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테마
5월호
인쇄 닫기
일론 머스크의 트윗, 조식의 <칠보시> _ 이규일

이규일 1_칠보시1.jpg

사진 1.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에 올라온 조식의 <칠보시(七步詩)>


작년 112,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가 자신의 트위터와 웨이보(微博)에 조식의 <칠보시(七步詩)>를 올렸다. 영문 번역도 아니고 한자로 된 원문을 그대로 올렸다. 조식은 조조의 아들로 친형 조비와 후계자 경쟁을 했던 인물이다. <칠보시>는 형제간의 갈등과 대립을 콩과 콩대에 비유했다.

 

콩을 삶으려고 콩대를 태우니

콩이 솥에서 울어댄다

본래는 한 뿌리에서 났는데

서로 졸여댐이 어찌 이리 급한가

(煮豆燃豆萁, 豆在釜中泣. 本是同根生, 相煎何太急)

 

시의 제목이 왜 <칠보시>일까? 사연이 있다. <세설신어>의 기록에 따르면 형 조비가 왕위에 오른 후 아우 조식을 불러 그간의 죄행을 문책하면서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시를 지으면 살려주겠다고 했다. 조식은 세상 재주의 팔할을 독점했다는 천재다. 짧은 시간 동안 형의 마음을 움직여야 했다. 콩을 삶는데 하필이면 콩대를 땔감으로 쓴다. 콩대는 콩을 괴롭히고 콩은 고통에 차 소리지른다. 같은 뿌리에서 태어난 사이에 왜 이렇게 못살게 구느냐고. 절묘하다. 자신은 콩이고 형 조비는 콩대다. 동부동모 소생인 형이 자신을 공격하는 상황을 이렇게 비유했다. 조비는 부끄러운 낯빛을 띄고 조식을 용서했다. 이 시는 몇 가지 버전이 있는데 소설 <삼국지연의>에는 420자로 되어 있고 <세설신어>에는 630자로 되어 있다. 일론 머스크가 인용한 것은 <삼국지연의> 버전이었다.


조조에게는 십여 명의 부인과 이십여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가장 아꼈던 아들은 환부인 소생인 조충이었다. 너무 똑똑해 조조가 여러번 깜짝 놀랐다. 오나라에서 선물한 코끼리를 보고 조조가 무게를 궁금해하자 조충이 아이디어를 낸 일이 있다. 코끼리를 배에 태워 배가 물에 잠긴 자리를 표시했다가, 다시 그만큼 배에 돌을 실은 후 돌의 무게를 재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 아들은 13세에 요절했다. 적장자인 조앙이 전사하고 총명한 조충이 병사하자 변부인 소생인 조비, 조식이 물망에 올랐다. 대권 후보인 두 사람의 주위에 사람이 몰려들고 세력이 형성되었다. 조비는 맏이라는 장점이 있었고 인내심과 자제력이 뛰어났다. 사서는 그를 술수로 부친을 받들며 감정을 억제하고 자신을 꾸몄다고 평가했다. 조식은 천재였다. 뛰어난 글솜씨와 학문으로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다. 사서는 십여세에 시경, 논어 등 사부 10만자를 암송하고 읽었으며 글을 잘 지었다고 평가했다. 조조의 능력이 두 방면으로 분산되어 전해졌던 모양이다. 이런 일화도 있다.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출정할 때였다. 조식이 아버지의 전공을 찬양하는 글을 지어 격동적으로 낭독하자 조조가 크게 기뻐했다. 오질이 급히 대책을 세워 조비에게 전달했다. ‘(, 울다)’이었다. 이를 본 조비는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 목놓아 울었다. 조조는 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역시 장남이야. 진정으로 나를 걱정하는군.”


조비의 추종자들은 장자를 세워야 한다고 조조를 압박했고 조식은 자유분방한 성향을 억제하지 못해 잇따른 음주 사고로 총애를 잃었다. 건안 24(219) 양번의 전황이 위태롭자 조조가 조식에게 출정을 명했지만 조식은 술에 취해 명을 따르지 못했다. 또 법을 어기고 수레를 타고 사마문을 나가 분노한 조조가 공거령을 처형한 일도 있었다. 조식의 추종세력들이 파당을 형성해 분란을 일으킨 것도 조조를 화나게 했다. 조조는 결국 조식에게 실망하고 조비를 후계자로 낙점했다.


경쟁이 끝났지만 조비와 조식의 관계는 회복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조식의 인생 그래프는 220년 조비의 즉위를 기점으로 수직 낙하했다. 고난이 시작되었다. 조식은 수도를 떠나야 했다. 이동과 연락에 제한이 있었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았다. 심복이자 친구였던 양수, 정의, 정이 등이 차례로 죽임을 당하자 자신도 생존의 공포와 위기를 느꼈다. 젊은 시절의 조식은 자신감과 낙관에 가득찬 청년이었지만 고독과 두려움에 절망하는 신세가 되었다. <야전황작행(野田黃雀行)>은 이 당시의 심경을 토로한 작품이다.

 

높은 나무엔 슬픈 바람 자주 일고, 바닷물은 파도 드높아라.

날카로운 칼 내 손에 없으니, 친구인들 어찌 많으리오.

그대 못보았나, 울타리의 참새 매를 피하다 그물에 걸린 것을.

