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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2월호
밥과 두 가지 반찬(兩餸飯): 생존과 미지의 연대 사이에서 _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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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색 스티로폼 용기에 따뜻한 흰쌀밥과 가정식 반찬 두 가지를 담은 도시락, 광동어로 렁쏭판(兩餸飯)’이라고 불리는 저렴하면서도 든든한 서민들의 한 끼 식사가 있다. 4~6천 원(HK$25~40) 정도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이 도시락은 생활물가가 높기로 유명한 홍콩에서 서민들에게 합리적인 선택지를 제공한다. 6,100(HK$39)인 홍콩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 가격을 생각하면 그보다 적은 금액으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놀라운 선택지다. 현지조사차 홍콩에 있을 때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던 나도 간편하면서도 포만감 있는 이 도시락을 종종 사 먹었다. 내가 연구하던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주민들과 함께하는 활동이 끝나면 도시락을 주문해 먹고는 했다. 주문을 받는 활동가가 종이 한 장을 들고 주민들이 기호에 따라 고른 반찬의 복잡하고 긴 이름들을 받아적던 기억이 난다. 포장을 전문으로 하는 도시락 가게에서는 부드러운 두부와 돼지고기, 브로콜리와 당근, 가지와 다진 돼지고기, 간장양념을 한 닭 날개, 각종 양념을 해서 찐 생선 등 다양한 종류의 요리가 반찬으로 준비되었는데, 주민들은 보통 고기와 채소 반찬 두 종류를 선택해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려고 했다. 밥과 두 가지 반찬의 도시락은 서민들이 비교적 저렴하게 집밥의 맛과 영양분을 함께 챙길 수 있는 식사로 손색이 없다는 점에서 이들의 생존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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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현지조사를 위해 홍콩에 체류했던 2017

홍콩중문대학교 구내식당에서 먹은 밥과 두 가지 반찬’. 

당시 종종 구내식당을 찾아 이 저렴한 식사로 끼니를 해결하고는 했다.

