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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해외 중국학 연구동향
10월호
중국-미얀마 국경지역 조사·연구 성과 소개(7) _ 리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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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말]

20244월호부터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이 중국 윈난대학 인류학과(雲南大學人類學系)와 함께 수행한 중국 남서부 국경지역 공동연구 사업의 연구성과 보고서에 대한 번역·요약을 연재한다. 중국-라오스, 중국-베트남 국경 문제에 관련된 해당 연구사업의 지난 1단계 연구성과는 이미 한국어로 번역되어 국경 마을에서 본 국가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된 바 있다. 중국-미얀마 국경에 대한 현재 2단계의 연구성과는 중국어판 연구성과 보고서의 형태로 중국학술원에 소장되어 있다. 해당 연구성과를 널리 공유하고 확산하기 위해, 특히 국경 및 초국경 이동 관련 분야의 연구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성과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여 <관행중국> 웹진을 통해 공개한다. 이번 호는 제4<국경마을의 경계 인식과 경계 관념()>의 내용을 번역하여 소개할 것이다.

 

 

[내용요약]

장 국경마을의 경계 인식 및 관념()

-전통적인 징포족 벙두(崩堵) 통치 하의 경계 개념- (1)

 

현재 룽안촌(龍安村)은 중국-미얀마 국경에 위치한 평지 마을로, 농업 및 국경 무역의 입지 조건이 뛰어나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는 불과 수십 년에 지나지 않으며, 그 이전 징포족(景頗族)의 기억 속에서 룽안촌이 위치한 룽촨 평야(隴川平壩)는 징포어로 부란이(不冉奕)’라 불렸는데, 이는 레몬그라스(風茅草)가 무성한 곳이라는 뜻이다. 1세대 이주민들의 기억에 따르면, 이 지역은 장독(瘴氣)이 가득해 사람이 거주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은 징포족의 인식 속에서 무주지가 아니라, 산간 지역에 거주하던 징포족 벙두(崩堵) 통치 하의 땅이었다.

 

벙두는 징포어로 산의 관료(山官)’ 또는 그들이 통치하던 구역을 의미하며, 민족 국가가 형성되기 이전 징포족 내부에서 관할 구역을 나누는 중요한 관직이자 제도였다. 이를 통해 징포족이 몽골 고원에서 남하하며 이주해온 역사적 과정과 이에 대한 집단적 기억, 그리고 징포족의 경계 개념과 인식을 살펴볼 수 있다.

 

1. 징포족 및 벙두 제도의 기원

징포족에 대한 가장 초기의 기록은 당()대에 시작된다. 현재 징포족은 아창(阿昌), 리쑤(傈僳), ()족 등과 함께 누강(怒江) 서쪽, 티베트고원(青藏高原)의 남동쪽 지역에서 미얀마 북서부 산악지대에 이르기까지 분포하며 생활하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이들을 카친(Kachin, 克欽)’이라 부르며, ‘징포는 이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사람을 의미한다. 미얀마 사료에 따르면, 고대 미얀마의 왕 알라웅시투(Alaungsithu, 阿隆悉都, 10901167 재위)가 순찰 중 징포인들의 노래와 춤으로 환영받았고, 그에 따라 이들에게 카친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는데, 이는 춤을 추고 싶어 하는 사람을 뜻하며, 더 나아가 노래와 춤에 능한 민족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오늘날 징포라는 명칭은 그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용어일 뿐만 아니라, -티베트어족 티베트-버마어파에 속하는 징포어군을 사용하는 모든 징포족 계열의 에스닉 그룹을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현대 민족학·문화인류학 연구에 따르면, 징포족은 저강계(氐羌系) 민족에서 기원하였으며, 초기에는 간쑤성(甘肅省)과 칭하이성(青海省) 일대의 고원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힁단산맥(橫斷山脈)의 하천 계곡을 따라 남하하여 윈난성(雲南省) 북서부의 고원 지역에 정착하였으며, 최종적으로 현재의 분포 지역까지 남하하게 되었다.

 

룽안촌의 현지 노인들은 다른 윈난 지역의 남하 이주 집단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이주 역사를 담고 있는 서사를 구전으로 전하고 있다. 그 가운데 KMX은 이주 서사의 내용의 개요를 다음과 같이 기억하였다.

