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1. 성묘하러 가는 사람들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코로나 재유행’에 대한 공포가 또다른 봄날의 일상마저 잠식하던 지난 4월 4일은 부활절이자 24절기의 하나인 청명절이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부활절은 서구 기독교적 신앙의 세계관에 따른 ‘율법(신약)의 절기’이고, 청명절은 중국 주(周)나라 때 태양의 운행에 따른 기후변화를 기준으로 태양년(太陽年)을 24등분했던 것이 동아시아 지역으로 확산되어 정착된 ‘역법(曆法)의 절기’ 중 하나이다. 서로 기원과 의미의 차이가 커 보이지만, ‘봄의 절기’라는 공통성 속에서 어쩌면 ‘고난’과 ‘혹독’한 시기를 이겨내고 ‘새생명’과 ‘좋은 날’을 축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맞닿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한다.
그림 1. 베트남어가 병기된 24절기 주기표1)
농경사회를 위한 ‘역법의 절기’로서 청명절이 현대화된 사회에서 급격한 의미변화를 겪어 온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청명절이 중국, 한반도, 일본과 베트남 등에 걸쳐 ‘동아시아의 봄’을 상징하는 중요한 절기로서 역사·문화적 의미를 여전히 지니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24절기’ 체계 안의 다른 절기들이 동아시아 국가들의 지역적 시차로 인해 생활방식의 차이와 상이한 감각의 틈을 메꾸기 어렵게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두드러지는 반면, 청명절은 ‘봄’의 공감각을 일깨우고 의례와 노동의 동아시아적 시간들이 교차하는 절기로서 독특한 의미를 지닐 수 있었다. “오동나무의 꽃이 피기 시작”하고, “들쥐가 사라지고 종달새가 나타나”며 “무지개가 처음으로 보인다”는2) 청명은 동아시아 농경사회의 문화적 전통을 구성해 왔던, 자연의 환대와 풍요의 기대가 조우하는 절기로서 의미를 가져왔던 것이다.
이러한 청명절은 2008년부터 중국정부가 3일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면서, 단순한 고대 ‘역법체계’의 흔적이 아닌 현대성의 시간으로 자리매김 되었다.3) 더 나아가 중국은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태양의 연주운동을 관측해 발전된 시간과 실천에 관한 중국의 지식체계로서 24절기”를 등재하여 청명절을 고유한 절기이자 휴일로 위치 지웠다. 비록 역사적 기원과 사료들을 내세울 수 있다 할지라도, 수세기 동안 동아시아의 여러 국가에서 사용되고 변용되며 발전해 온 ‘지식체계’를 중국이 독점적 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것은 중국의 ‘문화굴기’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시간과 실천에 관한” 지식체계는 삶과 생에 관한 직접적인 지식체계이기에 단순한 문화유산 등재 이상의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앞선 2015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한국과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이 아시아에 널리 퍼진 농경문화 전통이자 공동체적 실천이었던 ‘줄다리기’를 다국적 무형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하며 역사·문화에 대한 상호존중과 공통성에 관한 이해의 증진을 도모했던 사례가 있었다. ‘줄다리기’와는 내용적 차이가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특별히 ‘무형문화유산’의 경우에는 긴급한 보존과 보호를 위한 조치가 시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인류의 역사·문화가 그 자체로 지닌 다양성과 공통성을 포괄하고자 시도하는 ‘열린 문화유산 정치’의 가능성에 관한 새로운 관점과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청명절과 ‘소묘(扫墓; Tảo Mộ)’의 정치
베트남은 ‘24 절기’에 따른 시간과 실천의 지식체계 전통을 공유하는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북회귀선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북으로 길게 뻗은 지형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에 따라 ‘24절기’는 대체로 상징적 ‘의례의 역법’의 주기로 활용되어 왔을 뿐 직접적으로 농경생활과 노동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었다. 오늘날 베트남에서 청명절은 중국처럼 법정공휴일은 아니지만 절기의 원리에 따라 다음 절기인 ‘곡우(穀雨)’전까지 약 보름간 지속되는 시간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베트남 랑선성 등 중국과 인접한 국경지역과 홍강 델타주변의 북부지역민들, 그 중 따이(Tày)족과 눙(Nùng)족- 중국의 좡족(壮族)에 속하는 소수민족-에게 청명절은 매우 중요한 명절이다.
