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사진 1. 경항대운하(京杭大運河)
이번 글은 지난 두 차례 중국의 뜨거운 ‘운하열’에 대한 소개(2월호)와 역대 중국 정권의 ‘알뜰한’ 대운하 활용법에 대한 소개(3월호)에 이어 마지막으로 한국 학계의 대응 방안을 모색해보는 글이다. 필자는 지난 20년 동안 외롭게 중국 대운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왔으나, 2014년을 전후하여 뜨거워진 중국 내 ‘운하열’의 결과 한우충동(汗牛充棟)처럼 쏟아지는 각종 연구물과 국가적인 차원의 연구 지원 및 국가 상징물의 변화상에 대한 체계적이면서도 정확한 분석과 대응이 시급해졌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당장 올해만 해도 제22회 국제 명사학회(明史學會)의 주제가 <명대 임청(臨淸)과 대운하>로 잡히고, 8월에 산동성의 대표적인 대운하 도시인 임청에서 열린다. 필자에게도 초청이 와서 10년 전에 소설 <금병매(金甁梅)>를 분석하면서 대운하 유통망에서 임청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글을 조금 보완해서 발표하기로 약속했다. 물론 중국 내 코로나 방역 상황이 여전히 엄중한지라 실제 방문이 가능할지는 불투명하고, 아마도 온라인 발표로 대체될 것 같다. 지난주에도 중국 교육부의 중대(重大) 사회과학 기금을 받은 남경농업대학(南京農業大學) 관계자로부터 국제학회 발표 초청을 받았는데, 그 연구단의 주제가 <대운하의 역사문맥 연구와 국가 이미지 건설(大運河歷史文脈梳理與國家形象建構研究)>이었다. 외국의 대운하 연구자를 찾고 있던 터라, 필자가 요청했던 중국어 번역과 현장 통역사를 제공해준다고 한다. 과거 중국의 국제 학회에 참여할 경우, 내 글을 중국어로 번역하기 위해 사비를 쓰거나 스스로 중국어 발표를 위해 발음을 연습했던 것을 상기하면 큰 변화다. 앞선 두 차례의 기고문을 통해 강조했던 중국의 ‘운하열’을 정확히 보여주는 두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2021년 출간했던 대중학술서 『대운하 시대 1415-1784: 중국은 왜 해양 진출을 ‘주저’했는가?』(민음사)뿐 아니라 10년 전인 2011년 출간했던 학술서 『대운하와 중국상인: 회양지역 휘주상인 성장사 1415-1784』(민음사)가 모두 올해 중국의 주요 출판사와 계약이 이루어져 내년쯤 중국에서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중국의 운하열 속에서 해외에서 진행된 양질의 대운하 연구를 조사하여 자체적으로 번역·출간하는 과정이라 생각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흐름이 과거 2002년∼2012년 사이 10년 동안 진행된 <청사공정(淸史工程)>에서 해외 연구의 흐름을 정리하고 소개하는 편역조(編譯組)의 활동을 연상케 한다는 점이다. 그 당시에도 국가 주도의 연구 방향 제시와 막대한 연구비 지원을 바탕으로 중국의 주요 청사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미국과 일본에서 진행되던 신청사(New Qing History)의 연구성과가 대거 중국에 번역·소개되었다. 물론 중국 학계는 신청사의 문제의식과 연구 방향을 전적으로 수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일부 강하게 비판하는 흐름도 생겨났다. 운하 연구에 대한 중국 학계의 반응도 대동소이하리라 생각되지만, 주제가 사뭇 다르기에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현재 중국 내 ‘운하열’은 역사학의 전유물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과거 <동북공정>이나 <청사공정>과 달리 중국의 ‘운하열’에서 역사는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 속의 대운하에 대한 연구와 재조명이라는 흐름이 분명 존재하지만, 이는 현재 대운하에 대한 국가 주도의 재조명 프로젝트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오히려 실제 대운하 구간에 대한 재정비와 유통망의 확장, 친환경적인 운하 도시의 재건, 도시 공원화 프로젝트에서 대운하의 활용, 대운하 문화대(cultural belt) 구축과 관련 대학 및 연구기관의 연결, 새로운 국가 이미지 구축을 위한 개념화 작업 등 토목, 건축, 도시, 유통, 미디어 분야에 걸쳐 전방위적인 투자와 연구로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중국 ‘운하열’에 대한 전모를 체계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역사뿐 아니라 건축, 문화, 도시 연구자들의 협업이 요청된다. 