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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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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감자들’의 말할 수 없는 비밀: 홍콩 시민사회의 지속과 난관 _ 김주영

홍콩에서 주로 사용되는 광동어(廣東語)의 여러 흥미로운 속어 중 작은 감자(小薯仔)’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혹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최근의 홍콩 상황이 염려스러운 나는 가끔 홍콩의 친구들에게 별다른 문제가 없는지 안부를 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은 나는 작은 감자라서 괜찮다라며 우스갯소리로 너스레를 떨었다. 주목받는 시민사회 활동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아직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수많은 작은 감자들과 달리 홍콩에서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높여왔던 활동가들 대부분은 다양한 이유로 체포와 수감생활을 면치 못했다. 홍콩을 떠나거나, 떠나지 못하면 체포될 위험에 처했던 유명한 활동가들이 국가보안법 하의 홍콩에서 활동을 이어가기 쉽지 않은 형국이다.

 

홍콩의 독립언론인 홍콩자유언론(Hong Kong Free Press)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20206월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이래로 2년이 지난 현재 약 60여 개의 시민사회단체가 해산했다. 2003년 이후 71일 반환기념일마다 다양한 시민사회단체의 연합 행진을 조직했던 홍콩민간인권전선(民間人權陣線), 매년 64일마다 천안문 사건 추모집회를 주관했던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香港市民支援愛國民主運動聯合會) 등과 같은 단체들도 버티지 못했다. 홍콩 시민사회의 결집과 의제 형성에 기여했던 단체들의 해산과 활동가들의 수감은 사회운동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한 언론보도는 홍콩 시민사회를 구축하는 데는 몇 십 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파괴되는 데는 몇 달이면 족했다는 제목으로 홍콩의 현 상황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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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2016년 7월 1일 시민들의 행렬과 지켜보는 경찰의 뒷모습. 

   이제 매년 열렸던 7월 1일의 행렬은 예전처럼 대규모로 열리지 않는다

 

파괴라는 표현이 다소 격하게 느껴질지라도 유명 활동가들의 체포와 시민사회단체의 해산이 홍콩 시민사회의 존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정부는 시민사회단체가 자진 해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하고, 체포와 기소를 통해 감시의 대상으로 떠오르지 않은 작은 감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타인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감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가시화되는 순간 이들은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그렇다면 여전히 홍콩에 남아 살아가고 있는 작은 감자들 혹은 홍콩을 떠났지만 지지를 표명하고 싶은 작은 감자들은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가야 하는 걸까.

 

20219월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가 해산을 발표하며 이제 홍콩사람들이 스스로 예전처럼 64일을 추모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라고 전했다. 거리로 나와서 모두가 함께 추모행사에 참여할 수는 없지만, 각자의 마음속으로 64일의 의미를 되새길 정도의 정치적 의식이 홍콩인들 사이에 싹텄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는지 모르겠다. 이제 홍콩의 저항은 이름 모를 작은 감자들이 자연스럽게 실천해야 하는 일상이 되어버렸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2019년 범죄인의 중국 송환에 반대하며 홍콩인들이 조직했던 사회운동에서 나타난 여러 새로운 시위 전략들은 이미 작은 감자들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리더 없는저항으로 불리곤 했던 2019년 시위에 참여한 홍콩인들은 서로의 이름도 묻지 않았다. 당시 이름 모를 집합체로서 대중은 그 어떤 이름난 활동가들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나는 여전히 홍콩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사람이 있는 한 홍콩 시민사회가 완전한 붕괴에 직면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막연하지만 희망적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다 같이 불타버리겠다고 외쳤던 2019년의 사회운동이 소강상태에 접어든 현재, 잿더미가 된 폐허에서 여전히 연대할 방법을 찾는 사람들은 남아있다. 우연히 인터뷰를 하게된 한 활동가는 국가보안법 이후 2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나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2014년의 우산운동과 2019년의 시위는 홍콩인들에게 정치가 무엇인지를 되새기게 하는 중대한 분기점으로 남았다. 다양한 시민사회단체가 그동안 했던 많은 활동들은 일상과 정치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시민들에게 아로새긴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과거의 유산은 한순간에 단절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개별적으로는 의식과 의지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함께 연결되기에는 어려운 제한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 현실적인 한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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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2017년 11월 19일 연금개혁을 주장하며 전 행정장관 캐리 람의 공관 앞에 모여 집회를 했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모습. 당시 활동가 친구가 피켓을 들고 앞장서 있던 나에게 얼굴이 알려지게 되면 앞으로 홍콩에 오지 못할 수 있다는 농담을 던질 정도로 정치적 상황이 불안정했다. 그럼에도 이때는 필요하다면 길거리에 나섰던 그런 시절이었다. 

