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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갯벌로에서
6월호
미·중 전략경쟁과 한국의 선택 _ 조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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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어느새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지 반년이 다 되었다. 이제 미국의 새로운 대중 전략은 어느 정도 구체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도 3월 양회(兩會)를 거치면서 미국에 대한 자신의 대응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양국의 입장 정리로 미중의 경쟁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이 더욱 분명해졌다. 지난 5월의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도 미국의 압박 속에서 중국에 대한 입장이 어떻게 표현될지 큰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배경에서 미국이 공식화한 대중 전략과 중국의 대응을 살펴보고, 미중 정상화담을 통해 한국의 전략을 간단히 평가해 보겠다.

  

미국의 대중 전략

 

중국의 양회 하루 전인 33일 미국이 국가안보전략 잠정 지침(Interim National Security Strategic Guidance)을 발표했다. 이번 지침은 공식적인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이 나오기 전에 급히 임시로 내놓은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현재의 안보 상황을 엄중하게 보면서 트럼프 시기의 정책을 신속하게 전환하기를 원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지침의 핵심 키워드는 민주주의, 동맹, 기술이다. 중국, 러시아 등의 권위주의 국가와 반민주주의 세력에 맞서 동맹, 파트너들과 함께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이 전략 경쟁의 대상이며, 기술이 가장 중요한 경쟁 영역이라고 적시했다. 또한 지침은 홍콩, 신장, 티베트와 관련하여 민주주의, 인권, 인간의 존엄성을 옹호하겠다고 선포했다. 경제안보 파트너로서 대만에 대한 지원도 약속했다. 중 경쟁을 민주주의 대 반민주주의라는 가치와 체제의 경쟁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뒤이은 미국과 일본의 국무국방 장관 2+2 회담은 중국과 관련된 내용으로 채워졌다. 양국은 중국의 행동이 미일 동맹과 국제사회에 대하여 정치경제군사기술적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또한 중국의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대한 현상 변경 시도에 반대하며,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를 보호하겠다고 선언했다. 아울러 대만, 홍콩, 신장 문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417일 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은 동일한 내용을 반복하면서도 1969년 이후 처음으로 미일 정상이 함께 대만 문제를 언급함으로써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요컨대 미국은 권위주의 국가인 중국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현존 국제질서를 불안정하게 만든다고 규정하고, 모든 주요 이슈에 대해 중국과 전략 경쟁을 하겠다고 선포했다. 이를 위해 동맹을 강화하면서 동맹국들에게 구체적인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중국의 대응

 

3월에 열린 중국의 양회는 작년 10월의 중국공산당 195중전회에서 이미 제시된 국민경제 및 사회발전 제145개년 계획과 2035년 장기목표(145 규획)와 쌍순환(双循环) 전략을 정부 정책으로 공식화하였다. 쌍순환 전략은 내수를 확대하여 대외의존도를 축소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제 전략은 미·중 경쟁에 대한 장기적 대비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양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건인 정부업무보고를 보면, 이전보다 다자주의가 강조되었다. 보고는 작년의 주요한 외교 성과로 다자주의 추진을 꼽고 이러한 성과를 마무리할 계획을 열거했다.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RCEP) 발표, 중국-유럽연합 투자협정 서명,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대한 가입 고려가 이에 해당한다. 과학기술과 관련해서는 '자립자강(自立自強)'이라는 용어가 새로 등장했다. 특히 '10년 동안 하나의 칼을 가는' 것처럼 차분하게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하는 방식으로 과학기술을 혁신하겠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결국 중국은 미국의 동맹 강화에 맞서 다자주의를 강조하고, 기술 경쟁에서는 자체적인 내부 역량을 강화하는 전략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슈별 압박에 대해서 중국은 기존 원칙을 완고하게 재천명하고 있다. 남중국해, 대만, 신장, 홍콩, 티베트 등이 중국의 내부 문제임을 강조하고 미국이 민주, 인권 등을 이유로 내정에 간섭하는 것을 비판했다. 특히 일본, 호주 등이 이런 이슈들에 대해 미국과 공동의 입장을 천명하는 것을 위협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중국의 기존 입장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지나치게 과장할 필요는 없지만, 중국이 미국의 압박에 굴복하거나 자신의 입장을 바꿀 의향이 전혀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신냉전의 도래와 한국의 선택

