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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11월호
아프리카에서 보는 “중국”이라는 키워드와“소프트 파워” _ 조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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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의 날행사

  

2022421, 나미비아 대학 빈트후크 (Windhoek) 캠퍼스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21회 국제 중문의 날(guoji zhongwenri)”. 행사의 주최는 나미비아 중국 대사관과 공자학원 (Confucius Institute)이 맡았다. 행사는 중국어 말하기 대회가 중심이었지만, 이날 캠퍼스 곳곳에는 중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여러 개의 간이 테이블이 설치되었다. 붓글씨 쓰기, 중국 음식 맛보기, 중국 전통 의학 체험하기 (침술, 맥박 재기) 등등 제법 다양한 부스들이 지나가는 나미비아대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중국 대사관은 이 중문의 날 행사에 대학 내외의 여러 인사들을 초청했다. 대학의 부총장급 인사들과 여러 사회 단체의 장들, 그리고 유엔사무소에서 나온 직원들까지 다양한 분야의 VIP들이 이 날의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도착했다. 이 밖에도 관중석에는 말끔히 교복을 차려입은 일단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이 학생들은 시내에 있는 체어맨 마오쩌둥 학교 (Chairman Mao Zedong School)에서 이 행사를 위해 특별히 (동원되어) 온 학생들이었다. 이 학교는 중국 대사관이 처음부터 대지를 구입하고 건물을 지어 완성한 후 나미비아 정부에 기부한 학교다. 체어맨 마오쩌둥 학교는 현재 나미비아 공립학교로 운영되고 있지만, 중국 정부의 지속적인 후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기관인 만큼, 이 학교의 학생들은 중국 대사관의 대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한편, 무대의 한 쪽에는 대회 참가자들에게 수여될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중국 유명 기업 브랜드의 텔레비전부터 스마트폰까지 크기도 종류도 다양했다. 예상한 대로 이날의 키워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중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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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나미비아 대학에서 열린 국제 중문의 날행사에 

초청되어 앉아 있는 체어맨 마오쩌둥 학교의 학생들. (2022년 4월 21일)



샤오린 우슈 (shaolin wushu)의 힘1)

 

중국어 말하기가 중심이 된 행사였음에도, 관중들로부터 가장 큰 호응을 받은 순서는 나미비아 아이들의 샤오린 우슈 (소림 무술) 공연이었다. 중국 대사관은 필자가 현지 조사를 하며 몸담고 있는 타이완계 불교 자선 단체의 나미비아 아이들을 이 행사에 초대했다. 대사관이 타이완계 단체의 아이들을 초대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 단체의 아이들은 중국어로 노래하고 수준급의 우슈 공연을 보여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나미비아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10~13세 정도의 현지 아이들이 유창한 중국어로 노래하며 소림사 무술 시범을 보여주는 것만큼 효과적인 중국 알리기가 있을까? 그래서 그런지 중국 대사관은 대외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 아이들을 특별 공연 그룹으로 초대해왔고, 아이들의 공연을 관람한 관중들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의 감격을 표현하곤 했다. 나미비아 아이들은 중국이 행하는 일종의 우슈 외교혹은 쿵푸 외교” (Kung fu Diplomacy)2) 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이 단체에서 현지 조사를 하면서 아이들의 우슈 연습과 공연을 수도 없이 보았다. 이쯤 되면 익숙해지고 무디어질 법도 한 데 그렇지 않다. 매번 아이들이 우슈 공연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복잡한 감정과 생각이 치고 올라온다. 아이들에게 우슈를 가르치는 코치는 중국에서 초빙한 소림 무술 전문가이다. 우슈 훈련은 길고 혹독하다. 어린 나이에 특별 훈련반에 들어간 아이들은 수년에 걸쳐 방과 후와 주말로 이어지는 고된 훈련을 버텨내야 소수 정예의 공연 우슈반에 들어갈 수 있다. 우슈 공연을 보면서 내가 느끼는 복잡한 감정의 첫 갈래는 어린 아이들이 견뎌낸 고된 훈련에 대한 짠함에 있다. 하지만 일단 이 감정선을 조금 누르고 나면 산발적으로 떠오르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이 공연에 의해 구현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더 근본적 차원에서, 관중을 순식간에 매료시킬 만큼의 중국어와 중국 무술 실력을 갖춘 현지 아이들이 항시 동원 대기중 이라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 중국의 소프트 파워가 나미비아 사회에 작동하고 있음을 대변해 주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이국적 스포츠에 대한 나미비아 대중들의 환호와 열정일까. 이 아이들이 속해 있는 단체는 중국 대사관이 직접 투자하지도 않았고, 운영에 관여하지도 못하는 독립적 타이완 자선 단체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보여주는 공연은 중국 대사관이 [중국이] 오랫동안 공들여 오고 있는 중화 문화의 가치를 아프리카의 나라들에 소개하고, 현지로부터 중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는 목적에 무엇보다 잘 부합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타이완이든, 자선 단체이든, 중국 대사관이든, 공자 학원이든, 행사의 주체나 각 주체의 미묘하게 다른 정치적 입장은 현지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다지 분별력을 가지지 못하는 것 같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나미비아의 상황에서는 그렇다. 중요한 것은 행사를 통해 어떠한 문화적 가치가 구현되는지, 그 문화적 가치가 차이나라는 키워드로 수렴되는지, 수렴이 된다면 얼마나 큰 문화적 충격이나 신선함을 주는 지가 더 관건이다. 나미비아 아이들의 샤오린 우슈 공연은 중화 문화의 충격과 신선함을 한꺼번에 제공하는 막강한 도구가 되고 있다.

