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여름, 정치뉴스에 뜬금없이 송로버섯과 ‘샥스핀찜’이 등장하면서 전례 없는 무더위에도 고급 중국음식점에서는 때 아닌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반면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금 고급 중국음식점에서는 때 아닌 불황을 겪고 있다고 한다. 화합과 단합을 상징하는 원탁(圓桌)에서 음식을 돌려가며 즐기는 이른바 ‘중식코스요리’는 중국의 접대문화의 상징과도 같아서 고급스러운 요리만큼 그 가격 또한 상당하다. 뉴스에 등장한 그 ‘샥스핀찜’, 중국명으로는 ‘通天魚翅(통톈위츠)’라는 요리는 열 사람이 먹어도 ‘김영란법’의 처벌 기준을 훌쩍 넘어선다. 중국의 해음문화(諧音文化)로 똘똘 뭉쳐 ‘함축된 의미’(寓意)를 가진 요리가 차례차례 나오는 한국의 ‘중식코스요리’는 ‘쓰얼빠(四二八, 428)’와 같은 중국 쟈오둥(膠東) 지역의 전통 연회요리를 기초로 한 것이다.
사진 1 통샥스핀찜
쟈오둥은 중국 산둥반도의 연해지역을 말한다. ‘쓰얼빠’는 쟈오둥 엔타이(煙臺) 지역 연회요리의 하나이다. 중국어에는 '장지우'(講究)라는 말이 있다. 통상적으로 ‘중요시 하다’로 번역되지만 대화 환경이나 상황 그리고 입장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져 번역하기가 상당히 조심스럽다. 만약 중화요리 식당에서 팔보채와 탕수육 그리고 짜장면과 짬뽕 등을 주문했다고 가정했을 때 음식이 나오는 순서는 반드시 ‘팔보채 → 탕수육 → 짜장면과 짬뽕’이 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먼저 나온 음식을 거의 다 먹을 때쯤에 다음 음식을 내와야 하며, 주식은 손님이 요리를 다 먹고 나서 그 양을 파악한 뒤에 내와야한다. 순서나 타이밍 그리고 주식의 양을 무시하고 음식을 내왔다가는 손님한테 한소리 듣기 딱 좋다. “뭘 그런 걸 다 따지고 먹나?” 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중국 사람들은 식사(食事)를 하는데 있어 ‘일종의 격식’이라고 할 수 있는 규칙을 상당히 따진다. 한국의 화교들도 예외가 아니라서 화교들이 운영하는 중화요리 식당에서는 대부분이 이러한 ‘격식’을 지킨다.
한 화교 동창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동창회 회식음식으로 여덟 가지 요리가 나오는 코스요리를 주문한 자리다. 처음에 몇 가지의 냉채가 나오고, 고급재료의 요리 소위 말하는 좀 비싸다는 요리가 두 번째로 나왔다. 그리고 단맛이 강한 요리가 세 번째에 나왔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중화요리 요리사인 한 동창이 “뭐야 이것 우리더러 빨리 나가라는 거야?”하면서 “여기 주방장 누구야?”라고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그러자 다른 동창이 “기분은 나쁘지만 따지지 말고 그냥 먹자!”라고 했고, 또 한 동창은 “이집 왜 이렇게 격식을 무시하는 거야?”라고 했다. 동창들의 기분이 언짢던 것은 중국요리에는 다음과 같은 순서를 지키면서 손님상에 내와야하는 철칙 같은 것이 있는데, 바로 ‘찬 요리 다음 따뜻한 요리, 짠 맛 요리 다음에 단 맛 요리, 안주 요리 다음 밥반찬’이다. 따라서 단맛이 강한 요리는 마지막에나 나올 법한 요리인데도 주방에서 신경을 쓰지 않았는지 단 맛이 강한 요리가 앞부분에 나와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다. 이러한 ‘격식’을 차리는 것이 바로 ‘講究(장지우)’이다.
‘일종의 격식’을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을/를 신경 쓰다’의 의미를 가지는 반면 그러한 것을 요구하는 입장에서는 ‘~을/를 차리다’의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장지우’는 음식을 내오는 순서 뿐 아니라 원탁자에 앉는 위치에서부터 요리의 종류와 가지 수 그리고 요리의 위치 등 따져야 할 것이 상당히 많다. 특히 ‘제노예의지방(齊魯禮儀之邦)’이라는 별칭을 가진 동이족의 거칠면서도 인의(仁義)적인 성격의 쟈오둥 사람들이 더욱 그러하다. 루차이(魯菜)의 본고장 쟈오둥 지역의 연회요리에는 쟈오둥 사람들의 성격과 문화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한국의 화교 사회에서의 ‘쓰얼빠(四二八)’는 한국 화교 연회요리의 대명사가 되었다. ‘쓰얼빠’ 외에도 ‘쓰야오리우(四一六)’, ‘쓰쓰빠(四四八)’, ‘쓰리우빠(四六八)’, ‘시따완(十大碗)’, ‘시얼홍(十二紅)’ 등도 있고 ‘십전십미(十全十美: 완벽하다의 의미)’, ‘사평팔온(四平八穩: 안정의 의미)’, ‘보보승고(步步升高: 승승장구의 의미)’ 그리고 전설의 ‘팔선과해(八仙過海)’ 등도 있지만, 결혼식이나 회식의 코스요리를 통칭하여 ‘쓰얼빠’라고 한다. 그것은 ‘쓰얼빠’가 쟈오둥 옌타이지역에서 가장 흔한 연회요리이기 때문이다. 옌타이는 루차이를 대표하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옌타이의 푸산(福山)은 요리 하나로 중국 전역에 이름을 떨친 곳이다. 한국 화교사회의 전설적인 옛 ‘공화춘(共和春)’과 ‘중화루(中華樓)’의 대표들 역시 옌타이 사람들이다.
