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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현장&공간
10월호
중국의 딸들, 그들의 부모 그리고 국가 3 _ 안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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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에서 중국학을 가르치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가장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영미권에서 흔히들 “One-child policy”로 번역하는 중국 정부의 “계획생육/산아제한 정책”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가가 나서서 벌금이나 감금 등의 방법으로 각 가정이 가질 아이의 숫자를 통제한다는 발상자체가 워낙 인권이나 개인의 사적 생활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제한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적인 도전으로 인식되는 데에다 낙태문제에 관련한 종교/여권운동 간의 미국 내의 쟁점과도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의 산아제한 정책은 미국의 중국학 전체에 학문의 목적과 윤리성에 대한 중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1979년 스탠포드 대학의 인류학과 대학원생이었던 Steven W. Mosher는 자신의 필드리서치 과정에서 알게 된 산아정책의 반 인권적인 집행과정을 공개한 바 있다. 이에 (중국정부의 항의를 받은) 스탠포드 대학이 Mosher의 행동을 현지의 상황에 대한 관찰과 해석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벗어난 개입으로 규정하고 그를 제적 처리하면서 학계전체에 학문의 순수성, 정치에서의 독립, 윤리의 기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실제 그의 사례는 중국 정부의 미국 출신 중국학 연구자에 대한 경계를 불러일으켜 필자도 필드리서치 과정에서 중국 국가안전부 직원의 방문을 받기도 했다. 말하자면, 산아제한 정책은 미국의 중국학연구자들 모두가 여러 면에서 비켜가기 힘든 주제가 되었고 실제 많은 전문적인/준전문적인 연구들을 생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학문의 영역 밖에서도 중국의 산아제한 정책은 미-중간의 외교적 갈등을 넘어선 미국정부의 대외정책 전반에 크고 작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 부시 행정부 시절, 중국의 가족 계획정책에 적극적인 도움을 주던 유엔의 United Nations Population Fund에 대해 미국정부는 분담금 제공을 거부하며 유엔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고, 또 중국의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도 산아정책의 피해자들을 난민으로 분류해 적극 수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지나친 관심을 받는 중국의 산아제한 정책에 대한 연구는 그 동안 남아선호라는 중국의 문화나 이 때문에 벌어진 여성에게 가해지는 강제 낙태와 불임수술 등과 같은 몇몇 주제에만 초점이 맞추어졌다. 반면, 이 정책이 농민 향촌사회와 딸의 가정 내에서의 지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최근까지도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비록 2000년대 중후반 이후 이미 이러한 주제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연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필자의 이해 역시 필드리서치를 시작하던 2005년까지 만해도 거의 피상적인 수준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필자는 인터뷰 과정에서 이 산아정책이 국가-향촌 주민-그들의 딸들 간의 관계에 다이내믹한 변화를 가져왔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선 80년대까지 활동하던 기존의 마을 산파들은 산아제한 정책을 추진하라는 국가의 명령을 거부하며 그들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저항의 수단으로 다른 마을로의 도망을 선택하였다. 즉 어느 누구보다도 국가의 산파개혁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그들이었지만, 출산 쿼터를 결산할 때가 오면 마을에서 인심을 잃지 않기 위해 딸들의 집이나 친정이 위치한 다른 마을이나 도시로 도망가서 몇 달이고 머물다 왔다고 한다. 필자와 같은 현의 마을들을 조사했던 Zhang Weiguo에 의하면, 이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시집간 딸들도 허가받지 않은 임신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시댁 마을 간부들의 눈을 피해 친정으로 도망갔고, 마을의 호적에 오르지 않는 이상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을 딸들과 이웃들을 마을 사람들은 그냥 모른척했다고 한다. 이는 주로 당해에 낳을 수 있는 아이의 쿼터가 마을단위로 정해졌고, 시집간 딸이 낳은 아이는 남편이 사는 시댁마을의 쿼터로 계산되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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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대부분의 농민들에게 중국혁명은 계급혁명이나 신중국 건설의 거창한 명분보다는 산파개혁을 통해 자녀를 안전하게 낳고, 토지혁명을 통해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이 자랄 물적 기반을 제공받는 “가족생활의 회복”이라는 목표에 가장 큰 의미를 두었다. 그리나 정부의 가족계획은 그러한 “가족생활의 회복”이라는 목표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가장 부당한 압력이자 혁명의 배신을 의미했던 것 같다. 필자가 조사했던 마을에서도 한 의사는 아들을 낳기 위해 막 낳은 딸을 죽인 부모의 사례를 증언하며 혁명 전에나 있던 영아살해가 다시 벌어졌다고 분노했고, 마을 사람들은 허가받지 않은 아이를 낳아버리는 바람에 남의 가정이 애를 못 낳게 만든 이웃의 집을 부수어 응징했노라고 마음 아프게 증언했다. 그들은 보통 알려진 대약진 운동의 실패가 가져온 기아나 문화대혁명의 수난보다도 훨씬 마음 아프게 그때의 잔혹함을 증언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불합리한” 정부의 배신에 주민들은 친정으로 도망쳐온 딸을 숨겨주고 그렇게 낳은 아이를 길러주면서 대응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부당한 국가의 개입을 한세대 가까이 시행한 현재, 중국 정부는 원래 계획했던 인구수의 관리를 넘어서 딸의 가정 내에서의 지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듯하다. 딸만 있는 가정에 지나치듯이 물어본 “기회가 된다면 아들 하나를 더 낳을 건가요?”라는 질문에 모두가 하나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양부치(养不起: 양육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힘에 부쳐서 아들을 하나 더 가질 생각이 없다는 의미였다. 그러한 대답이 계속되면서 관심을 갖고 더 물어보면 이미 있는 딸이라도 어떻게든 대학까지 가르치고 싶을 뿐, 아들 낳으려는 욕심 때문에 딸의 미래를 망치고 싶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실제, 앞 편에서 소개한 위(魏)아저씨네 3형제도 첫째아들은 부모님의 압력에 첫째 딸을 낳고는 3년 후 허가를 받아 다시 애를 낳아 결국 손자를 안겨드렸다. 그러나 둘째와 셋째 아들은 둘 다 첫 번째 아이가 딸이었고 다시 몇 년 후 출산 허가를 신청할 수 있었지만, 모두 그런 기회를 거부했다. “양부치”라고 하면서. 위아저씨는 무척이나 서운해 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필자에게 푸념하였다. 아래 사진은 설날 아침 만찬을 먹고 어른들과 사진을 찍는 동안 그렇게 3형제의 네 아이들이 노는 것을 촬영한 것이다. 첫째가 낳은 아들 하나와 딸 셋의 모습이다. 동일한 광경은 설날 아침 만난 두 딸을 가진 아버지와의 대화에서도 재현되었다. 첫째 딸을 낳고 다시 허가를 받아 낳은 아이도 딸이었지만 혹시 서운하지 않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아버지는 단호하게 애들을 잘 키우는 것이 그의 인생목표라고 거창하게 대답하였다.


