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상하이에서 한국인 타이타이(太太)들이 사라지고 있다. ‘타이타이’의 사전적 의미는 ‘기혼 여성에 대한 존칭’ 또는 ‘정부관료 아내에 대한 통칭’인데, 상하이 한인사회에서 타이타이들은 대체로 주재원 부인 및 자영업자의 부인(전업주부)을 지칭해왔다. 이는 초기 상하이 한인사회가 주재원 가족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2000년대 후반 상하이 한인사회가 자영업자 중심으로 재편될 때도 자영업자로 변신한 (전)주재원들이 그 중추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래 중국 진출 한국기업들이 비용 증가 등의 이유로 주재원의 단신 부임을 선호함에 따라 상하이 한인사회를 주도했던 타이타이들도 사라지고 있다.
상하이는 오늘날 위상과 달리 19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상대적으로 낙후된 대도시에 불과했다. 당시 상하이의 유일한 공항이었던 홍차오 공항과 그 주변은 허허벌판에 가까웠고, 따라서 현재 한인촌이 위치한 ‘홍췐루(虹泉路)’도 2000년대 초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상하이에 한국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또 이주가 급증한 계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북한 지도자의 방문 때문이었다. 2001년 1월 김정일이 상하이 푸동(浦东)을 방문해서 “상하이는 천지가 개벽했다”고 말했고, 이러한 김정일의 행보가 한국 언론에 연이어 대서특필됨에 따라, 한국인들의 ‘중국 시야’에 세계도시로 급성장하던 상하이도 포착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상하이 한인사회의 비약적 발전은 2000년대 초 타이타이들이 ‘내집마련’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 즈음 상하이에서 외국인의 부동산 소유가 합법화되었는데, 상하이 진출 한국 대기업들은 주재원들의 아파트 구매를 반대했기 때문에 주재원들도 회사 방침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타이타이들은 ‘깨끗하고 안전한 생활’을 꿈꾸며 상하이에서의 내집마련을 강력하게 주장했고, 이들의 ‘개별적 집단행동’은 남편의 태도는 물론 회사의 방침도 변화시키기에 이른다.
당시 타이타이 중심의 한국인 가족들은 신도시로 개발되고 있던 홍췐루의 아파트 ‘금수강남 1~4기’와 ‘풍도국제’ 등을 적극적으로 분양 받아 대규모로 입주했다. 그 주변에는 한국식 수퍼마켓, 식당, 학원, 쇼핑몰, 병원 등이 빠르게 들어섰고, 그 결과 상하이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있던 한국인들이 점차 홍췐루에서 ‘한국 상품과 문화’를 소비하고 공유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이른바 상하이 한인촌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상하이 한인촌의 급격한 변화를 야기했다.
먼저, 일부 타이타이들은 전세계적 경제불안 상황에서 몇 해에 걸쳐 급상승한 부동산 차익 실현 및 단기간 급등한 환차익 등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너도나도 한인촌에 소유하고 있던 아파트를 매도하기 시작했다. 이후 한인촌 아파트 집주인들은 중국인으로 빠르게 대체되었는데, 한국인들이 소유한 아파트 매물이 대부분 소진되었을 즈음 상하이 아파트 가격이 다시 가파르게 급상승했다. 이렇게 중국인들이 한인촌의 ‘집주인’으로 등장한다.
다음으로, 일부 타이타이들은 본인의 의지 또는 남편의 부추김에 부응하여 경제활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2008년까지 한인촌의 소비자 역할에만 머물렀던 타이타이들은 점차 한인촌의 핵심 경제행위자로 변신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타이타이들이 한인촌 중심에 위치한 ‘갤러리아(井亭大夏)’ 쇼핑몰에 한국의 의류, 화장품, 장신구 등을 판매하는 소규모 매장을 오픈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 타이타이들의 경제 활동과 더불어 홍췐루는 상하이의 중국인들이 ‘한류’를 소비하는 공간으로 부상했다.
마지막으로, 2017년 홍췐루에서 약 200미터 떨어진 거리에 초대형 쇼핑몰 2개가 개장함에 따라 상하이 한인촌은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한인촌 상가 임대료가 급등했고, 한인촌 내 주거비도 급상승했으며, 사드(THAAD) 문제까지 겹쳤고, 나아가 중국인 청년들이 한국인 타이타이들이 운영하는 소규모 매장보다 ‘대형 쇼핑몰’에서 직원으로 일하는 것을 선호하게 되면서 인건비까지도 크게 상승했다.
사실 상하이 한인촌의 위기는 이미 10년 전 ‘금융위기’와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타이타이들은 지금까지 한인촌의 토대를 유지하는 가운데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이제 상하이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도 타이타이들이 새롭게 충원되지 않고 있다. 이와 더불어 상하이 한인촌의 ‘토대’ 자체가 빠르게 침식되고 있다. 이제 지난 한중수교 25주년 동안 상하이 한인촌을 개척하고 발전시켰던 타이타이들의 ‘사사로운 경험’을 ‘공적 지식’으로 재구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상하이 한인사회를 재생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때이다.
김판수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
2024.11
-
2024.10
-
2024.09
-
2024.08
-
202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