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편집자의 말]
2024년 4월호부터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이 중국 윈난대학 인류학과(雲南大學人類學系)와 함께 수행한 ‘중국 남서부 국경지역 공동연구 사업’의 연구성과 보고서에 대한 번역·요약을 연재한다. 중국-라오스, 중국-베트남 국경 문제에 관련된 해당 연구사업의 지난 1단계 연구성과는 이미 한국어로 번역되어 『국경 마을에서 본 국가』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된 바 있다. 중국-미얀마 국경에 대한 현재 2단계의 연구성과는 중국어판 연구성과 보고서의 형태로 중국학술원에 소장되어 있다. 해당 연구성과를 널리 공유하고 확산하기 위해, 특히 국경 및 초국경 이동 관련 분야의 연구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성과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여 <관행중국> 웹진을 통해 공개한다. 이번 호에서는 룽안촌 초국경 경제활동의 한계와 향후 지속 가능한 발전의 도전과 과제를 분석한다.
[내용요약]
제3장 중국-미얀마 국경지역 농촌마을의 초국경 경제활동 분석(하):
룽안촌 생계모델의 한계와 미래의 과제
1. 전통적 노동 조직 형태의 해체와 '고령화 농업(老齡化農業)'의 등장
전술했듯이, 사탕수수 재배업이 벼농사를 대체했지만, 사탕수수 수확기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탕수수 재배업의 초창기(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에는 벼농사의 전통적인 노동 조직 형태인 품앗이(換工)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사탕수수 농부들의 기억에 따르면, 당시 품앗이로 이루어진 공동노동의 범위는 촌민소조 단위(자연마을)로 한정되어 있었으며, 가깝게 거주하고 사이가 좋은 9~12개 농가가 사탕수수 수확 작업팀을 구성하여 각 농가가 제당 기업과 약속한 납품증(交貨發票)에 명시된 납품기한에 맞춰 서로 수확을 도왔다고 한다. 현재 사탕수수 재배 과정에서 이러한 품앗이 관행은 사탕수수 모종 심기 과정에만 국한되어 있다. 사탕수수 재배 농부에 따르면 1무(畝)의 사탕수수 모종 심기를 도와주면 하루에 280위안, 논의 배수 작업과 및 비닐 멀칭 작업까지 포함하면 하루에 380위안을 받는다고 한다. 품앗이 관행이 사실상 고용 관계로 변모한 셈이다. 또한, 이러한 품앗이에 참여하는 사람은 대부분 40세 이상의 중장년층이며, 이들에게 품앗이는 부수입(外快)을 획득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전통적 노동 조직 형태가 사라진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노동력 부족이다. 전반적으로 볼 때, 중국 농촌 노동력이 도시로 대거 유입되면서 농촌 노동력의 상대적·일시적 부족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룽안촌의 노동력 부족은 구체적으로 연령별 노동력 부족과 성별 노동력 부족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이중적 노동력 부족을 일으킨 주범은 마약이었다. 사탕수수 베기 과정은 체력과 힘이 좋은 젊은 노동자들이 주축이 되어야 하는데, 사탕수수 경제가 룽안촌의 주요 산업으로 성장했던 2000년대 후반은 국경 지역에서 마약 밀수가 만연하던 시기와 맞물려 있었다.
이 시기 룽안촌의 상당수 청년이 마약 중독자로 전락했고, 가용(可用) 청년 노동력이 크게 줄어들었다. 또한, 사탕수수 베기 과정에서 '트럭 싣기' 작업에는 건장한 남성이 필요한데, 여성들은 트럭에 올라가서 위로 옮긴 사탕수수 묶음을 받아 주는 작업을 담당할 수 있지만, 몇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사탕수수 묶음을 땅에서 트럭까지 위로 옮기기에는 체력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마약 중독자의 대부분은 남성 청년들이었기 때문에 같은 품앗이 작업팀의 여성들이 트럭 싣기를 담당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적재 효율성이 떨어지고 제당 기업과 약속한 납품기한을 지키지 못해 납품을 거부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는 결국 품앗이 작업팀의 내부 갈등과 분열로 이어졌다. 이후 일부 농가들은 트럭 싣기를 국경선인 남와강(南窪江) 건너편 미얀마 마을의 청년에게 맡기기 시작했고, 이는 나중에 대규모 미얀마인 노동자 고용으로 발전했다.