 

우리 집안의 조상은 파미르고원(米爾高原)’에 살았었어. 그러다가 티베트로 이사 갔지. 거기서 뤄당쥬머(落當究麼)’라는 곳에 살다가 다시 우당산(武當山)’으로 갔어. 거기서 또 무즈벙(木志崩)’이라는 곳으로 이사 갔지. ‘무즈벙에서 상어벙(尚餓崩)’으로 옮겼는데, 그때부터는 일부가 현재 누장주(怒江州, 즉 누장리쑤족자치주)로 이사 가고, 또 몇몇은 더훙주(德宏州, 즉 더훙다이족·징포족자치주)로 갔어. 우리 집안은 텅충(騰沖)에서부터 잉장(盈江)까지 계속 내려왔고, 결국은 룽촨현의 왕쯔수(王子樹)에 정착하게 됐지. 왕쯔수에 온 이후로 우리 집안은 자리를 잡았어. 예전 티베트에서는 생활도 어렵고, 먹을 것도 보리뿐이었지. 그런데 룽촨에 와보니 땅이 넓더라고. 그래서 우리 조상님이 여기에 정착하기로 결정했어. 우리 씨족이 룽촨에 와서 자리 잡은 지 벌써 아홉 대가 지났지.”

 

현대 민족학의 징포족 이주 서사의 연구에 따르면, 그들이 말하는 파미르고원은 실제로 오늘날의 몽골 고원과 간쑤 지역의 반건조 초원 지역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곳은 곧 저강계(氐羌系) 민족의 발원지이자 활동 지역이었다. 이후 그들은 소위 무좌이성라벙(木拽省臘崩)”이라 불리는 칭하이 고원(青海高原)으로 이주하였으며, 여기에서 점차 에스닉 정체성을 형성하였다. 그 후 방융망당(邦擁芒當)”이라 불리는 현재의 창두(昌都)와 간쯔(甘孜) 일대의 캄스고원(khams plateau, 康區高原)으로 이주하였다. 이주 과정에서 징포족의 선조들은 캄스고원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로지르는 몇몇 주요 국제 하천, 즉 란창강(瀾滄江)과 누강(怒江)에 따라 남하하여 진망양무좌이(真芒央木拽)”라 불리는 오늘날 누장주의 궁산현(貢山縣) 일대의 협곡에 잠시 정착하였다.

 

이들 중 일부는 서쪽으로 계속 이동해 은메카이강(恩梅開江)을 건너 미얀마 카친주(Kachin State, 克欽邦)의 북부 지역인 무리쿠무좌이(木裏枯木拽)”에 이르렀는데, 이들은 징포족의 징포 지계(景頗支系)로 알려진 분파이다. 또 다른 그룹은 은메카이강을 건너지 않고, 강을 따라 남쪽으로 계속 이주하였으며, 이는 징포족의 랑어 지계(狼峨支系)로 알려진 분파이다. 랑어 지계 중 일부는 쯔피쯔헤이(子丕子黑)”라 불리는 샤오강(小江) 유역에 정착하여 다시 차산 지계(茶山支系)와 자이와 지계(載瓦支系)로 나뉘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룽안촌은 1950년 이후 징포족 산지 주민들이 평야 지역으로 이주해 정착하면서 점차 형성된 마을이다. 그러나 룽안촌 주변의 산악 지역,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광잉산(光英山)과 마이워산(邁窩山) 등 산에도 징포족이 오랫동안 거주해 왔다. 징포족이 거주하는 지역은 명목상 중국과 미얀마의 역대 왕조로부터 책봉된 토사(土司)의 관리를 받았으나, 실제로는 본 민족의 벙두(崩堵)’가 직접 통치하였다. 벙두를 수장으로 하는 통치 제도는 징포족 역사 및 조직 형태 연구에서 중요한 분야로, 현재의 징포 연구에 따르면, ‘()’은 징포어로 을 의미하고, ‘()’()’을 의미하므로, 벙두는 곧 산을 관리하는 관료, 산관(山官)’을 뜻한다.

