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공산당이 이끄는 국가이다. 당연히 중국의 권력은 공산당에게 있다. 중국의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묻는 것은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중국의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묻는 것은 중국에서 “공산당의 영도”를 다시 강조하는 것과 관련된다. 중국에서 공산당 영도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철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한 것을 다시 강조하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시진핑 시기 다시 당의 영도를 강조하고 시진핑 개인으로의 권력 집중이 이루어졌다. 심지어는 중공이 잘못된 역사적 실천으로 부정적 평가를 하는 문화대혁명 시기 완전한 형태가 등장한 “당, 정부, 군대, 민간조직, 학교와 동서남북과 중앙에서 당이 일체를 영도한다.”는 표현이 다시 등장하였다. 이 문구는 2017년 19차 당 대회에서 개정된 당장에 수록되었으며, 2018년 개정된 헌법에도 당의 영도가 명문화되었다. 당의 영도는 문혁 시기인 1975년 개정된 헌법에서 처음으로 명기되었다가 현행 헌법인 1982년 헌법에서 삭제된 것이었다. 헌법 수록 여부에 상관없이 당의 영도는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에 굳이 헌법의 자구를 통해 강조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시진핑 시기 왜 당의 영도를 다시 당장과 헌법에 명문화하여 강조하는 것일까? 당연한 것을 강조하는 것은 그것과 관련된 무엇인가 중요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에 대한 강조가 지니는 함의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1971년 발생한 린뱌오(林彪)사건 시기 중국의 언론 보도가 그것이다.
린뱌오사건은 사건 발생 직후에는 비밀로 부쳐졌다. 그렇지만 당시 중국의 정치범들이 투옥되는 베이징의 친청(秦城)감옥에 투옥되어 있던 문혁전 당의 선전부장 루딩이(陸定一)의 부인 옌웨이방(嚴慰氷)은 린뱌오 사건 10여일 후 린뱌오 문제를 알아챘다. 누군가가 소식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아니라 감옥에 들어오는 『인민일보』와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였다. 『인민일보』에서는 9차 당 대회 이후 관용적으로 사용되었던 “위대한 마오(毛) 주석을 수령으로 하고 린(林)부주석을 부수령으로 하는 당 중앙”이라는 표현이 사라졌으며, 라디오 방송에서는 「3대 기율과 8항의 주의사항」을 계속 방송하였다. 당의 선전부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옌웨이빙은 「3대 기율과 8항의 주의사항」을 계속 방송하는 것은 누군가가 엄중하게 기율을 어겼기 때문임을 알았다. 그리고 『인민일보』에서 린뱌오가 사라진 데서 당의 기율을 어긴 그 누군가가 바로 린뱌오임을 추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국공산당은 18차 당 대회 이후 도대체 왜 당의 영도를 다시 강조하는 것일까? 우리는 시진핑 이후 중국의 권력구조 변화에 대하여 시진핑 1인체제의 강화에만 주목한다. 심지어는 시진핑의 종신집권에 대한 논의도 등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당의 영도의 강화에 대하여는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그런데 시진핑 이후 중국의 권력구조 변화의 핵심은 당 영도의 강화이며 시진핑으로의 권력 집중도 그 일환으로 발생한 것이다. 당 영도를 다시 강조하는 것은 당 영도, 다시 말해서 공산당 권력의 이완과 관련된다. 그리고 그것은 개혁이후 이루어진 중국의 정치사회적 변화와 관련된다.
중국의 개혁은 시장화와 분권화 그리고 법제화와 법치라고 할 수 있다. 분권화는 권력 분산과 중앙의 권력의 상대적 약화를 초래했다. 시장화는 자원 배분 기제의 다양화와 더불어 자원배분을 기제를 장악한 새로운 권력을 등장시켰다. 위챗페이, 알리페이 등이 상징하는 정보통신 기술과 혁신이 결합된 IT공룡의 등장, 경제의 핵심을 장악하는 금융의 등장 등이 그것이다. 법제화와 법치는 제도화 규범화를 통하여 문제를 처리하는 절차를 합리화한 반면 당의 통제를 받지 않는 제도적 절차에 기초한 새로운 세력을 출현하게 했다.