미얀마인 노동자들이 유입되면서 룽안촌의 사탕수수 재배는 점차 중·노년 농민이 주축이 되는 일종의 ‘고령화 농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중·노년 농민은 모종 심기와 중간 관리 단계에서 가벼운 노동력만을 직접 투입한다. 힘든 육체노동이 필요한 수확 단계는 미얀마인 사탕수수 수확 팀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따라서 국경 지역의 마약 밀수 상황이 호전된 이후에도 룽안촌의 청년층은 사탕수수 재배에 종사하지 않고 도시에서 취업하거나 소규모 사업을 하는 것을 선호한다. 룽안촌 사탕수수 경제의 고령화 상황은 미얀마인 노동자를 모집한 한 궁터우(工頭)의 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사탕수수 재배에는) 노동력도 없고, 완전히 고령화되었죠. 일하시는 분들은 나이 드신 분들이고, 젊은 사람들은 농사할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할 수 있죠. (옆에 있는 중년 농부를 가리키며) 저 나이 또래의 사람도 몇몇 안 되니까요. 젊은이에게 일을 시키면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하며 아예 집에서 놀거나 아니면 일하러 도시로 나가죠. 미얀마인 노동자들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사탕수수를) 베고 (트럭에) 싣고 팔아야 할지 진짜 모르겠어요. 정말로….”
2. ‘외지 노동 경제(打工經濟)’에 패배한 사탕수수 경제
중국 남부지방 전통적인 벼농사는 농촌 노동력을 거의 무한정 투입하여 노동력 비용이 거의 제로에 가까웠는데, 황쭝즈(黃宗智/Philip C. C. Huang)는 이러한 현상을 ‘내권화/과밀화(內卷化/過密化, involution)’라고 부른다. 개혁개방 이전에는 도농 간의 이원적 호구제도(戶口制度), 식량에 대한 국가 일괄 수매·일괄 판매 제도(糧食統購統銷制), 인민공사체제(人民公社體制) 등의 복합적 영향으로 농촌 노동력은 여전히 토지와 농업 생산에 단단히 결속되어 있었으며 농촌 노동력 투입 비용은 여전히 제로에 가까운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개혁개방 이후의 농촌 제도 변혁, 특히 2000년대 중반 수천 년 동안 농민과 토지를 묶어 왔던 농업세가 폐지되면서 농민은 직업 선택 및 이동의 자유를 확보했다. 이는 도시와 산업의 발전에 필요한 노동력을 매우 저렴하게 공급하는 효과를 가져온 한편, 농민의 입장에서는 거의 제로에 가까운 기회비용으로 외지나 도시로 나가서 단순 노무나 소규모 사업에 종사할 좋은 기회가 생겨났다. 따라서 이른바 ‘외지 노동 경제(打工經濟)’는 전통적인 양곡 재배를 대체하여 농촌의 가장 중요한 생계 수단으로 빠르게 부상했다.
연구팀은 사탕수수 농가 등 사탕수수 재배 관련 행위 주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탕수수 재배업의 비용과 수입을 계산한 결과, 1무의 사탕수수 재배를 통해 1년에 얻을 수 있는 순소득이 약 2,000위안 정도임을 알게 됐다. 연구팀은 또한 화학비료 과대 투하로 인한 생산량 감소와 더불어 해마다 생산량 감소 경향을 보인다는 점도 발견했다. 룽안촌의 경작지 면적은 5,585무로, 이 중 85% 이상인 4,785무가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있다. 2017년 마을 인구 통계에 따르면 마을 인구는 2,455명으로 1인당 경작지 면적은 약 2.2무라고 한다. 2017년 가구등록 통계에 따르면 마을에는 600여 가구가 등록되어 있으며 가구당 인구수는 약 4명이기에, 이에 따르면 농가별 평균 재배 면적은 9무에 가깝고, 한 가구는 연간 20,000위안 미만의 순소득을 창출할 수 있다는 계산 결과가 나온다.
그러나 이 결과는 현실과 매우 다르다. 현지 관행에 따르면, 1980년대 농지도급제도(承包制)가 시행된 이후 적어도 한두 차례의 분가(分家)가 이루어졌고, 분가 후 아들이 많은 일부 농가는 2~3무의 농지만 재도급을 받았다. 또한, 호적 등록이 따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함께 살면서 도급 농지를 많이 보유하는 경우도 다수여서 평균치보다 농지를 더 많이 보유하는 농가도 있다. 따라서 사탕수수 농사의 실소득 격차도 작지 않다. 물론, 도급 농지 면적이 큰 농가도 사탕수수 재배만으로 연간 20,000위안 이상의 소득을 창출하기 어렵다는 것이 룽안촌 사람들의 공유된 인식이다.