 

징포족의 전통 인식에 따르면, 징포족이 거주하거나 활동하는 산에는 반드시 하나의 벙두, 즉 산관이 그 지역을 통치한다. 각 벙두가 통치하는 지역은 소규모의 정권으로 간주되며, ‘는 이 정권의 최고 통치자이다. 서로 다른 벙두의 통치 구역은 크기도 다르고, 그 세력도 강약이 다르지만, 원칙적으로 벙두의 수령은 자신이 통치하는 지역 내에서 자유롭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다른 벙두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강력한 벙두 수령이 힘이 약한 벙두 수령을 지배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었다. 일부 벙두가 통치하는 지역이 지나치게 넓은 경우, 관내 지역을 나누어 하위의 두를 추가로 임명해야 했다. 이들 두는 대개 마을 대가족의 우두머리가 맡았다.

 

 

2. 룽안촌 및 그 주변의 전통 벙두 경계

징포어(景頗語)에서 벙두서앙(崩堵舍昂)’이라는 단어는 하나의 벙두(崩堵)가 관리하는 구역을 의미하며, 이는 징포족(景頗族)의 전통적인 경계 개념을 직관적으로 반영한다. 일반적으로 벙두서앙은 강, 산맥, 도로, 계곡 등 지형을 경계로 삼는다. 각 벙두서앙은 보통 하나 또는 여러 개의 촌락을 포함하며, 일부 큰 벙두는 수십 개의 촌락을 포함하기도 한다.

 

룽안촌(龍安村) 근처의 광잉산(廣英山), 마이워산(邁窩山), 신마산(新馬山), 미둥궁산(咪東拱山), 랑다벙산(浪打崩山), 레이룽산(雷隴山), 방첸산(邦千山), 파오모산(泡沫山) 등의 산봉우리는 과거에 모두 벙두(崩堵)의 관리 하에 있었다. 이 산봉우리들은 주로 러퉈씨(勒托氏)’ 벙두의 소유였다. 러퉈(勒托)는 징포족 성씨이며, 역사적으로 그 시조인 러퉈눙룬(勒托弄倫)이 스스로 한자 성씨 ()’을 택했다고 전해진다. 룽안촌 주민들에 따르면, 현재 마을 주민들 중에는 여전히 러퉈눙룬의 후손이 존재한다고 한다. 하지만 문헌 자료의 부족으로 인해, 우리는 주민들의 구술을 통해서만 이 씨족의 대략적인 개요를 파악할 수 있다.

 

1룽안촌을 통치한 러퉈파오자궁샹(勒托拋紮貢香) 가문과 짜오산두(早山堵)

마을 주민들의 설명에 따르면, 벙두(崩堵) 수령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징포족(景頗族)의 전통적인 다섯 귀족 씨족에서 배출해야 한다. 이 다섯 성씨는 무르씨(木日氏), 러퉈씨(勒托氏), 러파이씨(勒排氏), 언쿵씨(恩孔氏), 무란씨(木然氏)이다. 그 중, 룽안 일대를 통치한 러퉈씨 벙두는,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 조상이 세 아들을 낳았고, 각각 무르궁자(木日貢紮), 러퉈눙룬(勒托弄倫), 러파이라런(勒排臘忍)이라고 불리며, 이들은 각각 세 지역의 산악 지대를 지키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후일 벙두제도의 기원이 되었다. 징포족 전설에 따르면, 이 세 형제는 각각 ()’, ‘()’, ‘()’라는 한문 성씨를 택했으며, 이는 지금도 더훙주 지역의 징포족 사이에서 널리 쓰이는 한문 성씨이다.

 

러퉈눙룬(勒托弄倫)이 벙두(崩堵) 수령이 된 후, 산악 지역의 생활 조건이 열악하여 씨족 구성원들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야생 채소를 채취해서 먹어야 했다. 한 번은 독이 있는 야생 버섯을 채집하여 씨족 구성원 전원이 중독되어 사망했고, 유일하게 한 명의 아기만 남았다. 아기가 발견되었을 때는 불구덩이의 재를 가지고 놀고 있었고, 얼굴이 온통 검게 물들어 있었기 때문에 파오자궁샹(拋紮貢香)’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파오자(拋紮)’는 징포어로 검은색을 의미한다. 이후 러퉈파오자궁샹(勒托拋紮貢香)은 러퉈씨 벙두를 계승하고, 거주지를 파오자궁(拋紮拱)’으로 옮겼다. 이는 파오자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그로부터 러퉈눙룬의 씨족은 다시 번성하여 룽안촌 일대의 넓은 산악지대를 관리하는 큰 벙두가 되었다. 그들의 벙두서앙은 현재 중-미얀마 국경선을 가로지르고 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현재 룽안촌에 사는 팽씨 가문은 바로 파오자궁에서 이주해 온 후손이라고 한다.