 

아이들의 우슈 공연은 비단 대사관이 주최하는 공식 행사에서만 환영을 받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실력을 본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이 단체가 속해 있는 지역의 학교들은 자신의 교내 행사에 우슈반 아이들을 초대하기 시작했다. 이 타이완 자선 단체는 그동안 지역 사회 기반이 미미한 데다가 중국이 가지는 부정적 이미지3)까지 덮어 쓴 채 외로운 운영을 하고 있던 차였다. 우슈 공연은 이런 상황에서 이 단체가 지역에서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이미지 개선을 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주고 있다. 결국 이 단체도 중국 대사관처럼 아이들을 통한 우슈 외교를 적극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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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20236-7월에 이 단체의 우슈 공연반 아이들은 

동남아시아 3개국을 순방하며 아홉 차례의 공연을 했다

이 사진은 싱가폴에서의 공연이다. (2023년 7월 22일)



소프트 파워

 

나미비아에서 중국이라는 키워드는 포괄적으로 적용된다. 이 포괄성을 표현하기 위해 나는 때로 중국이라는 단어에 따옴표를 붙여 쓰거나, “차이나라 쓰거나, 혹은 중화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이런 복잡한 명명법을 고집하는 이유는 아프리카라는 환경에서 중국을 말하면서도 중국이 한 국가를 지칭하는 단위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사회 문화적 영향력을 논할 때, 즉 중국이 이끄는 소프트 파워의 존재와 파급을 평가하려 할 때, 중국은 자주 중국 이상이 됨을 인지해야 한다. 그래서 중국은 날카롭게 선을 가르는 개념이기보다 무딘 범주로 이해해야 하는 가치일 때가 많다. 이런 의미에서 중화(中華)나 화인 (華人)이 중국이나 중국인 보다 더 적절한 개념일 수 있다. 나미비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 대사관은 가능한 한 확장된 범위로 중국의 문화적 가치를 흡수 통합하여 자신의 관리하에 두려고 한다. 타이완 단체는 중국 정부가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는 이상 그 자체로 중국 단체가 되는 것이고, 그 단체 아이들의 수시 동원이 가능한 이유도 중국 대사관이 평소에 이 단체를 직속 산하 단체처럼 여기고 크고 작은 후원을 지속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단체나 대사관 모두 직속 산하 관계를 공식적으로 부인하겠지만 말이다.) 체어맨 마오쩌둥 학교의 설립과 기부, 타이완 자선 단체에 대한 후원, 그 밖의 다양한 나미비아의 사회 문화 분야에서 중국 대사관이나 공자학원이 맡고 있는 역할은 가능한 한 포괄적인 중화 문화의 선전과 확장이다.

