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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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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들의 영원한 조상신, 노반(魯班)_ 박경석

지난 호부터 개별적인 행업신을 소개하기 시작하면서, 행업신 중에서도 역시 가장 인기 있었던 최고의 스타는 관우(關羽)였다고 했다. 말하자면, 관우는 행업이 아니더라도 민간신앙의 전반에 걸쳐 인기가 높으면서 행업신으로서도 많은 업종에서 숭배했던 신령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노반(魯班)은 행업신으로 특화되어 가장 많은 업종에서 숭배했던 신령이었다. 이교(李喬)행업신숭배 : 中国民衆造神史硏究(북경출판사, 20138월판)에 따르면 총 16종의 업종에서 노반을 행업신으로 섬겼다고 하는데, 목수, 기와장이, 석공, 목각, 제재업, 수레제조, 탑 쌓기, 리본 장식, 벽돌, 옥기, 가죽가방, 머리빗, 시계, 편직, 선반작업, 소금, 설탕, 우산 등과 관련된 장인들이 숭배하였다.

 

노반선사(魯班仙師), 공수선사(公輸先師), 교성선사(巧聖先師), 노반야(魯班爺), 노반공(魯班公), 노반성조(魯班聖祖) 등의 존칭으로 불리는 노반(魯班)은 본래 역사에 실존했던 인물이었다. 나중에 솜씨가 좋은 장인(匠人)을 표상하는 전형적이고 신비로운 존재가 되었다. 역사상의 노반은 춘추시기 노()나라 사람으로서 성은 공수(公輸)’이고 이름은 ()’이었다. 그래서 공수자(公輸子)’, ‘공수반(公輸般)’이라고 불렸지만, ‘()나라의 반()’이라는 의미로 노반(魯般)’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과 발음이 같기 때문에, 이후 노반(魯班)’ 또는 공수반(公輸班)’이라고 칭하게 된 것이다. 노반의 출생연도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노반경(魯班經)을 근거로 노나라 정공(定公) 3, 즉 기원전 507년이고, 또 하나는 양계초(梁啓超)가 주장한 노나라 애공(哀公) 1, 즉 기원전 494년이라는 설이다. 노반의 사망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없다. 대체로 기원전 440년 정도까지는 활동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역사 기록에서 노반은 빼어난 솜씨를 지닌 탁월한 장인으로 칭송되고 있다. 진한(秦漢) 시기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사다리, 목제 솔개(일종의 비행기구), 맷돌, 문고리 자물쇠, 전투용 선박(戰船), 기관차, 숫돌, 벽돌, 드릴 등의 생산 공구와 무기를 발명했다고 한다. 이 시기의 기록은 대체로 사실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대(漢代) 이후 노반에 대한 기록은 갈수록 신비주의 색채가 농후해진다. 실제와는 거리가 먼 전설이 되어 간 것이다. 예컨대, 그가 삽, 대패, , 곱자(曲尺) 등을 모두 만들었고, 나무를 깎아 학을 만들고, 돌을 깎아 구주도(九州圖)를 만들었으며, 노구교(盧溝橋) 등을 지었다고 하였는데, 이는 모두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몸에 날개가 돋아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되었다는 기록도 많이 언급되었으나, 물론 이것도 전설일 뿐이다.

      

그림 1  행업신 노반(魯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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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업신으로서 장인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노반의 형상은 노반경(魯班經)이라는 일종의 경전에 의해 전해졌다. 노반경은 대대로 장인들의 필독서였고, 장인들은 노반경을 읽으면서 노반을 마음에 새겼다. 서명이나 내용에서 보듯이, 노반경은 장인들이 노반을 조상신으로 섬기는 정신활동을 전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노반경에는 노반의 일생에 관한 역사적 사실도 있지만, 신화적인 요소가 더 많았다. 요컨대, 노반이 태어나는 날에 백학(白鶴)이 군집하고, 신비로운 향기가 방안에 그득하고, 초하루에서 보름날까지 달이 흐트러지지 않아 사람들이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고 한다. 어려서 배운 것이 없었으나, 커서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자기의 주장을 폈고, 은거하다가 스승으로부터 기예를 배워 훌륭한 장인이 되었고, 종국에는 신선이 되었다. 노반은 한 사람의 장인일 뿐만 아니라 정견을 갖춘 사상가였고, 은사(隱士)였으며 신선이었다. 신비로운 출생을 비롯해 이러한 서술은 예로부터 신화적인 인물, 제왕, 성현, 위인을 표현했던 전통적인 방식이었다.

