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삼쉬포는 홍콩에서 빈곤율이 높은 지역 중 하나다. 2019년의 빈곤상황보고서(Hong Kong Poverty Situation Report)에 따르면 홍콩의 18개 행정구역 중에서 삼쉬포는 24.7%로 두 번째로 높은 빈곤율을 기록했다. 이듬해인 2020년에는 26.5%로 빈곤율이 증가했지만 다른 행정구역도 그만큼 빈곤이 심화된 것인지 5위에 머무르는 데 그쳤다.1)
홍콩에서 기층민의 공간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삼쉬포에 가면 활기차면서도 역동적인 도시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와 욕구에 따라 비교적 저렴한 상권이 형성되어 있으면서도, 특유의 생동감을 뿜어내어 눈길을 사로잡는 지역이 바로 삼쉬포다. 섬유로 유명했던 지역답게 원단과 의류 등 다양한 섬유제품을 판매하는 가판이 늘어서 있고, 가판과 인도를 사이에 두고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음식과 물건을 판매하는 식당과 잡화점을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이곳에서 770ml 물 한 병은 6달러(약 980원) 정도에 살 수 있지만, 홍콩에서 최근 새로운 문화지구로 떠오른 고궁박물관과 M+ 미술관 초입의 푸드트럭에서는 15달러(약 2,400원)를 지불해야 한다. 기층민의 지출 가능성은 저렴하고 합리적인 가격을 제공하는 삼쉬포의 상권을 구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층민의 공간 삼쉬포에 최근 몇 년 사이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사진 1. 삼쉬포의 타이난거리(大南街)에는
카페, 공방, 소품샵 등 독특한 분위기의 상점이 밀집해 있다.
2020년 초부터 삼쉬포의 타이난거리에는 특색있는 카페와 상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통제와 격리로 답답한 일상을 보내야 했던 사람들이 그동안 로컬의 생활공간이었던 삼쉬포를 새로운 공간으로 조성했다.2) 3년 만에 홍콩을 방문한 나는 삼쉬포와 카페라는 이색적인 조합에 의아함을 안고 타이난거리를 찾았다. 삼쉬포의 다른 거리에 비하면 오히려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다. 부산스럽지 않은, 나른하면서도 여유로운 분위기가 타이난거리 전반에 드리워져 있었다. 오래된 상점 사이사이에 이질적인 세련된 인테리어를 가진 카페, 힙한 감성의 LP, 테이프, CD 판매점, 가죽 공방, 소품샵, 작은 전시공간, 명품 브랜드의 필기구 상점이 걸음을 조금만 옮기자 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 몇 년 사이 타이난거리는 기층민이 아니라, 소위 ‘문청’으로 뭉뚱그려져 표현되는 트렌드를 쫓는 청년세대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공간은 거주자보다는 방문객인 문청의 취향에 따라 구성된 것이다.
사진 2. 삼쉬포 상점 가이드.
갈색으로 표시된 건물이 양쪽으로 늘어선 타이난거리에
가장 많은 카페와 공방들이 몰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청구역(文靑區). 홍콩의 한 기성세대는 타이난거리를 이렇게 명명했다. 문청이 주로 모이는 공간이라는 의미이다. 과거에 문청이 문화운동을 주도했던 저항적인 청년세대를 지칭하는 표현이었다면, 현재는 문화산업과의 결합으로 인해 청년세대의 소비주의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3) 문청은 카메라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고, 레깅스와 같은 꽉 끼는 바지를 입으며, 심플한 디자인의 비싼 옷을 즐겨 입고, 일반적인 상점이 아닌 프리마켓과 같은 창의적인 시장을 종종 찾으며, 면으로 된 토트백을 즐겨 매는 등의 특징으로 묘사된다. 이와 같은 이미지는 문청의 소비패턴과 스타일을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진짜’ 문청과 ‘가짜’ 문청을 독서 여부로 구분하고, 문청에게 중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일 뿐이라고 비판하는 등 조롱의 의미를 담아 문청을 비하하기도 한다.4)
특정 스타일을 소비하는 문청은 타이난거리 상점의 분위기와 상품을 좋아하고, 가격이 비싸더라도 기꺼이 지불할 의사가 있다. 어떤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42달러(약 7천원), 특색 있는 디저트인 두부치즈케이크는 58달러(약 1만원)였다. 두 가지를 함께 주문하면 2만원에 가까운 금액을 카페에서 지출하는 것이다. 식사류도 판매하는 카페의 경우 파스타와 국수가 100달러(약 1만 6천원)에 이르기도 한다. 한 끼 식사를 5천원 이내에서도 해결할 수 있는 삼쉬포에서 이와 같은 가격은 매우 놀랍다. 이러한 차이 때문인지 현지의 사회복지사는 기층민의 공간인 삼쉬포에 이토록 비싼 음식과 음료를 판매하는 카페가 늘어나는 것이 바람직한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기층민이 지출할 여력이 없는 소비공간이 특정 집단의 취향을 충족시키기 위해 기층민의 지역에 생겨나는 것은 타당한가? 소비력 있는 문청의 수요에 따른 공간이 조성되는 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자연스럽지만, 그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기층민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지 않는가?
