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상속인이 사망자에 대한 부양의 여부로 상속 자격의 정당성을 논의하는 일은 비단 2019년 사망한 구하라씨의 유산을 둘러싼 이번 사건 이전에도 빈번히 일어났다. 천안함 피격사건 때 사망한 군인이나 세월호 참사 때 사망한 학생에 주어진 보상금을 두고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부모가 갑자기 나타나 유족으로서 보상금을 수령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화재를 진화하다 사망한 소방관 가족에 지급된 보상금을 놓고도 유족끼리 비슷한 갈등이 일어난 적이 있다. 즉, 부모나 자식과 같이 상속법상의 상속인 신분을 가진 사람이 사망자에게 부양이나 양육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음에도, 법으로 정해진 자기 몫의 상속재산을 주장하고, 실제로 지급을 받아 가족 간 갈등이나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사례는 일상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결국, 이 구하라 유산 분쟁 사건을 계기로 개정이 예정된 한국의 민법 조항은 일반 국민의 법 감정과 실제 법 조문 사이의 간극을 좁힐 수 있을 것 같다.
사진 1. 2006년 1월 28일 중국 산시성 한 마을 촌장집의
실제, 워싱턴대학교 법학대학원(Washington University School of Law)에서 중국과 미국의 민법을 비교 강의하는 포스터 (Frances H. Foster)교수는 1985년 중화인민공화국 상속법이 제정·발효되었을 때, 사망인에 대한 부양과 이에 대한 보상으로서 유산 상속을 연계한 이 상속법이야말로 베이비붐 세대의 노령화를 맞이하는 미국이 생각해볼 대안이라고 극찬을 하였다.1) 그러나 동시에 그는 당시 이미 10억의 인구를 상회하던 중화인민공화국이 이제야 상속법을 제정한 것을 지적하면서 이전 중국의 상속재판은 “이데올로기, 기존 관행, 민법의 원칙들이 두리뭉실하게 뭉쳐진”, “일관성도 없고 공백으로 가득 찬 복잡한 시스템”이라며, 오직 통일된 전국 단위의 상속법 (uniform national inheritance law)의 제정만이 이러한 것을 고칠 수 있다고 평가했다.2) 이와 같은 상속법 제정에 대한 평가는 다른 학자들 사이에서도 공유되어서, 공산권 민법에 대한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인 슈와츠(Lousi B. Schwartz) 교수도 1985년 상속법의 제정이야말로 중화인민공화국이 맑스주의 정설(Marxist orthodoxy)에서 벗어난 중요한 사건이라고 의미부여했다.3)
물론 마오시대 상속재판에 대한 실증적인 자료가 거의 없다시피 하고, 현재로서도 외국인인 필자가 이전 재판기록에 접근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다행히, 필자는 베이징과 상하이 소재의 대학과 국립‧시립 도서관에서 마오시대 직후인 1980년과 1983년 베이징과 상하이의 정파대학(政法大學, 한국의 法學大學에 해당)에서 미래의 판사와 법원 간부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비공개용 내부문건(內部參考)으로 펴낸 상속재판 판례집 3권과 그 안에 수록된 132건의 판결 요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4) 물론 그 판결 요지가 어느 정도 편집인들에게 모범판례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최소 마오시대 모범 판결의 방향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또 그 사례집에는 그러한 판결에 기반이 되었던 중화인민공화국 최고인민법원(한국의 대법원에 해당)의 의견이나 각 성정부 법무과 등에서 결정한 상속 원칙들이 실려있었다.
이러한 자료들을 통해 필자는 1956년 상속법 초안의 작성과정과 이에 대한 성/현급 사법청과 일선 법원 판사들의 비판, 나아가 실제 재판의 판결에 그러한 초안이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과 이에 반발했던 일선 판사들의 의견이 어떻게 반영되는지 종합적으로 가름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왜 마오시대 판사들은 상속법 제정을 거부하면서도, 서구 학자의 눈에는 일관성이 결여되고, 중구난방격인 판결을 내리는 걸 고집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결과 필자는 인민들의 전 재산이 걸려있는 이 상속재판과정에서, 남녀평등과 같은 혁명의 원칙과 아들 상속이라는 인민들의 관습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재혼 과부나 데릴사위와 같이 사회의 정형적인 가족 관계에는 벗어나면서도 엄연히 존재했던 가족들이 유산을 두고 갈등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마오시대 판사들이 서구와 전혀 다른 법원리를 추구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즉, 혁명기 마오시대의 판사들은 서구의(특히 한국이 속해있는 대륙법적 전통이 강조하는) 어디서나 획일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진리(universally applicable truth)가 아니라, 해당 사안마다 가지고 있는 특수한 상황 내에서 공평함을 추구했던, 필립 황(Philip Huang)교수가 중국의 법적 전통으로 지적했던, 실용적 도덕주의(practical moralism)를 재판에 적용하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꾸어 말하면, 그들은 혁명적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인민들의 일상생활 상 관습과 법 감정에도 부합하는 균형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마오시대 판결문들이 내린 결론들이 결국 1985년 제정된 중화인민공화국의 상속법, 나아가 2021년 실행된 중화인민공화국 민법의 근간이 되었다는 점도 발견하였다.
사진 2. 중화인민공화국의 최고인민법원이 상속문제에 대해 내린 일련의 지침을 담은 문서의 일부
안병일 _ 미국 새기노밸리주립대 역사학부 교수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1) Frances H. Foster. 1998, “Towards a Behavior-Based Model of Inheritance?: The Chinese Experiment.” University of California at Davis Law Review 77, pp. 77-126.
2) Frances H. Foster. 1985, “The Development of Iheritance Law in the Soviet Union and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American J. of Comparative Law 33(1). pp. 33–62.
3) Louis B. Schwartz. 1987, “Inheritance law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Harvard International Law J. 28 (2), pp. 433–64.
4) 北京政法学院民法敎硏室(1980), 『继承案例汇编』, 北京: 政法学院; 华东政法学院继承法资料选辑组(1980), 『继承法资料选辑』, 上海: 华东政法学院; 华东政法学院法学编辑部(1983), 『法律顾问』, 上海: 华东政法学院.
* 이 글은 필자가 Modern China 47 no.1 (2021)에 발표한 “Searching for Fairness in Revolutionary China: Inheritance Disputes in Maoist Courts and Their Legacy in the PRC Law of Succession”을 요약 정리한 글이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필자 제공
사진 2. 中国人民大学民法敎研室(1957), 『中华人民共和国民法参考资料 vol.2』, 北京: 中国人民大学, pp. 588-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