그리고 이 모든 열기의 배후에는 중국 공산당의 새로운 국가 이미지 구축과 일대일로와의 관련성이 존재하기에 중국 정치 및 국제 정치 연구자들의 참여도 필수적이다. 요컨대 중국 운하열에 대한 분석 및 대응은 몇 사람의 연구자 수준으로 감당하기 곤란하다. 적어도 다양한 전공자들을 보유한 대학의 연구소 단위나 몇 개 대학의 중국 관련 연구소가 연합해서 다양한 학제적 분석을 추진해야 할 과제이다. 이는 중국 역사학계를 분석하는 동북아역사재단이나 “미중 패권 경쟁과 한반도의 대응”이라는 주제를 연구하는 국책 기관에서의 전략적인 접근에도 유용할 것이다. 무엇보다 운하에 대한 재건과 재조명이 중국 사회에 파생시키는 정치·경제·사회적 효과가 클 뿐 아니라 중국이라는 국가 이미지 개선에도 기여할 가능성이 높기에, 현재의 운하열은 적어도 시진핑의 집권기까지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시급하게 다양한 학제간 협업을 통한 분석과 대응 마련이 필요하다.
우선적으로 역사학계가 착수해야 할 연구 주제는 <과연 중국의 대운하가 역사적으로 ‘연결’의 아이콘으로 기능했는가?>에 대한 실증적이면서 연대기적인 분석이다. 수양제의 대운하만 연구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명청시대의 대운하만 분석해서도 곤란하다. 춘추전국 시대부터 존재하던 각지의 다양한 운하망의 기능과 역사적 역할에 대한 분석이 각 시대마다 필요하고, 또 이를 20세기 중국까지 연결하는 장기 지속의 관점에서 종합하는 과정이 요청된다. 지난 10년 사이에 중국 대운하 및 관련된 수운/해운에 대한 연구 및 자료집이 엄청난 양으로 쏟아져나왔기에 이에 대한 재해석의 가능성도 한결 높아졌다.
이와 함께 대운하의 대척점에서 재조명되고 있는 장성(長城)과 장성의 주된 기능인 ‘단절’과 ‘구별’을 역사적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장성과 관련된 오랜 중국의 역사는 곧 정주 문명과 유목 문명의 길항과 공존의 서사를 배경으로 한다. 반면 운하와 관련된 역사는 북방과 남방의 연결 및 통일과 분열의 바로미터가 된다. 그렇다면 단절과 차별의 역사를 벗어나 연결과 통합의 시대를 지향하는 21세기 현대 사회의 변화가 역사 속의 장성과 운하를 어떻게 재소환하고 기억하는지는 대단히 흥미로운 연구 주제가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대운하를 해양 문명과 대륙 문명의 접선으로 파악하는 것도 주목할만한 주제이다. 이는 해양 세계의 대표주자인 미국과 대륙 세계의 대표주자인 중국과의 경쟁과 충돌이 심화되는 현재의 세계정세와 관련해서도 대단히 흥미로운 접근법이 될 것이다. 과거 중국의 역사를 보더라도 대륙 문명의 전유물이 아니라 해양 문명과 대륙 문명의 접촉과 교류 및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이러한 만남 속에서 내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대운하의 ‘접선’ 기능은 중요했기 때문이다.
다만 ‘열기’ 속에는 냉정한 분석과 균형감이 상실될 우려가 상존한다. 중국 ‘운하열’을 바라보는 한반도의 관점은 지리적인 거리감과 함께 한발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고 분석하는 차분함이 요청된다. 중국 학계와 같지 않은 한반도의 관점을 계발하고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세계 역사학계에 기여하고 한국의 인문학 흥성에 불을 지피는 불쏘시개가 될 것임은 아무리 반복해도 진부하지 않은 상식일 것이다.
조영헌 _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http://news.sina.com.cn/c/xl/2020-11-15/doc-iiznezxs1927124.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