 

트럼프 행정부 시절, 냉전사의 권위자인 역사학자 베스타(Odd Arne Westad)는 미중 갈등을 '신냉전'으로 볼 수 없다고 평가했었다. 소 양극 체제로 규정되는 냉전과 달리 미국의 국력이 상대적으로 쇠퇴하면서 국제질서가 다극화되었고 경제 시스템에서는 미중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냉전 시기처럼 이념에 따라 생사를 걸고 벌이는 사투가 아니라, 경제적 이익을 차지하려는 강대국들의 경쟁일 뿐이라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 논리를 최근 구체화된 미중 경쟁에 대입하면, 비관적인 전망이 도출된다.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을 민주주의 대 반민주주의의 대결로 규정하고 동맹 국가들에도 동일한 입장과 역할 분담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미중 갈등을 선과 악의 대립으로 몰아가고 있다. 중국은 이에 맞서 내부 역량을 강화하는 장기적 전략으로 대응하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원칙과 핵심이익을 부정한다면, 대결도 회피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519일부터 22일까지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를 통해 최소한 현재 한국 정부의 대응 방향이 표출되었다. 일 공동성명과 비교하면, 미 두 정상의 공동성명에는 대만과 남중국해에 대한 짤막한 언급은 있었지만, 홍콩과 신장은 등장하지 않았다. 더 이상 중국에 대한 다른 언급도 없었다. 대신 글로벌 보건 안보와 중미 국가들에 대한 재정 기여가 구체적 액수로 명시되고, 여성 참여 문제까지 거론되었다. 일 공동성명에 없는 이런 내용들이 포함되다보니 2,000개가 조금 넘는 영어 단어로 구성된 미일 공동성명과 비교하면, 2,500 단어를 훌쩍 넘어 훨씬 길어졌다. 내용 구성으로만 보자면, 일 공동성명이 요점을 간명하게 써서 더 모범적인 문장으로 보인다. 더욱 냉소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중국에 대한 내용을 빼느라 자질구레하고 번잡한 내용을 잔뜩 집어넣어 변죽만 열심히 울렸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서 이보다 더 나은 선택이 가능할 수 있을까? 중국은 대만을 언급한 점에 항의하고 있지만, 항의의 실제 대상은 우리이기보다는 미국과 향후의 다른 국가들이다. 미국은 내심 성에 차지 않은 부분이 있겠지만, 더 이상의 요구는 무리라는 점을 확인했을 것이다. 미국 국무부에서 협상의 달인으로 통했던 리처드 홀브룩(Richard Holbrooke)은 외교와 협상을 재즈 음악에 비유했다. 주제를 반복하며 단단히 형식을 고수하는 오래된 클래식 음악처럼 정해진 공식과 선율을 따라갈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국익이라는 주제를 놓치지 않으면서 임시변통해야 하며, 때로는 즉흥적이기도 해야 한다. 불협화음을 넣기로 작정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의 외교는 더욱 변주가 심해지고 자주 변죽을 울려야 할지도 모른다. 다가올 대선을 앞두고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가장 오래된 인류의 난제만큼이나 '미국이냐, 중국이냐?'라는 질문이 강요될 것이다. 여전히 정답이 엄마인지, 아빠인지 정해지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힘들게 수많은 변주를 준비하고 더 많이 변죽을 때릴 수밖에 없다.

 

    

조형진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은 2021429일 국방일보에 게재된 글을 수정보충한 것임.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www.hkstv.tv/index/detail/id/93394/category/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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