 

룽안촌 팽씨 후손인 PKD의 설명에 따르면, 러퉈파오자궁샹이 파오자궁으로 이주한 후, 그들의 벙두서앙에는 일련의 변화가 있었다. 먼저, 벙두 수령이 거주하던 마을은 파오자궁에서 랑다벙산으로 이주하였다. 처음에 파오자궁으로 이주한 것은 파오자궁이 위치가 높고 시야가 넓었기에 방어적인 우위가 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파오자궁샹은 파오자궁 근처 동쪽과 서쪽 산비탈에 각각 두 개의 마을을 세워, 세 마을이 서로 보완하는 방어선을 구성했다. 하지만 파오자궁은 평지 지역의 무역 중심지, 즉 가이쯔(街子)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다른 민족들과 교역을 할 때는 새벽에 출발해야 했고, 교역 후에는 밤에 도로에서 야영해야 했다. 그래서 이후 러퉈파오자궁샹의 후손들은 벙두 수령의 거주지를 랑다벙산으로 옮겼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현재 파오자궁이 있던 산 정상에는 여전히 우물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그 산의 숲도 여전히 팽씨 가문이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나중에 신마마을(新馬寨)도 러퉈파우자궁샹의 벙두서앙에 편입되었으며, 동시에 벙두 수령의 거소도 신마마을로 다시 옮겼다. 신마마을은 처음에 리쑤족이 거주하던 곳이었지만, 나중에 광잉과 마이워의 몇몇 징포족 가구들이 이 마을로 이주했다. 이들은 리쑤족의 배척을 두려워하여 랑다벙산(浪打崩山)으로 가서 러퉈씨 벙두 수령에게 신마산을 관리하도록 요청했습니다. 러퉈씨 벙두 수령은 신마산이 새로운 삶터로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가족과 함께 신마산으로 이주했다. 징포족의 전통적인 스디(史迪)’ 의례를 거행한 후, 신마마을은 공식적으로 러퉈파우자궁샹 가문의 벙두서앙에 편입되었다.

 

2룽안촌 주변의 다른 벙두

벙두 제도의 지속은 주로 상속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때로는 선출과 같은 방식으로도 이루어졌다. 러퉈파우자궁샹 가문은 상속 제도를 따라 근세까지 마지막 벙두 수령인 러퉈짜오산(勒托早山)에 이르기까지 그 지위를 유지하였다. 이로 인해 현지 주민들은 룽안 일대를 통치하던 벙두를 짜오산두(早山堵)’라고 불렀다.

 

짜오산두의 경계는 대략 난와강(南漥河)을 서쪽 경계로 하고, 북쪽으로는 레이룽산(雷隴山), 남쪽으로는 현재의 장펑대교(章鳳大橋), 동쪽으로는 방와이(邦外)까지 이르렀다. 이는 현재의 세 개 향진(鄉鎮)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당시 짜오산두는 마이워, 광잉, 신마, 뤼량 등의 징포족 산간마을을 통치하고 있었다(다음 그림 참조).

 

짜오산두의 동쪽은 러파이 씨족의 벙두가 통치하는 지역이다. 반면, 그 서쪽, 즉 현재 중국-미얀마 국경인 난와강의 서쪽 지역은 두 개의 러퉈 씨족 출신의 벙두 수령이 나누어 통치하고 있다. 하나는 원유두(溫尤堵)’라고 불리며, 이는 벙두 관내의 원유촌(溫尤村)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이 벙두의 통치 범위는 상대적으로 작으며, 뤼윈하이(呂允海), 화타오(華陶), 원유라는 세 마을만 포함된다.

