 박혀 있는 소도시들도 소개되어 있다.

 

옛도시 관광이 주는 매력은 무엇보다 지역마다 너무 다른 전통민가의 양상을 볼 수 있다는 점, 이들의 자연 배경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옛 풍속이나 명절 등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 등 여러 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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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그물을 손질하던 저우장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그들이 착용하고 있던 자수앞치마를 잠시 빌려서 허리에 둘러보았다.

 

경제적으로 번영한 상하이나 항저우, 수저우 지역 사람들이 관광하기에 이들 옛도시는 더 없이 좋은 곳이다. 비용이 많이 들지 않으며 하루 코스로 가능한 데다, 보면서 즐길 수 있는 상품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중국밖에도 널리 알려져 외국 관광객도 넘쳐날 정도이다.

 

관광지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좀 더 중요한 요인은 옛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관광지로 소문난 저우장에 가는 상하이인들은 이곳을 상하이처럼 너무 꾸미는 바람에 옛 모습이 많이 퇴색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들이 보기에는 옛 도시 모습을 거의 손대지 않은 채 잘 보존되어 있었다. 따라서 명청시대의 소도시 풍경을 직접 관찰하고 싶다면 이들 소도시에 가서 수로와 그에 잇대어 있는 많은 점포, 수공업, 저택을 보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대부분 옛 모습을 복원시켜 놓았기 때문에 ‘아하, 몇 백 년 전에, 혹은 1백 년 전에 저런 모습이었겠구나'라고 상상할 수 있다. 다만 손님을 많이 끌기 위해 예전보다 더 상업화한 것은 불가피하였으리라.

 

또한 1980년대 이후에 진행된 농촌의 개혁 정책도 이들 옛도시의 흥기에 도움을 주었으리라고 본다. 대도시 주위에 위치한 까닭에 풍성한 농산물을 인구가 많은 도시에 공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통 시대의 시장 발전의 선두에 섰던 도시들이었기 때문에, 시장 사회주의에 곧바로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주요한 장점일 것이다.

 

상하이 인근의 소도시들이 안고 있는 현저한 특색 중의 하나는 수향, 곧 물의 도시라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중국 교통의 특색에 대해 귀가 따갑게 들어온 것이 남선북마(南船北馬)라는 단어이다. 강남에서는 배를, 화북에서는 말을 주요 수송수단으로 활용한 탓이다. 저우장에 가면 개인집 마당에도 부두를 설치하여 자가용 배를 타고 외부로 나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청나라 때의 건조물이다. 동네에서는 이보다 좀 더 큰 배를 이용하고, 상하이나 수저우와 같은 대도시로 갈 경우에는 황포강 앞까지 항해할 수 있을 정도의 큰 배가 활용된다. 저우장의 경우 이 동네에서 동쪽에 위치한 딩산호(淀山湖)로 나아가고, 이곳에서 다시 황푸강 상류로 연결되어 상하이로 갈 수 있는 수로가 있다.

 

나는 상하이에 거주하던 시기에 저우장에 3번쯤 간 것 같다. 처음에는 가이드만 따라 다녔으나, 그 다음부터는 상하이에서 개인적으로 출발하여 자유롭게 구경하였다. 첫 방문 때에는 옛 시가지나 점포 등을 구경하고 수로를 왕래하는 배에 올라 수향의 도시 풍경에 흠뻑 끌렸다. 하지만 다녀볼수록 점포보다는 오히려 일반적인 주민들의 삶에 더 관심이 갔다. 그 덕택에 그물을 수리하는 마을 아줌마들, 집안에서 비단실로 수공예품을 만드는 할머니들을 만날 수 있었고, 특산 음식인 만산퇴(萬三腿)라는 푹삶은 돼지다리고기도 편안하게 먹을 수 있었다. 또한 내가 보고 싶었던 이곳의 전통 복장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그것은 노백성들이 일할 때 입는 것으로서, 여성의 경우 흰 머리수건, 짙은 남색 상하의, 앞치마, 신발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앞치마 끈에 천연색 수를 놓아 나름의 멋을 부렸다. 나는 강남 지방의 농민들에게 이런 의상이 있다는 사실을 이곳 방문을 통해 처음 알았다. 말하자면 강남사회의 역사를 통해 축적되어온 일상적 관행들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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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저우장 여성들이 만든 자수꽃신과 여러 용도의 주머니. 과거에 강남지역에서 번성했던 자수와 비단 산업의 전통을 보여준다.

 

역사가 오래된 도시들의 강점은 저와 같은 역사가 훌륭한 자원이 된다는 사실이다. 오랫동안에 걸쳐 강남이라는 자연 조건 속에서 발전한 사회 경제 및 정치적 관행들이 이러한 도시를 만들었지만, 그 관행의 속성과 구체적 현장을 무너뜨리는 순간, 이들 도시는 생명력을 잃고 말 것이다. 도시의 흥망성쇠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죽어버린 것 같던 옛 도시가 살아나듯이, 오늘날에 발전하였다고 말하는 도시 역시 언제 쇠퇴할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현장에서 마주친 관행 14

   

유장근 _ 경남대학교 역사학과 명예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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