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2024년 대만 총통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 속에서 치러졌다. 그리고 라이칭더의 총통 당선은 대만의 새로운 정치적 변화를 예고했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꽃길보다는 가시밭길이 놓여있었다. 여소야대라는 정치적 현실 속에서 대만 정치는 입법원 직권행사법 개정을 둘러싼 갈등과 그로 인해 촉발된 파랑새 운동 같은 대중의 정치적 반응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들은 대만의 정치 지형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 본고는 대만의 총통선거부터 지난 5월의 파랑새 운동까지 2024년 대만 정치가 겪었던 주요 사건들을 되짚어본다.
① 2024년 대만 총통 선거
2024년 1월, 대만은 중국과의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서 ‘선거의 해’로 불리는 한 해를 맞이하며 총통 선거를 치렀다. 하지만 민진당의 연임은 불확실했다. 차이잉원 정부 시절 급격히 오른 물가, 민진당 정치인들의 논문 표절과 성추문 같은 연이은 스캔들이 민진당의 지지율에 깊은 타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층에서는 ‘물이 고이면 썩듯 정당도 교체가 필요하다’라며 정치에도 새로운 흐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서의 대표적 현상으로 떠오른 인물이 바로 민중당을 이끄는 커원저였다. 의사 출신으로 타이베이 시장을 지낸 그는 코로나 시기에 대중적 인기를 얻었으며, 특히 젊은 세대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그림 1.
이번 총통 선거에서 민중당은 중소정당 중 사상 최대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정치 지형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오랫동안 국민당과 민진당의 양당 구조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던 대만에서, 총통 선거에서 20% 이상의 득표율을 얻은 중소정당은 없었다. 그러나 커원저는 26%라는 득표율을 통해 대만 정치에 혜성처럼 등장한 자신의 돌풍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반면 민진당은 여당의 자리를 지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성적표가 초라했다. 과거 차이잉원이 두 차례 연속 5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했던 것과 달리, 라이칭더는 40%의 득표율을 얻는데 그쳤다. 위 그림 1 그래프를 보면 2020년 선거에서 민진당에 표를 던졌던 많은 사람들이 이번에는 민중당으로 눈을 돌렸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국민당은 민진당에 비해 큰 변동이 없었는데, 이는 국민당이 여전히 공고한 콘크리트 지지층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총통 선거의 득표율에서 나타난 민진당에 대한 실망은 각 정당의 입법위원 의석수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여당이 된 민진당은 전체 113석 중 겨우 51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으며 국민당은 52석, 민중당은 8석, 무소속은 2석을 차지하며, 어느 정당도 과반인 56석을 넘지 못한 ‘삼당 불과반(三黨不過半)’의 국면이 펼쳐졌다. 견제와 균형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긍정적인 변화일 수 있지만, 민진당에게는 결코 반길 수 없는 결과다. 과거 차이잉원 정부가 대중의 지지와 함께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61석의 과반 의석을 바탕으로 정책을 힘 있게 추진할 수 있었다면, 라이칭더 정부는 출발부터 거센 난관에 부딪힌 것이다.
그림 2. 2020년과 2024년의 정당별 입법위원 의석수 변화. 민진당의 크게 줄어든 의석수는 민진당에 대한 대중의 실망감을 보여준다.
② 라이칭더의 취임: 취임식 연설에서 보는 차이잉원과의 연속과 단절
1월의 대만 총통선거 이후 약 4개월이 지난 5월 20일, 라이칭더는 정식으로 대만의 16대 총통으로 취임했다. 본래부터 전임 총통 차이잉원보다 대만 독립 성향이 더욱 짙은 것으로 알려진 그였기에, 취임 연설에서 양안 관계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에 대해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먼저, 연설에서 그는 차이잉원의 ‘네 가지 견지(四個堅持)’원칙을 계승할 것이라 밝혔다. 여기서 말한 네 가지 견지란 차이잉원이 2021년이 발표한 양안 관계와 관련된 원칙으로, △자유민주의 헌정 체제를 영원히 견지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상호 불예속 견지 △주권 침범과 병탄 불허를 견지 △‘중화민국 대만’의 미래는 전체 대만 인민의 의지에 따라야 한다는 것 견지를 그 내용으로 한다.