 

그림 2  노반경(魯班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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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반경은 사실 노반경장가경(魯班經匠家鏡)의 줄임말이기도 한데, 명대(明代)에 정립된 것으로 여겨진다. ‘장가경(匠家鏡)’이란 말 그대로 장인 가문의 거울이라는 뜻으로, ‘안내서또는 공구서를 의미한다. 명대에 출현한 노반경은 그 판본이 지역 및 시기에 따라 매우 다양하고 전래되는 상황도 매우 복잡하다. 여러 가지 판본에는 해당 시기 및 지역의 특색이 가미되어 초록(抄錄)과 내용에 있어 차이가 매우 많다. 명대의 노반경을 저본으로 각 지역마다 대대로 비밀스럽게 전해 내려오는 비본(祕本)’을 가지고 있는데, 각양각색의 내용이 첨가되고 확대되었다. 요컨대, 해당 장인 사회 내부에서 진행해온 노반 신령에 대한 숭배활동이나 여타 수호신을 섬기는 일을 기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만의 전통적인 작업 비법 등도 기록하고 있다. 노반경은 민간 특히 중국 남방의 민간에 지극히 널리 퍼졌는데, 장인들의 생산과 습속, 신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림 3  노반경(魯班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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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들의 노반 숭배는 당대(唐代)의 건축업 장인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국번(高國藩)돈황민속학(敦煌民俗學)(上海文藝出版社, 1989.11)에 따르면, 당대 둔황에서 상량식(上梁式, 기둥에 보를 얹고 그 위에 처마 도리와 중도리를 걸고 마지막으로 마룻대를 올리는 일을 축하하는 의식)을 할 때에 노반(魯班)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아마도 이는 후대에 건축업 장인들이 상량을 할 때에 노반에게 제사를 드리는 일의 효시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행업신 숭배가 그렇듯이, 명대(明代)에 이르러 노반에 대한 장인들의 숭배활동이 본격화되었다. 이는 명대에 정립된 『노반경의 서두에 잘 서술되어 있다. 또한, 홍무제(洪武帝) 주원장(朱元璋)의 아들 영락제(永樂帝) 주체(朱棣)가 조카인 건문제(建文帝)를 물리치고 정권을 장악한 이후 수도를 난징(南京)에서 베이징(北京)으로 옮기면서 웅장한 자금성(紫禁城)을 지었는데, 당연히 건축 장인들이 부담한 노역이 지극히 무거웠다. 건축 장인들은 자신들이 섬기고 있던 조상신 노반에게 무거운 노역을 완수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원했다. 자금성 건축이 끝나고 장인들은 무사히 자금성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이 노반의 보우하심 덕분이라고 생각해, 노반의 은덕에 보답하고자 거대한 노반 사당(魯班廟)을 세웠다. 이후 여기에서 때마다 최고의 예를 갖추어 노반에 제사를 지냈다.

 

명청(明淸) 이래 전국 각지의 각종 장인들은 노반을 조상신으로 섬겨 제사를 드렸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 각지에 수많은 노반 사당을 세웠는데, 이를 노반묘(魯班廟), 노반전(魯班殿), 공수자사(公輸子祠), 노반선사사(魯班仙師祠) 등으로 칭했다. 여기에서 삼원오납(三元五臘)이라는 절기에 맞추어 노반회(魯班會)’라 불리는 축제를 열었다. 물론 축제에는 제사 의례가 포함되어 있었다. 삼원(三元) 절기는 음력으로 115, 715, 1015일을 말하고, 오납(五臘) 절기는 11, 55, 77, 101, 128일이다.

 

제사 활동 이외에 장인들이 노반을 공경해 생겨난 습속들도 있었다. 예컨대, 작업을 위해 출장을 나가거나 일이 끝나 집으로 돌아갈 때에 쇠몽둥이, 흙손, 도끼, 자루, 먹통 등을 허리에 차고 갔다. 이러한 공구들을 노반 조상신이 발명하여 전해준 일종의 법보(法寶), 즉 요괴를 제압하거나 죽일 수 있는 보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노반 신령이 작업을 순조롭게 해 줄 것이라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자신의 안전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총체적으로 보아 각종 장인들이 노반을 조상신으로 섬겼던 것은 그가 역사상, 전설상 많은 공구들을 발명하였고, 빼어난 솜씨를 가졌던 탁월한 장인이었기 때문이다. 행업과 행업신의 관련성이 매우 단순하고 명확하다. 하지만, 각종 구체적인 업종마다 중점을 두거나 특별히 강조하는 노반의 사적이나 전설은 조금씩 달랐다.

 

목공 장인들은 노반을 조상신으로 섬길 때 그가 목공 공구의 발명자임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요컨대, 자기들이 사용하는 잣대를 노반이 발명했다는 의미로 노반척(魯班尺)’이라고 불렀다. 노반이 발명한 잣대가 얼마나 정확하고 신령스러운지를 강조하는 것이다. 목각을 다루는 장인들도 노반을 조상신으로 섬겼는데, 그들은 노반이 목수들의 조상신일 뿐만 아니라 목각의 발명자였다고 강조한다.

 

건축업 장인들은 노반을 건축업의 개창자로 여겼다. 건축 자체는 훨씬 더 오래 전에 시작되었지만, 노반의 손에 의해 비로소 규격을 갖추게 되었으니, 노반이 만세의 건축업을 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노반 조상신이 베풀어준 창업의 은덕을 잊지 못해 숭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레를 만드는 장인들도 노반이 수레를 만든 큰 스승이라는 전설을 근거로 노반을 조상신으로 섬겼다.

 

【중국 행업신 이야기 동업자들의 세속화된 신성 5】

 

박경석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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