 

원유두의 벙두 수령은 원래 러퉈 씨족이 통치하던 지역이 아니었다. 원래 수령 가문의 마지막 세대가 사망한 후, 이를 상속할 사람이 없었고, 이로 인해 지역 주민들은 수령이 없는 상황에서 내부 분열의 우려가 커졌다. 당시 해당 지역에는 징포족의 다섯 귀족 성씨 후손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통적인 관습에 따라 주민들은 다섯 귀족 성씨에 속하는 다른 지역의 벙두 수령에게 통치를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러퉈파우자궁샹 가문은 원유두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지역 주민들이 요청할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 러퉈파우자궁샹 가문의 수령은 자신들의 관할 구역 내에서 이미 토지 분배 문제가 정리되었음을 이유로 들며, 원유두를 받아들이는 경우 토지를 재분배해야 해서 이 요청을 거부했다. 이에 대신 그는 원유두 주민들에게 당시 파오모산에 거주했던 또 다른 러퉈 씨족 인물을 초청하여 원유두를 관리하도록 권하였다.

 

원유두의 범위는 난와강에 따라 분포되었으며, 지역은 좁고 홍수 피해가 빈번하여 생활 환경이 어려웠다. 이로 인해 새로 부임한 러퉈 씨족의 수령은 주민들의 생계를 돕는 책임을 많이 지게 되었고, 이는 결국 가문이 빈곤에 빠지는 원인이 되었다. 원유두 후손들의 말에 따르면, 원유두의 마지막 벙두 수령은 너무 가난하여 벙두의 책임을 감당하기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인근의 짜오산두 수령은 다섯 마리의 소를 원유두 수령에게 보내, 원유두 수령이 그 고기로 주민들을 대접하여 다시금 주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왔다. 이후 원유두 관내에는 다이-타이계(傣泰系) 에스닉 집단이 대거 이주하여 점차 다수파를 차지하게 되었고, 현재 뤼윈하이 등 미얀마 국경마을들은 대부분 다이-타이계 에스닉 집단이 주로 거주하는 마을로 변모하였다.

 

짜오산두의 북서측과 접경하는 또 다른 벙두인 방사오두(邦少堵)는 원유두(溫尤堵)보다 면적이 훨씬 넓으며, 현재의 미얀마의 마이자양(邁紮央) 지역을 포함하고 있었다. 방사오두 또한 러퉈씨 부족이 통치하던 벙두였다. 이 벙두는 난와강 상류에 따라 짜오산두와 접경하며, 원유두와의 천연 경계는 없고, 단지 산림 속에 심어진 커다란 푸른 잎의 나무를 경계로 하여 구분하고 있었다. 오늘날 미얀마의 마이자양과 뤼윈하이 마을 사이의 산림 지대에서 여전히 이 거대한 나무를 볼 수 있다고 전해진다.


리페이.png

룽안촌 인근지역을 통치했던 벙두

(※빨간색: 짜오산두, 파란색: 원유두, 초록색: 방사오두)




리페이 _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중국학술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참고자료

1) 왕위에핑·장정아·안치영·녜빈 지음, 2022, 『국경 마을에서 본 국가』, 인터북스

2) 즉 바오산(保山市)시 관하의 텅충시(騰衝市)이다. 이 지역은 윈난성 남서부 한족의 주요 거주지역이다.

3) 즉 더훙주 관하의 잉장현(盈江縣)이다.

4) 즉 티베트 자치구(西藏自治區)의 창두시(昌都市)와 쓰촨성(四川省) 간쯔 티베트 자치주(甘孜藏族自治州)이다. 이들 지역은 티베트 역사상 4대 지역 중 하나인 캄(Kham, 康區/康巴地區)에 해당한다.

5) 란창강(瀾滄江)은 메콩강이 중국 내에서 불리는 이름이다.

6) 누강(怒江)은 살윈(Salween) 강이 중국 내에서 불리는 이름이다.

7) 이라와디 강의 동쪽 지류.

8) , 오늘날 중국-미얀마 접경 지역에 위치한 폔마(片馬) 지역을 말한다. 이 지역은 근대사에서 중국과 미얀마를 통치하던 영국 식민 당국 간의 쟁탈 초점이었던 곳이다. 중국-미얀마 국경 조약을 맺을 당시, 중국은 남캄(Namkham,南坎) 지역을 대가로 폔마진(片馬鎮, 현재 누장주 소속)을 중심으로 한 샤오강(小江) 유역 일부 영토를 되찾았다.

9) 현지에서 5일마다 열리는 정기시장을 가이쯔(街子, gai zi)라고 부른다.

10) 징포족의 귀신 숭배 의례 중 하나이다.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작하여 제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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