그러나 이 연속성 뒤에는 분명한 단절도 있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중국을 지칭하는 방식이었다. 과거 차이잉원은 취임식 연설에서 ‘맞은 편(對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중국을 우회적으로 언급했고, 단 한 번도 ‘중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반면, 라이칭더는 ‘중국’이라는 명칭을 직접 사용하며, 대만과 중국을 명확하게 구분했다. 라이칭더가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이라고 칭한 것은 대만을 ‘하나의 중국’ 범주 바깥에 두고, 대만의 독자적 정체성을 강조한 것으로, 이를 한국 상황에 비유하자면, 제주도 사람들이 서울이나 부산에서 온 사람들을 ‘육지 사람’이 아닌 ‘한국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이는 제주도가 스스로를 한국과 다른 정체성을 지닌 독립된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에 듣기에 이질적이다. 마찬가지로 라이칭더가 ‘중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해 중화인민공화국을 지칭한 것은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대만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거부하고, 양국을 명확하게 구분한 셈이 된다.
또한 대만에 대한 언급에서도 라이칭더는 차이잉원과 달랐다. 차이잉원은 ‘이 나라(這個國家)’, ‘이 나라의 대만인(這個國家的台灣人)’이라는 모호하고 중립적인 표현을 여러 차례 사용하며 대만을 지칭했고 대만의 독립파들과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 했지만, 라이칭더는 '대만'이라는 단어를 79회나 사용하며 대만의 정체성을 강하게 부각했다. 이는 2016년 차이잉원의 연설에서의 41회, 2020년의 47회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로, 그가 대만을 독립 국가로서 더 명확히 규정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중국과 대만 모두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한다는 92공식이나 양안 간 교류에 대해서도 두 지도자는 큰 차이를 보였다. 차이잉원은 2016년 연설에서 “1992년에 양측은 상호이해라는 ‘약간의’ 공통된 인지와 이해에 도달했다. 나는 이 역사적 사실을 존중한다”라는 말을 통해 중국과의 대화의 길은 열어두었다. 또한 ‘양안 인민관계 조례(兩岸人民關係條例 - 이하 ‘양안 조례’)’를 처음으로 언급하며 “이에 기초해 양안 간 사무를 처리하고 양안의 두 집권당이 역사의 짐을 내려놓고 양안 인민의 이익을 위한 선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해 중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반면 라이칭더는 92공식이나 ‘양안 조례’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으며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 공격 중단을 호소한다”라는 발언을 통해 교류나 관계 개선 보다는 중국의 위협을 강조했다. 그는 연설에서 양안 간 교류에 관한 별도의 지면을 할당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중화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중화민국 국민이고,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서로 예속되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통해 서로 간의 구분을 더 명확히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번 취임 연설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은 총통부가 중도 성향 전문가들의 ‘논조를 완화하라’는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필자가 들은 바에 따르면, 취임 연설을 앞두고 총통부는 대만 내 여러 전문가들에게 취임연설문 초안을 보내 자문을 받았다고 한다. 중도 성향의 한 양안관계 전문가는 라이칭더의 연설이 중국을 자극할 만한 내용이 들어있다며 논조 완화를 조언했지만 차이잉원보다 더 급진적인 라이칭더나 법록계열(민진당 계열)의 전문가들은 중국에 대한 자극적인 내용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따라서 해당 조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③ 내각의 구성: 야당인사들이 배제된 인사
여소야대에 직면한 라이칭더는 당선 직후 “새롭게 구성될 내각은 ‘민주대연맹’의 이념에 기초해 어떤 인사든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혔다.1) 이 발언은 국민당이나 민중당과의 협력을 통해 여소야대 상황을 타개하려는 의도로 해석되었으며, 정당 간 연정을 구성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듯했다. 사실 과거에도 천수이볜(陳水扁)은 내각의 26%를 국민당 출신 인사들로 구성했고, 차이잉원 또한 첫 내각의 11%를 국민당 계열로 채우며 정당 간 협력을 보여준 바 있다. 그러나 라이칭더의 내각이 발표되자, 이러한 기대는 깨지고 말았다. 총 35명의 각료 중에는 단 한 명의 야당 인사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민진당 출신이 내각의 57%를 차지하며 역대 어느 내각보다 민진당 인사가 많았다. 또한 이번 내각은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당 인사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내각이 되었다.
