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학교 중국·화교문화연구소는 2021년 8월 5일 만보사사건과 조선화교 배척사건 90주년을 맞아 국제학술 웨비나를 개최했다. 이 회의는 ZOOM으로 진행되었으며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학자들이 다수 참여했다. 회의에는 한국어와 일본어 동시통역이 제공되었다.
만보산사건은 1931년 7월 중국 만주의 창춘 만보산 인근에서 중국 관헌이 수로 공사 중이던 조선인 농민을 압박하고 몰아낸 사건이다. 만보산 사건은 만주사변이 발생하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더욱이 만보산 사건이 조선 국내신문에 과장 보도되면서 조선인의 국내 화교에 대한 감정이 악화되었고, 전국적으로 조선화교배척사건이 발생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심지어 약 200여명의 화교가 학살되는 참사가 벌어졌고 조선화교의 사회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만보산사건 및 조선화교배척사건은 만주사변, 제1차 상해사변, 만주국 건국, 중일전쟁 등 동북아시아에서 발생한 일련의 정치 격변의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이 회의는 만보산사건 및 조선화교배척사건을 회고하고 동아시아 지역의 다양한 관점과 시각을 공유하고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회의는 4세션으로 구성되어 진행되었다. 제1세션의 주제는 ‘만보산사건, 조선화교배척사건을 둘러싼 중일간 외교적 대립’이었다. 사회는 백영서 연세대 명예교수가 맡았고 평론은 동북아역사재단 김영숙 위원이 맡아 진행했다. 첫 번째 발표자인 가와시마 신 일본 도쿄대 교수는 외교부의 공문서를 활용해 중국과 일본 간 외교적 대립을 검토했다. 두 번째 발표는 이명종 강릉원주대 교수가 맡았으며, 만보산사건과 재만조선인 구축문제에 대해 논하고 그 과정에서 중일간의 협상만 있었을 뿐 재만조선인의 목소리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세 번째 고승룡 옌벤대 교수는 만보산사건과 조선배화사건에 대한 중국 국내 연구성과를 소개하고 연구 동향을 분석했다.
제2세션의 주제는 ‘만보산사건 및 조선화교배척사건의 민족적 갈등 구조’였다. 윤휘탁 한경대 교수의 사회와 영남대 손승회 교수의 평론으로 4개의 발표가 진행되었다. 첫 발표자인 강진아 한양대 교수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조선화교배척사건에 나타난 조선인과 중국인 간의 갈등 구조를 검토하고 혐오 문제와 폭력문제를 분리해서 분석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이어 정병욱 고려대 교수는 식민지 조선의 반중국인 폭동과 군중이라는 주제로, 군중이라는 익명성이 혐오를 조장하고 폭력의 강도에 영향을 주었다고 분석했다. 셋째 발표자인 김주용 원광대 교수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만보산사건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했는지를 논했다. 이어 중국 화중사범대 펑궈린 교수는 1931년 조선화교배척사건이 조선 화교상인에 미친 영향에 주목하고 이에 대해 중화상회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검토했다.
제3세션의 주제는 ‘조선화교배척사건의 각 지역 화교 피해의 실태’였다. 본 세션에서는 부경대 조세현 교수의 사회와 상명대 김희신 교수의 평론으로 3개의 발표가 진행되었다. 첫 발표자인 부산대 이은상 교수는 원산화교에 집중하여 원산의 지역성과 화교의 지역민과의 관계, 폭동 피해자의 상황을 검토하고 이에 대한 화교 상황의 변화와 그 대응을 분석했다. 중국 광동외어외무대 송우창 교수는 식민지시기 신의주에서의 화교배척사건의 양상을 검토했으며, 부두 조합과 같은 조선인의 조직적 개입과 폭행에 대한 사례 연구를 진행할 예정임을 시사했다. 뒤이은 발표에서 대만 타이완사범대 김(왕)은미 교수는 일제 식민시기 경성 차이나타운의 토지소유 자료를 교차 분석하여 화교의 거주 상황을 규명했으며 이것과 1931년 배화사건의 관련성을 검토했다.
제4세션의 주제는 ‘근대 동아시아의 민족 간 마찰과 학살의 양상’이었다. 서강대 이한우 교수가 사회를 맡고 한양대 윤해동 교수의 평론으로 3개의 발표가 진행되었다. 첫 발표에 나선 니시자키 마사오 일본 사단법인 호센카 이사는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인의 조선인 학살사건의 실태를 상세히 보고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일본에서 행해지고 있는 역사 은폐를 막기 위해서는 기억으로 남기는 것이 필요하며 구술 역사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두 번째 발표자인 베트남 하노이 인문사회과학대학 보 민 부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일본의 베트남화교정책에 주목하고, 현지 정권을 통해 통제와 협력을 확보하기 위해 시도했던 일본의 베트남 화교정책을 논했다. 마지막 발표에 나선 이정희 인천대 중국학술원교수는 1923년 발생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과 1927년 베트남 하이퐁화교 배척사건을 비교 검토하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도출해냈다.
이 회의는 만보산사건 및 조선화교배척사건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관련 분야의 동아시아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에 대한 연구와 시각을 공유하고 토론을 개진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더욱이 단일 주제로 이런 대규모의 국제학술회의가 개최되었다는 것은 관련 학계의 학문적 발전에서도 의미 있는 회의였다. 세계적으로 인종 및 민족 간 혐오와 갈등이 분출되고 있는 시점에서, 90년 전 발생한 두 사건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우리가 직면한 현재의 문제를 검토하는 장이 되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