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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6월호
새로운 장(A New Chapter)?...그들만의 홍콩을 향한 질주 _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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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8일 홍콩에서는 행정장관 선거가 있었다. 선거를 한 달 앞두고 출마를 선언한 유일한 후보자는 당시 정무부총리였던 존 리(John Lee)였다. 존 리는 행정관료가 아닌 경찰 출신으로 많은 이들의 우려를 샀지만, 1,400여 명의 선거인단이 보낸 압도적인 지지로 행정장관으로 선출되었다. 존 리는 선거를 열흘 정도 남겨둔 시점에서 홍콩을 위한 새로운 장을 함께 시작하자(Starting a New Chapter for Hong Kong Together)”라는 제목의 정책 공약집을 내걸며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안타깝게도, 그가 제안한 새로운 장은 단일후보로 치러진 행정장관 선거에서부터 무의미한 수식어가 되고 말았다.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했던 2014년 우산운동의 좌절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2017년의 행정장관 선거보다 못한 상황이 벌어진 현재, ‘새로운 장은 수식어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이번 행정장관 선거의 풍경은 얼마 남지 않은 임기를 마무리하고 있는 현 행정장관 캐리 람(Carrie Lam)이 당선되었던 5년 전과 사뭇 달랐다. 코로나19로 인한 선거연기, 단일후보 등록, 20207월의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엄혹해진 분위기, 위축된 시민사회, 중국에 대한 애국을 강요하는 선거제도의 개정...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물론, 2017년에도 행정장관 선거를 둘러싼 전망은 긍정적이지 않았다. 시민들이 염원했던 직선제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특정 후보가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러한 문제를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달랐다.

 

필자가 박사학위논문 현장연구를 위해 홍콩에 도착했던 20172월은 행정장관 선거를 한 달 정도 앞둔 시점이었다. TV에서는 캐리 람을 포함한 세 명의 후보가 정책 토론을 하고, 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는 모습이 자주 방송되었다. 사전에 선정된 선거인단이 투표를 하는 제한적인 구조로 인해 시민들에게는 투표권이 없었지만, 후보를 평가하고 비판하는 장이 활발하게 열렸다. 필자가 연구했던 시민사회단체에서는 함께 활동하는 주민들과 모의투표를 열어 세 명의 후보자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기도 했다. 어떤 후보가 기층민이 경험하는 홍콩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논의하는 장이 분명히 있었다. 5년의 시간이 지난 오늘날, 국가보안법으로 여러 시민사회단체는 해산했고 단일후보 등록으로 이미 정해진 답을 받아들여야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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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 정책공약집 표지


하지만, 새롭게 선출된 행정장관이 정책공약을 통해 보여준 홍콩의 미래는 달라진 현실과 무관해 보인다. 오히려 극심하게 분열된 홍콩의 현재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필자의 홍콩 친구는 행정장관 선거에 어떤 기대도 내비치지 않았다. 누가 되든 악화일로에 접어든 홍콩의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홍콩을 떠나거나 남아서 생존하는 선택지밖에 없다고 비관하는 지금, 곧 부임할 행정장관이 제시하는 정책은 모든 소요가 잠잠해진 평화로운 홍콩이자 중국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할 시점에 접어든 홍콩을 향해있다. 정책공약집에 묘사된 홍콩은 여전히 고도의 자치를 누리는 특수한 지역이고, “혼란(chaos)”으로부터 사회를 재건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그 재건은 홍콩에서 여전히 지켜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법치의 원칙을 준수하고 헌법인 기본법(Basic Law)에 근거한 홍콩만의 보안법 제정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러한 홍콩은 누구를 위한 홍콩인가. ‘새로운 장함께할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우산운동 이후 홍콩에서 정치적 주체로 부상한 청년은 분명 아니다. 정책공약집에서 존 리는 청년의 상향 이동성을 증진하겠다고 밝혔다. 상향 이동성은 직업훈련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고, 고용을 창출하며, 창업을 지원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정부 산하의 위원회 등의 창구를 통해 시민사회의 이슈를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청년의 참여를 촉진하겠다는 계획도 있다. 청년들이 중국에서 취업하고 혁신적인 기업가정신을 배양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정책은 이전 정부와 비교했을 때 특별히 달라진 것은 아니다. 새로운 장이라는 포부에 미치지 못하는 공약일뿐더러, 달라진 정치적 환경에서 청년세대가 실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파악하지 않은 방향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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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2. “Kill Me OR FREE ME”


2019년 사회운동에 참여하던 청년세대는 목적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민주주의를 향한 정치적 신념은 이들의 사회운동 참여를 추동한 주요한 배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대를 강경하게 진압했던 경찰 출신 관료인 존 리는 청년세대의 정치적 요구를 경제적 문제로 치환해서 이해하는 한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 경제적 해결방법조차도 청년세대의 지향과 동떨어져 있다. 필자의 홍콩 친구는 홍콩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 중 중국 취업을 희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미 시행되고 있었던 중국 취업 지원 제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과 홍콩 두 지역에 부모를 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청년세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정부는 그들이 기획하는 홍콩만을 위해 골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원하는 청년세대의 모습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면서 이러한 범주에 들지 않는 또 다른 청년들을 배제하는 것이다.

 

홍콩 정부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활동가들에 대한 체포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시위대의 소통창구였던 텔레그램 접속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국제 NGO의 홈페이지 접속을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했다. 활동가들은 비정치적인 이슈를 중심으로 활동을 재편하고 있지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혐의를 적용하는 국가보안법의 감시망에 어떻게 포착될지 수 없다. 이 와중에 새롭게 출범할 존 리 행정부는 국가보안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전략 하에 그들이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장을 함께 열 청년세대의 모습을 규정하려 하고 있다. 다른 의견을 청취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 비민주적인 정부가 만들어나갈 미래는 전혀 새롭지 않다. 존 리의 새로운 장은 정부의 방향성에 동의하는 사람들만의 리그가 될 것이며, 앞으로도 이 사실은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홍콩이 직면한 비극이다.


지금 여기홍콩 2



 김주영 _ 전북대 동남아연구소 전임연구원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참고문헌

Starting a New Chapter for Hong Kong Together(John Lee Election Manifesto of Chief Executive Election (2022)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그림 1. 정책공약집 'Starting a New Chapter for Hong Kong Together'의 표지 이미지를 필자가 캡쳐

그림 2. https://unsplash.com/photos/UU-FIwRlBK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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