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정』은 1598년에 발표된 애정극이다. 이 작품은 중국 전통극 양식 중 하나인 ‘전기(傳奇)’라는 장르에 속하며, ‘환혼기(還魂記)’, 혹은 ‘모란정환혼기(牡丹亭還魂記)’라고도 한다. ‘환혼기’라는 것은 ‘영혼[魂]이 다시 돌아온[還] 이야기[記]’라는 뜻이다. 이 극의 대략적 줄거리는 주인공 두여낭(杜麗娘)이 꿈에서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져 상사병을 앓다가 죽음에 이르렀으나 저승의 판관이 이승으로 되돌려 보내면서 다시 살아나 꿈속에서 만났던 남자와 실제로 만나 사랑을 이룬다는 이야기다. 남녀 주인공이 죽음을 뛰어넘어 사랑을 이룬다는 점에서 간혹 ‘중국판 〈사랑과 영혼(Ghost)〉’이라 불리기도 한다. 패트릭 스웨이지와 데미 무어가 열연을 펼친〈사랑과 영혼〉(1990)에서도 남자 주인공이 죽은 연인의 혼과 사랑을 나누는데, 〈모란정〉에서는 한 술 더 떠 그 혼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이처럼 『모란정』에는 꿈속의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죽은 사람의 영혼과 사랑을 나누며,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등 다소 괴이한 소재가 등장하는데, 이는 작가 탕현조(湯顯祖, 1550~1616)가 ‘꿈’을 소재로 한 희곡을 네 편이나 창작할 정도로 ‘꿈’이라는 소재를 즐겨 사용했고, 기이한 사람과 기이한 사건 등 ‘기이함[奇]’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모란정』의 작가 탕현조는 영국의 셰익스피어(1564~1616)에 비견되는 중국 전통극의 대표 작가다. 두 사람은 같은 시기에 활동했고 공교롭게도 같은 해 세상을 떠났다. 각각 동양과 서양을 대표하는 두 극작가의 서거 400주년이었던 2016년에는 중국, 영국, 벨기에, 호주, 한국 등지에서 이를 기념하는 다채로운 공연과 특별 세미나가 열리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세종문화회관과 대전시립연정국악원에서 〈중국곤극, 모란정〉을 상연했고, 서울 공연은 1200여 명의 관객을 모으며 주간 박스오피스 연극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사진 1. 탕현조 초상
『모란정』은 아름다운 가사, 뛰어난 심리 묘사, 흥미진진한 줄거리를 갖춰 발표되자마자 공전의 큰 인기를 얻었으며, 이러한 인기 때문에 당시에 다른 책들의 가격이 떨어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모란정』은 특히 여성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례로 세 여성 비평가의 평어(評語)를 수록한 삼부합평본(三婦合評本) 『모란정』이 큰 인기를 끌었다는 점은 이 작품이 당시 여성들의 취향에 잘 맞았음을 보여준다. 이밖에 풍소청(馮小靑), 김봉전(金鳳鈿), 섭소란(葉小鸞), 유이낭(兪二娘) 등 많은 여성들이 평어나 시를 통해 작품에 대한 열렬한 애호를 보여 주었다. 이밖에 한 소녀가 두여낭의 감정에 지나치게 심취해 상사병을 앓다가 죽었다는 이야기나 여배우가 두여낭을 연기하다가 무대 위에 쓰러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기도 한다.
『모란정』이 특히나 여성들의 사랑을 받은 것은 작가가 사회 통념을 깨고 남녀 간의 정(情)이나 여성의 내밀한 욕망을 자유롭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두여낭의 대사와 노래를 통해 여성의 감정을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언어에 담아낸 『모란정』에서 각자 자신들의 억눌린 욕망을 발견하고 환호했다. 비록 『모란정』은 한때 집권층에 의해 음란한 작품이라는 낙인이 찍혀 출판과 공연이 금지되기도 했으나, 작자가 시도했던 자유로운 감정의 표출은 『홍루몽』 등 후대 수많은 소설과 희곡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작가 탕현조가 『모란정』을 통해 독자와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산 자도 죽게 할 수 있고,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는(生者可以死, 死可以生)” 사랑의 힘, 그리고 자신의 솔직한 감정, 즉 ‘진정(眞情)’과 지극한 감정, 즉 ‘지정(至情)’에 바탕을 둔 자유연애사상이다. 그는 작품 앞에 서문 격으로 쓴 〈모란정제사(牡丹亭題詞)〉에서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겼다.
