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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관행 톡톡
12월호
‘나’라는 나무를 가꾸는 방법: 「나무 심는 곽탁타의 전기(種樹郭橐駝傳)」 _ 윤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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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당나라 문장가 유종원(柳宗元, 773~819)의 문장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종수곽탁타전(種樹郭橐駝傳)이다. 제목은 나무 심는 곽탁타의 전기라는 뜻이다. 주인공 곽탁타는 낙타처럼 등이 굽어 탁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곽씨 성의 사람으로 나무 키우기의 달인이다. 그에 대해서는 다른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유종원이 창조한 허구의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나는 대학 시절 이 글을 읽으며 나 자신을 정원사에, 나의 본래 모습을 나무에 빗대어 보았다. 그리고 시들어 버린 나에게 앞으로는 나 스스로 물을 주겠노라고, ‘라는 나무를 울창한 아름드리나무로 키워보겠노라고 다짐했다. 


글의 중심 내용은 나무를 잘 기르는 방법을 묻는 말에 대한 곽탁타의 대답이다. 그의 말을 통해 유종원은 백성을 돌보는 일을 나무 심는 기술에 빗대어 지나친 집착과 성급함이 나무를 망치듯 과도한 간섭이 백성들의 삶을 망치며, 그 본성을 온전히 발현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둘 때 나무는 잘 자라고 열매를 많이 맺으며 백성들은 풍요롭게 지낼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글은 유종원이 803년부터 805년까지 감찰어사(監察御史)의 직분을 받들어 각지 지방관들의 행정을 감사했던 시기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곽탁타의 이야기를 빌려 번잡한 정책으로 오히려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는 지방관들의 행태를 비판하고자 했던 것이다.


먼저 글의 내용을 한번 살펴보자.

 

주인공 곽탁타의 본명은 알 수 없고 곱삿병을 앓아서 등이 낙타처럼 굽었기에 별명이 탁타가 되었다. 그는 나무 심는 일을 했는데 솜씨가 보통이 아니어서 장안의 세도가들, 부자들, 과일 장사꾼들이 앞 다퉈 그를 모셔가려고 했다. 그 누구도 그의 솜씨를 흉내 낼 수조차 없었다. 누군가 그에게 비법을 물었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나무가 오래 살고 열매를 많이 맺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저는 그저 나무가 자신의 천성을 다하게 하는 것뿐입니다. 심어진 나무의 천성은 그 뿌리는 편안히 뻗기를 바라고, 뿌리 주위를 북돋우는 흙은 평평하기를 바라고, 그 흙은 오래된 것이기를 바라며, 흙을 다지는 것은 야무지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 준 다음에는 움직이지도 걱정하지도 말고, 가서는 다시 뒤돌아보지도 말아야 합니다. 심을 때는 자식 돌보듯 하고 놓아둘 때에는 버리듯이 해야 그 천성이 온전해지고 본성이 얻어집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자라는 것을 해치지 않을 뿐이요, 능히 크고 무성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 열매를 맺히지 못하게 억제하거나 훼손하지 않을 뿐이요, 일찍 열리고 많이 열리게 할 줄 아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다른 나무 심는 자들은 그렇지 않으니, 뿌리가 구부러지게 하고 흙이 바뀌게 하며, 북돋움은 과하거나 모자랍니다. 혹은 나무를 대단히 사랑하고, 너무 부지런히 걱정을 해서 아침에 보고 저녁에 만지고, 자리를 떠났다가도 다시 또 돌아봅니다. 심한 경우엔 껍질에 손톱자국을 내어 살았는지 죽었는지 살펴보고, 뿌리를 흔들어 보아 흙이 성근지 빽빽한지 살펴보니, 나무의 천성이 날마다 사라지게 합니다. 사랑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은 그것을 해치는 것이고, 걱정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은 원수로 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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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나무에 물을 주는 곽탁타

 

곽탁타에게 나무 기르는 비결을 물었던 사람은 이 글의 후반부에서 다시 그대의 방법을 관청의 다스림에 옮기는 것이 가능하겠는가?”라고 묻고, 이에 대해 곽탁타는 나무와 나무 심는 사람의 관계를 백성과 관리에 적용해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는 관리들의 행태를 풍자한다. 글은 이러한 곽탁타의 말을 관원의 경계로 삼았다는 말로 마무리된다. 이 부분을 보면 앞서 설명했듯 저자가 잘못된 나무 기르는 방법에 빗대어 잘못된 정책을 비난하려고 이 글을 쓴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글을 꼭 저자의 의도대로만 읽을 필요는 없다.