이에 비하면 외지 도시에서 노동으로 얻을 수 있는 소득은 사탕수수 재배보다 훨씬 높다. 상당수 촌민의 제보에 의하면, 인근 룽촨현(隴川縣)과 비슷한 중소도시에서 일하더라도 임금수준이 한 달에 1,500~2,000위안, 동부 연해 지역에서 일하면 그보다 2배 정도 더 높다고 한다. 도시 물가가 더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마을 사람들은 외식비용과 숙박비 등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같은 도시 내 부부 맞벌이를 선호한다. 연구팀의 추산에 따르면, 동부 연해 도시로 일하러 간 룽안촌 부부는 연간 50,000위안 이상의 순소득을 가져올 수 있고, 마을 주변 중소도시에서 일하는 룽안촌 부부 역시 30,000위안 이상의 순소득을 얻을 수 있다. 모두 사탕수수 재배의 소득수준보다 높다.
소득수준의 증대는 교육, 의료, 주택 및 각종 경조사 등의 분야에서 마을 주민들의 소비 관련 부채의 증가를 초래하고, 이는 결국 마을 주민들이 더 높은 임금을 위해 외지 도시로 나가도록 견인했다. 일례로, 의무 교육이 보급되면서 이제 농촌 지역에서도 청년층의 대학 교육이 필수가 됐다. 이로 인해 농촌 청년 노동력이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농촌 가정의 교육비 지출도 대폭 증가했다. 또한, 경조사비도 많이 증가해 현재 현지 경조사비의 비공식적 하한선은 100위안으로 인상되었다. 대부분 마을 사람들은 서로 아는 사이이고 친척 관계이기 때문에 한 가정에서 1년에 적어도 5,000위안 정도의 경조사비가 지출된다. 최근 중앙 정부가 반빈곤(扶貧) 정책을 대대적으로 추진한 이후 지방 정부는 룽안촌에 대한 농촌 주택 재건축 계획을 세우면서 마을의 구식 주택을 일괄적으로 설계된 신식 주택으로 재건축하도록 요구했다. 정부는 이른바 '국가 반빈곤 정보시스템 등록 빈곤가구(建檔立卡戶)'에 대해 100,000위안 이상의 보조금을, 등록 대상이 아닌 가구에는 60,000위안의 저금리 대출을 제공했으나, 정부가 일괄적으로 설계한 신식 2층 주택을 건설하려면 비용이 200,000위안을 넘기에 정부 지원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마을 주민들은 부족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빚을 갚고 늘어나는 소비 수준에 맞추기 위해 노인을 제외한 농가의 전체 노동력을 동원하여 외지 도시로 나가서 일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사탕수수만 심으면 돈은 빨리 들어올 수 없어!”라고 하는 한 마을 주민의 말은 이러한 실정을 잘 보여 준다.
3. 룽안촌 사탕수수 재배업의 미래 과제
국경을 넘는 미얀마인 농업 노동자들의 사탕수수 수확 참여는 룽안촌의 청장년 노동력 부족 문제를 대폭 완화하고 고령화된 사탕수수 농업에 새로운 활력을 부여했다. 미얀마 남부에서 온 계절 노동자와 국경선 건너편 미얀마 마을에서 온 임시 고용 노동자의 도움으로 외지 도시에 나갈 여력이 없는 노인 한 명은 약 7무의 사탕수수 농장을 경영할 수 있다. 화학비료와 제초제의 대량 사용은 또한 육체노동을 대폭 감소시키므로, 현재 사탕수수 농사는 ‘게으른 농사’라고 불릴 정도로 수월해졌다.