최근에 쏟아지는 연구들은 필자의 관찰이 결코 한 두 마을의 개별적인 사례가 아님을 보여준다. Lee Ming-Hsuan이 9개 성(省)에 분포한 4,400가족 아이들의 교육과 건강에 대해 분석한 논문에 의하면, 오빠나 남동생 없는 가정의 여아들이 키가 더 크고, 오랫동안 학교를 다닌다고 한다. 물론 딸들을 향한 친정부모들의 자세가 변한 데에는 상업경제의 발달로 딸들이 독자적인 수입이 생기고 친정부모를 부양하는데 역할이 커진 것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계기에는 딸들을 숨겨주고 또 국가에 의해 강제로 아들에 대한 집착을 포기해야 했던 20여 년간의 시간동안 부모들이 “출가외인”으로 치부하던 딸들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정부의 잔혹한 “혁명의 배신”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의도와 다르게 남녀평등의 면에서 가장 커다란 “혁명”을 가져온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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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北 농촌 관행 조사 9】

 

안병일 _ Saginaw Valley State University

 

                                                  

 

참고문헌

Lee, Ming-Hsuan. “The One-Child Policy and Gender Equality in Education in China: Evidence from Household Data.” Journal of Family and Economic Issues 33, no.1 (2012): 41-52.
Zhang, Hong. “China's New rural Daughters Coming of Age: Downsizing the Family and Firing Up Cash-Earning Power in the New Economy.” Signs 32, no. 3 (2007): 671-698

Zhang, Weiguo. “A Married Out Daughter Is Like Spilt Water?: Women's Increasing Contacts and Enhanced Ties with Their Natal Families in Post-Reform Rural North China.” Modern China 35, no. 3 (2009): 256-283.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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