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유럽의 저명한 사상가의 표현을 빌자면, 현재 한국에서는 ‘조공(朝貢)’이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19세기 유럽의 유령이 사회 변화로 인한 새로운 사조의 등장에 대한 기존 체제의 두려움의 표현이었다면, 21세기 한국의 ‘조공’이라는 유령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동아시아 국제질서에 대한 대응을 막고 20세기의 냉전적 사대(事大)질서를 유지하고자 호출되었다.
당나라 염립본(閻立本)의 직공도(職貢圖)
주지하다시피, 조공이란 전근대시기 동아시아 전통적 질서의 기본원리로 조공과 책봉을 통해 유지되던 중국 중심의 질서체계였다. 21세기 중국의 재부상에 의해 구축될 새로운 질서와 우리의 대응에 대한 모색은 필요불가결하다. 그러나 근자에 사드 배치를 둘러싼 국내에서의 논란 이후, 그에 대한 반대 주장을 무분별하게 21세기판 조공론자로 ‘딱지붙이기’하는 것은 대중국 전략의 모색은 물론 변화하는 국제질서에 대한 우리의 대응 전략 모색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이는 역사와 현실의 혼동이자 역사에 대한 오독이다.
조공은 두 가지 측면에서 우리에게 상처이다. 첫째, 평등한 관계를 전제하는 근대적 국가질서의 관점에서 보면 위계적 책봉관계에 의한 조공체제는 자주적이지 못했던 역사라는 점에서 생채기이다. 둘째, 역사적으로 실재한 중국을 무조건적으로 숭배한 모화(慕華)론자들의 존재가 조공과 모화론을 등치시키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 질서인 조공체제와 근대적 질서의 혼동이 몰역사적일지라도 감정적으로 보면, 조공체제가 당혹스러운 것은 분명하다. 중국과 조선의 관계는 멀리 갈 것 없이 『조선왕조실록』만 보더라도, 조선의 왕이 중국의 황제에게 칭신(稱臣)하는 종번(宗藩) 즉, 종속 관계였기 때문이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에게는 그러한 역사는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치욕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러한 역사가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중국에게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러한 당혹감이 드러나는 것이 21세기 들어 중국에서 야심차게 진행하고 있는 역사편찬사업의 핵심 사업인 『청사(淸史)』의 대외 관계에 대한 서술이다.
전통적으로 중국의 관점에서 대외관계는 예(禮)의 영역이었다. 가장 최근에 편찬된 정사 『淸史稿』에서도 청조의 대외관계를 『예지(禮志)』권에서 다루고 있다. 중국적 질서에서는 대외관계라는 개념이 없었으며 예의 영역의 신속(臣屬) 관계로 보았기 때문이다. 『청사』는 전통 왕조의 역사편찬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편찬체계도 기본적으로 전통을 계승하였다. 그런데 대외관계에 대해서는, 전통적 질서를 근대적 대외관계로 설명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전통적 방식으로 서술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나라 간의 교류라는 의미’의 방교(邦交)라는 새로운 명칭의 지(志)를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출판이 되어야 확인될 문제이기는 하지만, 조선과 청조의 관계를 종번 관계가 아니라 우호관계로 서술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오고 있다. 그것은 전통적 질서가 ‘속국’이었던 우리뿐만 아니라 ‘종주국’이었던 중국으로서도 현대적 국제관계에서 볼 때는 곤혹스러운 관계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에게 조공체제의 곤혹스러움은 근대적 질서와 그것의 차이에만 그치지 않는다. 조공체제는 중국 중심의 고도로 의례적이고 위계적인 관계로 보이지만, 실제 과정에서는 심지어 중국의 주체조차도 반복적으로 변경시킬 만큼 강력한 중국과 주변의 역(逆)의 불균형 관계를 포함했다. 이백(李伯)의 시로 애잔하게 남아 있는 한 원제(元帝) 때 흉노(匈奴)의 선우(單于)에게 시집간 왕소군(王昭君)이나 현재는 티베트와 한족을 하나로 묶는 유대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당 태종이 토번(吐蕃 티베트)의 왕에게 시집보낸 문성공주(文成公主)는 한과 당 시기 중국의 주변에 대한 우월이나 시혜가 아니라 ‘제국’의 취약성의 상징이다.
유목민족과 중국(중화)의 관계는 단순한 힘의 불균형 관계에 그치지 않고 중화의 주체에 대한 반복적 전복으로 이어진다. 남북조시기 중국에 들어가 수당(隋唐)제국의 주체가 되는 선비(鮮卑)족을 위시해, 요의 거란족, 금의 여진족, 원제국의 몽고족, 그리고 청제국의 만주족은 ‘야만’이 중국을 차지해 ‘중화’가 된 것이다.
중국은 이들 정복왕조를 자랑스러운 ‘중화민족’의 역사로 여긴다. 이러한 중화의 역사는 마치 현대 멕시코의 탄생과정으로서 코르테스에 의한 아즈텍 제국의 멸망이라는 피의 과정이 반복적으로 계속되었던 것과도 같으며 아큐(阿Q)식의 정신승리법이기도 하다. 반복적으로 재생된 중화의 위대성이란 결국 야만에 의한 중국의 정복과 정복자를 중화로 만드는 자기희생을 통한 중국의 주체를 재구성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21세기에 등장한 ‘조공론’은 조공체제의 이러한 가변성과 역동성은 무시하고, 형해화된 중국 중심성만을 남겨두고 중국의 부상을 마치 새로운 ‘중앙 제국’의 등장으로 보는 관점이다. 그러한 관점에서는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현실적 이해에 대한 고려를 조공론이라고 ‘딱지 붙이기’를 하고 있다. 기실 이들 조공론을 부르짖는 사람들이야말로 17세기 명·청 교체기에 현실적 변화를 파악하지 못한 채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잊지 못한 모화론자들의 진정한 계승자들이다. 이들은 변화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의 현실적 이익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오매불망 20세기 ‘재조지은’을 잊지 못하고 냉전적 ‘사대’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신형 ‘모화론자’이다. 21세기 ‘조공론’은 신형 ‘모화론자’들이 자신들의 내재적인 ‘사대’를 가리기 위해 역사로부터 불러온 유령일 뿐이다.
안치영 _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 중국학술원 중국자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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