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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현장&공간
2월호
연구성과소개 (1) _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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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한국화교사회의 ‘7.19사건대응의 제 양상: 잡지 한화춘추분석을 중심으로, 중국지식네트워크20,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 2022.11, pp. 39-70.

 

본고는 잡지 한화춘추의 분석을 통해 ‘7.19사건에서 한국화교사회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했는지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7.19사건1965719일 서울 명동의 주한중화민국대사관에서 대사관 관지 1천평 매각과 신관 청사 건축에 반대하는 화교 시위대가 대사관 청사에 난입하여 양서소 대사를 폭행하고 한국 경찰에 대거 체포된 사건을 말한다.

 

당시 이 사건을 집중하여 보도한 것이 중문 잡지 한화춘추였다. 한화춘추한화일보로 대표되는 화교 언론기관이 대사관과 국민당주한직속지부의 눈치를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공정하고 비판적이어야 할 언론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반성에서 창간되었다. 한화춘추는 창간 초기부터 대사관 관지 매각과 신관 건축 관련 기사를 선도적으로 다수 보도했으며, ‘7.19사건과 관련해 여론을 주도하는 역할을 했다.

 

한화춘추1935년 범한생 경성총영사의 관지 매각 시도를 좌절시킨 왕공온 국민대표회의 한국지구 대표의 대 정부 항의할동을 집중조명함으로써 ‘7.19사건반대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한국화교사회는 양서소 대사의 관지 매각과 신관 건축 문제에 한목소리로 조직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한계를 드러냈다. 그 원인은 화교협회의 연합체인 한국화교협회총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으며, 화교협회와 국민당주한직속지부가 대사관 및 국민당중앙의 하부기관에 불과해 ‘7.19사건과 관련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화교 지도자들은 개인적으로 ‘7.19사건과 관련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데 그쳤고, 일반 화교들이 반대운동을 주도하면서 운동의 구심력을 상실해, 결국 폭력 사태라는 비극으로 끝났다.

 

‘7.19사건은 외견상 종결됐다. 대사관 관지 1천평은 정규성에게 완전히 매도되어 그 매각 대금으로 신관이 건축되었으며, 연희동의 토지 7,900평을 매입해 이곳으로 한성화교중학을 이전했다. 이 사건의 주동자로 타이베이로 압송돼 수감 중이던 왕명요와 송진무도 감형 끝에 석방됐다. 하지만, ‘7.19사건당시 반대운동에 참가했거나 한화춘추발행에 관여했던 청장년층 화교의 기존 화교사회의 체제에 대한 불만과 개혁의 목소리는 이 사건으로 인해 더 철저히 묵살을 당하게 된다. ‘7.19사건때 문제가 됐던 대사관과 화교협회 간의 상하 관계, 한국화교협회총회의 부재 문제는 그후 오랜 기간 해결되지 않은 채로 지속됐다.


이정희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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