중국과 베트남 그리고 다른 국가에서 청명절의 문화, 의례적 전통은 오랜 역사와 기후적 특성, 그리고 각각의 지역과 민족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만약 청명절을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실천되는 특징적이며 공통된 의례를 통해 정의해 본다면, 조상과 가족의 무덤을 직접 찾아가 돌보며 제사 지내는 ‘소묘(扫墓; Tảo Mộ)’ 의례를 들 수 있다. 한 해 동안 무덤이나 묘지를 찾거나 돌보지 못한 경우에도 이 청명절만큼은 모든 가족구성원이 함께 모여 ‘소묘’하고 조상의 은덕을 기리며 새로운 한 해의 건강과 풍요를 기원하며 준비한 음식을 나누는 의례를 통해 상호간의 가족정체성을 재확인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의례를 ‘유교적’인 것으로 설명하는 방식도 있지만, 그것을 동아시아적 보편성으로 설명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베트남과 중국의 소수민족이 행하는 청명절 의례는 유교적이라기 보다는 도교적이며 자연이 제공한 생기와 환대에 고마움을 표하고 “흙으로 되돌아간” 혹은 “대지에 뿌리내린” 조상들의 영혼을 통해 대자연과 소통하는 봄맞이 축제에 가깝기 때문이다.
청명절 소묘의례는 자연과 인간, 가족과 지역공동체 간의 친밀한 관계를 구성하는 효과를 냈던 것이 분명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베트남과 중국간의 미묘한 정치적 문제로 전화되었던 역사 또한 지니고 있다. 베트남이 독립하고 북베트남 지역에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 북베트남과 중국은 1950년대 말 육지국경문제에 관한 상호 논의와 협상을 시작하였다.4) 이 국경문제 협상에서 국경지역에서 행해지는 묘지 매장과 월경문제는 양국의 공동관심사가 되었다. 국경지역의 주요 거주민들이 소수민족이며, 화전을 일구거나 유랑하는 삶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토지와 임야 그리고 인구 통제와 관리에 대한 현실적 어려움과 정치적 민감성을 증대시켰다.
사진 4. 베트남 북부 랑선성 중국군 희생자 묘지 Nghĩa Trang (義莊)
(묘지 중앙에 “열사의 은혜를 대대로 기억한다”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마오 주석의 말씀. 혁명에서 승리를 획득한 인민은 해방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인민을 도와야만 하며, 이것은 우리들의 국제주의적 임무이다”
사진 5. 랑선성 중국 희생자 묘지내 호찌민 주석의 비문과 함께 세워져 있는 마오 주석 비문
사진 6, 7. "베트남에 대한 국가지원 장시성(江西省) 난창(南昌)시 참전용사 대표단”의 참배 화환
전쟁은 죽음에 대한 새로운 관리방식을 제도화하고,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의 관계, 살아있는 자들 사이의 관계를 뒤틀어 놓는다. 1940년대 후반 베트남과 중국의 국경지역에서 프랑스군에 맞서거나 국민당 군에 맞서 전투를 치르면서, 국경지역에 크고 작은 전사자 묘지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1965년 이후 베트남전이 확전되자 중국은 30여만 명의 군대를 베트남에 파병하게 되었고, 그 중 약 1000여 명이 전사하고 4000여 명이 부상하는 인명피해를 입었다. 공식 참전이 아니었고, 상당수 인명피해는 전투가 치열하게 펼쳐지고 북베트남에 대한 미군의 폭격작전이 끊임없이 펼쳐지던 1968년까지 발생했는데, 중국군 전사자들의 유해는 본국으로 이송되지 않고 대부분 북베트남 지역에 묻히게 되었다.
1975년 마침내 전쟁은 끝났지만, 그사이 베트남과 중국의 관계는 급속하게 악화되었고 설상가상으로 1979년 2월 중국인민해방군이 베트남 북부 국경으로 밀려들어오면서 양국간 전쟁이 발발하고 말았다. 1979년 전쟁은 한 달여 기간 동안 베트남 북부국경 지역 전역에서 벌어졌고, 중국인민해방군은 베트남 북부의 국경 거점도시인 랑선을 점령한 후 철수하였다. 베트남은 또다른 전승을 자축하였지만, 예상하기 힘들었던 두 사회주의 국가 간의 전쟁은 베트남의 북부 국경지역을 폐허로 만들고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고 말았다.
‘1979년 전쟁’은 베트남의 독립투쟁과 ‘항미전쟁’의 동지들이자 열사들이었던 중국군 희생자들을 공식 역사와 기억에서 지우고 묘지를 파괴하거나 방치하게 하는 후폭풍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 1991년 양국간의 국교가 다시 정상화되기 전까지 한때 중국군 ‘열사묘지’였던 곳들은 사실상 ‘적군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양국관계가 정상화되고 베트남도 전국적으로 ‘열사묘지’를 정비하는 작업에 나서면서, 중국군 전사자 묘지들도 재정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묘지가 ‘1979년 전쟁’의 기억이 여전히 선연한 랑선성 등 베트남 북부지역에 집중되어 위치하고 있기에, 묘지는 대부분 문을 걸어 잠그고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거나 외부에서 중국군 묘지임을 알 수 있는 표지들을 제거하는 형태로 관리되었다.
