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가을에는 중국공산당(이하, 중공) 20차 당 대회 개최가 예정되어 있다. 중공의 당 대회에서는 당과 국가 최고지도부의 인사와 장기적 정책 방향이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중공의 당 대회에 대하여 중국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관심이 집중된다. 그런데 20차 당 대회에서는 개혁 이후 형성된 최고지도자 중임이라는 기존의 관례와 달리 연임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시진핑의 거취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17년 19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 사상’이라는 자신의 이름이 명기된 사상을 중공의 지도 사상으로 하고, 2018년 개헌으로 국가주석 연임 제한 규정 폐지를 통해 연임을 위한 사상적ㆍ제도적 준비를 마침에 따라 예견된 일이지만, 예견과 실제 발생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진핑 개인으로의 권력 집중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진핑의 연임 문제가 논의되고 있기 때문에, 시진핑의 연임 문제는 시진핑 개인 독재의 관점에서 이해되고 있다. 시진핑의 권력이 마오쩌둥의 그것에 버금간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종신제 부활에 대한 의구심과 더불어 ‘시황제(習皇帝)’ 등극이라는 비아냥까지 등장하고 있다. 시진핑 이름의 사상의 등장이라든지 최종적 결정권을 의미하는 “시진핑을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 ‘최고 존엄의 최종적 결정(定于一尊 一錘正音)’의 권위 확보”라는 수사가 중공의 공식적 문건에 빈번히 등장하는 것도 시진핑 개인 독재에 대한 증명으로 보인다.
시진핑 시기 권력 집중
시진핑에게는 덩샤오핑 등 혁명 원로를 제외하면, 개혁 이후 등장한 어떤 지도자보다도 더 강한 권위와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시진핑 개인 독재에 대한 우려는 충분한 근거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재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권력구조의 변화를 시진핑 개인 독재의 강화로만 보는 것은 중국의 변화를 제한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시진핑으로의 권력 집중은 단순하게 시진핑 개인으로의 권력 집중이 아니라 당으로의 권력 집중과 당 중앙으로의 권력 집중과 더불어 전체 당과 당 중앙의 핵심인 시진핑으로의 권력 집중이라는 일종의 ‘삼위일체’된 권력 집중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진핑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지 않겠지만, 2012년 18차 당 대회 이후 일련의 당의 조직적 결정으로 이루어졌다.
중공은 2012년 18차 당 대회 이후 전면적 개혁 심화와 전면적인 엄격한 당 관리를 선언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기존의 개혁이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인식과 관련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당 기강 해이와 당 통제 이완과 관련된다. 그에 따라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과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과 더불어 강력한 반부패 투쟁을 진행하면서 당의 지도적 역할을 다시 강조한다. 그 과정에서 “일체에 대한 당 영도(黨領導一切)”가 다시 강조되고, 개혁 이후 이루어진 분권화를 역전시킨 집권화가 이루어진다. 1980년대 정치개혁의 핵심 의제였던 당정분리를 명시적으로 부정한 “당정 업무분장은 있지만 당정분리는 없다.”는 선언이 이루어지고, 후진타오 시기 사라졌던 최고지도자에 대한 ‘핵심’ 지위 부여도 이루어진다. 그리고 2017년 19차 당 대회 직후에는 “시진핑의 당 중앙의 핵심과 전체 당의 핵심으로서 지위의 수호, 그리고 당 중앙의 권위와 집중 통일 영도의 수호”라는 “두 개의 수호”가 제기되게 된다. 이는 시진핑으로의 권력 집중이, 기존 개혁이 도달한 한계와 그 과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의 산물임을 의미한다.
