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초 인기리에 종영되었던 중국 드라마 ‘언어부(嫣語賦)’는 몇 달 지나지 않아 한국의 OTT 서비스에서 방영을 시작했다. 이 드라마의 제목인 ‘언어부’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여주인공 추언(秋嫣)과 그가 즐겨 읽는 공안소설(公案小說)을 나타낼 뿐 아니라, ‘언어’라는 동음이의어를 패러디했다는 이유로 주목받았다. 이 드라마에서 더 화제가 되었던 것은 붓을 이용한 서체와 그림 오프닝이었다. 세심한 연출과 색채가 돋보이는 이 드라마의 감독은 대만 타이베이(臺北) 출생의 딩잉저우(丁英洲)다. 딩잉저우는 1997년 중국으로 건너간 이래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중국 드라마계에 알려졌다고 한다.
사진 1. ‘언어부’ 오프닝의 한 장면, 감독 딩잉저우 옆 ‘중국대만’이라고 표시한 부분이 눈에 띈다.
딩잉저우가 대만에서 중국으로 이주한 1990년대 후반은 중화권 대중문화에서 여러 지각변동이 일어난 시기였다. 1970년~80년대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끌었던 홍콩 드라마나 영화, 1987년 계엄 해제 이후 장르의 다양성이 확보되었던 대만 드라마 등도 잠시,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많은 홍콩의 영화제작자나 TV 프로듀서들이 중국 대륙으로 향했고, 1990년대 중반 갑자기 늘어난 TV 채널들 속에서 대만 정부는 대만 드라마를 발전시키기보다 외국 드라마를 수입하거나 드라마 제작을 아웃소싱하는 형태로 바꾸었다. 이때 대만 배우들과 제작자들이 중국 대륙과 합작하기 시작했고, 그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드라마 ‘황제의 딸(還珠格格, 1998)’이다.1) ‘황제의 딸’은 대만의 CTV와 중국의 후난TV가 합작하여 만든 드라마이다. 극본은 대만의 유명 작가인 충야오(瓊瑤)가, 주연은 대만의 인기배우였던 쑤유펑(苏有朋), 린신루(林心如)와 중국 배우 자오웨이(赵薇), 판빙빙(范冰冰) 등이 맡았다. 당시 중국 대륙으로 진출했던 초창기 대만 배우인 쑤유펑과 린신루는 ‘황제의 딸’에서 두 배우만이 타이베이 출신이었기에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황제의 딸’의 성공으로 중국과 대만의 합작 드라마는 점점 많아졌고, 대만 드라마도 중국 대륙으로 수출할 기회가 늘어났다. 이는 중국과 대만 사이에서 일어난 일만은 아니었고, 1990년대 중반부터 급변하기 시작한 중국 드라마 환경 때문이기도 했다. 1995년 중국 정부는 민간자본의 TV 드라마 제작을 허가했으며,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의 중국 시장 진출을 허용했다. 드라마의 제작·광고·방영 등 전 과정에서 경쟁이 일어났으며, 드라마의 유형이 더욱 다양해졌다. 중국 공산당의 근현대 혁명을 다룬 이전의 역사극과는 달리 각 시대별 인물을 그린 고전역사극이 등장했다. 이러한 중국 드라마 시장의 변화와 맞물려 홍콩과 대만의 드라마 제작자들과 배우들이 중국으로 진출하게 된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 중국의 고전역사극은 고장극(古裝劇)의 형태로 변형된다. 고장극은 크게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는 역사극과 허구적 요소가 가미된 고전극으로 크게 나뉜다.2) 특히 사료를 검증해야 하는 부담감을 가지는 역사극보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고전극이 인기를 끌게 되었으며, 홍콩과 대만의 무협 제작자들이 이 고전극을 제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홍콩과 대만의 무협 드라마 장르의 영향도 받게 된다. 1980~1990년대 주로 홍콩과 대만에서 제작되던 진융(金庸)의 무협 시리즈물도 2000년대 이후에는 점차 중국 대륙에서 만들어지게 되었다.
