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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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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외교와 학문의 자유 _ 김태승

최근 미/중관계가 파국에 빠진 것으로 여겨질 만큼, 양국간의 불협화음은 공개적으로 워싱턴과 베이징을 통해서 발신되고 있다. 그 절정은 지난 318~19일 양일간 알래스카에서 개최된 중미 회담이었다.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 중국의 양제츠 중앙외사 판공실 주임과 왕이 외교부장이 마주앉은 이 회담에서 양국은 서로 기피하는 문제를 논쟁적으로 제기함으로써 격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미국은 회담 시작 전, 홍콩 관리 20여명을 제재하여 회담에 대한 미국의 각오를 표명했고, 회담에서는 홍콩,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인권문제, 타이완 문제 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중국을 공격하였다. 이에 대해 중국은 흑인인권문제, 금융헤게모니, 대국주의 등으로 미국에 반격을 가했다. 아마도 이러한 대립이 항구적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후 미국의 쿼드전략, 중국과 러시아 북한 등의 연대 움직임과 관련하여 주의해야 할 부분으로 생각된다.

 

미국이 신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고위급 회담에서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적절했는가는 논란이 있을 것이다. 미국이 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다른 국가들에게 훈수를 둘 자격이 있는지, 지금까지 그들이 주장하는 보편적 논리의 근거에 합당한 외교를 수행해 왔는지 믿는 정상적전문가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국제외교 현실에서 미국은 항상 자국의 이익이라는 입장에서 상대에 따라 인권문제를 선택적으로 제기해왔으나, 표면적으로는 수사적 표현으로 자신들의 의도를 은폐하는데 능숙한 나라였다 그래서 이러한 대립은 말하자면 미국의 이익을 위한 외교적 전략과 선택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고, 자국의 유권자와 지지자를 염두에 둔 일종의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 보여주기 행사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미국의 공격에 대응하는 중국의 관점도 흥미로운 것이었다. 양 정치국원의 미국 대국주의에 대한 비판 발언은 미국에 대한 소위 중국 외교전문가들이 미국을 이해하는 현상적 관점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사실은 대국주의에 기반을 둔 제국주의 베끼기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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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1. 미국과 중국의 알라스카 회담 


중국의 대국주의에 대한 환상은 근현대 중국역사를 통해서 최근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에 의한 애국주의 대중 동원전략이 가속화되면서 그것은 일종의 종교가 되었다. 알래스카 회담에서의 중국 측 발언은 바로 그러한 종교가 어떤 모습으로 정치화되었는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중국은 보편적 가치와 성찰적 역사 이해의 토대 위에서가 아니라 오직 애국주의적 관점에서 대국주의를 과시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미국의 전략적 문제제기에 대한 세심한 외교적 대응책이 준비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한 국제문제 전문가는 중국은 미국과 전략적 경쟁에 들어서기 시작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515일 저장국제대학의 미국연구센터 설립과 관련된 행사에서 행한 연설에서 베이징 대학 국제전략연구원 원장 왕 지시는 중국에서의 미국학 연구에 대한 중국인들의 근거없고 부정확한자부심을 비판하면서 미국연구기반의 취약성에 대해 지적했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중국의 미국에 대한 전문가들의 육성이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전문가 육성에 비해 훨씬 뒤떨어지고 있으며, 중국에서의 미국학 연구 수준에 대해서는 부끄럽고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학문적 후진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함을 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문사회과학 영역에서의 전문적 연구와 그것의 현실세계에의 적용은 보다 정교한 논의과정이 필요한데 중국에는 그러한 환경이 조성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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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2. 왕 지시(王緝思)교수. 북경대 국제전략연구원 원장


특히 그는 연구기반의 위기를 지적했다. 사회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중국의 우수한 인재들이 미국에서 미국이 아니라 중국을 연구함으로써 중국에서의 미국학 발전에 기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을 가장 잘 아는 많은 연구자들이 결국 미국에 남아 중국에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미/중간에 상대에 대한 지식의 불균형 상태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중국의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 문제는 다른데 있지 않을까. 그것은 미국에서 사회과학을 연구한 중국학자들이 귀국하지 않거나 미국을 연구하지 않는 이유는 학문의 자유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한 중국 학자는 그것이 외교문제가 바로 정치문제가 되는 중국의 학문적 환경과 관련되어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이러한 언급은 자유로운 학문적 토론이 허용되는 공간이 중국에는 부족하다는 고백이기도 했다. 지난 3월 베이징대 지아 칭구어(賈慶國)교수는 중국 학자들이 해외교류를 할 때 받는 과도한 제한을 완화해 줄 것을 요청하는 공식 제안서를 관련 위원회에 제출하였다. 그에 따르면 외국인을 만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의 감독관의 승인을 받아야 했고, 만난 이후에는 자세한 결과보고서를 제출해야 했으며, 원칙적으로 같은 외국인을 1년에 두 차례 이상 만날 수 없음을 지적했다. 현실에서는 이러한 원칙이 잘 적용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으나, 어쨌든 그러한 원칙의 존재는 학문 활동의 자유로운 교환에 장애가 될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201911월 중국에서는 <신시대 애국주의 교육 실시 강요>라는 문건이 중공중앙과 국무원 명의로 공포되었다. 이 문건 작성의 목적은 문건의 앞부분에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있다.

 

새로운 시대에 애국주의 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민족정신을 진작하고 전민족의 역량을 집결하여 소강사회 건설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고, 새로운 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위대한 승리를 쟁취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인 중국몽을 실현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당과 국가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인 중국몽을 실현하는 것을 애국주의 교육의 목표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러한 규정적 전제 하에 학문의 자유로운 발전 가능성을 찾기는 어렵다. 알래스카 회담에서 나타난 중국 외교 전략의 부재는 사실은 창의성을 억압하는 학문에 대한 당의 통제와 관련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더욱 우려가 된다. 당의 통제 안에서만, 당의 지도에 대한 복종 속에서만 가능한 학문이라면, 그리고 그것을 활용한 외교정책이 중국을 지배한다면, 현실분석이 아니라 당의 의도가 외교를 지배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중국의 외교를 더욱 위기에 몰아넣게 되지 않을까. 중국은 그렇게 해서 정말 그들이 원하는 대국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을까.



김태승의 六十五非 23


김태승 _ 아주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1: http://www.baidu.com/

 사진 2:

https://www.scmp.com/news/china/diplomacy/article/3134371/our-american-studies-are-too-weak-chinese-scholars-wa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