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인기를 누려온 중국 무협 소설의 원류는 당대(唐代)에 유행했던 협의류(俠義類) 전기(傳奇)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기’라는 명칭을 글자 그대로 풀면 ‘기이함을 전한다’라는 뜻으로 당대 문인들이 쓴 단편 소설을 가리킨다. ‘협의류 전기’는 쉽게 말해 협객이 등장하는 당대 단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당대 전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인 애정류이지만 협의류 전기도 인기가 많았다.
당대에 협의류 전기가 유행했던 데는 크게 다음 세 가지 원인을 들 수 있다. 먼저, 자객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는 풍토가 실재했다. 안사(安史)의 난 이후 번진(藩鎭)이 발호하면서 번진 간의 상호 알력 다툼이 심화하였고, 그 결과 자객을 고용해 청부살인을 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사건들이 소설의 소재가 된 것이다. 둘째로 중당 이후 난세에 처한 문인들 가운데 유협(遊俠) 문화를 동경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정의가 사라진 혼란한 세상에서 일부 문인들은 ‘의(義)’를 중시하는 유협 문화를 동경하게 되었고 이를 소설 속에서 펼쳐낸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교의 유행을 들 수 있다. 현실의 제약을 뛰어넘는 경계를 추구한 도교의 유행으로 협의류 전기의 주인공에게 투영하는 상상력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보다 흥미로운 서사가 펼쳐질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협의류 전기에 등장하는 협객은 축지법, 비행술, 은신술, 변신술, 연단술 등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데 이는 도교에서 가져온 소재들이다.
협의류 전기 중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규염객전」, 「섭은낭」, 「홍선전」, 「곤륜노」 등이 있다. 특히 「규염객전」은 협의류 전기 중에서도 창작 시기가 가장 이르기 때문에 무협소설의 비조라 일컬어지며, 여성 자객이 등장하는 「섭은낭」은 여협 형상의 비조로 꼽힌다. 「섭은낭」은 여협이 등장한 것 이외에도 최초로 주인공의 무협 수련 과정을 묘사했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작품 주인공의 이름인 ‘섭은낭’은 아무렇게나 지어진 것은 아니다. ‘섭(聶)’은 ‘소곤거린다’라는 뜻이고, ‘은(隱)’은 ‘숨기다’라는 뜻이니 섭은낭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말소리도 내지 않고 몸을 숨기는 여인이라는 뜻이 된다. 이 이름은 소설에서 몸을 은신하여 소리 없이 적을 죽이는 섭은낭의 형상을 효과적으로 연상시킨다. 물론 그녀가 태어나면서부터 자객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본래 절도사(節度使) 휘하의 대장군의 딸이었는데 열 살 되던 해 한 여승에게 납치되고, 이 여승에 의해 자객으로 길러지게 된다. 여승은 섭은낭과 다른 두 여자아이를 석굴 속에서 키우며 비수를 들고 절벽을 오르내리면서 새, 원숭이, 범, 표범을 죽이는 훈련을 시키고, 나중에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시킨다. 여승은 도술을 부릴 수 있어서 약물을 뿌려 시체를 물로 바꾸거나, 뒷머리를 열고 비수를 감추는 등의 일을 할 수 있고 이를 섭은낭에게 전수한 뒤,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낸다. 섭은낭은 아버지의 상관인 위박(魏博; 즉 위주魏州와 박주博州) 지역 절도사의 시위 무관으로 고용되고, 절도사는 그녀에게 자신과 갈등 관계에 있는 진허(陳許) 지역 절도사 유창예의 목을 베어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섭은낭은 유창예가 있는 허주(許州)에 도착하고, 신통술이 있는 유창예는 이미 섭은낭이 자신을 죽이러 올 것을 알고서 호위 장군을 보내 그녀를 맞이한다. 섭은낭은 첫눈에 유창예의 능력과 인품이 위박 절도사를 크게 능가한다는 것을 알고서 유창예의 호위 무사가 되기를 청하여 허주에 남는다. 이를 알게 된 위박 절도사는 유창예를 죽이기 위해 다시 수차례 자객을 보내지만 섭은낭은 이들을 모두 물리친다. 후에 유창예가 장안으로 가게 되는데, 섭은낭은 따라 가지 않고 산수 간에 노닐며 고사(高士)를 찾아다니겠다며 작별을 고하고 떠난다.