사탕수수 농사가 룽안촌의 경제 구조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는 여전히 ‘생계형 농업’에 불과하며, 대다수 농촌 가구의 소비 지출을 실질적으로 지탱하는 것은 외지노동이라는 것이 룽안촌의 현실이다. 하지만 사탕수수 농업은 노령, 질병, 장애 등 다양한 이유로 외지 도시로 나갈 수 없는 농촌 취약계층의 대안적 생계 수단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사탕수수 농사와 제당 산업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제당 자본과 농민 사이에는 분명한 불평등 권력 관계가 존재하며, 이는 납품이 연체된 경우 제당 공장이 사탕수수 납품을 거부하는 사례 등에서도 잘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현지 제당 기업은 국영 기업이라는 지위와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사탕수수 농가의 생계를 안정시키고 위험을 어느 정도 분담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는 점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사탕수수 농사가 생계 농업으로 유지될 수 있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 앞서 미얀마인 노동자의 입국과 노동 과정에 대한 설명에서 중국인 궁터우와 마을 주민들이 소득수준 및 에스닉·민족 등의 이유로 미얀마인 노동자를 차별하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중국인 마을 주민과 미얀마인 노동자는 모두 ‘생계유지’라는 공통의 목표 아래 같이 움직이는 '약자'와 '더 약한 자'이며, 생계유지를 위해 노동하는 과정에서 서로 협력하면서도 불평등하고 취약한 상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룽안촌의 사탕수수 재배업은 오랫동안 제당 산업을 통해 중국 산업 시스템과 세계 시장에 편입되고 국가별 임금 격차를 통해 미얀마에서 많은 노동자를 유치해 왔지만,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생계형 농업이다. 생계형 농업에는 경제학의 일반 원리인 이윤 추구 원리가 아니라 도덕 경제학의 ‘생존제일’ 원리가 작동하기 때문에 사탕수수 재배업은 양잠, 연초재배 등 수익성이 훨씬 높은 대체 산업과의 경쟁에도 불구하고 낮은 위험과 안정적인 수익으로 룽안촌의 농업구조를 계속 주도해 왔다.
룽안촌 사탕수수 재배업의 미래에는 다양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첫째, 초국적 노동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국경 통제가 강화되거나 국경이 폐쇄되면 사탕수수 재배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이미 코로나 대유행 시기 실제 발생했으며, 미얀마 북부의 군사적 대치 상황 장기화로 인해 국경 마을의 미얀마인 노동력 공급 문제는 장기간 지속될 것이다. 코로나 대유행 이후 미얀마인 노동자들의 입국이 차단된 룽안촌의 농업 경제 구조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는 앞으로 추가 조사를 통해 실증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둘째, 장기적으로 볼 때, 미얀마 노동자의 임금은 지속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유지될 수 없다. 따라서 노인 등 농촌 취약계층이 생계가 더 불안정한 미얀마인 노동자에 대한 착취에 의존하는 생계유지 모델은 앞으로 지속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셋째, 사탕수수 농업은 생계형 농업이지만, 전통적인 벼농사처럼 노동력을 무제한으로 투입하는 것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화학비료, 농약 및 기타 자본재 투입에 크게 의존하는 게으른 농사이다. 화학비료, 살충제, 제초제의 과다 사용은 토양의 비옥도를 약화함으로써 이미 수확량 증가의 정체를 유발했다. 이와 더불어 토양 오염과 사탕수수 단작화로 인해 잠재적인 생태 및 환경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현재 사탕수수 산업에 관련된 주요 행위자들은 불확실성으로 인한 위험을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현지 제당 기업은 이 지역의 사탕수수 산업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탕수수 베기 과정의 노동력 수요 문제를 해결해야 현재의 생계형 농업 함정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지 조사 과정에서 연구팀은 현지 제당 기업이 평탄한 미얀마 남부 지역에서 농기계로 사탕수수 베기 작업 수행이 가능한 표준화 농장을 조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는 향후 초국경 사탕수수 재배의 대안 모델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지만, 룽안촌과 같이 언덕이 많은 지형과 농민들이 경작하는 땅의 영세화·파편화 등 특성으로 인해 기계화 추진에 한계가 있다. 마을 사람들도 중장기적으로 도급권 양도나 임대 등의 방법으로 농지를 집중적으로 확보하여 사탕수수 전업농을 육성하지 못하면 기계화된 사탕수수 재배는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공통적인 인식이 있다.
또 다른 방안은 앞서 언급한 지방 정부가 추진하는 사탕귤(砂糖橘), 양잠 등 대체 품목 재배·양식을 통한 농업 구조조정이다. 그러나 노동력 투입이 적고, 기업과 생산 위험을 공동 분담하며, 낮지만 안정적인 소득 확보가 가능하다는 이 3가지 요건을 동시에 충족해야만 사탕수수 재배를 비로소 대체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앞서 언급한 대안 산업은 이 3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한 가지 요건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룽안촌의 농촌 경제 구조와 외지노동에 종사하지 못하는 취약계층의 생계유지에 있어 미얀마 노동자들의 중요성을 살펴본 결과, 우리는 사탕수수 산업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해결책이 룽안촌 주민과 미얀마 노동자들 간의, 즉 약자와 더 약한 자 간의 착취적 관계를 각자의 비교우위를 살리는 평등한 연대로 전환하는 데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연대의 전제 조건은 현재 룽안촌의 생계형 농업 모델의 질적인 전환이다.