이러한 중국군 희생자 묘지가 다시 베트남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양국간 육지국경선이 확정되고 양국민의 월경이 보다 손쉬워진 후, 중국에서 청명절이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소묘’와 참배를 위한 단체 방문객들이 베트남 북부지역을 찾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베트남 북부지역민들도 청명절을 지키는 전통을 지니고 있기에 어렵지 않게 받아 들일 수 있었던 문화적 전통은 2000년대 후반 이후 빈번해진 남중국해(동해) 해양 영유권 문제로 인한 충돌과 갈등 상황에서 다시금 험악한 여론에 직면해야 했다. 일부 베트남인들은 중국대사관이 청명절 ‘소묘’를 구실로 ‘1979년 전쟁’에 참전했던 이들까지 베트남으로 다시 불러와 참배하게 하고, 자신들의 ‘배반’과 ‘만행’의 역사를 지우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과거 ‘남베트남’ 정부의 군인으로 참전해 전사했던 이들의 묘역은 버려두고 방치하면서, 베트남 당-국가가 ‘1979년 전쟁’을 치른 중국군에 대해서는 저자세로 ‘특별관리’와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며 ‘반민족주의적’인 혐의를 제기하는 이들마저 있었다. 베트남과 중국이 ‘1979년 전쟁’의 과거사를 청산하고 화해하려는 노력을 방기해 왔기에, 매년 청명절이면 ‘소묘’ 방문객과 추모행사 등을 두고 국경지역에는 새로운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국제주의적 임무’에 따라 참전을 독려했고, 랑선에서 직선거리로만 1,200 여 km 떨어진 장시성 난창시의 청년들은 랑선에서 ‘미제국주의자들과 그 주구들’에 맞서 전투를 치르다 사망해 ‘동지의 나라’에 묻히게 되었다. 역설적이지만, 그들이 묻힌 곳을 ‘이국의 땅’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국제주의적 임무’와는 거리가 있었던 ‘1979년 전쟁’의 결과이자 유산이었다. 그리고 베트남과 중국이 다시 함께 청명절 ‘소묘’와 ‘제사’를 지내게 될 때, 이 안타까운 뒤틀림의 역사도 비로소 다시 풀려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해 본다.
청명절이 끝나갈 즈음엔 “무지개가 처음으로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심주형 _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1) 중국 고대 주나라때 화북(華北)지방의 기후변화에 기초하여 만들어지고, 주로 농력(農曆)으로 활용되었다고 알려진다. 지역간 기후의 차이와 오늘날 사회변화의 영향으로 베트남에서는 주로 북부지역에서 의례적 전통의 주기로 활용된다.
2) 한국민속대백과사전 (https://folkency.nfm.go.kr/kr/topic/detail/5014)
3) 북한도 2012년부터 청명절을 공휴일로 지정한 것으로 알려진다.
4) 심주형 (2020). 「순망치한(脣亡齒寒; Môi Hở Răng Lạnh)"과 비대칭성의 구조-베트남·중국 관계와 국경의 역사경관(historyscapes)」『중앙사론』 52: 447-499 참조.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고, 별도의 출처표기가 없는 이미지는 베트남 랑선성 현지조사 과정 중 필자가 직접 촬영한 것임.
사진 1. https://vnexpress.net/tet-thanh-minh-cua-nguoi-nung-tai-lang-son-3384288.html
그림 1.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Ti%E1%BA%BFt_Kh%C3%AD.svg
사진 2. https://vnexpress.net/tet-thanh-minh-cua-nguoi-nung-tai-lang-son- 3384288.html
사진 3.
https:/ /www.nguoiduatin.vn/nhon-nhip-tet-thanh-minh-co-mot-khong-hai-o-lang-son -a236208.html
** T.S. 엘리엇, 1922, “황무지 (The Wasteland)” 中
*** 참고 문헌 및 자료
심주형 (2020). 「순망치한(脣亡齒寒; Môi Hở Răng Lạnh)"과 비대칭성의 구조-베트남·중국 관계와 국경의 역사경관(historyscapes)」 『중앙사론』 52: 447-499.
연합뉴스, 2011년 12월 25일자, “내년 北달력 4월4일 빨간날은 청명절 휴일" (https://www. yna.co.kr/view/AKR20111225018300014)
연합뉴스, 2016년 11월 30일자, “'입춘' '입동' 등 24절기, 유네스코 문화유산 됐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8859520)
한국민속대백과사전 (https://folkency.nfm.go.kr/kr/topic/detail/5014) UNESCO, “The Twenty-Four Solar Terms, knowledge in China of time and practices developed through observation of the sun’s annual motion” (https://ich.unesco.org/en/RL/the-twenty-four-solar-terms-knowledge-in-china-of-time-and-practices-developed-through-observation-of-the-suns-annual-motion-006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