이 소설에서 섭은낭은 냉정한 자객이면서 동시에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것으로 그려졌다. 예를 들어 여승이 그녀에게 어떤 사람을 지목하여 그의 목을 베어오라고 하는데, 섭은낭은 그날 밤이 되어서야 돌아오고 여승이 화를 내며 ‘왜 이렇게 늦었느냐?’라고 물으니, ‘ 그 사람이 어린 아이를 데리고 놀고 있었는데, 얼마나 귀여웠는지 차마 곧바로 행동할 수 없었어요.’라고 대답한다. 여승은 섭은낭에게 ‘이 다음부터는 그런 일들을 접하거든 먼저 그가 아끼는 아이를 쳐버리고 그 다음에 그의 목을 치도록 해라.’라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아이를 귀여워하고 불쌍히 여기는 섭은낭의 모습이 냉혹한 여승의 모습과 대비된다.
동시에 섭은낭은 비극적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는 어린 시절 납치되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자객으로 길러지고, 가족들은 자객이 되어 돌아온 그녀를 반기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녀도 여승과 지낼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감추며 “오직 경문(經文)과 주문을 읽었을 뿐 그밖에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녀의 아버지가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재차 간곡히 묻자 그제야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녀를 매우 두려워한다. 그 후로 그녀는 밤마다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날이 밝아서야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감히 연유를 묻지도 못하고 점차 그녀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게 되어 버린다.
섭은낭의 가장 큰 매력은 신출귀몰하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이처럼 인간적 면모와 비극적 색채를 띠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런 매력 때문에 후대에 섭은낭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끊이지 않고 나왔다. 송대(宋代)에는 나엽(羅燁)의 「서산섭은낭(西山聶隱娘)」이라는 화본(話本)이 나왔고, 명대(明代)에는 여천성(呂天成)의 「신종기연환각(神鏡記煙鬟閣)」이라는 희곡과 호여가(胡汝嘉)의 「위십일낭(韋十一娘)」이라는 소설이 나왔다. 청대(淸代)에는 여웅(呂熊)의 「여선외사(女仙外史)」와 해상검치(海上劍癡)의 「선협오화검(仙俠五花劍)」이라는 두 편의 소설과 구련(裘璉)의 「여곤륜(女昆侖)」이라는 희곡이 나왔으며, 유명한 극작가 우동(尤侗)의 「흑백위(黑白衛)」도 섭은낭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섭은낭의 이야기는 드라마와 영화로도 나왔다. 1997년에는 홍콩의 무협드라마 <대자객지대당섭은낭(大刺客之大唐聂隐娘)>(총 35화)이 방영되었고, 2015년에는 허우샤오시엔 (侯孝賢)의 <자객섭은낭(刺客聂隐娘)>이 개봉되었다. 이 영화에서는 유명 배우 서기가 섭은낭 역할을, 장첸이 위박 절도사 전계안 역할을 맡았다. 대만을 넘어 아시아 영화의 거장으로 꼽히는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이 영화로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고, 중화권 영화제 가운데 영향력이 큰 금마장에서도 작품상 포함 5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감독은 이 영화에서 본래의 이야기를 각색하여 분열보다 화합을, 폭력보다 사랑을 추구할 것을 이야기했고, 기존 무협영화의 화법에서 벗어나 사실적이면서도 시(詩)적인 연출을 보여주어 찬사를 받았다.
사진 1. 영화 <자객섭은낭> 이미지
허우샤오시엔 감독이 <자객섭은낭>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있었듯이, 이 소설을 쓴 작자 배형(裵鉶)도 단순히 재미를 추구하거나 자신의 글쓰기 실력을 뽐내고자 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가 이 소설을 쓴 진짜 의도를 알려면 소설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인 위박 절도사와 진허 절도사 중 이 소설을 읽고 누가 더 기분이 나빴을까를 생각해 보면 된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쓴 까닭은 바로 그 사람을 비난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정답은 위박 절도사다. 배형이 위박 절도사 전계안(田季安, 781~812)을 비판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으리라는 추정은 설득력이 있다. 능력과 인품 면에서 진허 절도사보다 못하고, 갖은 수로 유창예를 죽이려는 악인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전계안은 실제로 진허 절도사와 주(州) 경계를 두고 갈등이 있었으며, 『구당서(舊唐書)』에 따르면 ‘성품이 잔혹하여 두려워하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특히 구강(丘絳)이라는 부하를 생매장한 일이 유명하다. 이에 반해 유창예는 문인들을 예우하는 것으로 명망이 높았다. 문인인 배형은 유창예의 인품을 부각하고 위박 절도사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섭은낭」을 통해 은근슬쩍 자신의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섭은낭이라는 복합적인 성격의 인물을 짤막한 글 안에서 그려냈을 뿐 아니라 정치적 메시지까지 숨겨 놓은 작가의 글 솜씨가 놀라울 따름이다. 영화와 드라마 등 대중 매체에서 여성 서사가 주목 받고 있는 요즘, 먼 옛날의 섭은낭 이야기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누워서 읽는 중국 고전 6】
윤지양 _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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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https://showwe.tw/blog/article.aspx?a=4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