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ISSN 2508-2884 (Online)

갯벌로에서
7월호
잠시 사라진 단어, '군민융합' _ 조형진
프린트 복사 페이스북

u=112498319,1078436356&fm=26&gp=0.jpg


중국의 양회가 5월 21일부터 28일까지 개최되었다. '양회(兩會)'는 단어 그대로 두 개의 회의, 즉 우리의 국회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자문기구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의미한다. 양회를 통해 중국은 공식적으로 일 년 동안의 성과를 평가하고, 한 해의 새로운 계획을 천명한다.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양회이지만, 올해는 더 눈길을 끌었다. 보통 3월 초에 개최되던 양회가 코로나19로 인해 계속 연기된 데다가 홍콩의 시위가 격화되고 대만에서는 독립을 지향하는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재선되었다. 무엇보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더욱 격화된 미‧중 관계가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건은 총리가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식에서 발표하는 「정부업무보고(政府工作報告)」이다. 특히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발표한 이번 「정부업무보고」는 기재된 단어보다 빠진 내용이 더 이목을 끌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불확실한 경제상황 때문에 매년 발표하던 경제성장률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으며, 대만을 대상으로 삼아 매년 반복되던 '조국의 평화 통일'이라는 문구에서 '평화'가 빠졌다.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하나 더 사라진 단어가 있다. '군민융합'이다.


'군민융합(軍民融合)'은 한자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듯이 군사 영역과 민간 영역을 결합한다는 의미이다. 경제, 과학기술, 교육, 인력 등에서 양자를 융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이 중국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최근에 새로 등장한 것도 아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군사 영역의 우수한 기술을 민간에 체계적으로 이전했으며, 이것이 오늘날 미국 기업들이 첨단기술에서 세계적 우위를 발휘하는 기원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중국에서도 ‘군’과 ‘민’의 결합은 마오쩌둥 시기부터 '군민양용(軍民兩用)' 등의 단어를 통해 존재했었다. 개혁‧개방이 시작되면서는 미국이 2차 대전 이후에 그러했듯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군사 기술을 형편없는 민간 부문으로 이전했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2007년 중국공산당 17차 당대회에서 후진타오(胡锦涛) 전 주석이 군민융합을 제기했다. 뒤이어 12차 5개년 계획(2011~2015년) 동안 군민융합을 통한 국방 강화와 군대 현대화가 추진되었고, 이는 13차 5개년 계획(2016~2020년)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시진핑 시대에 군민융합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2017년에는 중앙 군민융합발전위원회를 만들어 시진핑 주석이 주임을 맡았다. 또한 리커창 총리가 「정부업무보고」를 시작한 2014년 이후, '군민융합'은 이제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모든 양회에서 등장했다. 그런데 올해 「정부업무보고」에서는 빠진 것이다. 양회 전체적으로 봐도 군민융합은 언급되지 않았다. 왜일까?


최근 미국의 중국에 대한 반응은 격렬함을 넘어 과격해 보일 정도다. 일례로 양회 직전에 미국 행정부가 의회에 보고한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전략적 접근(United States Strategic Approach to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은 시진핑을 중국이라는 국가의 대표를 뜻하는 '주석'이 아닌, 중국공산당의 수장으로 국한하는 '총서기'로 굳이 호칭하면서 중국이 미국의 국익을 해치는 내용을 조목조목 열거했다. 특히 경제적 국익을 해치는 중국의 대표적 정책으로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언급했다면, 안보에서는 군민융합을 거론했다. 군민융합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이 중국 기업과의 경제적 교류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국의 민간 기술을 중국의 군사 기술로 이전시키며, 결국에는 인민해방군의 능력을 신장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앞서 의회 자문기구인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의 2019년 보고서도 군민융합을 미중 경쟁의 중요 내용으로 다루었다. 인민해방군과 연계되어 있다는 의심을 받는 화웨이, ZTE 같은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군민융합이라는 정책 자체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양회에서 중국은 홍콩, 대만과 같은 이른바 '주권' 문제는 강경하게 나오면서도 올해 1월에 서명된 미중 간의 1단계 무역합의의 이행을 천명하고 미국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면서 미중 갈등을 고조시킬 마음이 없다는 점을 드러냈다. 잠시 사라진 단어, 군민융합도 이런 차원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되면서 미국이 '중국제조2025'를 비판하자 작년 양회부터 '중국제조2025'도 사라졌었다. 미국과의 시비거리를 하나라도 줄여보려는 노력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제조2025'도, '군민융합'도 단어가 잠시 사라졌을 뿐, 중국의 산업전략이 사라졌다거나, 군사적 기술과 민간 기술의 결합, 적극적인 기술 획득 전략이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미국과의 갈등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무엇을 양보하고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지에 대한 일정한 판단의 단초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조형진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은 2020년 6월 16일 국민일보 인터넷판 [차이나로그인]에 게재된 동명의 칼럼을 일부 수정한 것임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www.sydiaocha.cn/%E9%8D%90%E6%B6%99%E7%9A%AF%E9%93%BB%E5%B6%85%E6%82%8Elogo.html

프린트 복사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