대만 배우 린신루와 쑤유펑도 타이베이에서 상하이와 베이징으로 이주해 본격적으로 중국 드라마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 드라마에는 1명 이상의 중국 대륙 출신 배우들을 주연으로 기용해야 한다는, 대만 배우에게 불리한 조건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에서 조금 인지도를 얻은 스타들은 대만을 떠나 중국으로 향했다. 또한 당시 중국에는 홍콩 드라마와 외국 드라마처럼 대만 드라마의 황금 시간대(저녁 7시~10시) 방영을 금지한다는 조항이 있어 이 드라마들의 방영 횟수를 점점 줄여나가는 추세였다. 이에 대만 배우들은 직접 중국 드라마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 더 좋다고 느끼고 있었다.
반면 2000년대 대만 드라마는 아이돌 드라마와 향토극(鄕土劇)이 강세를 띠었다. 2001년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아이돌 드라마 ‘유성화원(流星花園)’은 F4라는 신세대 스타들을 발굴하며 원작 만화보다 더 아시아에서 인기를 끌었다. 대만 아이돌 드라마는 젊고 잘생긴 스타들과 낭만적 사랑을 꿈꾸는 줄거리, 그리고 드라마에 파생된 상품을 함께 출시한다는 특징이 있다. ‘아재간정천기청(我在墾丁天氣晴, 2007)’과 ‘운명처럼 널 사랑해(命中注定我愛你, 2008)’3)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대만에서 많이 사용되는 여러 언어들로 만들어지는 향토극은 대만 사람들의 일상을 떠올리게 하면서 크게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만에서 유명해진 F4와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남주인공 롼징톈(阮經天)은 이 대만에서의 인기를 뒤로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 대륙으로 진출했다.
중국으로 이주한 대만 배우들은 점차 변모해가는 중국 고장극을 중심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나갔다. 린신루는 상하이를 중심으로 ‘미인심계(美人心計, 2011)’ 등의 궁중암투극에 출연했으며, 대만에서 가수로도 활동한 훠젠화(霍建華)는 중국 진출 후 연기에 더 집중하며, ‘선검기협전3(仙剑奇侠传三, 2009)’, ‘소오강호(笑傲江湖, 2013)’, ‘화천골(花千骨, 2015)’ 등에 출연했다. 쑤유펑은 점차 드라마 출연보다는 영화 제작 쪽으로 관심을 돌리게 된다. 대만에서 신인이었던 짜오유팅(趙又廷)은 데뷔작인 대만 드라마 비자영웅(痞子英雄, 2009)으로 금종장(金鐘獎)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유명해졌지만, 중국으로 건너가 꽤 긴 무명시절을 보냈다. 중국의 인기배우 가오위안위안(高圓圓)과 양안결혼을 하면서 ‘가오위안위안의 남편’으로 알려졌고, 2017년에서야 ‘삼생삼세 십리도화(三生三世十里桃花)’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인지도를 높였다.
“저는 정말 모두를 격려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대만에서 열심히 드라마를 찍지만, 돈을 많이 벌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륙으로 건너갑니다. 그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만에 남아 연기하는 사람들.... 장관님께서 지원을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방송국에서도 여러 유형의 드라마들을 제작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4)
2016년 대만 드라마 ‘그토록 푸르러(一把青, 2015-16)’로 금종장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우캉런(吳慷仁)의 소감에서도 알 수 있듯이, 2000년대 이후 많은 대만 배우들이 중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우캉런처럼 대만에 남은 배우들은 대만 드라마의 다양화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대만에서 ‘연애의 조건(我可能不会爱你, 2011)’을 마지막으로 아이돌 드라마의 인기가 주춤하면서, ‘마취풍폭(麻醉風暴, 2015)’ 등의 의료드라마, ‘그토록 푸르러’, ‘보랏빛 다다오청(紫色大稻埕, 2016)’ 등의 역사드라마, ‘우리와 악의 거리(我們與惡的距離, 2019)’처럼 최근 대만의 사회문제를 그린 드라마 등 그 종류가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또한 넷플릭스(Netflix)나 HBO Asia 등 다양한 글로벌 OTT 서비스들과 연합하여 대만 드라마를 대만 밖에 홍보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다.