 

다시 말해, 중국의 대 아프리카 투자는 각종 지표와 투자금액으로 보여지는 직접적 경제분야의 투자 뿐 아니라, 지표로는 잘 보여지지 않는, 혹은 지표 자체가 공개되지 않거나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는, 비경제적 분야에서의 투자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음을 주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비경제적 분야에서의 중국 정부가 (대사관이) 쏟는 노력이 소위 말하는 중국의 소프트 파워의 부상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이 두 분야의 투자가 서로 관련성 없이 따로 이루어진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소프트 파워는 안정적인 직접 투자의 인프라 속에서 지속적이고 극대화된 효과를 보여준다. 중국의 직접 투자 또한 강력한 소프트 파워가 기반이 될 때 탄력을 받는다. 상상해 보라. 중국 문화를 잘 이해하고 중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나미비아인들이 늘어날수록 중국-나미비아 경제 관계는 사회 저변에서부터 공고해질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동반하든지 간에 말이다.

 

중국이 국가적 전략으로 아프리카의 경제에 대규모 투자를 해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투자자의 의도가 확실하다고 해도 결과는 확실성을 보장할 수 없듯이 중국의 대 아프리카 투자도 그러한 것 같다. 특히 비경제적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투자는 그 결과를 평가하기가 모호하고 심지어 거의 불가능하기까지 하다. 현지 조사를 깊게 하면 할수록 알게 되는 사실들은 인풋과 아웃풋은 한 선으로 연결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하지만 결과에 대한 정량적 평가가 불가능하다고 해서 결과가 없다고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소프트 파워를 구축하는 전략은 그래서 물고기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웅덩이에 그물을 가능한 한 넓게 펼쳐 놓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다. 결국 현지에서 분석의 감각을 날카롭게 세우고, 온갖 집중력을 동원해서 마주하게 되는 결과물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무디고 무딘 중국이라는 키워드였다. 중국은 곧 중화가 되고, 중화는 동아시아가 되고, 동아시아는 아시아가 된다. 이렇게 중국은 훌쩍 중국을 뛰어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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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체어맨 마오쩌둥 학교 교문 (2023)



 


조영진 _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교 박사후연구원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1) 샤오린 우슈 (shaolin wushu)소림 무술의 중국어 발음으로 흔히 쿵푸” (gongfu, Kung fu) 라고도 한다. 소림사 (少林寺)를 통해 전승된 중국 전통 무술을 소림 무술이라 하며, 지금도 중국 하남성 소림사 근처에는 사립 무술 학교들이 많다. 타이완 자선 단체에서 초빙해 오는 무술 코치는 이런 사립 무술 학교에서 소림사 무술을 전수 받은 전문가다.

2) 스포츠를 이용해 외교적 관계를 진전 시키는 전략은 예전부터 있었다. 냉전시대 중미-미중 관계가 탁구 외교” (Ping-Pong Diplomacy) 로부터 개선되어 왔다는 것은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쿵푸 외교 원래 중국이 쿵푸 실력을 가진 걸출한 배우들  (예를 들어 이소룡이나 성룡) 인기를 이용해 중국 문화의 이미지를 고양시키는 것을 일컬었다. 하지만 현재 나미비아에서 있는 쿵푸 외교 몇몇의 중국계 무비 스타의 명성과 인기에 편승하여 전개된 기존의 방식과 달리, 아프리카 현지 아이들에 의해 구현되고 있는 다른 차원의 외교 전략이다.  

3) 나미비아 사회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갈수록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도 확장되어 가는 것이 사실이다. 부정적 이미지란 주로 중국인의 습관과 태도에 관련된 것으로 소문과 실제가 혼합된 채 떠돈다.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모두 필자가 직접 제공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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