포장을 하면 이런 형태의 식사를 주로 스티로폼 도시락에 담아준다.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큰 경제적 타격을 입은 홍콩에서 이 도시락의 중요성이 새롭게 부상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잠잠하다 코로나19 확산이 다시 거세졌던 2022년 초반, 정부가 고강도의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을 시행하면서 식당에서의 식사가 어렵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포장하거나 배달할 수밖에 없었다. 미식의 천국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맛있고 다양한 음식이 가득한 홍콩에서 흰쌀밥과 두 가지 반찬으로만 구성된 평범한 서민들의 도시락이 크게 인기를 끌기 시작한 건 사회적 거리 두기의 영향이 컸다. 악화된 경제적 상황도 도시락의 유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경기가 침체되고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어려워지면서 임금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도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2011년에 도입한 이래로 2년마다 논의해 결정했던 최저임금이 2019년부터 20234월까지 처음으로 4년 동안 5,900(HK$37.5)으로 동결되면서 불안정한 시급 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처한 어려움은 특히 더욱 컸을 것이다. 최소한의 복지를 강조하는 홍콩에서 보조금과 같은 일시적인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장기적인 코로나19 국면에서 저소득층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20235월부터는 그나마 약 6,300(HK$40)으로 최저임금이 인상될 예정이지만, 물가상승률을 생각하면 노동자들이 저소득 상황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코로나19는 가난한 자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었고, 홍콩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매일 식사를 잘 챙겨 먹어야 노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 식비를 줄이는 것은 필수적인 전략적 선택이다. 이 때문에 홍콩에서 몇몇 전문가들은 밥과 두 가지 반찬으로 구성된 이 도시락의 유행이 홍콩의 침체된 경제 상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지표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도 사업가적인 기질이 특출난 사람들은 빠르게 시장의 흐름을 읽고 도시락 가게를 차렸으며, 꽤 괜찮은 수입을 올려 코로나 특수를 누렸다. 기존의 식당들이 이 도시락을 판매하는 가게로 전환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일반 음식점이라면 그 전환이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홍콩이 코로나19 관련 각종 규제를 풀면서 이 유행이 잠잠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1)제로 코로나를 고수했던 중국의 정책적 기조에 따라 홍콩은 오랜 시간 엄격한 방역정책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2022년 말 중국의 방역정책에 항의하는 백지시위가 거세지고, 이후 중국이 위드 코로나로 정책 방향을 수정하면서 홍콩도 올 초부터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락 가게의 인기는 아직 식지 않은 것 같다. 도시락 가게가 홍콩섬의 센트럴이나 애드미럴티와 같은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의 공간에도 침투한 것이다.2) 중고소득 노동자들이 저렴한 도시락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한 건 심각한 경기침체를 의미하는가? 아니면 유행에 따른 소비의 급증이라고 볼 수 있을까? 빈곤은 상대적으로 측정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이들이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경험한 경제적 어려움은 비교적 저렴한 식사를 소비하는 새로운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모두에게 중대한 위험이 되는 감염병 앞에서 생존은 저소득층만의 화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생존의 이슈를 넘어서 조금 다르게 도시락의 유행을 해석할 수도 있다. 홍콩 주재 미국 총영사가 이 도시락을 구매하고 페이스북에 사진과 글을 게시하면서 홍콩식 음식에 관한 의미가 생존 이상의 힘을 드러낸 것이다.3) 홍콩섬의 세련된 세계음식이 아니라 로컬이 즐겨 먹는 광동식 음식을 소비하는 총영사의 모습은 이 도시락을 더욱더 홍콩적인 것으로 각인시키는 힘이 있었다. 홍콩적인, 홍콩스러운 것은 홍콩에서 강조되어온 로컬의 지향과 맞닿아 있다. 여기에서 로컬은 2014년 우산운동 이후 대두된 우익적 성향의 로컬리즘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소규모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홍콩의 유산과 자치적인 힘을 지키려 하는 또 다른 지향을 동시에 가진다.4) 가난한 노동자 계급이나 학생이 주로 먹었던 이 음식의 의미를 공유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상호 연결되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202012월에 만들어진 페이스북 그룹 홍콩렁쏭판관주조(香港兩餸飯關注組)는 그동안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특정한 이슈에 관해 관심을 표현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조직한 관주조(關注組)’라는 모임의 형태에 음식을 결합한 것이다. 홍콩렁쏭판관주조는 10만 명에 가까운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한 사회복지사가 조직한 이 페이스북 그룹은 음식을 매개로 사람들은 연결하고 기층민의 관심을 결집시키는 힘을 가진다. 사람들은 도시락 가게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식당의 맛과 품질을 엄격하게 평가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도시락뿐만 아니라 시우마이(燒賣)라는 딤섬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도 했다. 시우마이는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음식으로, 노란색 밀가루 피로 돼지고기 완자를 감싼 주머니 모양의 딤섬이다. 딤섬 식당에서 판매하는 진짜 돼지고기로 만든 시우마이 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 어육으로 만들어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시우마이도 홍콩인들에게 간식으로 인기가 높다. 홍콩시우마이관주조(香港燒賣關注組)의 페이스북 그룹은 15만 명의 팔로워를 가질 정도로 규모가 크다. 흥미롭게도, 페이스북 그룹의 정보에는 이들이 노동조합과 사회서비스로 분류되어 있으며 시우마이의 질과 가격 인상에 주목하는 그룹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는 음식을 통해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이러한 결집의 시도는 어떠한 힘을 가지는가? 시민사회운동이 침체기에 접어든 홍콩에서 사회복지사가 구성한 홍콩렁쏭판관주조와 노동조합, 사회서비스로 스스로를 분류하는 홍콩시우마이관주조가 조직하는 연결을 어떤 연대라고 명명할 수 있을까? 이로써 나타나는 시민 조직화의 효과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다만, 경제적 효율성을 위한 개인의 전략적 선택이었던 렁쏭판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익명의 타자, 나아가 식별할 수 있는 타자와 함께 소비하는 대상이 되면서 공유하는 어떤 감각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 감각은 현재로서는 쉬이 정의하기 어려운 미지의 연대이지만 곧 도래할지도 모르는 어떤 방향의 출발점일 수도 있다.

 


지금 여기홍콩 6


김주영 _ 전북대 동남아연구소 전임연구원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참고자료

1) Selina Cheng, “‘Rice with 2 sides: How Covid-19 dine-in bans helped a Hong Kong working class staple gain popularity,online and offline’”, Hong Kong Free Press, 2022227.

2) Luisa Tam, “Is Hong Kong’s ‘2-dish-rice’ phenomenon a dark sign that the city is returning to widespread poverty?”, South China Morning Post. 202317.

3) The Standard, “(Central Station) Tasty and affordable, ‘2-Dish Rice’ praised by US Consul General.” 2022111.

4) 장정아, 2021, “홍콩 로컬리티: 지역 커뮤니티에 기반한 저항성의 모색”, 중앙사론54: 457-512.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필자 본인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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