특히 2021년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화등초상(華燈初上)’은 드라마 제작자로 변신한 린신루의 성공적인 귀환 작품이었다. 그동안 중국 대륙에서 주로 활동하던 린신루는 2016년 결혼, 연이은 양안관계의 변화에 따라 중국에서 ‘대만 독립’ 배우라는 인터넷 루머에 시달리고 있었다. 대만에서도 오랫동안 중국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1980년대의 타이베이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스릴러극 ‘화등초상’에서 제작 및 주연을 맡음으로써 다시 대만 드라마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사진 2. ‘화등초상’의 한 장면
화등초상은 그동안의 대만 드라마 유형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을 지녔다. 이 드라마는 타이베이시의 일본식 주점에서 일하던 한 여인의 살인사건을 그리는 듯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1980년대의 타이베이시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그려지고 있다. 1980년대 대만을 강타했던 덩리쥔(鄧麗君)의 노래뿐 아니라 대만의 향토 가요, 일본 대중문화의 영향, 지금도 일본식 가게들이 많은 타이베이시 중산구(中山區)의 풍경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 2000년대와 2010년대의 린신루가 중국 대륙에서 주로 역사 속의 인물 등에 집중했다면, 2020년대의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타이베이의 현대에 주목하는 듯 보인다. 이 드라마는 1980년대의 대만을 그리워하는 시청자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새롭게 등장한 추리물로서의 대만 드라마의 지평을 넓혀 대만뿐 아니라 홍콩, 한국의 시청자들에게도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정작 1980년대 타이베이를 풍미했던 가수이자 배우였던 쑤유펑은 베이징에 남는 길을 택했다. 그는 영화감독이자 제작자로 중국에서 액션 영화를 촬영하거나 후배들을 양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는 이제 대만 악센트(台灣腔)를 사용하지 않고 베이징 악센트(北京腔)를 사용한다. 여전히 린신루나 다른 친구들을 만나러 타이베이에 들르지만, 장기간 머무르지 않는다. 짜오유팅과 가오위안위안도 중국 대륙의 코로나 19가 심했을 때는 타이베이에 꽤 체류했지만, 다시 상하이로 돌아가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다. F4의 리더 옌청쉬(言承旭)도 중국 대륙에 머무르는 기간이 더 길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린신루의 대만 드라마 도전은 중국 대륙에서 활동하는 대만 동료들을 다시 타이베이로 불러모으고 있다. 대만을 떠나지 않은 우캉런도 동참했고, 중국 드라마 ‘상양부(上阳赋, 2021)’와 ‘천룡팔부 2021(天龍八部 2021)’의 주인공 양유닝(楊祐寧)도, 중국 대륙으로 진출했었던 궈쉐푸(郭雪芙)도 대만으로 돌아왔다. 이 대만 스타들은 왜 귀환하는가? 코로나 19 때문에 고향에 돌아왔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변화하는 양안 관계나 달라지는 중국과 대만의 드라마 제작 환경 때문은 아닌지 되물을 일이다. 그리고 아이돌 드라마와 향토극에서 스릴러·의료·법정 등으로 그 영역이 광범위해지는 대만 드라마와 다양한 역사극·현대극 등이 제작되는 중국 드라마의 변화에도 더욱 관심을 가지며 지켜봐야 할 일이다.
【아시아의 보물섬, 대만 9】
문경연 _ 창원대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1) 이 드라마의 원래 명칭은 ‘환주격격’이지만, 1999년 당시 인천방송이 ‘황제의 딸’이라는 이름으로 수입·방영하였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황제의 딸’로 부르기로 한다.
2) 고윤실, 2020, 드라마를 보다 중국을 읽다, 나름북스, pp.150-151.
3) '운명처럼 널 사랑해’처럼 중화권 드라마가 한국에서 수입·방영되며 이름이 바뀐 경우, 한국에서 수정된 드라마 이름과 원래 드라마 이름을 병기할 것이다.
4) 우캉런의 수상 소감을 필자가 의역한 것이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드라마에서 직접 캡처한 화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