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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현장&공간
1월호
소통의 묘미, 중국의 기차여행 _ 유장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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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이해하는 방식 중의 하나는 여행일 것이다. 물론 여행의 종류도 천차만별이고, 목적 역시 다양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구의 제1보는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는 작업일 것이며, 중국과 같이 넓은 영토와 다양한 민족, 사회적 관행들이 뒤엉켜 있는 곳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 관련 자료를 읽고 가면 원하는 만큼의 여행이 가능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중국의 철도 여행은 중국을 알고 싶은 이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식이다. 잘 발달된 철도 체계와 거기에 맞는 열차 운행, 그리고 이를 활용한 여행시스템은 여행자들에게 매력적인 품목이기 때문이다. 나는 10여 년 전에 상해에서 거주했기 때문에 여하튼 가고 싶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 철도는 필수품이었다. 비행기도 가능하지만, 그것은 공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을 생략한다는 점에서 여행 방식으로는 낙제라고 생각하였다.

  

이왕이면 장거리 열차를 타보자는 심산으로 춘절 직전에 상해에서 운남의 곤명으로 가는 보통급행, 곧 콰이수(快速)에 올라탔다. 사실 두 지역을 왕복하는 열차는 이 등급의 열차 이외에는 없었다. 소요시간은 23, 노선의 총길이는 2,920킬로미터 정도였고, 정거장은 상해와 곤명을 제외하고 24개였으며, 소요시간은 대략 45시간, 날짜로는 23일이었다. 지역별 노정으로 본다면 상해-강서-호남-광서-귀주-운남 등 남서부를 통과하는 장거리 노선이었다.

  

내가 의도하였던 것 중의 하나는 이들 지역으로 가는 사람들을 만나서 중국의 세상사를 듣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우리 침대칸(6개짜리)에는 우리 부부 이외에 운남 출신의 부부와 그 딸, 광서성의 남녕이 고향인 젊은 부인, 그리고 귀주의 흥의가 고향이라는 장()소저, 이렇게 4개 팀이 동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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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기차에서 알게 된 진꼬마.

진씨 부부는 설을 맞아 10년 만에 고향에 간다고 하였다. 결혼하고 아이를 가진 뒤 첫나들이였다.

 

상해에 사는 진()씨 부부는 귀여운 딸 아이 하나를 데리고 부인의 고향인 운남성 육고(六庫)로 가는 중이었다. 그곳은 최근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삼강병류(三江竝流) 지역으로서 풍광이야 아름답지만, 그 만큼 접근하기 어려운 동네였다. 젊은 부인은 고향을 떠난 지 10년 만에 설을 맞아, 새로 맞이한 남편과 6살짜리 딸아이와 함께 첫 번째 친정나들이를 하는 것이었다. 그간 고향 식구를 한 번도 보지 못하였다고 말하는 그 얼굴에는 절절함과 기쁨이 함께 드러났다.

 

귀주성의 흥의(興義)가 고향인 장소저는 기차에 탈 때부터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투로 떠들어대는 통에, 우리는 조용히 여행하기는 틀렸구나하는 지레짐작을 하면서 그와 신경전을 벌이곤 하였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교류를 해 본 결과, 성격이 활달하고 남과 사귀는 것도 좋아하는 모던한 아가씨였다. 다만 그가 쓰는 말투는 귀주 지방의 중국어라서 외국어나 마찬가지였다. 그 말은 마치 동남아시아의 어느 나라 말쯤 되는 듯하였다. 이는 광서의 남녕이 고향인 젊은 새댁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까닭에 흥의 사람은 남녕말을, 남녕 사람은 흥의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면서 한참 동안 웃어댔다.

   

그들은 한국인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것이 처음이라고 하였다. 다른 중국인들처럼 그들도 우리들에 대해, 한국에 대해, 상해 상활에 대해 꼬치꼬치 물어보았다. 이렇게 되면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허긴 우리도 언제 이 화남 지역의 중국인들을 접촉한 적이 있기나 한가.

  

귀주의 흥의 쪽에 가까워지니 풍경이 뛰어났다. 나지막한 석회암 산지 사이를 막 피어나기 시작한 유채꽃이 메우고 있었으며, 그 어간에 들어선 동네는 마치 풍경화의 한 자락처럼 보였다. 이러한 모습에 우리가 감탄을 연발하자, 흥의 출신 아가씨는 콧방귀를 낄 뿐이었다. 이곳이 좋으면 한번 살아 보시지요 라는 식이었다. 자신은 이런 곳보다 상해가 훨씬 좋다는 것이다. 역시 외부 관찰자들이란 삶의 본질보다는 표상의 이미지에 함부로 감격하는 오류를 범하곤 하는데, 우리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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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귀주의 농촌풍경.