한국 화교사회에서 연회가 있다고 하면 대부분은 결혼식을 말한다. 그 외의 돌잔치나 환갑잔치 등은 집에서 가족과 친인척끼리 조촐하게 한다. 지금은 한국 사람들처럼 뷔페에서 하기도 하지만 결혼식만큼은 고급 중국요리점에서 ‘쓰얼빠’로 하는 것을 선호한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 화교사회의 전통이 되어 버린 듯하다. 아래는 옛 ‘공화춘’의 간판 중 하나다.
사진 2 옛 공화춘 오른쪽 간판
“包辦會席”이라는 네 글자가 선명하다. 그 뜻은 “연회대행, 연회석 완비” 정도 될 것이다. 한국의 화교들은 결혼식만큼은 고급 중국음식점에 올리는 것을 선호한다. 인천에서는 옛 ‘공화춘’이나 현재의 ‘중화루’ 등에서, 서울에서는 ‘동보성(東寶城)’이나 ‘신동양(新東洋)’ 등에서 결혼식을 올리곤 한다. 결혼식의 연회요리로는 ‘쓰얼빠’, ‘쓰야오리우(四一六)’ 정도다. ‘쓰얼빠(四二八, 428)는 4가지의 냉채(冷葷, 렁훈)와 2가지 최고급요리(大件, 따젠) 그리고 8가지의 더운 요리(行件, 싱젠)가 갖추어져 14가지의 요리가 나와야 한다. 여기서 최고급요리라고 하면 ‘제비집’이나 ‘샥스핀’ 혹은 ‘해삼’이나 ‘왕새우’ 혹은 ‘전복’ 그리고 ‘통째로 나오는 도미’나 ‘통째로 나오는 닭’요리 등을 말한다. 같은 원리로 ‘ 쓰야오리우(四一六, 416)’는 4가지의 냉채와 1가지의 최고급요리 6가지 더운 요리가 갖춰져 11가지 요리가 나온다. ‘쓰쓰빠(四四八, 448 )’, ‘쓰리우빠(四六八, 468)’도 같은 원리다. 16가지 요리와 18가지 요리가 나와야한다.
그러나 지금은 ‘쓰얼빠’나 ‘쓰야오리우’ 같은 경우 위와 같은 형식을 따르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이제는 예전과 같이 그렇게 많이 ‘장지우’하지 않는다. 이 숫자로 이루어진 연회요리의 이름에는 ‘함축된 의미’가 있어 ‘장지우’해야 한다. 쟈오둥 방언에서는 ‘쓰(四, 4)’는 일 사(事)자와 그 발음과 성조가 같다. 따라서 해음(諧音)이 되는 ‘쓰’는 ‘일’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숫자 ‘6’과 ‘8’ 익히 알고 있는 ‘순조롭다’와 ‘대박 나다’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고 ‘얼(二, 2)’은 ‘두 번’, ‘야오(一, 1)’는 ‘야오(要)’와 그 발음과 성조가 같아서 ‘곧 ~~가 되다’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해음(諧音)에 따라 ‘쓰얼빠(四二八, 428)’는 “두 번의 대박”을 의미하고, ‘쓰야오리우(四一六, 416)’는 “일이 곧 순조롭게 되다”를 의미한다. ‘쓰쓰빠(四四八, 48)’는 “하는 일마다 대박”을 의미하고 ‘쓰리우빠(四六八, 468)’는 “일이 순조롭고 대박이 나다”를 의미한다. 또한 요리에 앞서 다과(茶菓)가 준비되어야 하는데 이것을 ‘야줘몐(壓桌面)’이라고 한다. 차(茶)와 함께 과자(菓子)를 미리 먹으면 술이 잘 받기 때문이다. 지금은 양파와 단무지 그리고 자차이(榨菜)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격식 차리기’와 거리가 멀다.
애석하게도 한국의 화교사회에서는 이젠 연회요리에 있어 ‘격식 차리기’를 하지 않는다. 요리의 순서는 따지면서 그 외에 것들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다과의 경우 ‘허타오수(核桃酥)’, ‘사치마(薩其馬)’, ‘단가오(蛋糕)’, ‘미산다오(蜜三刀)’ 등으로 구성된다. 이것은 청나라 만주민족의 문화로 제사 때 올렸던 과자들이다. 따라서 ‘기원(祈願)’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진 3 허타오수(核桃酥)
사진 4 사치마(薩其馬)
사진 5 단가오(蛋糕)
사진 6 미산다오(蜜三刀)
한국의 화교들은 ‘낡은 세상’과 ‘새로운 세상’이 혼란스럽게 공존하던 시대에 한국 사람들과 같이 살아왔다. ‘새로운 세상’이 거듭될수록 낡은 세상에서의 ‘격식 차리기’는 점점 소홀해졌다. 한국 화교들의 ‘쓰얼빠’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중식코스요리’로 소개되고 있다. 말은 단어 너머에 있는 문화를 공유해야만 온전히 서로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한국의 화교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국중화요리, 그 '식(食)'과 '설(說)' 20】
주희풍 _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박사수료 / 인천화교
참고문헌 (인용된 순서)
劉德增저 《解讀山東人》 中國文聯出版社. 2006年 1月 第1版.
郝祖濤저 《膠東古今名筵》, 《煙臺晩報》. 2007年 1月 23日 第9版.
張廉明, 牟恕海저 《齊魯烹飪大典》 山東科學技術出版社. 2007年 8月 第1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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