그물 주인은 새 얻어 좋아하나, 소년은 새를 보고 슬퍼하네.

칼 뽑아 그물 끊어주니, 참새 자유로이 날아간다.

훨훨 창공에 닿았다가, 내려와 소년에게 감사하네.

(高樹多悲風, 海水揚其波. 利劍不在掌, 結友何須多. 不見籬間雀, 見鷂自投羅. 羅家得雀喜, 少年見雀悲. 拔劍捎羅網, 黃雀得飛飛. 飛飛摩蒼天, 來下謝少年.)

 

스토리가 있는 이야기 시. 거센 바람이 일고 성난 파도가 철썩이는 도입부를 보니 불안하고 위험한 분위기다. 들판을 날던 참새 한 마리가 매를 피하다 그물에 걸렸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하지만 어디선가 인정 많은 소년이 나타나 그물을 끊어주어 참새는 목숨을 건졌다. 자유를 얻은 참새는 창공을 오르며 소년에게 감사를 표한다. 어리고 약한 목숨 하나가 위기에 처했다가 조력자의 도움으로 살아난 내용이다. 이 시는 조식의 희망을 참새의 이야기에 투영했다. 자신도 강력한 조력자를 만나 해방과 구원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226년 조비가 40세로 죽고 조카인 명제 조예가 즉위했지만 여전히 여러 봉읍지를 전전하며 불안에 떨다가 23241세로 죽었다. 후계자 경쟁이 너무 치열해 스트레스가 컸던 탓일까? 승리자인 조비나 패배자인 조식이나 장수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제왕의 권력만 놓고 경쟁했던 것이 아니다. 한 여성을 사이에 두고 애정의 삼각관계를 형성했다는 설도 있다. 그 여성은 견부인. 원래 원소의 며느리였는데 출중한 미모로 일찌감치 널리 알려져 있었다. 조비가 관도대전에서 원소군을 격파하고 곧바로 데려와 아내로 삼았다. 견부인과 조씨 형제의 스캔들은 조식의 작품 <낙신부>에 당나라 문인 이선이 원래 제목은 <감견부(感甄賦)>였는데 명제 조예가 <낙신부(洛神賦)>로 바꾸도록 명했다는 주를 달면서 알려졌다. <낙신부>는 조식이 낙수의 여신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사랑을 느끼고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여신의 아름다움을 환상적이고 섬세한 필치로 묘사한 명작이다. 그런데 원래 제목이 <감견부>였다니, 견부인을 생각한다는 의미가 되고 작품에서 묘사한 여신이 견부인이라는 해석이다. 명제는 조비와 견부인 사이의 아들이다. 숙부가 자신의 모친을 좋아해서 쓴 글이 유명해지는 게 싫어 이 작품의 제목을 <낙신부>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미인박명이라 했던가. 견부인은 조비에게 시집온 후 오래 지나지 않아 곽부인의 참소로 총애를 잃고 일찍 사망했다. 조비의 명으로 자결했다고도 한다. 견부인의 운명도 참으로 기구하고 가련하다. 혹자는 이들의 스캔들이 꾸며진 이야기라고 말한다. 조식이 견부인을 처음 보았을 때 겨우 열세 살이었고 견부인은 열 살 연상인데 너무 무리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감견부>은 견부인이 아니라 조식의 봉읍지였던 견성(鄄城)’일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충분히 일리있고 현실적으로 설득력있는 해석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또 두 형제의 대립이 너무 드라마틱하고 비극적이라 러브스토리까지 넣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이야기에 살이 붙어 조식이 <칠보시>를 쓰고 돌아갈 때 조비가 죽은 네 형수가 쓰던 물건이다라며 베개를 주었고 조식이 그 베개를 베고 자다가 여신 꿈을 꾸고 <낙신부>를 지었다는 후일담도 생겼다. 후에 동진의 화가 고개지(顧愷之)<낙신부> 스토리를 그림으로 그렸다. 제목은 <낙신부도(洛神賦圖)>. 동진 화단을 대표하는 걸작이 되었고 조식의 인생담이 더욱 풍성해졌다.


이규일_고개지-낙신부도.jpg

사진 2. 낙신부도(洛神賦圖동진 고개지(顧愷之

(비단에 채색, 27.1×572.8cm, 북경고궁박물원)


이야기가 조금 더 남았다. 일론 머스크는 왜 <칠보시>를 트윗했을까?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또는 자회사인 도지코인과 시바누이코인 사이의 갈등에 대한 메시지일 수 있다. 또 어쩌면 세계식량계획(WFP)의 기부 요청에 대한 응답은 아니었을까? 같은 인류애를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공격하지 말자고 말이다. 그가 명확하게 자신의 의중을 해명하지는 않았지만 중국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중국의 웨이보에서 #머스크한시칠보시게재#7시간 만에 11000만 뷰를 기록했다. 중국인들은 고전을 인용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화법을 좋아한다. 고대에는 과거 시험과목에 시 창작이 있었고 현대에는 정상회담에서 두보의 시를 인용한다. 고전문학 소양을 중시하는 문화다. 일론 머스크는 이 점을 알았다. <칠보시> 트윗으로 자신의 존재감과 호감도가 한층 높아졌다.


이규일 _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교수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사진 2. 위키피디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