그림 3. 역대 정부 첫 내각 구성 비율. 이번 라이칭더 정부들어 역대 민진당 정부 중 처음으로 국민당 인사가 배제된 내각이 구성되었다. 또한 이번 내각은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당 인사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내각이다.
둥하이 대학교(東海大學) 정치학과의 선유중(沈有忠) 교수는 이번 라이칭더 내각 구성이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야당 인사를 내각에 포함시킬 경우 라이칭더의 의사결정권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결과라고 본다. 또한 그는 라이칭더가 차이잉원에 비해 등용할 수 있는 인재풀의 폭이 좁았을 수도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차이잉원은 2012년 총통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뒤 잠시 정치에서 물러나 학계 및 다양한 사회 단체와 네트워크를 쌓아왔다. 이러한 폭넓은 인맥 덕분에 그녀의 내각은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로 구성될 수 있었다. 반면, 라이칭더는 계속해서 공직에만 있었던 만큼,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접촉할 기회가 적었다. 이러한 배경이 이번 내각의 구성이 차이잉원 정부에 비해 덜 다양하게 보이는 이유다.2)
한편, 이번 내각 구성을 두고 국민당은 “독선적이고, 늙었으며, 출신이 남부지역에 편중되었다(獨、老、南)”는 비판을 쏟아냈다.3) 민중당 역시 내각 구성이 “전문성보다는 계파 중심적”이라고 꼬집었다.4) 이러한 반응들은 라이칭더 정부가 앞으로 맞이할 정치적 여정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2002년에 당선된 천수이볜 정부 역시 여소야대 상황에서 출발했지만, 천수이볜은 국민당과의 소통에 힘썼고, 당시 입법의장이었던 왕진핑(王金平)은 민진당 정부와의 협상과 조율에 능했다. 그러나 라이칭더는 천수이볜보다 더 급진적인 정치 성향을 보이며, 현 입법원장인 한궈위(韓國瑜) 또한 왕진핑과 달리 민진당과의 협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④ 입법원 직권행사법 개정
5월 17일, 총통부가 취임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가운데, 입법원에서는 《입법원 직권행사법(立法院職權行使法)》 개정을 두고 여야 의원들 간에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다. 국민당은 입법원의 권한을 강화하는 개정안을 통과시키려 했고, 이에 맞서 민진당은 표결을 연기하며 저지하려 했다. 특히 민진당 의원들은 “토론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沒有討論就沒有民主)”5)며 다수를 앞세워 서둘러 표결을 강행하려는 야당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개정안의 내용은 방대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논란이 된 사안은 네 가지였다.
그림 4. 입법원 직권행사법 개정안 표결 과정에서 여야 간 몸싸움이 벌어졌다.
첫 번째 논쟁의 핵심은 ‘총통국정보고(總統國情報告)’ 조항으로, 총통의 국정보고를 정례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만약 이 조항이 통과된다면, 총통은 매년 3월 1일 전에 반드시 입법원에 국정보고를 해야 한다. 또한, 국가의 중대한 방침이나 중요한 정책 의제가 있을 경우, 입법원 구성원 4분의 1 이상의 동의만 있으면 언제든 총통에게 관련 보고를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민진당은 국정보고의 정례화가 지나치게 과도한 조치라고 주장하며 이에 반대했다.
두 번째 논쟁은 '입법원 모독죄(藐視國會)' 조항을 둘러싼 것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앞으로 정부 관료는 입법원에서 질의를 받을 때 자리를 임의로 비우거나 답변을 거부할 수 없으며, 정보 제공 역시 거부할 수 없다. 답변 내용이 질문의 범위를 넘어서도 안되며 질의자에게 반대로 되묻는 행위도 허용되지 않는다. 만약 이 규정을 어길 경우, 2만에서 20만 위안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국민당과 민중당은 이와 더불어, 공직자가 심문 중 허위 진술을 할 경우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형법》을 개정하려고 한다. 반면 민진당은 현행법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공직자에게 유기징역을 부과할 수 있는 새로운 조항 도입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세 번째 쟁점은 입법원의 조사권과 청문권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擴大立院的調查權及聽證權)을 담은 조항으로, 사실상 이번 입법원 직권행사법 개정안의 핵심이다. 만약 개정안이 통과되면, 입법원은 ‘조사위원회’나 ‘조사 TF’를 구성해 정부기관, 군대, 법인, 단체, 그리고 사회 관계자들에게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만약 정부기관이나 공무원이 조사를 거부하거나, 정보를 은폐할 경우, 입법원은 감찰원에 시정 요구 및 탄핵을 요청할 수 있으며, 1만에서 10만 위안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개정안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청문회 출석 거부를 금지하고 있다. 심리 중 허위 진술은 법에 따라 형사 처벌도 가능하다.
