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연아, 이 드라마 꼭 봐봐! ‘육교 위의 마술사(天橋上的魔術師)’라고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야! 이 드라마를 보면 1980년대의 타이베이를 알 수 있어!”
드라마 덕후인 나에게 대만 친구들은 신작을 알려주며 안부를 전한다. 올해는 ‘육교 위의 마술사(2021)’라는 드라마가 인기라고 했다. 그런데 ‘육교 위의 마술사’를 보면 ‘1980년대의 타이베이’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전혀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가 도대체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이 드라마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1부를 다 보았을 때는 이 드라마의 제목이 배경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육교는 드라마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육교로 빠르게 지나다닌다. 그리고 육교가 연결하는 것이 또 있다. 중화상장(中華商場)이라 불리는 건물들을 연결한다. 내가 타이베이에 살았을 때는 들어보지 못했던 중화상장, 드라마에서 언뜻 보기에 중화상장은 주상복합건물 같다. 1층에는 여러 가게들이 있고, 주인공들은 2층과 3층에 살고 있다. 드라마의 시점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자아이의 1인칭 시점이며, 남자아이는 육교 위에서 신발 밑창을 팔고 있다. 남자아이가 사는 곳은 바로 중화상장이다. 도대체 중화상장이 무엇이길래 1980년대의 타이베이와 연결된다는 것일까?
사진 1. 드라마를 위해 복원된 중화상장의 모습
먼저 이 드라마는 한국에도 번역된 우밍이(吳明益)의 소설집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허유영 역, 2018, 알마)’의 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저자 우밍이는 중화상장에서 살았고, 자신의 기억을 소설에 담았다. 중화상장은 이름의 ‘중화’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중국 대륙에서 대만으로 이주해 온 외성인(外省人)들을 위해 만든 집단 거주 장소였다. 당시 외성인들은 중국 대륙을 수복하면 대만을 떠날 생각에 ‘임시로 거주할’ 장소를 찾았고 타이베이역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이러한 외성인들이 많아지면서 대만 정부는 1961년 중화상장을 만들어 이들이 함께 거주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중화상장은 타이베이 기차역과 현재의 시먼 사이에 위치했기 때문에, 이후 타이베이로 온 대만 중남부 출신 이주민들도 함께 살게 되었다.
중화상장은 8동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각 동의 이름은 8덕(8德)에 따라 충(忠), 효(孝), 인(仁), 애(愛), 의(義), 화(和), 평(平)으로 붙여졌다. 각 동은 ‘육교’로 연결되어 있었고, 1층은 가게, 2-3층은 주민들이 거주하는 일종의 ‘주상복합’의 형태였다. 이 가게들 안에는 외성인들이 만들어나가는 중국 대륙 각 지역의 여러 의식주 문화와 대만 중남부 이주민들이 만들어나갔던 여러 특산품들, 그리고 대만의 여러 공산품 등이 모두 모여 있어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타이베이의 랜드마크였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MRT의 개통으로 타이베이 상권이 점점 동쪽으로 이동했고, 타이베이 역 부근 중화로의 도시정화사업으로 이 중화상장을 철거하기로 결정하였다. 1992년 중화상장이 완전히 철거되면서 중화상장에 살았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중화상장이 담당했던 여러 상권은 타이베이역 지하상가, 타이베이 동구 쪽으로 분산되었다. 이 드라마는 1980년대부터 1992년 중화상장이 철거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초등학생의 시선을 통해 그리고 있다. 드라마에는 여섯 가족이 등장하고, 이 가족들의 배경은 외성인, 민남인, 객가인 등 대만 사회의 여러 배경들이 압축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마술’은 지금은 사라진 어린 시절의 기억이자 당시의 현실을 매우 풍자적으로 그리는 효과를 가져온다.
1980년대 대만의 경제가 발전하고 타이베이시의 현대화가 진행되면서 행정적으로 ‘중화상장’은 개혁해야 할 구시대적인 것으로 여겨졌지만, 사람들의 기억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중화상장의 거주민들은 1층의 약 2.5평 정도의 공간에서 물건을 팔았다. 2층과 3층의 거주공간은 1층과 연결되어 있는 구조였고 집 안에 화장실이 따로 없어 거주민들은 공용화장실을 함께 사용해야 했다. 이들에게 중화상장은 단순히 생계를 이어나가는 ‘일터’가 아니라 ‘함께’ 살아나가는 거주공간이었으며, 중화상장의 이웃들은 ‘가족’에 가까웠다.
또한 중화상장을 찾는 소비자들에게도 중화상장은 소중한 공간이었다. 가전제품이나 전자부품 등은 충과 효 동의 점포에, 보석과 골동품 등은 인과 애 동 점포에, 중국 대륙 각 성과 대만 중남부 지역의 맛집 등은 신과 의 동 점포에 있었고, 기성복 매장은 화와 평 동에 있었기 때문에 결혼을 앞둔 사람들이 예복을 맞추거나 중고등학생들이 교복을 마련하고, 대학생들이 한껏 전자제품을 사거나 옷을 사는 곳도 바로 이 중화상장이었다. 중화상장을 없앤다는 것은 타이베이 사람들의 ‘일상’을 지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중화상장을 살리려는 거주민들의 항쟁은 지난했지만, 타이베이 시정부는 타이베이역 부근의 교통 상황과 타이베이시의 국제화·녹지화를 이유로 철거를 밀어붙였고, 결국 이 ‘타이베이시의 대표 추억’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되었다.
