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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3월호
대만에서 해협을 건너가기: 소삼통(小三通)과 삼통(三通) _ 문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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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 들어서자마자 전 세계는 새로운 질병을 맞게 되었다. 중국과 대만 사이의 양안해협도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확산으로 중국대륙의 춘절 연휴가 29일에 끝나자마자 대만 정부는 210일부터 소삼통(小三通)의 모든 교통수단들을 잠시 운행금지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비단 이번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고, 2003년 사스(SARS) 창궐 당시에도 비슷한 선례가 있었다. 소삼통의 중요 기착지인 진먼현과 롄장현에도 아래와 같은 공고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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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진먼현정부 홈페이지의 공고, 양안소삼통이 210일부터 잠시 운행을 금지한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소삼통이란 무엇인가. 1949년 중국대륙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면서 중회민국정부는 타이베이에 이주한 후 중국대륙에 대해서 통상, 통항, 통신(우편)을 모두 거부하는 3불 정책을 펼쳐왔다. 그런데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1987년 중화민국이 대륙에 친척을 찾으러 가는 대만 사람들을 허용하면서 중국과 대만 사이에도 점점 교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중화인민공화국의 푸지엔성 샤먼시와 중화민국 푸지엔성 진먼현 사이는 겨우 4km 해협 거리에 불과했으므로, 우선 이 지역부터 개방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가 중화인민공화국 푸지엔성으로부터 제기되었다. 여러 차례의 협의를 거쳐 200012월 중화민국 정부에서도 진먼-샤먼, 진먼-취안저우, 마주(난간)-푸저우, 마주(베이간)-푸저우 등의 배 노선을 다음 해 1월부터 허락하였다. , 진먼과 마주 등 중국대륙과 가장 가까운 중화민국의 영토 사이의 통행을 허가했던 것이 바로 이 소삼통의 시작이다. 이후 2008년부터는 항공과 해운, 우편을 모두 개방하는 대삼통이 열렸다.

 

소삼통은 샤먼의 대만인들이 고향에 쉽게 다녀오는 이 되었다. 2019년 당시 샤먼의 우통항구에서 진먼의 수이토우항구까지는 30분마다 1회의 배가 있었고, 이 배는 200명 정도 탈 수 있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쉽게 다녀올 수 있었다. 샤먼의 대만인들 중에서는 아이들을 진먼의 학교를 다니게 하고 평일은 샤먼, 주말은 진먼으로 양 지역을 왕래하며 사는 사람들도 많았다. 또한 샤먼에서 바로 대만으로 향하는 비행편보다는 진먼에서 대만 본섬으로 향하는 비행편이 훨씬 싸고 많았으므로 진먼은 샤먼의 대만인들에게 경유지이기도 하였다.

 

이번 소삼통의 운행 중단은 샤먼의 대만인들에게 이전의 편리함과는 다른 공포와 불안, 또다른 안락함을 제공하기도 했다. 당시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1월 중순부터 대만으로 돌아가는 대만인들이 늘어났고, 소삼통의 중단이 결정된 7일부터 운행이 전면금지된 10일까지 샤먼의 대만인들은 샤먼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대만에 잔류하기를 결정해야 했다. 대만 내부에서도 이 대만인들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고, 몇몇 자가격리를 지키지 않은 대만 상인때문에 이들은 함께 중국에서 온 대만인들로 묶여 따끔한 눈길을 견뎌내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만에서의 오랜만의 쉼은 생업에 지쳐 있던 샤먼 생활과는 다르게 이들에게 고향의 안락함을 제공하기도 했다.

 

대만인들 일부는 잠시 대만으로 돌아가지 못할 결심을 하고 10일 이전 샤먼으로 돌아갔다. 진먼에서의 배가 아닌 샤먼 가오치항공으로의 비행편을 택한 사람들은 거의 텅 빈 비행기를 타고 중국 공안의 여러 번의 발열카메라와 수작업 열재기후에 샤먼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이는 2년 전 필자가 타이베이 송산 공항에서 샤먼 공항으로 향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광경이었다. 대삼통을 이용했던 필자는 새벽 비행기를 이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꽉 찬 승객들과 함께 샤먼에 들어왔다. 이 비행은 월요일 새벽에 이뤄졌는데, 주말을 대만에서 보내고 샤먼으로 출근하기 위해 탄 대만 출신 승객들과 외국인 필자 1, 그리고 소수의 중국 관광객들이 함께 이 비행기를 이용했다.

 

이 비행기에서 필자는 타이베이와 샤먼에 법률사무소를 가진 변호사와 동승하게 되었다. 그가 샤먼에 진출한 것은 약 15년 전의 일로 소삼통이 개통하자마자 샤먼에 가게 된 것이었다. 샤먼과의 다른 연고가 있느냐고 묻는 필자의 질문에 변호사는 아마 7대조 할아버지가 샤먼에서 이주해오지 않았겠냐는 간접적인 답변으로 본성인임을 내비쳤다. 그가 샤먼을 선택한 이유는 샤먼에 이미 대만인들이 진출해 있고, 중국 시장을 개척함에 있어 여러 법률적인 문제가 있는데 이를 해결하는 데 자신이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이유에서였다. 십여년 동안 그는 중국 도시 몇 곳에 지부를 내는 등 대만에서보다 더 중국의 법률 사업에 관심을 갖는 듯 보였다.

 

대만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게 되면 중국 대륙의 방침 상 홍콩, 마카오 발비행기와 묶여 강아오타이(港澳台)’ 창구에 도착하게 된다. 샤먼 가오치 항공의 규모는 크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분명하게 나눠지지는 않았으나, 입경심사 당시 중화인민공화국 공민, 강아오타이증을 가진 사람, 그리고 외국인이 분명히 나눠지기 때문에 대만 출신의 사람들은 타이바오증을, 필자는 여권을 들고 입경심사를 마쳤다. 당시 비행기는 대만에서 들어오는 비행기라 모든 공안이 강아오타이 창구에만 모여 있어 필자는 공안이 외국인 창구에 올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입경심사를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비행기를 통한 삼통은 여러 절차가 소삼통보다는 까다롭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있는 대만인들은 진먼섬의 배를 이용하는 편이다.

 

아무리 양안이 30~1시간 거리로 가까워졌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예측할 수 없는 질병의 세계에서는 경계의 통제가 강하게 나타나므로 잠시 분리된 세계로 존재하게 되었다. 샤먼에 남은 대만인들은 이전에 진먼의 까르푸에서 많이 사놓은 대만의 식재료들로 전염에 대한 불안을 이겨내거나 샤먼의 대만음식점을 찾아다니면서 을 음미하거나 안부를 묻고, 잠시 샤먼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대만인들은 고향에서 연기된춘절 연휴를 1달 넘게 즐기며 오랜만의 쉼을 즐기고 있다.


아시아의 보물섬, 대만 2


문경연 _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 이 글에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s://tw.appledaily.com/life/20200207/4EEQO6O5OZXSETCIQKPZLI3Z6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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