네 번째 쟁점은 입법원의 인사동의권(人事同意權)에 관한 것이다. 정부 인사에 대한 입법원의 인사청문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민진당을 비롯한 모든 정당이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당과 민중당은 감찰원과 사법원 등 더 포괄적인 인사에 대해 청문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입법원은 정부 인사에 대해 1개월간 심사를 진행할 수 있으며, 만약 제출된 후보자의 학력이나 경력이 위조된 것으로 판명될 경우 2만에서 20만 위안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사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들은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개최하거나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게 그리 낯설지 않다. 따라서 이번 갈등이 다소 생경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여러 법학자들이 개인과 시민단체에게 정보 제공을 강요하고 이를 거부한다면 처벌을 할 수 있는 이현령비현령식의 ‘국회모독죄’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즉, 기준이 애매한 국회모독죄 조항은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또한 이번 개정안에는 ‘증언을 거부할 권리’를 고지하는 조항이 빠져 있는데, 이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보장되어야 할 기본적인 권리를 간과한 것일 수 있다.
⑤ 직권행사법 개정에 반대해 일어난 파랑새 운동
국민당과 민중당이 17일과 21일에 앞선 안건들을 통과시키려 시도하자, 21일 저녁부터 입법원 앞에 수천 명의 시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른바 ‘파랑새 운동(青鳥行動)’의 시작이었다. 이 시위가 '파랑새 운동'이라 불리게 된 이유는 해당 시위가 주로 입법원 바로 옆에 위치한 '칭다오 동로(青島東路)'에서 진행된 것과 관련된다. 일설에 따르면, 파랑새(青鳥)는 행복과 복을 상징하며, 자신의 집을 지키려는 의지를 나타내는 존재이기에 이번 시위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 인터넷에 '칭다오(青島)'라는 글을 쓰자 인터넷 알고리즘이 이 단어의 트래픽을 감소시킨다는 것을 발견한 민중들이 트래픽 감소를 막기 위해 비슷한 글자인 '파랑새(青鳥)‘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6)
21일부터 시위대는 칭다오 동로, 중산남로(中山南路), 지난로(濟南路) 등 입법원을 둘러싼 주요 도로에 모여 입법원을 포위했고, 24일에는 약 1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모여 안건 통과에 대한 강력한 항의를 이어갔다. 시위에 참여한 다수의 시민단체와 중소 정당들은 논란이 된 법안의 재심의를 요구하며, 절차적 정의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연단에는 이번 선거에서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시대역량(時代力量), 대만국가건설당(台灣基進), 대만 이모 정치평등당(小民參政歐巴桑聯盟), 사회민주당(社會民主黨), 녹색당(綠黨) 등의 정당 대표들이 올라 마이크를 잡았고 대중들에게 사회적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독려했다. 파랑새 운동은 타이베이를 넘어 신주시(新竹市), 타이중시(台中市), 타이난시(台南市), 가오슝시(高雄市) 등 전국 각지로 확산되며 그 열기를 이어갔다.
그림 5. 입법원 근처 도로의 명칭. 시위대는 칭다오 동로, 중산남로, 지난로를 점령했다.
그림 6. 파랑새 운동 당시의 상황. 위 사진 속 중앙에 있는 건물의 왼쪽이 칭다오 동로, 아래가 중산남로, 오른쪽이 지난로이다.