사진 3. 오래된 건물 1층에 위치한 카페의 경관은
인근 상점과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기층민과 문청의 서로 다른 소비패턴과 취향에 국한되지 않는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이보다 더 심각한 현상으로 종종 거론된다. 2020년 타이난거리의 상업용 부동산 임대료는 2017년에 비해 54% 상승했다.5) 급격한 임대료 상승은 새롭게 조성된 상점이나 오랫동안 영업을 해온 상점 모두에게 위협이 된다. 새롭게 생긴 상점은 타이난거리에 사람들을 유입시키고, 그로 인해 기존의 상점도 새로운 고객을 유치할 수 있지만 언제나 선순환이 발생하는 것만은 아니다. 현재 타이난거리의 많은 상점이 문을 닫았다. 닫힌 상점 사이로 세련된 분위기의 카페가 영업하는 풍경은 임대료 상승의 압박 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가게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타이난거리에서 기층민과 문청의 공존은 서로 다른 소비 취향과 젠트리피케이션의 여파로 인해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삼쉬포에서 이질적인 존재의 공존 (불)가능성에 대한 이견과 논쟁은 이전에도 있었다. 삼쉬포에서 진행된 예술 프로젝트가 젠트리피케이션의 도구라고 비판받자, 예술가들은 임차인과 건물주의 의견에 따라 작업을 진행하였으며 커뮤니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6) 당시 예술가에게 삼쉬포는 새로운 예술을 실험할 도화지 같은 공간이었고, 상점주에게는 분위기 변신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지만 일부 상점에서는 이러한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지 않기도 했다.
타이난거리의 변화를 바라보는 시선도 단일하지만은 않다. 새로운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상점주 중에서는 방문객들이 삼쉬포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관련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사람도 있고, 어차피 임대료가 오르면 모두 쫓겨날 같은 처지에 처해있다고 자조하는 사람도 있다. 타이난거리를 방문하는 소비자층으로 대표되는 문청도 그 정의 자체가 유동적이고 다소 논쟁적인 만큼, 이들의 소비 동기와 방식이 한 가지로 수렴되지 않는 것은 자명하다. 어찌 되었든 현재 기층민과 문청은 삼쉬포에서 공존하고 있다. 물론, 저마다 꿈꾸는 이상과 미래의 차이, 현실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의 압력은 이들의 공존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도 있다. 이들의 공존 (불)가능성이 어떤 지점을 향하게 될지는 코로나19의 여파가 거두어지고, 새로운 상권이 자리 잡는(혹은 더욱 늘어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지금 여기, 홍콩 7】
김주영 _ 전북대 동남아연구소 전임연구원
* 참고자료
1) 홍콩의 Census and Statistics Department에서 발행한 2019년과 2020년 기준의 Hong Kong Poverty Situation Report를 참고함
2) Shawana Kwan, “How Covid Helped Gentrify One of Hong Kong’s Poorest Districts, Bloomberg, 2020년 12월 16일.
3) 王樂儀, 2016, “當代文藝風潮:香港文藝青年商業化”, Cultural Studies, https://www.ln.edu.hk/mcsln/archive/52nd_issue/feature_01.shtml
4) 페이스북 페이지(好青年荼毒室 - 哲學部)에 2021년 4월 10일 게시된 글의 댓글을 참고함https://www.facebook.com/187405585041198/posts/pfbid01SJZZPwQE7HUSYJxCBMa2Z7Z9Yh5QbSsqiKiZQ
mmo7cZDmQP6bK6CDnGij8MYgJkl/?d=w&mibextid=qC1gEa
5) Shawana Kwan, “How Covid Helped Gentrify One of Hong Kong’s Poorest Districts, Bloomberg, 2020년 12월 16일.
6) Karen Cheung, “Art and poor communities in Hong Kong: A positive influence or a stalking horse for gentrification?”, Hong Kong Free Press, 2016년 4월 3일.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직접 촬영하여 제공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