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역자의 말]
지난 155호부터 <해외 중국학 연구동향> 코너에서 홍콩 농업3.0 실천에 관한 초우시총(周思中, Sze Chung Chow) 선생의 저서, 『석양의 빛: 누가 홍콩에 채소밭이 없다고 했을까?』1)의 내용을 장별로 요약·번역하고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번 호에서 요약·번역한 내용은 이 책의 결론 부분에 해당한다. 결론에서 저자는 이전 장에서 살펴본 여러 주요 키워드를 학술적으로 재조명함으로써 홍콩의 ‘농업 쇠퇴’를 보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홍콩 농업의 쇠퇴를 농업 현장에 얻은 정보와 현지 농업 실천에 기반하여 재검토하겠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고수했지만, 결론에서 추출한 키워드를 보면 저자가 실제로는 홍콩 농업의 쇠퇴를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인) 세계적 농업 변동(agricultural change)의 맥락 속에서 살펴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저자는 책의 시작과 끝에서 홍콩 농업의 쇠퇴에 담긴 모든 정치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농업 쇠퇴 자체는 사실 특정 사회경제적 구조가 가져온 역사적 단면일 뿐, 농업과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반복해서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책은 우리가 현대 홍콩 농업사를 이해할 때 반드시 읽어야 할 입문서일 뿐만 아니라, 농업, 농촌, 그리고 농부의 역할과 의미를 재조명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저자가 영국 식민 당국이 채소통영제도를 통해 홍콩의 자체적 먹거리 체계를 구축하려다 실패한 사례를 검토했듯, “채소 농부들이 채소를 협동조합으로 운송하든 새벽시장에서 직접 판매하든, 채소밭 경제 자체는 국가 경제 발전과 같은 거대한 목표에 따라 강제되는 부담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또한, 시장 거래 행위 역시 생존을 위한 전쟁터가 아니라 상호 교류와 정보 교환을 촉진하는 사회적 공간일 뿐이었다”.2)
따라서 채소밭에서 생산한 채소가 비록 실제로는 소비 총액의 2%에 불과하지만 작은 텃밭에 전념하여 정성스레 농사를 짓는 행위와 그러한 농사를 대대로 견지해 온 농부들은 여전히 현대사회의 중요한 존재이다. 다시 말하면, 한 국가가 먹거리 체계 혹은 식량 안보 전략을 강조하든, 아니면 농산물 무역을 개방하는 방침을 선택하든, 이러한 농업과 농부의 존재는 건전한 사회의 불가결한 구성 요소라고 볼 수 있다.
[내용요약]
저자는 다섯 가지의 키워드를 통해 이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홍콩의 농업이 쇠퇴하고 있다는 주장을 다시 한번 검토하고자 한다. 이 다섯 가지 키워드는 ‘농지’, ‘수입 채소(進口菜)’, ‘포스트 채소통영처 시대(後菜統處時代)’, ‘유기농 채소밭’, ‘2세대(차세대) 농부(農二代)’이다.
1. 농지
홍콩 현지 채소의 생산량과 총소비 비중의 감소는 일반적으로 홍콩의 농업 쇠퇴를 반영한 통계지표로 간주한다. 그러나 저자는 농지 면적의 감소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간 농지 면적의 감소는 홍콩의 도시개발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당연시되었기 때문에, 사회적 의제로 다뤄진 적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이에 대한 학술적인 검토와 연구는 더더욱 드문 실정이다.
