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눈과 높고 오똑한 코, 흰 피부와 작고 입체적인 두상 등 근현대에 걸쳐 인체의 아름다움은 정치⸱경제⸱군사적 헤게모니와 평행하게 백인 미남 미녀를 모델 삼아 그 특징들이 앙망되어왔다. 그런데, 할리우드와 미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역할로 등장하는 중국인 여성이나, 글로벌 패션계에서 선호되는 아시아 여성 모델의 모습은 작고 길게 찢어진 눈과 과도하게 튀어나온 광대뼈로 대표된다. 역사적으로 구성된 일반적 미의 기준에서 비껴간 아시아적 미의 제시는 중국인을 비롯한 아시아 여성을 지나치게 성적인 캐리커처로 제시해온 관행과 짝을 이룬다. 이질적인 외모 속에서 알 수 없는 매력을 상상한 오리엔탈리스트적 시선은 영화와 방송, 연극 등에서 아시아 여성을 연꽃(lotus blossom)이나 중국인형(China doll), 혹은 드래곤 레이디(dragon lady)라는 양단의 고도로 성적인 수사 속에서 전형화해왔다.
사진 1. 애나 메이 웡(Anna May Wong), The Thief of Bagdad의 한 장면
미국 대중문화에서 연꽃아기, 중국인형, 게이샤 소녀 등으로 표현된 아시아 여성들은 순종적이고 연약하며 아시아 남성에게 착취당하여 백인 남성의 구원을 기다리는, 그래서 백인 여성보다 성적으로 쉬운 대상으로 그려진다. 1960년의 할리우드 영화 [수지 웡의 세계 The World of Suzie Wong]에서 낸시 콴(Nancy Kwan)이 연기한 홍콩의 술집 여성 수지는 윌리엄 홀든(William Holden)이 분한 백인 남자 주인공에게 “당신이 가라고 할 때까지 옆에 있을게요”라는 대사를 던지며 지고지순한 듯 성적 소모의 대상임을 자처하다가 그와의 결혼으로 아이를 잃은 슬픔까지 구원받는 캐릭터로 그려졌다. 복종적인 성적 대상으로의 재현은 19세기 말 미국의 대중이 중국에 대한 다른 어떤 정보보다 전족에 관심을 가졌던 데에서 드러나듯, 아시아와 아시아 여성을 구원의 대상이자 정복의 대상으로 봤던 맥락에서부터, 20세기 미국이 한국과 베트남 등 아시아의 전쟁에 개입했던 맥락에까지 이어진다.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던 1987년 스탠리 큐브릭의 베트남 전쟁 영화, [풀 메탈 자켓 Full Metal Jacket]에는 베트남 성노동 여성이 “나 흥분했어(Me so horny)”,“오래 사랑해줄게(Me love you long)”라는 등의 서투른 영어로 군인들을 호객하는 대사가 등장하는데, 전쟁이 구축한 성 산업의 맥락에서 등장한 이 대사는 이후 미국 힙합 음악인들(2 Live Crew, Sir Mix-a-lot)의 노래 제목과 가사에 등장하거나 [South Park], [Family Guy] 등 애니메이션에서 언급되며 아시아 여성에 대한 성적 수사를 지속시키고 재생산했다.
사진 2. 루시 리우(Lucy Liu), Ally Mcbeal의 한 장면
연꽃이나 중국인형과 달리 아시아 여성을 강하지만 기만적이고 위험한 존재로 묘사하는 ‘드래곤 레이디’ 역시 강력한 성적 수사에 기반하고 있다. 신비로운 매력으로 백인 남성을 유혹해서 결국은 등 뒤로 칼을 꽂는 팜므 파탈(femme fatale)은 영화와 티비에서 아시아 여성에게 주어진 전형적인 역할이었다. 미국에서 태어난 중국계로서 아시아인 최초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배우였던 애나 메이 웡(Anna May Wong)이 맡은 대다수의 역할은 1924년 작 [바그다드의 도둑(The Thief of Bagdad)]에서의 섹시하고 악랄한 몽골인 노예, 1931년작 [용의 딸(Daughter of the Dragon)]에서 악랄한 유혹녀, [상하이 익스프레스(Shanghai Express)](1932)에서 숨겨두었던 단검으로 자신을 괴롭혔던 두목을 죽이는 매력적인 여성 등이었다. 20세기 말과 21세기에도 아시아인이 대중문화에 재현되는 비중이 적은 상황에서 아시아 여성은 아무런 스토리가 주어지지 않는 주변인이 아닌 이상 여전히 섹시하고 위험한 대상으로 그려졌다.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아시아인 가정부가 자신의 출세를 위해 보스를 유혹하여 주인공과의 로맨스를 방해한다는 내용은 흔한 설정 중 하나이고, 대표적인 중국계 배우인 루시 리우(Lucy Liu)도 경력 초기 단계인 2000년대 초 드라마 [앨리 맥빌(Ally Mcbeal)]이나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킬빌 1](2003)에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강력한 도구로 사용하지만 감정적으로나 성적으로 냉정하여 언제든 배신할 수 있는 캐릭터로 등장했다. 2003년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루시 리우는 “앨리 맥빌의 내 캐릭터를 르네 젤위거(금발벽안의 미국 배우)가 했다면 드래곤 레이디라 부르지 않았을 거다”고 했는데, 인터뷰가 시사하는 것처럼 아시아 여성이 팜므 파탈로 묘사되는 것 자체가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일찍이 안나 메이 웡이 1933년 로스엔젤레스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왜 중국인들은 할리우드에서 항상 살인적이고 배반적이고 잔혹한 악당인가?”