대만 친구는 이 드라마가 어땠냐고 물으며 나의 1980년대 서울에 대한 기억도 궁금해했다. 영화 ‘1987’을 감명 깊게 봤다는 친구는 나에게 ‘민주화의 서울’을 기억하느냐고 덧붙였다. 친구의 질문에 답하려다 보니 나의 어린 기억 속 1987년 서울은 아파트 단지 놀이터이며, 1988년 호돌이를 만나러 집 근처 잠실종합운동장에 갔던 단편적인 기억만이 떠올랐다. 친구는 책이나 미디어에서 보았던 대학생들의 시위와 최루탄, 그리고 민주화 운동을 내가 추억하리라 예상했지만 나의 기억은 달랐다. ‘같은’ 서울의 한 켠에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위한 아파트 단지와 여러 인프라가 세워졌다. 순식간에 갈 곳을 잃은 이주민들이 생겼고, 다른 이주민들은 아파트 단지로 들어왔다. 누군가에게 올림픽은 축제였지만, 누군가에게 올림픽은 집을 잃은 아픔이었다.
2020년 인기리에 방영된 중국 드라마 ‘친애적마양가(亲爱的麻洋街)’도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다루는 듯 하지만, 그 이면에는 개혁개방 후 1980년대 중국의 도시화 과정이 드러나 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 한창이던 광저우(广州)의 마양길, 후난성에서 살던 주인공 리둥둥의 가족들이 리둥둥의 아버지 고향인 광저우로 돌아오게 되며 드라마가 시작한다. 이 리둥둥네 가족이 마양길로 이사올 때, 마양길 주민들이 함께 보던 경기는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권총 경기이다. 이 경기에서 중국 선수가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소련과 동구권이 불참한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중화인민공화국 선수들이 최초로 참가했고 좋은 성적을 거두기까지 한 것이다. 마양길 주민들은 이 ‘역사적’ 순간을 함께 즐기고 있다. 이렇게 이 드라마는 언뜻 보면 후난성에서 온 주인공 리둥둥네 가족을 위시해 베이징, 상하이 등에서 온 이주민들과 광저우 본지인들이 마양길에서 ‘함께’ 모여 사는 가족드라마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개혁개방의 중심지인 광저우에서 부를 획득한 사람들, 본지인과 이주민들의 갈등, 소꿉친구들끼리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개발과 함께 철거되는 마양길의 운명 등이 함께 녹아있다. 소중했던 마양길은 개혁개방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사진 2. 친애적마양가(2020)의 포스터
나에게 ‘중화상장’과 ‘마양길’은 무엇이었을까? 같은 시기 ‘또 다른’ 서울에서 민주화운동이 있었지만, 나의 ‘작은’ 세계는 조용한 아파트 단지와 친구들과 함께 놀던 놀이터, 그리고 미술학원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그 밖의 다른 한쪽 서울에서는 올림픽을 치루기 위해 여러 건물들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중화상장과 마양길이 1990년대 철거되듯, 나의 작은 세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철거되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 고층의 아파트들만이 ‘모던함’을 자랑하듯 존재감을 과시한다. 작가 우밍이의 어린 시절처럼 나의 어린 시절도 도시화 과정 속에서 ‘마술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 드라마들 때문일까. 다시 1980년대를 회상하는 여러 움직임들이 보인다. 중화상장을 추억하는 대만 친구는 ‘육교 위의 마술사’ 이후 중화상장을 기억하는 또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이 드라마들을 통해서 내 안의 ‘중화상장’과 ‘마양길’을 추억하게 되었고 또래 친구들과 추억을 공유하게 되었다. 광주(光州)가 고향인 다른 친구에게 ‘중화상장’과 ‘마양길’은 여전히 최루탄 냄새가 남아 있는 공간이었고, 베이징이 고향인 다른 친구는 1988년 서울 올림픽과 주제가인 ‘손에 손잡고’, 그리고 함께 올림픽에 참가한 공산권과 자유 진영 , 이후 소련의 해체까지 기억해 냈다. 홍콩이 고향인 다른 친구는 한청라오후(漢城老虎) 호돌이를 기억했으며 1989년의 천안문을 연달아 추억했다. 이제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1980년대 중화상장과 마양길이 궁금해진다.
“여러분의 중화상장과 마양길은 무엇입니까?”
【아시아의 보물섬, 대만 8】
문경연 _ 가톨릭대 사회학과 강사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필자가 드라마에서 직접 캡처한 화면임
사진 2. image.baid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