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사진 1. 소주 지역의 대운하
2006년 「대운하와 휘주상인」이라는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할 때만 해도 중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대운하(大運河, grand canal of China)’를 검색하면 딱 한 페이지 정도의 목록이 나왔다. 대운하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할 2000년 무렵에는 무협 소설의 제목 정도만 나올 정도였다. 연구서로 의미 있는 것은 일본학자 호시 아야오(星斌夫)의 저작1)과 중국학자 푸총란(傅崇蘭)의 대운하 도시에 관한 저서가 전부였다2). 한국에서 중국의 대운하에 주목하고 연구한 학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지도교수님만 흥미로워하셨다. 내가 과연 ‘대운하’를 박사논문 주제이자 평생의 연구주제로 삼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 아닐까? 정말 이러한 회의감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떠올랐는지 모른다.
그런데 놀랍게도 2006년 8월 박사논문 제출을 완성하자마자 한국에 ‘대운하’라는 키워드가 광풍처럼 밀어닥쳤다. 2006년 말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한반도 대운하’를 꺼내든 것이다. 어랍쇼? 혹시 대선 캠프에서 내 박사논문을 훔쳐보았을까? 착각이었다. 캠프에서는 내게 자문조차 하지 않았고, 엉뚱한 ‘한반도 대운하’ 논쟁으로 인해 한동안 한국사회에서 ‘대운하’는 일종의 금기어가 되었다. 심지어 내가 2011년 홍익대에서 고려대로 이직한 후에 개설한 중국 대운하 관련 대중강연에 참여한 한 노인은 손을 들고 나의 고려대 이직과 고대 출신 이명박 대통령 사이에 뭔가 커넥션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던져서 나를 비롯한 좌중을 당황시켰다. 한국사회의 대중적인 대운하 인식은 딱 그 정도였다.
2011년 『대운하와 중국 상인』(민음사)이라는 학술서를 처음 출간했을 때에도 언론과 대중적인 반응은 싸늘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 ‘대운하’라는 용어에 대한 상흔이 그렇게 심하게 남았던 것인지는 몰라도, 대운하는 여전히 금기어였다. 그래도 난 이상하게 대운하에 더욱 애정이 생겼다. 정치 논리에 휩쓸리지 않으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테마에 천착하는 것이 역사가의 숙명처럼 다가왔다. 기존 연구도 많지 않고 난 중국인이 아니지만, 중국의 대운하 속에서 중국사의 중요한 맥락이 담겨 있음을 연구를 진행할수록 확신할 수 있었다. 특별히 중국의 해양 진출이 정화(鄭和) 함대의 인도양 진출 이후 폐쇄적인 국면으로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면에 대운하를 통한 남북 간의 장거리 유통망의 번영이 대안으로 존재했음을 확인했다. 교역의 욕구를 해외가 아니라 광대한 국내에서 해소할 수 있는 인공 물길과 이를 안전하다고 ‘믿는’ 베이징 정부의 광범위한 관료군이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작년(2021년) 대운하에 대한 두 번째 학술서를 출간하며, 15세기에서 18세기를 『대운하 시대 1415-1784, 중국은 왜 해양 진출을 ‘주저’했는가』(민음사)라는 새로운 학술 용어로 개념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두 번째 대운하 작업이 10년이나 걸릴 정도로 늦어진 이유가 있었다. 이상하게 시간이 갈수록 대운하에 대한 연구와 자료집 출간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폭증’하기 시작했다. 대략 2013년 무렵부터였다. 물론 한국이 아니라 중국의 학계 이야기다.
2013년은 두 가지 이유에서 중국인들이 대운하에 주목하던 시점이다. 하나는 2014년 세계문화유산에 대운하를 등재하는 것을 앞둔 시기였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판결을 앞두고 중국의 정부와 학계, 그리고 대운하가 경유하는 지방정부와 시민 사회는 대대적인 대운하 캠페인을 하듯 대운하 관련 서적을 출간하고, 도시와 하천을 정비하고, 대운하 박물관을 건립하고, 관련 행사를 개최했다. 결국 이듬해인 2014년 6월 22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제38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위원회에서 대운하는 남한산성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사진 2. 2021년 출간된 '산동운하문화유산보호전승' 연구서
다른 하나는 2013년 시진핑의 집권과 동시에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주창되면서 대운하가 덩달아 주목받은 것이다. 일대일로와 대운하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2013년 대운하를 문화유산 차원으로 보호해야 할 필요성을 주장했던 국가문물국(國家文物局) 국장 단지샹(單霽翔)이 전략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 그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킬 중국의 대운하는 북경과 항주를 잇는 경항(京杭)대운하로 국한해서는 안되며, 전략적으로 수당(隋唐)대운하와 절동(浙東)운하까지 포함해야 할 것을 선구적으로 주창한 인물이다. 그는 “고도(古都)인 낙양은 수당대운하의 서쪽 기점이자 동시에 실크로드의 동쪽 기점이기도 하므로, 수당대운하의 (대운하) 가입은 실크로드와 대운하를 함께 연결한 것이다. 또한 절동운하 역시 경항대운하와 해상 실크로드를 하나로 연결시킨다.”3)고 2013년에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 ‘경항대운하+수당대운하+절동운하’를 모두 포괄한 ‘대운하’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그리고 2014년 후반부터 ‘대운하 문화대(cultural belt)’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이는 일대(一帶, 육상 실크로드)와 일로(一路, 해상 실크로드)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다분히 정치적 성격이 농후한 개념이지만, 중국 공산당의 입맛에 딱 맞는 컨셉이 되었다.
