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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12월호
아스팔트 정치에서 제도권 정치로 수렴된 홍콩 선거 _ 양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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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법 조례 수정으로 촉발된 홍콩 시위가 구의회 선거를 계기로 급속히 제도권 정치로 수렴되고 있다. 이른바 거리의 투사(鬪士)’들이 제도권 내로 대거 들어오게 되면서 홍콩 사태가 제2 라운드를 맞고 있다. 당국으로서는 선거 결과를 떠나서 아스팔트 위에서 충돌을 제도권으로 흡수하면서 거리의 정치를 줄일 수 있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시위대들도 제도권에 진입하면서 자신들의 요구를 제도화할 수 있는 합법적인 공간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선거는 18개 구()마다 조직되어 있는 구의회 대표를 뽑는 선거였다. 구의회는 기층에서 사실상 생활 정치의 현장이다. 정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민원을 제기하는 곳이 바로 구의회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아스팔트 민심이 대거 제도권으로 들어갔다는 점은 향후 투쟁이 제도권 틀 내에서 진행될 것임을 예고한다. 물론 여기에는 제도를 통한 대화와 타협, 책임과 의무가 수반된다는 점에서 일정한 행동 제약을 받게 된다. 선거 결과를 떠나 홍콩 당국으로서는 매우 긍정적인 결과이다.

 

그러나 선거결과만 놓고 보면 홍콩 당국과 베이징 당국 모두 실망감과 함께 당혹감을 감출 수 없는 사실상 대패’였다. <인민일보> 등 관영 언론의 여론 몰이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예상을 빗나갔다. 선거 결과에 대한 상세한 보도보다는 폭력을 끝내고 혼란을 제압하고,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지금 가장 긴박한 임무라고만 언급했다. 왕이 외교부장은 선거 결과가 어떻든 홍콩은 여전히 중국의 일부분이고, 홍콩을 혼란하게 하고 혹은 홍콩의 번영과 안정을 위해하는 어떠한 시도를 하는 사람도 성공할 수 없다는 입장만 표명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결과를 받아들이고 새로 구성되는 의회와 홍콩 정부는 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임을 천명했다.

 

이번 선거 결과는 민의가 반영된 결과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한다. 유불리에 따른 정치적 해석은 의미가 없다. 민심의 향배에 따라 아스팔트 민심은 대승했고 다른 측은 대패했기 때문이다. 상처 난 민심을 봉합하는 일은 당국의 몫으로 남았다. 해결 방안은 의외로 간단하다. 서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우선 베이징 당국은 폭력을 끝내고 혼란을 제압한다(止暴制乱)”는 말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홍콩 정세를 재평가하고 새로운 거버넌스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홍콩 당국도 홍콩인들의 불만과 원성을 담아낼 제도적인 노력을 당선자들과 함께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유의해야 한다.

 

먼저, 홍콩 민심이 주권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는 한 베이징 당국도 일국양제(一国两制)’ 원칙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 홍콩 시위대가 요구한 5대 요구 사항에 홍콩 독립 등 주권문제는 들어 있지 않다. 베이징 당국이 일국양제문제를 계속 거론할 경우 홍콩의 문제를 국제화된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베이징 당국의 원칙 문제 거론이 오히려 전선(戰線)을 넓히는 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다음으로, 이번 선거가 비록 기층 선거지만 내년에 있을 입법회 선거, 2021년에 있을 행정장관 직선제 선거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홍콩 당국과 베이징 당국이 아스팔트 정치가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홍콩 사회의 혼란은 시위대나 당국 모두에게 부담일 뿐이다.

 

다음으로, 홍콩 사회에 만연해 있는 당국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수렴할 수 있는 제도 장치를 마련하고 이를 생활 정치에서 구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환구시보>의 반응처럼 선거 결과를 외부 세력의 개입에서 찾는다면 당분간 홍콩과 중국 관계의 새로운 길을 찾기는 쉽지 않다. 선거 결과에는 홍콩 국내 요인과 국제 요인이 모두 영향을 미쳤다. 홍콩 주민의 입장에서 국내외 요소를 면밀히 분석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각 세력 간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주권 문제에 관한 한 법적, 제도적으로 홍콩은 중국의 특별행정구이다. 이번 시위에서 주권 문제를 직접 건드리는 홍콩 독립이 나오지 않은 이유이다.

 

홍콩은 150여 년 동안 자본주의를 경험했고, 가치관이나 사유체계도 매우 서방적이다. 중국은 사회주의를 경험했고, 가치관이나 사유체계 역시 매우 사회주의적이다. 150여 년 간의 간극은 20여 년 짧은 기간에 매울 수 없다. 시간을 가지고 구동화이(求同和異)의 노력이 필요하다. 중국은 홍콩을 넘겨받으면서 고도 자치(高度自治)’, ‘홍콩인의 홍콩 통치(香人治香)’를 약속했다. 베이징 당국은 자치를 허용한 50년 동안 적어도 이 약속이 잘 지켜지고 있다는 믿음을 홍콩인들에게 줘야 한다. 이것이 바로 아스팔트 정치에서 제도권 정치로 방향을 튼 선거 결과가 말하고자 하는 외침이다.


양갑용 _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s://www.weibo.com/chan523777?is_all=1#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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