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얼마 전에 헌법재판소 앞에서 ‘문신사법’의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는 1인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다들 짐작하겠지만, 문신사(文身士)는 문신(文身) 혹은 타투(tatoo)를 전문적으로 시술하는 사람이나 그 직종을 말한다. 사실, 타투이스트라고 하면 귀에 꽤 익은 듯도 한데, 문신사라는 말은 이때 처음 들었다. 과문의 소치이기도 하지만 평소 문신에 대해 아예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던 탓이 클 게다.
아마도 필자와 같은 장년 세대 중에 문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우선, 바늘로 몸에 그림을 그리는 자체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고귀한 몸에 생채기를 내는 매우 불경한 행위로 인식하는 유가적 전통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몸을 함부로 해하지 않는 것을 효의 시작(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이라고 보았던 공자(孔子)는 문신을 오랑캐의 야만적인 풍습으로 비하하며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둘째, 동아시아 지역에서 문신은 수천 년 동안 형벌로서 기능해왔다. 일명, 묵형(墨刑), 자자형(刺字刑)이라고 해서 죄인이나 노비의 얼굴 등에 영구히 지워지지 않는 글자를 새겨넣는 형벌이다. 이는 달리 경형(黥刑)이라고도 하는데, 우리가 통상 “경을 칠 놈”이라고 할 때의 경(黥)이 바로 이것이다. 셋째, 문신은 사회 주류에 속하지 못하거나 속할 수 없는 부정한 집단들의 불량한 행위로 여겨져 왔다. 우리가 문신을 교도소 수감 죄수나 일본 야쿠자 같은 소위 ‘조폭’들이 하는 매우 불손한 행위 정도로 생각하는 게 그 예이다. 그런데 이러한 예는 과거에도 있었다. 중국 사대기서(四大奇書) 중의 하나인 『수호전(水滸傳)』에 등장하는 108명의 도적(좋은 말로 好漢이라 한다.)들 가운데, 사진(史進)과 노지심(魯智深)이란 인물이 있다. 그런데 사진은 몸에 아홉 마리의 용 문신이 있다고 해서 구문룡(九文龍)이란 별호가 있고, 노지심은 어깨에 꽃 그림이 새겨 있다고 해서 화화상(花和尙)이라 불렸다. 모두 문신과 관련된 별칭이다. 이렇게 보면, 옛날에도 문신은 이른바 주류사회에 편입될 수 없는 비주류집단의 사회적 분노와 저항의 표현이었던 듯하다.
이렇듯 오랜 세월 축적되어온 문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추형들 탓에, 지금의 장년 세대에게 문신은 여전히 낯설고 거북한 일종의 사회적 금기 내지는 암묵적으로 행해지는 불법행위 정도로밖에 인식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통상 타투라고 불리는 문신은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일종의 예술적 행위이자 문화로 인식되고 있다. 문신한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을 매체를 통해 보는 건 거의 일상화되었고, 거리를 다니다 보면, 각자의 기호에 따라 다양한 도안의 문신을 한 일반 젊은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제 문신은 선호의 차이에 따라 자유롭게 행할 수 있는 선택적 행위 그 이상은 아니다. 여기에는 더 이상 시비나 선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본래 문신이란 행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동아시아의 경우만 보더라도 문신은 상당한 연원을 가지고 있다. 고대 중국 상(商)나라의 갑골문(甲骨文)이나 주(周)나라의 금문(金文)을 보게 되면, 아래와 같은 형태의 초기 글자 도안을 볼 수 있다.
그림 1. 갑골문(왼쪽)과 금문(오른쪽)
이는 모두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사람의 가슴팍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려져 있는 모습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문신을 한 것이다. 물론 침습을 통한 영구적인 문신이었는지 아니면 도말에 그친 지울 수 있는 헤나 같은 것이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당시 중국의 상나라나 주나라(특히, 西周) 시대까지만 해도 문신이 보편적이고 일상적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아주 특별하고 기이한 행위로 인식되지 않았음은 충분히 유추해볼 수 있다. 들리는 말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사회에서는 문신을 통해 종족적 정체성 혹은 종족집단 내 신분상의 구별 등을 나타냈다고 한다.
주지의 사실이겠지만, 앞의 두 개 도안은 모두 한자 ‘文(문)’의 초기 형태를 나타낸다. 따라서 文은 본래 몸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 즉, 文身(문신) 그 자체를 뜻하는 한자였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후에 무늬를 뜻하는 ‘紋(문)’이란 새로운 글자가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렇게 보면, 문화의 시작은 어쩌면 문신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요즘 문신을 하는 사람들은 그 문화 본연의 모습을 추구하고 나아가 그것을 새로운 유행과 취향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요즘 말로 뉴트로나 힙트로일 수도 있겠다.
송승석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