농지는 관점에 따라 매우 다른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 농지 감소에 대한 홍콩 대중 및 학계의 적절한 관심과 우려의 부족은 이들이 대부분 농지 문제를 다룰 때 정부와 동일한 태도와 판단을 취했기 때문이다. 즉, 농지를 ‘계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토지이자 도시개발의 지침과 전략에 따라 임의로 처분할 수 있는 토지로 본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농지가 지속적으로 도시 개발 지역으로 전용되는 과정에서 홍콩의 농업 규모도 감소해 왔다. 따라서 저자는 홍콩의 농업 쇠퇴가 완전히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라 도시의 공간적 확장에 따른 농지 감소와 함께 농업이 수동적으로 축소되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2. 수입 채소
중국산 수입 채소가 홍콩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채소 도매가격이 하락하고 홍콩의 농업이 쇠퇴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저자는 중국에서 생산되는 채소가 생산 규모에서 우위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현지 채소밭 경제와 비교할 수 없이 생산 및 운송 비용의 최소화가 가능하다는 점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저자는 중국산 수입 채소와 현지 채소가 각자의 시장 비중 증감에 영향을 미치는 대립적 관계가 단순히 홍콩-중국 간 모순적 관계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수입 채소의 대거 유입은 중국 개혁개방 초기 홍콩에 한정 판매된 채소가 홍콩 농식품 시장에 공급되면서 수많은 홍콩 농민과 농업기업가들이 선전(深圳)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수입 채소와 현지 채소 간의 커다란 차이는 1980~90년대 중국 개혁개방 정책이 가져온 상업적 기회를 감지한 홍콩 농민과 농업 기업가들의 이윤 추구 행위에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저자는 수입 채소와 현지 채소 간의 모순적 관계가 홍콩과 중국 간의 갈등에서 비롯됐다고 유추하기보다는 북상(北上)한 홍콩 농민과 현지에 남아 있는 농민 사이의 ‘내전’으로 보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3. 포스트 채소통영처 시대
채소통영처의 설립, 발전 및 실패 과정에 대한 정리에서 저자는 영국 식민 당국이 구축하려 했던 홍콩의 자체적 먹거리 체계를 분석한 바가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홍콩을 반공 전선으로 간주했던 영국 식민 당국은 홍콩의 현지 농업 자원을 활용한 채소통영제도를 기반으로 홍콩 지역 내부에서 자급자족하는 먹거리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시도했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채소밭 경제는 사실상 식민 당국이 추진했던 ‘식민지 국가 건설’의 구도에 편입되어, 홍콩의 먹거리 체계에 채소를 공급하는 임무를 담당하는 주체로 개조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중국의 개혁·개방, 홍콩 정권 반환, 그리고 농산물 시장의 개방화와 세계화 등 과정에서 채소밭 경제는 수입 채소 등장의 희생양이 됐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홍콩 농업 변동과 농업 변동 과정에서 홍콩 농민들이 경험한 농업 쇠퇴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 ‘포스트 채소통영처 시대’라는 키워드를 사용하고 있다. 저자는 이 키워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지만, 그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면 ‘식민지 국가 먹거리 체계 구축의 실패’와 ‘자유 시장 경쟁 하에서 기존 먹거리 생산 및 유통 체계의 소외’라는 서로 연관된 두 가지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인용한 원문처럼, 이른바 ‘포스트-’라는 용어를 통해 저자는 홍콩의 농업사에서 보여준 것처럼 농업과 농민이 국가나 시장 어느 쪽에 의해 지배되지 않은 농업과 농민 그 자체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사진 1. 쟁기질 중인 채소밭의 일부 모습3)
4. 유기농 채소밭
저자는 유기농 채소밭을 “재난 영화에서 도시 전체가 산산조각이 난 후 재건된 흩어진 인간의 피난소”와 같다고 표현한다. 이 비유는 오늘날 홍콩 사회에서 유기농 채소밭의 실상, 즉 채소 통영 체계 실패 이후 유기농 채소밭이 다양한 소규모 대안적 실천으로 자리 잡은 모습을 매우 정확하게 드러낸다. 이 책이 이러한 대안적 실천을 자세히 설명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는 점과 별개로, 저자는 결론 부분에서 유기농 채소밭을 활용한 대안적 실천의 가장 큰 결함 두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는 채소 공급이 불안정하다는 점이며, 둘째는 유기농 채소밭 산업에 새로 진입하는 실천 주체에 대한 기초적 농업 지식과 교양, 그리고 기술교육 수준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첫 번째 문제는 수입 채소 및 대규모 채소 농장과 연관된 것으로, 결국 채소밭 농업 생산 규모의 한계로 귀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반면, 두 번째 문제는 현재 유기농 채소밭 운동의 주체와 관련된 것이다. 2019년 홍콩의 정치적 혼란 이후 많은 고학력 청년들이 농업과 농지로의 복귀를 통해 본토의 의미를 되찾고자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업 자체는 단순한 생계 수단일 뿐 그 자체로 특정 정치적 또는 문화적 정체성과 연관되어 있지는 않다. 더구나 채소밭 농업에 종사하기 위해서는 경작 기술과 판매·영업 능력 등과 같은 지식 및 경험이 필요하다. 이처럼 일견 단순해 보이나 사실상 진입 장벽이 상당히 높은 농업에 종사하려는 청년들이 농지에 뿌리를 내려 정착할 수 있을지 여부는 현재 유기농 채소밭 운동이 직면한 중요한 과제이다.