 

일각에서는 노동조합 운동을 활용한 조직화를 지속하자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노동조합 운동이 중국과는 관계없는 비정치적 사안이라는 점에서 연대할 수 있는 분야라며 시민들의 참여를 촉구하는 것이다. 수많은 작은 감자들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뿐만 아니라, 조직화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주체로서 의식화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정치적인 사안으로 간주되어 처벌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노동운동이 현안을 생계문제로 축소하는 전략을 활용함으로써 지속가능성을 담보할지라도, 언제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을 수도 있다. 나와 이야기를 나눈 활동가는 정부가 상대적으로 민감하다고 간주하지 않는 이슈들을 중심으로 시민사회단체가 활동할 수는 있다. 복지, 노동권 이슈, LGBT 및 여성의 권리, 환경 등과 같은 이슈는 정부가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언제 정부의 태도가 바뀔지 모른다면서 우려를 표했다.

 

개개인을 조직화하는 일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이들이 개별적인 지향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간헐적으로 비밀스럽게 공유하는 특정 의제 중심의 활동이 어떠한 효과를 만들어낼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칸 영화제에 소개되고 대만 금마장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로 선정된 작품인 <시대혁명(時代革命, Revolution of Our Times)>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온 시위대의 여러 구호 중 하나는 홍콩 독립, 유일한 출로(出路)”였다. 한 활동가는 유대인이 독일을 떠났을 때 그들만의 국가를 건설하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왜 홍콩이라고 그렇게 하지 못하겠는가? 유대인들도 했다. 홍콩인들은 매우 우수한 사람들이다.”라며 앞으로 지속될 지난한 투쟁이 만들어낼 결실을 낙관하며 희망을 잃지 말 것으로 영상으로나마 독려했다. 홍콩을 떠난 이도 유대인은 그들만의 문화와 인식을 오랫동안 유지한 결과 꿈을 이루고 그들만의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힘과 문화를 유지했다는 것이다라며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홍콩 독립의 주장과 유대인이 건설한 그들만의 국가. 이스라엘을 건국한 유대인 민족주의가 주요한 참조점으로 등장하는 현 상황이 홍콩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이러한 지향의 종착지는 과연 어디인지 염려하게 된다.

 

앞으로도 홍콩에서 시민사회의 활동과 작은 감자들의 저항이 공공연한 논의의 주제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연구자인 나는 앞으로 홍콩 정부에 비판적인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을 면밀하게 관찰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비밀스럽게 이루어지는 저항의 개인화와 일상화를 연구하는 것은 작은 감자들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들 수 있다. 익명과 침묵은 이들의 주요한 무기이다. 활동가 당사자가 아니라면, 심지어 당사자라 할지라도 어떤 의제를 중심으로 어떻게 연대할지는 철저하게 비밀로 남겨질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다양한 활동은 홍콩과 홍콩을 떠난 이들이 정착한 미지의 장소에서 모두 말할 수 없는 비밀이다. 나는 이렇게나마 홍콩 시민사회가 지속되면서도 여러 난관에 부딪히며 어떻게든 나아가려는 방향을 건설적으로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


지금 여기홍콩 3



 김주영 _ 전북대 동남아연구소 전임연구원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참고문헌

Yeung, Hans. (June 19, 2022). “Restructuring Hong Kong’s Civil Society: From the Perspective of Food Trucks”, The Epoch Times.

Kawase, Kenji. (September 26, 2021). “Hong Kong Tiananmen Square vigil organizer to disband after 32 years”, NIKKEI ASIA.

Leung, Macy. (June 30, 2022). “Building Hong Kong’s civil society was a decades-long process; destroying it took just months”, Equal Times.

Zi-yuet. (May 8, 2022). “After the fire: Soil in spring”, Lausan HK. *이유를 모르겠지만 Lausan HK은 최근 웹사이트 접속이 불가한 상황임.

시대혁명(時代革命, Revolution of Our Times). (2021).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직접 촬영하여 제공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