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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갯벌로에서
4월호
시진핑을 통해 덩샤오핑과 중국을 다시 보기 _ 조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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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20차 당대회가 끝나면서 시진핑 집권 이후에 중국이 변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최고지도자의 임기를 5년씩 두 차례 10년으로 제한한다는 개혁·개방 이후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합의가 깨졌다. 정치국 위원들도 모두 시진핑의 사람들로 채워졌다. 이에 따라 집단지도 체제의 소멸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인지배 체제가 본격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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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시진핑 국가주석


권력 집중의 중요한 단계가 일단락되었기 때문에 이번 3월 양회는 별다른 내용이 없었고, 역설적으로 매우 안정적이고 평화로웠다. 시진핑이 만장일치로 중화인민공화국 주석과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취임했다. 새롭게 총리로 취임한 리창은 기자회견에서 향후 중국의 중대한 문제를 알고 싶다면 20차 당대회 보고를 참고하라고 조언하며, 정부의 임무는 공산당 중앙의 결정을 잘 실천하고 20차 당대회의 위대한 청사진을 인민과 함께 현실로 바꾸는 것이라는 발언을 통해 총리와 국무원이 시진핑과 공산당 앞에서 더욱 더 허약해졌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공산당이 영도하는 중국에서도 양회 기자회견에서 총리가 이토록 공산당을 많이 언급한 적은 없었다.

 

이번 양회에서 개정된 입법법은 변화된 추세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보이지만, 재차 살펴볼 만하다. 본래 입법법에서 입법이 사회주의와 공산당 영도를 따른다는 점을 명시했었지만, 입법이 헌법의 기본원칙을 준수한다는 보편적 입법의 원칙이 3조에 함께 묶여 먼저 서술되어 있었다. 새로운 입법법3조에 공산당의 영도를 견지한다는 점을 먼저 서술하고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도 지도 이념에 추가시켰다. 다음 조문에는 입법이 경제건설, 개혁·개방,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등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을 서술하고 있다. 입법이 헌법에 구속된다는 보편적 원칙은 3조에서 내려와 5조에 쓰였다. 본래 중국의 법치(法治)가 법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법의 지배(rule of law)이기보다는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라는 평가였지만, 이번 개정으로 보편적 법치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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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2. 덩샤오핑


시진핑이 중국을 바꾼 것일까? 더 노골적으로 시진핑이 중국을 망친 것일까? 흥미롭게도 최근 서구 학계에서는 이에 대한 반론이 만만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시진핑 집권 이후에 중국이 더 나아졌다는 평가가 아니다. 중국은 원래 그랬다는 것이다. 최근의 한 박사논문은 덩샤오핑이 커다란 변화를 중국에 가져온 것 같지만,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개혁·개방 이후에 중국의 정치 엘리트들이 제때 회의를 열어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개혁·개방 초기에 덩샤오핑과 천윈이 적절히 대립하면서 중국을 이끌었다는 관점은 신화일 뿐이며, 덩샤오핑은 다른 원로들의 의견을 별로 듣고 싶어하지도 않았고 마오쩌둥보다는 덜 하더라도 혼자 거의 다 결정했다고 본다. 일례로 천윈이 자신의 견해를 제출하기 위해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열려고 해도 덩샤오핑은 좀처럼 응하지 않았다. 당시 총서기 후야오방에게 덩샤오핑은 "합의가 안 되면, 회의를 열지 말아라. 1년에 한번씩 천윈의 집에 간다."라고 했다. 요컨대 중국은 예나 지금이나 일인지배가 당연한 원리로 작동하는 레닌주의 체제라는 것이다. 심지어 혹자는 전통적인 황제 시스템이 레닌주의 원리와 상통하기 때문에 중국에서 일인지배가 발현되기 쉽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때 중국에 대한 봉쇄정책에 반대하고 적극적인 관여(engagement)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샴보(David Shambaugh)도 통제가 강해졌다 약해졌다 했을 뿐이지 중국이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고 본다. 그는 후진타오 후반기부터 통제가 다시 강해졌다고 분석하면서 중국에 대한 전체주의라는 호칭을 크게 꺼려하지 않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장쩌민이 권력을 다 놓기를 주저해 어쩔 수 없이 총서기의 권한이 약했던 후진타오 시기(2002~2012)가 비정상적인 시기였다. 집단지도 체제가 가장 잘 작동하던 이 특이한 사례를 중국이 개혁·개방을 통해 성취한 업적으로 착각했다는 것이다.

 

시진핑의 중국을 넘어서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 또는 현대 중국 전체에 대한 이러한 재평가를 새로운 사료를 발굴하고 다시 해석한 학문적 성취로서 담담히 받아들여야만 하는지, 아니면 현재의 평가와 감정이 과거에 투영된 주관적 왜곡을 의심해야 하는지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할지 모른다. 분명한 점은 현재의 중국이 학문의 영역에서도 과거의 중국과 중국 전체에 대한 인식과 평가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조형진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https://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6461

사진 2. https://jmagazine.joins.com/monthly/view/335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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