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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갯벌로에서
8월호
「삼팔선(三八線)」 유감(遺憾) _ 안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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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팔선은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유감스럽다. 어쨌든 그것으로 시작된 분단이 우리를 질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나에게 유감스럽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유감을 말하는 것은 생뚱맞기까지 하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려는 삼팔선은 그 삼팔선이 아니라 중국에서 제작되어 올해 방영된 드라마이다. 그리고 유감은 말 그대로의 유감과 중국식의 유감, 즉 느낌 또는 감상의 이중적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드라마 삼팔선에 대한 유감과 소감이다. 국내 신문에도 중국에서 “6.25 드라마는 안 된다는 금기를 깨고 방영했다고 소개한 바로 그 드라마이다.

 

그림 1  중국드라마 「삼팔선(三八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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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역사가 아니다. 그러나 드라마는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대중들의 인식을 반영하는 동시에 대중의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 점에서 삼팔선은 중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한국전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당의 선전부가 미디어를 관리하는 중국에서는 중국 당국에서 중국 사람들이 한국전쟁에 대하여 생각하도록 원하는 방향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삼팔선은 중국의 참전 즉, ‘항미원조전쟁이 정의의 전쟁이라는 중국의 입장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것은 미군의 폭격으로 인한 아버지와 동생의 죽음에 대한 복수가 주인공 리창순(李長順)의 참전 지원 동기인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리고 중국군은 정의의 군대이다. 자신들은 굶을지언정 조선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고, 조선 사람들의 양식 한 톨 약탈하지 않는 정의의 군대이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미군 포로들에게 자신들이 먹는 음식보다도 더 좋은 음식을 제공한다. 물론 그들은 그것조차도 사람이 먹는 것이 아닌 돼지죽이라고 여기지만.

 

이에 비하여 미군은 불의의 군대이다. 심지어 중국군의 포로가 되어서 조차 자신들과 한편인 흑인에게는 인종차별을 한다. 미군의 불의는 한국군과 한국 민중에 대한 태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중국군과 처음 조우한 한국군 장교 박홍철은 중국군의 참전임을 알아차리고 후퇴를 명한다. 그러나 미군은 박홍철을 명령불복종으로 처벌하려고 한다. 미군이 중국군에 포위된 이후에는 포위망을 벗어나기 위해 박홍철에게 중공군을 막도록 하여 한국군을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한다. 그래도 그것은 있을 수 있는 작전상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미군의 피난민에 대한 행위는 불의를 넘어서 비인도적이기까지 하다. 미군이 후퇴할 때까지 이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피난민을 막을 뿐만 아니라 미군의 통제선을 넘어오는 피난민에게 총격을 가한다. 심지어 미군 초소에서는 한국군 차량의 후퇴를 막고 그것을 돌파한 차량을 폭격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삼팔선에서는 미군에게 한국군과 한국인은 그저 미군을 위한 소모품일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박홍철이 지휘관이자 군인으로서 뛰어난 능력과 올바른 원칙의 담지자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본 한국전쟁에 대한 1960년대나 1970년대 영화는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 보았던 반공영화의 판박이였다. 우리가 보았던 영화에서 중공군괴뢰군은 하나같이 잔혹하고 멍청하게 그려졌다면, 잔혹함과 멍청함의 역할만을 반대로 바꾼 것이 바로 그 시절 중국 영화였다.

 

그러한 멍청이들과 싸워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면 우리 군대 또한 얼마나 문제가 많았을까 라는 합리적 의심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했던 것이 그 시절의 그들과 우리였다. 삼팔선에서 한국군 개인은 요즘 우리 영화에서의 중국군이나 북한군과 비슷하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군 개인은 뛰어나지만 한국군대는 미군의 예속품에 불과하다. 한국 군대에 대한 그러한 인식은 지금도 유지되는 것처럼 보인다. 사드 배치에 대하여 중국이 강한 반발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국의 불가피한 처지를 이해하는 듯한 목소리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미국에 예속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이해받는 것이 다행스러운 것인지 슬퍼해야 하는 것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 우리의 처지가 한심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삼팔선은 우리에게는 아주 불편하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중국인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다. 삼팔선이 여기에서 끝났다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편치 않은 차이만을 보여줄 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삼팔선의 마지막 회인 38회에서는 의미심장한 반전이 있다. 중국은 중국군의 참전을 항미원조전쟁이라고 부르고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38회는 결코 승리를 말하지 않는다. 묵묵히 싸웠던 전쟁의 영웅들은 누구도 돌아가지 못한다. 항일전과 내전을 겪었던 연대장도, 중대정치위원도 모두 포화 속에 쓰러진다. 정전 소식에 기쁨을 누리던 이창순도 정전 직전의 마지막 포화 속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긴 세월을 뛰어 넘어 20143월 한국에서 발굴된 중국군 유해가 선양(瀋陽)으로 송환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오랜 세월 이국의 이름 모를 산하에서 잠들다 겨우 몇 조각의 백골로 마침내 고향으로 귀향한 것이다.

 

정의의 전쟁이라고 했지만 결국 전쟁은 모두가 희생될 수밖에 없는 부조리다. 한국과 중국은 전쟁에 대하여 서로 다른 기억과 견해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협력의 기제를 만들어 다시는 그러한 비극을 반복하지 말자는 것이다.

 

어떤 전쟁도 고통과 희생이 없을 수 없으며, 남을 탓한다고 해서 아픔과 슬픔이 덜어지지 않는다. 전쟁을 피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가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전 63주년 즈음인 지금, 3년의 전쟁이 남긴 오래고도 거대한 고통을 잊고 다시금 긴장과 갈등을 만들어가는 어리석음을 범하고나 있지 않은가 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안치영 _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 중국학술원 중국자료센터장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binzhou.dzwww.com/yvle/201606/t20160615_1446523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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