그리고 2017년 6월 시진핑은 통저우(通州)의 대운하를 탐방하는 자리에서 “대운하는 선조(先祖)가 우리에게 물려준 존귀한 유산이고 유동(流動)하는 문화이기에, 보호(保護)와 전승(傳承)과 이용(利用)을 잘 하기 위한 전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언급했다.4) 시진핑의 언설은 마치 <모택동 어록>처럼 힘을 발휘하여, 2019년 2월에는 중공중앙판공청(中共中央辦公廳)과 국무원판공청(國務院辦公廳)이 연합하여 <대운하문화보호·전승·이용규획강요(大運河文化保護·傳承·利用規劃綱要)>를 발표했다. 그 즈음부터 대운하의 ‘보호’, ‘계승’, ‘이용’을 주제로 한 연구논문은 수없이 많이 나왔고, 2021년에는 ‘운하학(運河學)’을 선도적으로 주창했던 랴요청대학(聊城大學) 운하학연구원(運河學硏究院)에서 정부의 연구비를 받아 『산동 운하문화유산의 보호, 계승과 이용 연구(山東運河文化遺産保護,傳承與利用硏究)』라는 제목의 학술서를 출간했다.5) 강소성(江蘇省)에서도 201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70주년을 기념하여 시진핑이 담화로 발표한 ‘보호’, ‘전승’, ‘이용’의 세 측면으로 지난 70년 강소성의 대운하 문화를 분석하는 자리를 마련했다.6)
사진 3. 양주 문봉탑에서 본 대운하
여기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가 있다. 2013년 무렵부터 시작된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은 모두 중국 정부가 대운하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통해 대운하에 대한 새로운 역사 기억을 창출하려는 시도라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21세기에 들어와 ‘온화(溫和)’하고, ‘연결[聯通]’되며, ‘포용(包容)’적인 국가 이미지를 만들고 선전하기 위해 남북을 연결하며 통합시키는 대운하를 새로운 문화기호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문화 유전자로 대운하를 평가하려는 연구에서도, 중국 대운하의 문화적 특징을 ‘소통[沟通]’, ‘포용’, ‘교류’, ‘융합’의 아이콘으로 규정한 바 있다.7) 화북 지역을 중심으로 운하 도시의 대학을 연계하는 ‘운하문화 개방대학(開放大學)’ 연맹을 핵심 아이디어로 하는 ‘대운하 문화교육대(文化敎育帶)’라는 신개념도 만들어졌다. 이른바 ‘운하열(運河熱)’이 지펴진 것이다.
중국인도 그리 주목하지 않던 2000년 무렵부터 대운하에 명운을 걸고 연구를 시작했던 한국의 연구자로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의 ‘운하열’이 그리 달갑지 않은 것은 나만의 감정이 아닐 것이다. 여전히 대운하를 금기어처럼 생각하는 한반도의 대중적 정서와 대운하에 열광하는 중국의 대중적 정서 사이에서 역사가의 역할은 사실 그리 크지 않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야말로 ‘대운하’에 대한 양측의 왜곡된 이미지에 구애받지 않으며 제대로 된 대운하 연구의 기초를 닦아야 할 시점이 된 것이 아닐까?
조영헌 _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1) 星斌夫, 『大運河-中國の漕運』, 東京, 1971 ; 星斌夫, 『大運河發達史-長江から黃河へ』, 平凡社, 1982 등.
2) 傅崇蘭, 『中國運河城市發展史』, 四川人民出版社, 1985
3) 單霽翔, 『大運河遺産保護, 天津大學出版社』, 2013, p.10.
4) 上海社會科學院生態與可持續發展硏究所·世界運河歷史文化城市合作組織 著, 『世界運河古鎭綠色發展報告』, 上海社會科學院出版社, 2020. p.2.
5) 胡夢飛 著, 『山東運河文化遺産保護,傳承與利用硏究』, 中國社會科學出版社, 2021.
6) 沙勇 主編, 『大運河文化演講70年 (江蘇卷)』, 江蘇人民出版社, 2020. 또한 2018년 南京郵電大學에 대운하연구센터가 설립되어 대운하의 江蘇省 구간에 대한 연구와 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江蘇人民出版社에서 “大運河硏究系列叢書”를 간행하기로 했다.
7) 霍艶虹, 「基于“文化基因”視角的京杭大運河水文化遺産保護研究」, 天津大學博士學位論文, 2017 ; 路璐·吳昊, 「多重張力中大運河文化遺産與國家形象話語建構硏究」, 『浙江社會科學』, 2021-2.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필자 제공
사진 2. "2021년 출간된 산동운하문화유산보호전승 연구서"
사진 3. 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