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ISSN 2508-2884 (Online)

갯벌로에서
5월호
중국공산당 11기 3중전회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 7기 제 3차 전원회의 _ 안치영
프린트 복사 페이스북

중국공산당 113중전회는 중국의 개혁개방을 결정한 회의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113중전회공보에 개혁개방 특히, 개방이라는 말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개혁개방을 결정하였다고 할까? 그 시기부터 중국의 정책이 전환되었으며, 그것이 113중전회에서 기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113중전회에서 도대체 무엇이 결정되었기에 중국의 개혁개방이 결정되었다고 할까? 113중전회에서의 개혁 선언의 원어는 개혁개방이 아니라 전체 당의 사업의 중점과 전국 인민의 관심을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로 전환한다.”이다.

 

40년 전 일을 꺼내 드는 것은 중국 개혁개방 40주년을 회고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중국 개방 40년이 지난 지금 세계 유일의 폐쇄국가인 북한에서 40년 전 중국의 개혁개방 선언과 똑같은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20일 북한의 조선노동당 중앙위위원회 제 7기 제 3차 전원회의에서 당과 국가의 전반 사업을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지향시키고 모든 힘을 총집중할 것이다.”라고 결정하였다. 표현의 차이를 제외한다면 기본적으로 중국의 개혁개방 선언과 같은 말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북한이 중국과 마찬가지로 개혁개방을 선언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중국에서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로 당 사업 중심 전환의 의미와 그것이 왜 개혁개방이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주의 현대화건설은 혁명 이후 변화된 체제에서 경제건설과 과학기술 발전을 통하여 인민생활이 개선되는 부강한 국가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에서는 사회주의로 전환 이후 경제건설과 기술혁명으로 당 사업 중심을 전환해야 한다고 했지만 문혁이 끝날 때까지는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하여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문혁이 끝날 때까지 중국은 핵폭탄과 수소폭탄을 가지고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지만 인민은 여전히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은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으로는 사회주의 현대화건설 즉, 경제발전에 한계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방식에 대한 개혁과 더불어 서방의 자본과 선진 기술을 도입하는 개방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이러한 개혁개방에는 생략된 전제가 있다. 중국의 국제정세와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인식과 대외관계의 변화가 그것이다. 1970년대 말까지 중국은 단시일 내에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하여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중국은 전쟁의 위험이 미국과 소련 두 초강대국으로부터 비롯되는데, 특히 소련으로부터의 위험이 주요한 것으로 보았다. 그것이 중미 관계의 개선과 정상화의 중요한 조건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중미 관계의 정상화가 중국 개방의 중요한 전제였다. 그런 점에서 보면 197911일의 중미 수교와 거의 동시인 19781218일부터 22일까지 개최된 113중전회에서 중국의 개혁개방이 선언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중국의 개혁개방은 중국의 경제성장만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전쟁의 위험에 대한 인식을 점진적으로 감소시켰다. 덩샤오핑은 1980년대 초에는 전쟁은 불가피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전쟁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면, 1980년대 중반이 되면 세계대전을 피할 수 있는 것으로 보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전쟁과 혁명의 시대에서 평화와 발전의 시대로 전환되었다는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의 전환이 다시 중국이 전면적으로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현대화건설로 전환하고 지속할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

 

그러면 지난 420일 조선노동당의 선언으로 돌아가 보자. 420일 선언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루어졌다. 그것은 남북회담과 북미회담을 통하여 1979년 미중관계 정상화와 같은 남북과 북미 사이에 획기적 관계개선을 위한 준비가 끝났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자 그것을 위한 내부적인 조건을 형성하기 위한 것으로도 보인다.

 

경제건설로의 노선전환은 인민생활의 개선을 위한 정상적인 국가로의 전환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런데 북한도 경제건설을 위해서는 대외개방과 개혁이 필수적이다. 북한의 대외개방과 개혁을 위해서는 전쟁 위험의 종식과 평화적인 환경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경제건설로의 노선전환을 천명한 것은 결국 북한이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고 변화하려고 하니 한국과 미국이 그 조건을 충족시켜달라는 것이다. 핵을 통하여 스스로에게 보장하였던 것을 한국과 미국이 보장해 준다면 굳이 핵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자신들이 해야 할 것은 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승리와 종결 선언을 통한 핵 경제 병진 노선의 폐기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핵은 안전을 위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경제 발전을 위한 개혁과 개방을 제약하는 요인이기도 했다. 그것은 핵 경제 병진 노선이 장기적으로는 모순적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장기적으로 핵과 경제는 하나만 선택할 수 있는데, 420일 선언은 경제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전제하는 것은 핵이 보장해주던 안전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정상화를 통하여 보장해준다면 경제발전을 위하여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인민을 생활을 개선할 수 있는 적절한 가격을 쳐준다면 허리띠를 졸라매었던 인민들에게 핵 포기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북한의 420일 선언은 핵 경제 병진 노선에서 경제건설이라는 북한식 개혁개방으로의 노선 전환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핵이 없었다면 북미정상회담과 북미관계 개선이 무망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북한으로는 핵 경제 병진 노선이 승리로 종결되었다고 선언할 수 있을 만큼 제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환된 노선의 실현과 북한 핵 역할의 진정한 종언은 아직은 열려진 미래의 일이다.

 

600px-2018_inter-Korean_summit_04.jpg

 

 

안치영 _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 중국학술원 중국자료센터장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위키백과 http://www.president.go.kr/img_KR/2018/04/2018042708.jpg

 

 

 

 

 

프린트 복사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