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0일 북경 출장 중 중국화교역사박물관(中國華僑歷史博物館)을 약 2시간 견학했다. 이 박물관의 외부는 중국 전통의 사합원(四合院) 건축양식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중간에 현대식 건축물인 박물관이 배치되어 있다. 2011년 건축 공사가 시작되어 2014년 10월 완공된 후, 전시실을 대외에 개방한 것은 2015년 들어서였기 때문에 가장 최근에 생긴 화교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중국 대륙 첫 화교박물관은 1959년 5월 정식 개방한 복건성 샤먼시(厦門市)의 華僑博物院이다. 이 박물원은 샤먼시 출신의 귀국 화교 천자겅(陳嘉庚, 1874-1961)의 주도로 설립되었다. 천자겅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 거부를 축적하고 중일전쟁 때 항일운동에 참가하는 한편,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대륙으로 귀국하여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전국위원회 부주석을 지냈다. 같은 복건성의 취안저우시(泉州市)화교역사박물관은 복건성 출신 해외 화교의 기부로 1997년 설립되었다. 광동성 첫 화교박물관은 2009년 4월 광저우시에 설립된 광동화교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해외 거주 화교의 기부금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처럼 화교박물관은 해외에 화교를 많이 배출한 교향(僑鄕)인 복건성과 광동성에 설립되었기 때문에 수도 북경에 화교박물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천자겅은 샤먼시(厦門市)의 화교박물원을 설립한 다음해인 1960년 북경에 화교박물관 건립을 발의했지만 그가 1961년 사망함으로써 이 계획은 추진되지 못했다. 이 계획은 2000년대 들어 재추진되어 해외 화교의 기부금 400억 원으로 2011년 9월 공사를 시작하여 2014년 10월 낙성식을 가진 것이다. 박물관 건축은 높이 18m, 지상 3층, 지하 2층으로 건축 면적은 약 3,900평에 달한다. 중국화교역사박물관이 위치한 성동구(城東區) 북신교(北新橋)는 천안문광장에서 가까운 북경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다. 이 박물관은 中華全國歸國華僑聯合會 직속 기관인데, 이 연합회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산하의 기관이다.
이 화교역사박물관의 입구 정면을 들어가면 땅과 나무의 뿌리를 형상화 한 거대 동판이 설치되어 있다. 화교를 표현할 때 자주 사용하는 ‘낙엽귀근’(落葉歸根)과 ‘낙지생근’(落地生根)의 뜻을 나타낸 것이다. ‘낙엽귀근’은 외국에 이주하여 돈을 벌어 고향에 돌아온다는 뜻이며, ‘낙지생근’은 이주한 외국에서 뿌리를 내려 정착한다는 뜻이다.
전시실은 1층과 지하 1층은 상설전시관이며, 2층과 3층은 기획전시관이다. 제1전시관은 중국인 해외 이주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다. 고대 해외이민(기원전-1840년), 근·현대 해외이민(1840년-1949년), 당대 해외이민(1949-현재)의 3부문으로 나눠져 있다. 제4부는 세계이민사 중의 중국인 이민을 소개하고 화교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과 국가를 지도로 나타낸 패널이 있다. 제2전시관은 차이나타운 및 화교의 일상생활과 문화와 관련된 사진, 그림, 자료를 전시하고 이발소, 잡화상 등의 상점을 복원해 놓았다. 제3전시관은 세계 각지의 화교가 거주하는 지역과 국가에서 경제, 사회, 문화 등의 각 방면에서 어떤 성공을 거두었는지 어떤 공헌을 했는지 소개하고 있다. 제4전시관은 화교가 중국 국내의 각 방면에 어떤 공헌을 했는지, 화교를 도와주는 교무기관(僑務機關)의 역사와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이 박물관의 소장품은 2만 건에 달한다. 그 대부분은 화교로부터 기증받은 것이라고 한다. 필자는 전시품을 사진에 담기위해 핸드폰으로 사진을 쉴 새 없이 촬영했지만 너무 전시품이 많아 결국 다 담을 수 없었다. 그러나 박물관의 전시물이 동남아화교와 미국화교에 집중되어 타 지역 화교의 전시물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었다. 특히 한국화교와 북한화교 관련 자료나 설명은 하나도 없었다. 한반도화교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부끄러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정희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