5. 2세대 농부
현지조사 과정에서 저자는 관행농 채소밭과 유기농 채소밭 가운데 대략 1/3정도는 소위 2세대 농부들에 의해 인수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농업에 대한 열정만 있을 뿐 지식과 경험, 관련 인맥이 부족한 일반 신규 청년 농부에 비해 2세대 농부들은 농업에 종사하기에 더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향후 홍콩의 채소밭 경제 유지 과정에서 2세대 농부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저자의 현지조사 결과, 대부분의 2세대 농부들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농사일을 보조하던 경험이 있거나 농사와 관련된 지식과 기술을 다수 내면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2세대 농부는 직접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없더라도 귀농 후 가족으로부터 기술 지도와 협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적어도 농사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2세대 농부의 부모가 미리 임대 농지 면적을 늘리고, 노동력 투입이 많은 채소 재배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묘목이나 과수 재배로 작물 재배 구조를 전환하는 등 2세대 농부의 후계 영농을 위한 준비가 잘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 등 유리한 점이 현지조사 과정에서 많이 발견됐다.
2세대 농부들이 홍콩의 채소밭 경제의 중요한 일원으로 자리 잡고 있음에도 저자는 여전히 농업 경험과 지식의 세대 간 전승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시한다. 그는 이 책을 쓰면서 자신의 또 다른 관심사가 이러한 전승이 중단되지 않도록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농사를 시작한 고령 농부와 그 후계자, 즉 2세대 농부의 경험과 관행을 사실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사진 2. 일에 몰두하는 농부4)
6. 농업 쇠퇴 담론과 진실
결론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다시 농업 쇠퇴 문제에 주목한다. 그는 홍콩의 본토 채소밭 경제가 직면한 다수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를 농업의 쇠퇴로만 단정하는 대중적 담론이 진실과 거리가 멀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홍콩에서 농업을 포기하고 영국으로 이주한 한 농부가 영국에서도 다시 호미를 들고 채소밭을 경작하기 시작한 사례를 언급한다. 저자는 이 사례를 통해 정치적 혼란으로 농지가 사라지고 농부가 이민을 가더라도 농부에게 내면화된 기술과 경험, 농부라는 정체성에서 비롯된 땅과의 친밀한 관계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2차 세계대전 이후 광둥성의 채소 농부들이 신계로 이주해 채소밭을 개간하고, 중국 개혁개방 이후 홍콩 채소 농부들이 다시 대륙에서 수입 채소 사업에 투신한 것처럼 홍콩의 채소밭 경제 역시 정치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부침을 겪으면서도 채소밭 경제에 내재한 기술과 경험, 기억과 담론이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라는 저자의 확신은 결론을 통해 다시금 강조되고 있다.
리페이 _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1) 중문 원본은 다음 책 참조: 周思中 著, 2022, 『夕陽的光:誰說香港沒有菜園』, 香港: 藝鵠有限公司.
2) 위 책, 231쪽.
3) 위 책, 180쪽.
4) 위 책,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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