이번 시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바로 파랑새 운동을 이끈 소셜 네트워크의 막강한 영향력이다. 파랑새 운동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시위와 관련된 정보를 얻었다. 세대에 따라 사용하는 플랫폼은 다소 차이가 있었는데, 15세에서 34세 사이의 젊은 층은 인스타그램과 스레드(Threads)를 주로 이용했고, 중장년층에서는 페이스북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러한 디지털 플랫폼들은 정보를 빠르게 확산시키고 대중을 결집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파랑새 운동의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림 7. 연령별 시위 관련 정보 습득 경로
또한 눈여겨볼 점은 2014년의 해바라기 운동과 비교했을 때 파랑새 운동이 훨씬 더 분권화된 형태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입법원 외부에는 여러 개의 연단이 곳곳에 설치되었고, 특정 단체가 마이크를 독점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에너지를 축적한 뒤 폭발적인 힘으로 분출되었었던 해바라기 운동과 달리, 파랑새 운동은 매우 빠르게 조직되어 전개되었다. 시위 참여자들 역시 명확한 구심점 없이 모여들었고, 마찬가지로 빠르게 해산하는 양상을 보였다.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그 속에서 발생하는 사회 운동 역시 변화한 것이다.
파랑새 운동은 대만 정치에서 대중의 불만과 저항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얼마나 빠르고 강력하게 표출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파랑새 운동이 촉발한 정치적 에너지는 단순히 일회성 시위로 끝나지 않을 수 있으며 향후 라이칭더 정부가 직면할 정치적 압박을 가중시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 마치며
라이칭더 정부는 앞으로도 여러 가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여소야대의 현실은 그가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들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으며, 결국 입법부와의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어쩌면 이번 입법원 직권행사법 개정을 둘러싼 갈등은 그의 리더십이 지속적인 시험대에 오를 것임을 시사하는 전초전에 불과하다. 한편, 파랑새 운동은 라이칭더를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대중의 정치적 불만이 얼마나 빠르게 확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소셜 네트워크의 막강한 영향력을 기반으로 한 대중의 정치적 요구가 커질수록, 정부는 더욱 민감하게 이를 대처해야 할 것이다. 라이칭더가 대중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입법부와의 관계를 효과적으로 조율하지 않는다면, 그의 정부는 점차 불안정한 정치 환경 속에서 흔들릴 수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라이칭더가 얼마나 유연하고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가 그의 정부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라이칭더가 이러한 불투명한 정치 환경 속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나아갈 수 있을지, 그의 리더십에 대한 시험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김명준 _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동아연구소 박사과정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중국학술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참고문헌
1)“賴清德談新內閣 柯建銘:民主大聯盟概念非聯合政府”, 中央社, 2024.1.30. 2024년 9월 22일 접속, https://www.cna.com.tw/news/aipl/202401300154.aspx
2)“1996年後新總統首任內閣比一比:賴政府非綠閣員占比低於扁蔡、內閣最老但國安團隊最年輕”, 報道者, 2024.05.16. 2024년 9월 23일 접속, https://www.twreporter.org/a/data-reporter-the-composition-of-first-cabinet-after-1996
3)“藍批新內閣「獨、老、南」 新系復辟”, 聯合報, 2024.4.13. 2024년 9월 20일 접속. https://udn.com/news/story/124003/7895795
4)“外交部長內定林佳龍 黃珊珊批新內閣派系利益導向”, 自由時報, 2024.4.12. 2024.9월 20일 접속. https://news.ltn.com.tw/news/politics/breakingnews/4638991
5)“綠喊「沒有討論、沒有民主」 他竟回這句”, 今日新聞, 2024.05.24. 2024년 9월 24일 접속, https://tw.news.yahoo.com/%E7%B6%A0%E5%96%8A-%E6%B2%92%E6%9C%89%E8%A8%8E%E8%AB%96-%E6%B2%92%E6%9C%89%E6%B0%91%E4%B8%BB-%E4%BB%96%E7%AB%9F%E5%9B%9E%E9%80%99%E5%8F%A5-060846068.html
6)“為何叫「青鳥行動」?原來是為「對抗演算法」”, FTNN新聞網, 2024.05.28., 접속일자: 2024년 9월 20일, https://ynews.page.link/F5E9u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그림 1. 필자 작성
그림 2. 필자 작성
그림 3. 필자 작성
그림 4. https://udn.com/news/story/6656/7971556
그림 5. 필자 작성
그림 6. https://www.twreporter.org/a/legislature-voting-on-controversial-political-reforms-2
그림 7. https://twstreetcorner.org/2024/05/28/chun-yin-leeren-wei-changjia-ping-ch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