라 문제제기를 했던 것처럼, 아시아인에게 주어진 배역이 늘 한정적이었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 중심 대중문화의 장에서 아주 오랫동안 중국인을 필두로 아시아인은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초기에는 아시아인 배역에 백인 배우들이 황칠을 하고 출연했고, 이후 아시아계 배우가 등장하더라도 배역은 주변적 존재, 하인, 악당, 백인의 구원이 필요한 농민, 백인의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제한되었다. 2000년대 초부터 드문드문 드라마 [Grey’s Anatomy]의 한국계 배우 산드라 오의 역할, 영화 [Crazy Rich Asian], 한국계 감독 아이작 정의 [Minari], 캐나다 드라마 [Kim’s Convenience] 등에서 아시아 여성은 서서히 직업인, 부자, 수많은 이민자의 경험을 대변하는 이, 또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묘사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황금시간대 티비 프로그램에 나오는 소수인종에 대한 2000년의 연구(Mastro & Greenburg 2000)에 따르면 아시안은 전체 티비 인구의 1%만이 화면에 재현되었고, 현재에도 스크린의 모든 배역에서 5%에 미치지 못한다(Entertainment Directv, Aug.21, 2021). 아시아인이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인구임을 감안할 때 여전히 그들의 스토리는 제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시아 여성에 대한 재현을 성적 수사 속에만 가둬두는 동안 그 고정관념은 무대와 스크린 너머에서도 작동하고 있었다. 19세기 중국 여성은 모두가 성 노동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인종차별적 인식 하에, 도덕적, 공공보건의 측면에서 위협이 되므로 통제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져 미국 이민을 금지한 페이지법(Page Act of 1875)의 대상이 되었다. 이 왜곡되고 구태의연한 19세기 중국인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아시아 여성 전체로 확장되며 1세기 이상 미 대중문화에서의 고도의 성적인 수사(hypersexualization)에 제한된 재현을 통해 지속되고 고착되어 왔다. 2021년 3월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스파 세 곳에서 21세의 백인 남성이 6명의 아시아 여성을 포함한 8명에게 총을 난사하여 살해했다. 최근 처벌이 강화된 인종적 증오범죄 프레임을 피하기 위해 ‘성 중독’이 발포 행동을 부추겼다고 주장했는데, 이 역시 아시아 여성에 대한 성별화된 인종주의(gendered racism)에서 발원된 것으로서 아시아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반아시안 혐오 신고포탈인 ‘StopAAPIHate’의 보고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증오 범죄가 증가할 때 신고된 반아시안 혐오 범죄의 68%가 여성을 타겟으로 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정 집단과의 접촉이 적을 때 그 집단에 대해 구성하는 정보가 상당 부분 대중 매체로부터 온다는 것을 감안하면, 대중매체에서 아시아인의 현실적 모습에 대한 재현이 제한되는 것은 화면에서 보는 고정관념을 현실로 착각하게 할 위험을 예상케 한다.
미국 내 아시아인 인구가 증가하는 것과 더불어 영화 산업에서 아시아는 헐리우드 박스 오피스 수입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 되고 있다. 그러나 헐리우드의 창작자와 이사급에는 여전히 백인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기존의 통념을 편안해하는 다수의 대중 소비자들을 고려할 때, 그들에게는 고정관념을 재현하는 것이 자본의 측면에서 유리하다. 더욱이 이제까지 아시아의 관객들이 고정관념에 찌든 아시아인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서구의 영화들을 선호해온 것도 고정관념을 애써 교정할 필요 없이 재생산하게 한 동력으로 작동한다. 최근, 아시아 여성에 대해 보다 다양한, 실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조명할 법한 삶의 여러 측면을 소재로 창작을 시도하는 아시아계 창작자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5년 후 혹은 10년 후 아시아 여성에 대한 수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스크린 속 엔터테인먼트는 단지 허구로만 소통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국인 5】
정은주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참고자료
Mastro, D. E., & Greenberg, B. S. 2000. The portrayal of racial minorities on prime time television. Journal of Broadcasting and Electronic Media, 44(4)
https://entertainment.directv.com/asian-american-women-actors-singers/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https://br.pinterest.com/pin/641833384390454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