개혁개방 성공으로 인한 위기
그렇다면 시진핑 시기 중공은 시진핑 개인 독재의 등장으로 의심받는 권력의 재집중화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에 대한 답은 사실 시진핑 시기 권력 집중 과정에 있으며, 시진핑의 연임을 위한 정치적 선언으로 여겨지는 중공의 “제3차 역사결의”에 집약되어 있다. “제3차 역사결의”는 제목이 “당의 100년 분투의 중대 성취와 역사 경험에 관한 결의”인 데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중공의 성취에 대한 예찬으로 보인다. 그리고 “제3차 역사결의”는 중공의 100년, 특히 개혁개방 40여 년의 성취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 차 있다. 당의 100년의 역정에 대한 기념인 만큼 예찬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렇지만 예찬만이라면 창당 100주년 기념 연설로 족했으며 굳이 “역사결의”가 필요 없었을 것이다. “제3차 역사결의”의 핵심은 예찬 배후의 은유로 표현되는 “성공의 위기”와 그것에 대응한 시진핑 10년간의 새로운 길 찾기에 대한 평가이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놀라운 성과를 이루었지만, 성공의 이면에 새로운 위기를 배태했다. 경제건설을 위한 개혁개방의 성공은 신념의 위기를 초래했다. 물질적 이익 추구가 최우선적 가치가 되어 사회주의적 가치를 대체했고, 이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적 질서가 형성되었다. 개혁개방은 경제건설을 통하여 낙후된 중국의 사회주의 건설을 하기 위한 물질적 기초를 형성하여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우회로였다. 그렇지만, 개혁개방을 통한 물질적 풍요는 빈부격차와 지역 격차 등 양극 분화의 확대와 더불어 물질적 이익이 사회주의적 가치를 대체함으로써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개혁개방이 오히려 사회주의를 파묻을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한 문제는 다시 권력의 위기를 초래했는데, 황금만능주의에서 자라난 부패의 만연으로 인한 당의 내부적 붕괴와 변색 가능성이 하나라면, 전국적일 뿐만 아니라 지구적 영향력을 갖는 네트워크와 경제권력 등 당의 통제를 받지 않는 새로운 권력과 권력자원의 등장이 다른 하나이다. 개혁을 통해 형성된 변화와 관성이, 개혁의 원래 목적이자 출발점이던 사회주의적 가치를 상실하고 오히려 당의 변색과 권력 상실 위기를 야기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시진핑은 “난공불락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시기이자 앞이 보이지 않는 깊은 물속(攻堅期深水區)”으로 은유했다.
개혁 시기 지도체제와 승계제도의 한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진핑은 18차 당 대회 직후부터 “초심(勿忘初心)”과 당 건설을 강조한다. 그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 전면적 개혁 심화를 통한 개혁 전략의 조정과 당의 강화와 당과 중앙과 최고지도자 시진핑으로의 권력 집중이었다. 그런데 권력구조의 조정은 그와 더불어 개혁 이후 형성된 지도체제와 승계제도의 한계와도 밀접하게 관련된다. 개혁 초기 중공은 문혁 비극이 마오쩌둥 개인으로의 과도한 권력 집중으로 인한 것이라고 보고, 문혁의 재현을 막기 위해 집단지도체제와 승계제도를 규범화한다. 그렇지만 집단지도체제는 후진타오 시기 “아홉 마리 용의 공동 통치(九龍共治)”가 상징하는 아홉 정치국 상무위원의 분권적 통치라는 과도한 권력 분산으로 인한 의사결정의 지체와 독립적 권한을 갖는 정치적 강자들의 권력투쟁과 부패 만연의 기제로 작동했다.