과거 고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했듯이, 중국에서도 개혁의 결과 시장과 법치가 새로운 세력을 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공산당 권력의 이완 가능성이 발생한 것이다. 중국에서 공산당과 공산당이 통제하는 조직 외에는 전국적인 영향력을 갖는 조직은 허용하지도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시장화는 전국적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중국을 넘어서는 영향력을 갖는 거대한 공룡 기업을 출현시켰다. 이들에 의한 자원의 독점과 통제가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선진 금융기법의 도입이라는 이름으로 IT공룡들의 금융에 대한 통제도 현실화되고 있었다. 게다가 이들 세력과 당내의 기존 권력이 결탁한 부패가 만연하기까지 했다. 말 그대로 개혁을 통하여 점진적인 ‘변색’의 가능성이 등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중국공산당은 2013년 중국의 개혁을 (앞이 보이지 않는) 깊은 물속에서 강고한 세력과 맞붙어야 하는 상황에 비유했다. 개혁이 새로운 기득권을 만들었는데 이들이 개혁하기 가장 어려운 세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엎친데 덮친격으로 저우용캉(周永康)사건, 쑨정차이(孫政才), 시차이호우(徐才厚), 궈보슝(郭伯雄) 사건 등으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분산된 권력 구조는 부패와 더불어 승계 과정에서 권력투쟁을 초래했다.
이러한 상황은, 2013년 전면적인 개혁 심화의 제기가 중국의 기존 개혁이 임계점에 달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이 개혁의 결과 안팎으로 새로운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임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개혁으로 인하여 형성된 새로운 기득권과 분권화, 시장화, 법제화가 당의 안팎에서 공산당의 권력을 침식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기된 것은 전면적인 개혁 심화와 당 건설의 강조였으며, 그 과정에서 당의 영도를 다시 강조하고 당정일체화와 분산된 권력을 재집중화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시진핑 시기 중국의 권력구조 변화가 단순한 시진핑 개인 권력 강화 이상의 복잡한 배경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당 영도 일체를 통한 당정일체화와 권력의 재집중화가 중국과 중국공산당을 구원할 수 있을까? 중국의 변화에 대한 외부의 우려와는 별개로 중국과 중국공산당은 권력이 당과 개인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당정일체화가 초래한 고통스러운 결과를 기억하고 있다. 공산당과 ‘위대한 마오쩌둥 주석’도 치명적 오류를 범했음을 알고 있다. 중국의 인민은 문혁때의 폐쇄된 사회의 인민이 아니라 개방된 세계를 경험한 인민이다. 누군가가 11기 3중 전회 이후의 노선과 방침과 정책을 바꾸려고 하면 인민에 의하여 타도될 것이라고 덩샤오핑이 말했듯, 민에게 배치되는 권력을 타도할 수 있는 인민이다.
“하늘은 높고 황제는 멀리 있다.”고 했듯이 중국의 인민은 권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그렇지만 중국은 유구한 역사를 가졌지만, 중국만큼 빈번한 왕조교체를 경험한 역사체는 없다. 그리고 거의 모든 역대 왕조는 농민반란으로 멸망하였거나 농민반란이 멸망의 발단이 되었다. 장기적으로 보면 중국만큼 쉽게 권력의 배를 뒤집을 수 있는 인민의 물결은 드물다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그러한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공산당은 살얼음판을 걸어가듯 조심스럽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중국의 역대 왕조가 전 왕조의 전철을 밟아 그렇게 망해왔던 것은 과거의 역사를 몰랐기 때문이 아니다.
당의 일체에 대한 영도와 당정일체화, 시진핑으로의 권력 집중이 덩샤오핑이 말한 11기 3중 전회 이후의 노선, 정책, 방침을 뒤집은 것인지, 공산당에 권력을 ‘부여한’ 인민의 이익을 교란하는 새로운 권력의 출현을 막고 인민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것인지, 혹은 11기 3중 전회 이후의 노선이 낡았기 때문에 필요한 새로운 대체를 한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중국 인민뿐이다. 그렇지만 “시진핑의 당 중앙과 전체 당의 핵심으로서의 지위에 대한 수호와 당 중앙의 권위와 집중 통일 영도에 대한 수호”를 강조하는 것은 뭔가 개운하지 못하게 한다.
안치영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원장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방송통신대 중어중문학과 장호준교수가 촬영한 것임.