두여낭은 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정은 어디에서 생겨나는지 알 수 없으나 한 번 생기면 깊어진다. 산 자도 죽게 할 수 있고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다. 살아 있다 하여 함께 죽어줄 수 없고, 죽어 있다 하여 함께 살아날 수 없는 것은 모두 정이 지극한 정도에 이르지 않은 것이다.
이 글에는 ‘정(情)’의 표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 탕현조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일부 구절은 중국에서 2012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북경애정고사(北京爱情故事)〉의 대사로 등장하기도 해 현대인들에게도 탕현조의 생각이 여전히 흡인력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모란정』은 명대에 책으로 출간되자마자 인기를 얻었으나 이러한 인기는 독서물로서의 인기였고, 무대에서 공연되어 호평을 얻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중국 전통극에서는 노래와 음악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모란정』의 노래 가사는 작가의 고향인 강서(江西) 지역에서 유행하던 곡조에는 잘 맞았지만 당시 유행하던 곡조인 곤곡(崑曲)의 가락에 맞춰 부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명대에는 심경(沈璟), 장무순(臧懋循), 풍몽룡(馮夢龍), 서일희(徐日曦) 등이, 청대에는 엽당(葉堂) 등이 『모란정』을 곤곡에 맞춰 부를 수 있도록 가사를 고쳤고, 곤곡의 곡조에 어울리게끔 변화된 『모란정』이 궁중을 비롯해 다양한 무대에서 활발히 공연되었다.
『모란정』의 인기는 현대에 들어서도 식지 않았다. 1999년 뉴욕 링컨 센터에서는 중국 전통극인 곤극(崑劇) 양식으로 공연한 〈모란정(The Peony Pavilion)〉이 서구 관객들의 주목을 받았고, 2004년에는 대만의 유명 소설가 바이셴융(白先勇)이 『모란정』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청춘판(靑春版) 〈모란정〉이 대성공을 거뒀다. 탕현조 서거 400주년이었던 2016년에는 중국 국립발레단의 무용극 〈모란정〉이 영국에서 13회에 걸쳐 성황리에 투어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특히, 1999년 뉴욕 링컨센터에서 공연된 천스정(陈士争)의 〈모란정〉은 그간 서구 무대에 오른 〈모란정〉 공연 중에서도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 작품은 연기, 음악, 무대, 의상 등 모든 측면에서 높은 예술성과 현대 관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참신한 시도를 보여주었고, 파리, 밀라노, 베를린, 비엔나 등지의 순회공연은 큰 성공을 거뒀다. 이를 통해 시청각적 측면에서 중국 고전 희곡의 서구화 및 현대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엿볼 수 있다.
사진 2. 링컨센터 〈The Peony Pavilion〉 공연실황 DVD
청춘판 〈모란정〉은 중국 전통극 현대화의 성공적 사례로 꼽힌다. 이 작품은 2004년 타이베이 대극장에서 초연된 이래 베이징, 상하이, 항저우, 샤먼 등 도시와 미국, 영국 등 해외에서 2016년 기준 300회 가까이 상연되었고, 누적 관객이 50만 명에 달한다. 특히 고전 희곡에 대한 관심이 적은 30대 이하 젊은 층이 주요 관객층이었다는 점이 무척 고무적이다. 청춘판 〈모란정〉이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비결은 작품의 분량을 과감하게 줄여서 작품이 담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 중 남녀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점, 난해한 가사를 통용되는 쉬운 현대어로 고친 점, 원작에 보이는 남녀 주인공의 성격 중 현대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배제하고 긍정적이고 매력적인 인물로 재창조한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사진 3. 청춘판 〈모란정〉에서 ‘꿈속에서의 사랑(夢中情)’ 중 한 장면
400여 년 전에 나온 『모란정』이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사랑의 위대함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주인공 두려낭은 사랑 때문에 죽었다가 사랑 때문에 다시 살아난다. 그야말로 사랑의 힘으로 부활의 기적을 이룬 것이다. 어쩌면 특정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현대의 사람들도 이러한 기적을 나름대로 꿈 꿀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모란정』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누워서 읽는 중국 고전 5】
윤지양 _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http://blog.sina.cn/dpool/blog/s/blog_4a47386a0100armi.html?md=gd
사진 2. https://www.amazon.com/Ye-Tang-Pavilion-Festival-dAutomne/dp/B00005KH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