한편으로는, 현재 룽안촌의 농가경제가 외지노동에 크게 의존하여 많은 농외소득을 얻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농가 경제가 영세화·파편화된 농지 도급체제에 기반함으로써 생계형 농업에 대한 경로 의존성이 강하게 보인다. 결국, 마을의 젊은 세대는 농업과 육체노동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심각하고 근면 정신을 잃고 있으며, 근면 정신을 가진 미얀마인 노동자는 매우 싼 값에 자신의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다. 즉, 농업구조에서 사탕수수 재배업의 장기적 지배는 미얀마인·중국인에게 모두 불리한 딜레마를 초래하였다. 사실 룽안촌의 딜레마는 중국-미얀마 국경농촌 딜레마의 축소판일 뿐이다. 미얀마 노동자의 유입은 청장년 노동자의 부족과 유출이 초래한 문제를 부분적으로 완화했을 뿐, 농촌 생계모델의 근본적인 전환을 막고 중국 국경농촌 취약계층이 생존을 위해 더 약한 약자이자 타자(他者)인 미얀마인 노동자를 착취하는 비합리적이고 비도덕적인 경제 구조를 구성하고 유지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적인 초국경 교류에서 심각한 불평등으로 인식될 수 있고, 일대일로와 국경 인프라 건설 등 중국 정부가 극히 자랑하고 홍보하는 중국적 질서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훼손할 것이다.
리페이 _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중국학술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1) 왕위에핑·장정아·안치영·녜빈 지음, 2022, 『국경 마을에서 본 국가』, 인터북스.
2) 역주: 현지인들은 미얀마인을 가리킬 때 ‘老缅(라오 미얀)’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표현은 어느 정도 경멸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 현지인의 구술 내용에서 나타난 이 표현을 미얀마인이라고 번역한다.
3) 황쭝즈는 문화인류학에서 유래한 involution 개념을 차용하여 중국 화북 지역과 양쯔강 삼각주 지역의 생계형 소농 경제를 분석할 때, 각각 내권화 또는 과밀화라고 표현한다. 두 개념의 공통점은 단일 요소(특히 노동력)의 투입이 과도하게 중복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黄宗智(Philip C. C. Huang), 1986[1985],『华北的小农经济与社会变迁』, 中华书局, 黄宗智(Philip C. C. Huang), 1992[1990], 『长江三角洲小农家庭与乡村发展』, 中华书局 참조.
4) 周大鸣, 2006, 「农村劳务输出与打工经济」, 『中南民族大学学报(人文社会科学版)』 26(1), 5~11쪽.
5) 가족 분리는 전통적인 종법(宗法) 관념에 따라 모든 남성 상속인(아들) 사이에 평등 분배 원칙이 채택되고 특정 이유로 기존 가정의 토지, 재산 및 주택을 분배하여 독립한 가구를 새로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사실상 일종의 상속 관행이다. 이에 대해 손승희, 2017, 「청·민국시기 산서지역 분가와 상속 현실」, 『동양사학연구』(140), 453~493쪽 참조.
6) 중국의 민법 체계는 근대 이후 여성의 상속권을 인정해 왔지만 농촌 지역의 분가, 특히 토지 및 재산 분할 실천에는 남성만 참여 가능한 경우가 대다수이다. 현재 농지 도급의 실천에도 딸들이 시집갈 때 농지 도급권을 포기해야 하고, 며느리들은 시집이 소재한 마을로부터 새로운 도급 농지를 받을 수 없다. 이러한 종법 관념의 지속과 성적인 불평등 관행은 중국 본토뿐만 아니라 대만을 비롯한 다른 중화권 사회에서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에 대해 張小虹, 2020,「姑姑的官司:分家析產與姓/性別政治」,『女學雜志: 婦女與性別研究』(46), 1~39쪽 참조.
7) 실제로 중국 중동부의 농촌 지역에서도 2010년대 이전의 상황은 룽안촌과 비슷했다. 이에 대해 黄宗智, 2006a, 「制度化了的“半工半耕”过密型农业(上)」, 『读书』(2), 30~37쪽, 黄宗智, 2006b, 「制度化了的“半工半耕”过密型农业(下)」, 『读书』 (3), 72~80쪽 참조.
8) 詹姆斯·斯科特[James C. Scott], 2001[1976] 著, 程立显等译, 『农民的道义经济学』, 译林出版社, 13~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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