제도적 규범과 관례를 포함하는 1980년대 규범화된 승계제도는 주기적인 권력 교체와 원활한 승계의 기제가 되었다. 그렇지만, 차기 지도자를 미리 지정하는 문제는 안정적인 승계를 보장할 수는 있지만, 쑨정차이(孫政才)의 사례와 같이 권력투쟁을 격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는 문제점이 있다. 또한 ‘7상 8하’와 같은 최고지도부에 대한 비공식적 연령 규정이나 장관의 정년을 65세로 규정하고 있는 퇴직 규정과 같은 연령 규정의 일률적 적용은 또 다른 문제를 초래했다. 일반적으로 임기 제한만 있는 정무직 또는 선출직에 대한 일반적 연령제한의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1980년대에 비하여 평균 수명과 건강이 향상된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 그리고 중국의 간부제도ㆍ승진체계와 부합하지 않는 문제도 있다. 중국의 간부는 하급 사무원에서 최고지도자가 위계적으로 하나의 체계로 구성되어 있고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승진하는데,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서는 누구도 퇴직 연령 전에 최고지도부에 이를 수 없다는 문제가 그것이다.
조직의 결정과 시진핑 임기연장의 범위
그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관례화된 규범은 변경이 쉽지 않다. 중앙조직부에서 2014년 ‘7상 8하’와 같은 규정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19차 당 대회의 인사에서 적용된 사실이 이런 관례화된 규범의 존재를 보여준다. 관례는 명문화된 헌법보다 훨씬 구속력이 약하다는 점에서, 시진핑의 임기연장을 위한 개헌을 통한 국가주석 임기 제한 폐지와 연임은 ‘7상 8하’와 같은 관례를 폐기하는 유리한 조건이 될 수 있다. 시진핑의 임기연장에 대하여 시진핑뿐만 아니라 중공 지도부에서도 동의할 유인이 있는 것이다.
‘7상 8하’의 폐기는 지도부의 고령화를 초래할 여지는 있다. 그렇지만, 헌법에서 국가주석과 부주석 외의 모든 헌법상의 직위는 중임제가 규정되어 있으며, 당과 정부와 법원 검찰원 등의 장관급까지 모든 공직자에게 적용되는 당정간부 직무 임기 규정에서 동일 직위 중임, 동일 직급 15년을 임기 연한으로 규정하고 있고, 65세로 장관급의 정년을 규정한 퇴직 규정이 유효하다는 점에서 그 영향은 최고지도부 일부에 제한될 것이다.
다른 한 가지 문제는 퇴직이나 임기 제한에 대한 명문화된 규정이 없는 최고지도자 시진핑의 임기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이다. 시진핑의 권위와 권력은 직위와 더불어 인민과의 직접적인 접촉에 기초한 일종의 대중주의적 이미지에 기초하고 있다. 조직에 대한 직접적 관리 통제와 인민과 직접적 접촉이 시진핑의 권위와 권력의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진핑은 마오와 같은 전언을 통한 간접적 통치는 물론 덩샤오핑과 같은 영향력을 가질 수 없다. 그것이 시진핑 임기연장의 최대한의 범위를 규정한다. 마오쩌둥과 같은 종신제는 물론 덩샤오핑과 같은 퇴진 후의 영향력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명시적으로 후계자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정치국 상무위원회 혹은 최소한 정치국은 복수의 차세대를 포함하는 다양한 연령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구조적으로 후계체계가 형성되고 있음을 의미하며, 승계의 불안정성을 약화시키는 요소이다.
중공의 권력 집중은 단순한 시진핑 개인 권력 강화가 아니라 개혁개방 성공의 역설로 출현한 새로운 위기에 대한 대응이자, 개혁 시기 형성된 권력구조ㆍ승계제도의 한계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시진핑으로의 권력 집중을 포함하는 권력 집중이 이루어졌다. 그러한 권력 집중이 사회주의를 지키는데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을지 혹은 어떠한 사회주의를 만들 것인지는 미래의 영역이다. 다만 중공의 권력 집중은 시진핑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지 않을지라도 당 조직의 집단적 결정이었다. 그것은 시진핑의 자의적인 임기연장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최고지도자의 은퇴에 대한 명시적 규정의 부재와 시진핑의 권력 강화는 안정적 승계를 중국정치의 새로운 과제로 제기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안치영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원장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cpc.people.com.cn/n1/2022/0119/c435113-3233484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