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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갯벌로에서
1월호
개혁개방 40년 중국은 어디로 가는가?: '영명한 영수(英明的領袖)'와 '최고 존엄(定于一尊)'의 재출현에 붙여 _ 안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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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고 외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라고 했다. 의심 받을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작년 중국공산당 19차 당 대회 이후 중국이 가는 길이 하 수상하여 하는 말이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그야말로 상전벽해의 변화를 겪었다. 경제적으로 그러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그러했다. 권력 승계와 관련한 제도화가 진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민주화도 진전이 있었다.

 

그런데 19차 당 대회 이후 중국에서 들려오는 귀를 의심할 소식들은, 한편으로는 중국의 미래에 대하여 걱정스럽게 느끼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에 대한 나의 지식의 얕음을 반성하게 한다.

 

19차 당 대회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당의 최고 규정인 당장(黨章)당과 정부와 군과 민간조직과 학교에서, 그리고 동서남북과 중앙 등 모든 곳에서, 당이 모든 것을 영도한다(黨政軍民學, 東西南北中 黨是領導一切的)”라는 표현이 포함된 것이었다. 중국은 공산당이 건국하고 지도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공산당이 모든 것을 영도한다는 것은 별로 특이한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실과 그러한 표현의 등장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당장의 그러한 표현의 기원은 오래된 것이지만, 그러한 표현이 완전한 형태로 등장한 것은 문화대혁명 시기가 처음이었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문혁에 대한 완전한 부정을 기초로 이루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문혁시기의 표현을 완전하게 원용하는 것은 문혁에 대한 복권이나 재평가 또는 개혁개방을 통하여 이루어진 변화의 역전을 의미할 수 있다.

 

문혁시기 표현의 재출현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것이 우발적이고 단일한 사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명한 영수의 등장이 그것이다. 작년 19차 당 대회가 개최되고 있을 때 홍콩 신문에서 베이징시 서기 차이치(蔡奇)가 시진핑을 영명한 영수로 호칭하였다고 보도했다. 믿을 수 없어 인민일보를 검색하였더니 사실이었다. “영명한 영수는 개인숭배를 상징하는 표현일 뿐만 아니라 마오쩌둥의 후계자 화궈펑(華國鋒)이 실각한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영명한 영수라는 이름으로 개인숭배를 하였다는 것이었다. 세태가 변하기 마련이고 어제 틀렸던 것이 오늘은 맞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개인숭배에 대한 반대에서 출발한 개혁개방이 개인숭배의 상징을 다시 불러온다면 그것을 희극이라고 해야 할지 비극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다행인지 반발로 인한 것인지 영명한 영수는 더 이상 유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최고지도자의 절대적 권위에 대한 보다 은유적인 표현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정우일존(定于一尊)”이 그것이다. 이 낯선 표현은 사마천의 사기진시황 본기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황제의 절대적 권위를 나타내는 것이다. 절대적 권위를 가리키는 표현이지만 최종적 결정권을 갖는 권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원용된다. 권력의 권위를 그렇게 지칭하는 것을 굳이 우리식으로 번역하자면 북한에서 사용하는 최고 존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시진핑은 201873-4일간 개최된 중앙조직공작회의에서 당 중앙은 대뇌이자 중추이며, 당 중앙은 반드시 최고 존엄과 최종 결정권의 권위를 가져야 한다(黨中央是大腦和中樞, 黨中央必须有定于一尊, 一錘定音的權威)”고 했다. 당 중앙이라는 영도집단이 황제와 같은 절대적 권위를 가진다는 은유일까? 진시황이 상징하는 절대적 권위를 갖는 황제와 같은 권위를 갖는 개인을 당 중앙의 이름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일까?

 

전자라면 봉건시대의 절대적 황제권을 상징하는 표현을 오해를 무릅쓰고 사용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사실 시진핑의 연설은 당중앙을 수령으로 바꾸면 훨씬 잘 이해되고 잘 읽힌다. 그렇게 바꾸면 시진핑의 발언은 수령이 뇌수이고 중추이며 최고 존엄이라는 북한의 수령론과 완전히 일치한다. 19차 당 대회 이후 강조하는 당 건설의 핵심은 당의 영도와 지도체제의 건설이다. 그리고 그것이 수령론과 닮은 담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19차 당 대회 이후 첫 번째 정치국회의의 결정이 당 중앙 집중 통일 영도를 강화하고 수호하는데 관한 약간의 규정이다. 중공에서 말하는 당의 영도의 최고원칙은 당 중앙의 집중통일 영도이며, 그것의 관건은 시진핑을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 집중 통일 영도를 자각적으로 견지하고 수호하는 것이다. 13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의 개헌을 통한 국가주석 임기제한의 폐지가 지도체제의 완성을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 결국 최고 존엄의 제도적 보장을 위한 것이라고 읽히는 것은 기우일까?

 

국가주석 임기제한 폐지는 그렇게 멀지 않은 과거에 우리에게 있었던 ‘3선 개헌과 닮아 있다. 최근 왕치산은 지도자들에 대한 두 가지 죽임을 이야기 했다. (자신에 대한) 나쁜 말은 때려죽이기(棒殺)”인데 그것은 별 일 아니지만, 아첨하는 좋은 말은 띄워 죽이기(捧殺)”인데 이를 걱정한다고 했다. 그것이 최고 존엄을 말하는 최고지도자에 대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중국 외부의 언론에서 시진핑 황제 등극이라고 조롱하는 상황에서 영명한 영수최고 존엄(定于一尊)”을 공공연하게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는 것이요 외밭에서 신을 고쳐 신는 것이다. 개혁개방 40년 더욱 부유하고 강대해지고 있는 중국이 40년 전 스스로 부정했던 낡은 길로 되돌아가지나 않는지 하는 의심이 기우였으면 한다.

 

안치영 _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 중국학술원 중국자료센터장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으며 사진을 일부 변형하였음.

http://ca.ntdtv.com/xtr/gb/2017/07/31/a1335767.html

http://culture.ifeng.com/8/detail_2013_11/30/31690618_0.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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