1월말이었는데 유채꽃이 막 피어나고 있었다. 보기에는 좋지만 가난과 척박함의 상징이다.

  

우리가 기차여행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은 먹을거리를 해결하는 일이었다. 열차 내에서 파는 음식이 항상 입에 맞는다는 보장이 없는 데다, 정거장에서 잠시 내려 사온 도시락류는 대부분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이를 피하고자 두 세끼 정도 분량의 김치 김밥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김치 김밥이 좋은 점은 잘 쉬지 않는 데 있었다. 이것 외에 컵 라면류도 소지하였고, 후식으로 방울토마토나 조그만 귤 따위를 준비해 갔다. 이번 열차 내에서 아침식사로 맛있는 죽을 먹은 것은 행운이었다. 이튿날 점심 무렵에 도착한 호남성 주주(株洲) 역의 승강장에서는 질그릇 도시락도 팔고 있었다. 반찬은 돼지고기와 닭고기에 채소 볶음을 섞어 놓은 평범한 편이었지만, 밥을 조그만 질그릇에 담은 모습이 그럴 듯하게 보였다. 그러나 외양과 달리 맛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로 끝나고 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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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중점고객으로 선정된 필자.

외국인 여행자라서 특별보호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침대머리맡에 달아준 붉은 매듭이 그 징표이다.

  

우리 부부가 이 여행에서 얻은 수확은 또 있었다. 중점고객으로 선정되어 23일 동안 특별 관리 대상이 된 것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서는 도대체 중점고객이 무엇인가? 하고 궁금해 할 터이다.

  

상해를 출발한 직후 우리의 차표를 검사하던 열차원은 우리가 외국 여행객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다. 곧 이어 그는 붉은 매듭 하나를 들고 와서는 우리의 침대 머리맡에 그것을 매달아 놓은 다음, ‘당신들은 우리의 중점 고객입니다라고 고지하였다. 그리고는 여러 가지 편의를 보아주고 안전하게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니, 불편한 사항이 있으면 우리에게 말하라고 알려주었다. 우리는 의례적인 것이려니 하면서 그의 말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웬걸, 한 밤중이 되니 젊은 열차원 한 명이 우리 침대 앞의 복도 의자에 앉아 새벽 6시까지 이틀 연속으로 보초를 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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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곤명 부근의 석림역 부근 풍경.

운남에서도 석림은 뾰죽뾰죽한 돌들이 숲처럼 늘어서 있는 자연경관이다. 위에서 보이는 것은 말하자면 압축형 석림이다

     

이후에 주의해서 본 것이지만, 우리 칸에 중점 고객으로 선정되어 새빨간 매듭을 달고 있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자세하지는 않지만 홍콩에서 온 여행자처럼 보였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외국인 여행객에게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한 제도였을 것이다. 내리기 전에 나는 열차 내에 걸려있는 여객용 소원수리서에 특별히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는 것으로 그들의 호의에 답하였다.

   

이 칸에는 우리 이외에 한국인 한 팀이 더 타고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우리와 같은 호의가 베풀어지지 않았다. 내몽골에서 선교 사업을 한다는 이들 가족 3명 중, 초등학교에 다니는 사내아이와 조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상해에서 지낸 며칠 동안 내몽골보다 훨씬 추워서 혼이 났다는 말이었다. 내몽골에서는 집 안에 들어가 있으면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반면, 상해에서는 오히려 집이 추웠다는 것이다. 대부분 실내 난방이 되지 않는 상해에서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사실, 시간을 다투는 여행자들에게 중국의 열차여행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 역시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탓에 귀로는 비행기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계획상으로는 우리가 못가본 길, 곧 곤명에서 귀주의 육반수(六盤水)와 귀양(貴陽), 호남의 상담 등을 거쳐 상해로 오고 싶었던 것이다. 특히 좁은 비행기에서 몇 시간 동안 쪼그리고 앉아 여행하는 것은 마치 우리에 갇혀 꼼짝 못하는 동물과 같다는 생각을 우루무치에서 상해로 귀가할 때 한 적이 있었다.

 

이에 비해 장거리 열차는 우선 편하게 누울 수 있는 데다 아침에 서둘러 일어나지 않아도, 바삐 짐을 꾸리지 않아도 괜찮았다. 열차가 서는 곳마다 특산물이 있어서 그것으로 요기를 할 수도 있었다. 더구나 상해- 곤명은 북경이나 서안행과는 달리,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풍경 때문에 한 눈을 팔기가 어렵다. 게다가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살아온 모습과 잠자기, 밥먹기, 말하기, 관계만들기 등의 일상적 관행들을 자세히 관찰하기에 더 없이 좋았다.

    

현장에서 마주친 관행 9

   

유장근 _ 경남대학교 역사학과 명예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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