 

이 글에 나오는 나무 심는 비결은 백성을 다스리는 일 외에도 사회의 여러 관계에 적용해 볼 수 있다. 특히 부모의 자녀 양육법, 교사의 지도법 등에 적용하여 자녀나 학생들이 본성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지 지나치게 간섭하고 다그쳐서는 안 된다는 깨우침을 줄 수 있다. 드라마 캐슬>이 대히트를 치고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입시 비리에 민감한 한국 사회에서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빗댐으로써 이 글의 현재적 의미를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대학 시절 이 글을 읽었던 방법처럼, 이 글을 통해 나를 가꿀 책임이 있는, 행동하는 나를 정원사에 빗대어 보고, 내가 라는 나무를 어떻게 가꾸어 왔는지 돌아볼 수도 있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억누르거나 감추는 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던 사람이라면, 지금까지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따져 보고 앞으로의 삶의 태도를 고민해 보는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본성을 억누르고 다듬어 나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는 정상적인 사회화 혹은 교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지나치게 스스로 자신의 본성을 억제하는 경우도 많다. 나무의 가지를 꺾고 뿌리를 끊는 것처럼 이는 자신의 성장을 저해하는 일이다. 혹은 자기 자신은 본성이 발현되도록 북돋워 주고 싶어도 주변 사람이나 환경이 이를 방해하기도 한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혐오에 빠진다. 자신이 선망하는 주변 사람을 모방하거나, 미디어에서 접한 우상을 좇아서 자신의 모습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특히 대중매체의 발달로 누구나 다른 사람의 삶을 엿볼 수 있게 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남과 비교하고 자신의 본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욱 늘어났다. 이들에게 본래 성정을 키워줘야 나무가 잘 산다는 곽탁타의 가르침이 울림이 있지 않을까?

 

, 이 글에서 내가 가장 깊이 나 자신을 성찰해 볼 수 있었던 부분은 곽탁타가 다른 나무 심는 자들에 대해 말한 부분이다. 그들은 나무가 잘 자라는지 지나치게 집착하고 빨리 과실을 열리기를 바라며 조급한 마음에 오히려 나무에 해가 되는 행위를 하는데 이는 나무가 잘 자라기를 바라고 결실이 빨리 맺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그러한 바람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올바른 과정에 대한 탐구 없이 성과에만 목맨다면 결국 과정을 그르쳐 성과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편에는 곡식이 빨리 자라도록 하려고 싹을 뽑아 올렸다가 도리어 모두 말라 죽게 했다는 한 농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빨리 가려고 서두르면 오히려 도달하지 못한다는 교훈을 준다는 점에서 다른 나무 심는 자들의 이야기와 유사하다.

 

인생의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되 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관조하고 기다리는 일도 필요하다. 곽탁타는 나무를 심을 때는 최선을 다하지만 그 후에는 내버려 둔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그렇게 해 준 다음에는 움직이지도 걱정하지도 말고, 가서는 다시 뒤돌아보지도 말아야 합니다. 심을 때는 자식 돌보듯 하고 놓아둘 때에는 버리듯이 해야 그 천성이 온전해지고 본성이 얻어집니다.” 목표를 향해 정진할 때 다른 나무 심는 자들처럼 부지런하게 수고하는 것보다 곽탁타처럼 걱정하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는 일이 오히려 더 어렵다고 느낄 때가 많다. 조급함과 집착은 쉽고, 관조와 기다림은 참 어렵다.

 

개인에게 점점 더 빠른 성과를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조급함열심으로, ‘집착적극성으로 쉽게 둔갑한다. 관조와 기다림의 미덕을 잃어버리기 쉬운 지금, 많은 이들이 이 글을 통해 각자의 목표를 향한 여정을 재정비해 볼 수 있다면 좋겠다.



누워서 읽는 중국 고전 7



윤지양 _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그림 1. https://www.jianshu.com/p/8d691bf5b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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